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308)
신마의선-308화(308/500)
신마의선 (308)
고작 오십여 기에 불과한 기마.
선두에 내건 깃발은 분명 바얀 부족의 것이었다.
그 초라한 규모에 처음에는 항복을 하러 온 줄 알았다.
한데 아니었다.
“미친 건가?”
속도를 줄이기는커녕 놈들은 말을 다그쳐 속도를 높이고 있었다.
거기에 전투를 독려하는 함성까지.
아우르거가 실소했다.
“미친 게 맞군.”
실로 가소롭