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307)
신마의선-307화(307/500)
신마의선 (307)
큰 피해 없이 복귀한 단악선은 자신이 제압한 혈운사 별동대의 수장을 바얀에게 넘겼다.
그뿐만 아니라 툴가를 비롯한 수부타야의 부족들 역시 바얀의 부족에 합류했다.
그 과정에서 주인을 잃은 팔십여 기의 군마를 챙긴 건 덤이었다.
“운이 좋았습니다.”
아군의 상태를 파악한 사무심이 뒤늦게 안도의 한숨을 흘렸다.
“마운이라는 자를 제외하면 혈운사의 정예에 속한 자들은 없었던 모양입니다. 아마도 복속시킨 부족의 전사들로 별동대를 구성한 것 같더군요.”
“저들의 실제 전력은 이 정도가 아니라는 말씀이시죠?”
단악선의 반문에 사무심이 고개를 끄덕였다.
“인마일체(人馬一體). 사람과 말이 하나처럼 움직이는 혈운사의 비황진(飛蝗陣)은 그 어떤 무림의 합격진과도 비할 바가 아닙니다. 살아 있는 하나의 유기체처럼 끊임없이 변화하며…….”
언젠가 이를 겪어 본 적 있는 사무심은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며 짧게 진저리를 쳤다.
“몹시도 흉악하지요.”
그때였다.
마운을 심문하던 바얀이 게르 밖으로 나와 단악선을 찾았다.
“우리는 뜻을 함께하기로 했네.”
바얀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던 수부타야 부족의 전사, 툴가 역시 비장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들이 아니었다면 여자와 아이들은 지옥의 구렁텅이에 던져졌을 터. 우리는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했을 것이오. 중원인에게 목숨을 빚졌다는 사실이 부끄럽지만…….”
말끝을 흐리던 툴가가 더없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은인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올리겠소. 그대들에게 빚진 목숨이니 언제든지 기꺼이 내어 드리리다.”
툴가가 갑자기 한 자루 비수를 꺼내 자신의 손바닥을 그었다.
그리고 뚝뚝 떨어지는 핏물을 들고 있던 술잔에 떨어트렸다.
핏물 섞인 술을 한 모금 들이켠 툴가가 술잔을 단악선에게 내밀었다.
“피를 나눈 형제로 인정한다는 의미입니다.”
바얀의 설명에 단악선이 당황했다.
“문제가 하나 있어요.”
의아해하던 바얀과 툴가도 이어진 단악선의 말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전 술을 못 마셔요.”
그날 밤.
단악선은 착잡한 마음으로 게르 앞에 세워진 장대를 올려다보았다.
기다란 장대.
그 끝에는 마운의 잘린 머리가 걸려 있었다.
혈운사를 향한 이곳 부족들의 원한이 얼마나 깊은지 모르는 바는 아니나, 절로 눈살이 찌푸려지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인과응보(因果應報)다. 이게 다 저들이 쌓아 올린 악업의 대가이니 그리 심란해할 필요 없다.”
초악량이 건넨 위로에 단악선이 나직이 한숨을 흘렸다.
한설화가 단악선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였다.
“전 괜찮아요. 이미 각오한 일인걸요.”
애써 웃은 단악선이 장대에서 시선을 거두었다.
그리고 바얀이 머무는 가장 큰 게르로 향했다.
단악선을 필두로 초악량과 한설화가 들어서자 곧장 회의가 시작되었다.
“머지않아 별동대의 전멸 소식이 놈들 귀에도 들어갈 터. 혈운사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걸세.”
이번에 새로 합류한 수부타야 부족의 전사, 툴가의 말에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들이 어느 정도의 병력을 동원할지가 관건이겠네요.”
“이미 한번 크게 데였으니 설욕을 위해서라도 상당한 전력을 쏟아붓겠지.”
“그렇겠죠. 저들 입장에서는 우리가 흩어진 부족을 규합하는 구심점이 되는 걸 용납할 수 없을 테니까요.”
지금까지 수월하게 부족들을 병탄해 가던 혈운사였던 만큼 어떻게 해서라도 오점을 만회하려 할 게 분명했다.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넜어요.”
나름 혈운사도 피해를 입은 이상 더 이상의 항복 권유는 없을 터.
“타 부족에게 경고하기 위해서라도 본보기 삼아 철저하게 유린하려 할 테죠.”
그 말에 바얀과 툴가가 침음성을 흘렸다.
아무리 사기가 높다 하나 지금의 병력으로는 부족을 지키는 데 한계가 있었다.
기껏해야 별동대 서너 개를 상대할 정도.
그것도 어디까지나 정예가 포함되지 않은 경우를 상정한 계산이었다.
혈운사의 정예로 구성된 본대가 움직인다면 이 계산마저도 의미가 없었다.
게다가 이쪽은 유린전의 불리함을 안고 있었다.
바로 여자와 아이들이었다.
놈들이 노예 확보의 목적이 아닌, 철저한 살육으로 일관한다면?
아무리 수비를 잘한다 하더라도 단 한 번만 뚫리면 돌이킬 수 없는 피해로 이어진다.
물론 별동대 하나를 일거에 쓸어버린 단악선 일행의 전력은 무시할 수 없었다.
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약점을 안고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바얀이 복잡한 눈빛으로 단악선을 보았다.
‘문제는…….’
기동성이었다.
이미 혈운사도 단악선 일행에 대한 정보를 얻었을 터.
굳이 정면에서 싸우지 않고 기마술을 이용해 우회하거나 그대로 돌파해 후방의 게르를 노리면 그 뛰어난 무공도 의미가 없어진다.
하다못해 적당한 거리를 두고 이리저리 끌고 다니기만 해도 발을 묶기엔 충분했다.
그렇게 고민하기를 잠시.
바얀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방법이 있겠소?”
단악선이 잠시 사무심과 시선을 교환했다.
이에 대해 사전에 계획해 둔 바가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수비를 포기하고 공격으로 전환해야 해요.”
그 말에 바얀과 툴가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래도 단악선은 설명을 이어 갔다.
“북동쪽에 위치해 있는 옛 성터. 그곳을 근거지 삼아 삼백 명 규모의 혈운사가 활동하고 있다 들었어요. 우리가 먼저 그곳을 쳐야 해요.”
“그다음에는?”
바얀의 물음에 단악선이 곧장 대답했다.
“곧바로 이동해 다른 혈운사를 쳐야죠. 그렇게 연속으로 몰아쳐 피해를 누적시키면 자연스럽게 경각심을 지니게 될 것이고, 지금처럼 별동대를 운용하는 방식도 주저하게 될 거예요. 습격에 대한 두려움을 심어 주게 될 테니까요.”
물끄러미 단악선을 응시하던 바얀이 한숨을 내쉬었다.
실망스러운 기색이 역력한 표정이었다.
‘하긴…….’
중원인인 그들이 초원에서 살아가는 방식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것은 불가능하오.”
“왜 그런가요?”
단악선의 반문에 바얀이 쓰게 웃었다.
“그걸 전제하기 위해서는 부족 전체가 쉴 새 없이 거처를 옮겨야 한다는 뜻인데,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오.”
필마단기로 움직이는 혈운사와 달리 이쪽은 게르를 비롯한 말과 양, 아녀자까지 함께 움직여야 했다.
그만큼 신속한 이동에 제약을 받게 되고 혈운사와는 기동력 차이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벌어지는 것이다.
“제 말을 오해하셨군요.”
단악선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조건이 같아진다면요?”
“……?”
“오직 기마술만 놓고 비교했을 때도 혈운사에게 밀리나요?”
“그럴 리가! 기마술만 따진다면 놈들은 결코 우리의 상대가 될 수 없소.”
단악선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제게 해결책이 있어요.”
이어진 단악선의 설명에 바얀과 툴가의 눈에 놀라움이 떠올랐다.
“여자와 아이들을 관문 너머로 보내면 돼요. 그럼 우리는 오직 싸울 수 있는 전사만 남죠.”
“……!”
바얀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사실 이곳 초원의 전사들만이라면 천막 없이 이슬을 맞는 풍찬노숙도 거리낄 게 없었다.
다만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단악선이나 사무심은 믿을 수 있었지만, 장성 너머의 중원인들은 함부로 믿을 수가 없었다.
자신들을 오랑캐라 깔보는 그들에게 가족의 안전을 맡길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던 것이다.
만약 저들이 자신들을 배신해 가족을 인질로 삼는다면?
그런 바얀의 우려를 짐작한 듯 사무심이 무언가를 꺼내 앞으로 내밀었다.
“황제의 어인(御印)이 날인된 명령서일세. 게다가 가욕관의 책임자인 장군 역시 우리 쪽 사람이고.”
황제의 절대적인 권위를 상징하는 칙서.
그 안에 명시된 내용을 확인한 바얀은 단악선의 혜안과 준비성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뜻을 같이해 새롭게 합류하는 부족들 역시 그들이 원한다면 같은 방식으로 아녀자를 안전한 지역으로 보낼 거예요. 그리되면 그들도 가족의 안전을 위해 협력할 가능성이 높고요.”
고민을 이어 가던 바얀이 입을 연 것은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였다.
“혈운사의 별동대를 습격하면서 다른 부족들과 접촉해 그들을 설득하면 되는 건가?”
비로소 단악선이 그린 큰 계획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잠시 시선을 마주한 바얀과 툴가가 고개를 끄덕였다.
혈운사에 대항할 구심점이 없던 부족.
그들을 설득하는 일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협력에 대한 명분과 그들에게 제공할 실익.
이 모두를 외면할 만큼 어리석은 자들이라면 이 가혹한 초원에서 도태될 뿐이었다.
* * *
“큭!”
노획한 부족의 여인을 겁탈하려던 아우르거의 입에서 짤막한 경호성이 터져 나왔다.
주륵.
입술을 타고 흐르는 피를 확인한 아우르거의 눈에서 살기가 번들거렸다.
“감히!”
퍼억.
아우르거가 자신의 입술을 깨문 여인의 아랫배를 걷어찼다.
발가벗겨진 채 그의 발밑에 널브러져 있던 여인이 몸을 웅크린 채 꺽꺽댔다.
그럼에도 아우르거는 멈추지 않았다.
빠악!
인정사정없는 그의 주먹질로 인해 사방에서 핏물이 튀어 올랐다.
그러고도 분이 풀리지 않았던지 아우르거는 쉬지 않고 주먹을 휘둘렀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경련을 일으키던 여인의 몸이 어느 순간 힘없이 늘어졌다.
“더러운 피라서 그런지 냄새도 지랄 맞군.”
참혹하게 죽은 여인을 내려다보던 아우르거가 주먹에 묻은 피를 시신에 문질러 닦아 낸 뒤 씩씩대며 게르를 나섰다.
미처 해소하지 못한 정욕을 해소할 다른 계집을 찾기 위해서였다.
오래전에 무너져 흔적만 남은 고성(古城).
성벽의 잔해에서 여인들의 비명과 흐느낌이 새어 나왔다.
그러나 아우르거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이미 일상 같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지.’
이는 일종의 세례(洗禮)와도 같은 과정이었다.
윤리나 양심 같은 족쇄를 풀고 그저 본연의 욕망에 충실해질 때, 비로소 진정한 혈운사로 거듭나는 것이다.
각 부족에서 받아들인 전사들을 혈운사의 정규군으로 양성하는 책임자인 아우르거였다.
혈운사의 정병을 양성하는 과정은 지극히 단순했다.
습격과 노략을 반복하는 방식이었다.
원하는 것이 있다면 빼앗고 쟁취한다.
지극히 원초적인 초원의 율법에 충실히 몸을 내맡기면 되는 것이다.
원의 새로운 참주(僭主)를 자처하고 나선 혈운사의 총령.
그의 방침도 마찬가지였다.
적통에 관계없이 실력으로 한의 자리를 찬탈해 초원의 주인으로 군림하겠다는 그의 포부는 혈운사를 이끌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이때 게르 밖에서 아우르거를 기다리고 있던 수하 한 명이 그에게 다가섰다.
“뭐냐? 급한 게 아니면 나중에 보고해라.”
정염(情炎)으로 이글거리는 아우르거의 눈빛에 잠시 멈칫하던 수하가 황급히 입을 열었다.
“바얀이 사라졌습니다.”
“사라졌다고?”
“아무래도 다시 한 번 거처를 옮긴 것 같습니다.”
“흥! 겁 많은 쥐새끼 같으니.”
감히 맞서 싸울 용기도 없는 작자가 한 부족을 이끄는 우두머리라니.
“준비 중인 녀석들은 어떻게 할까요? 계획대로 본대에 합류하는 겁니까?”
조심스러운 수하의 물음에 아우르거가 눈살을 찌푸렸다.
며칠 전 혈운사 본대로부터 정식으로 내려온 명령.
그가 훈련하고 있는 예비 병력 가운데 이백 명을 차출한다는 내용이었다.
“일단 전령을 띄워 본대에 보고한 뒤 다음 명령을 기다린다. 그리고 정찰 인력을 더욱 늘려 놈들의 행방을 추적해라. 식솔들을 대동해 움직이고 있을 테니 그리 멀리 가진 못했을 것이다.”
그 순간.
퍼펑.
아득히 먼 곳에서 들려온 폭음에 아우르거가 고개를 돌렸다.
허공에서 비산해 흩어지는 폭연(爆煙).
‘습격?’
그들만의 고유 신호를 확인한 아우르거가 주변을 향해 외쳤다.
“전열을 정비하라!”
그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의 휘하 전사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잠시 후.
“……?”
지평선 끝에서 모습을 드러낸 적을 파악하던 아우르거의 눈에 당혹감이 떠올랐다.
놈들이 지닌 깃발 때문이었다.
“도망갔다는 놈들이 어째서 이리 오는 것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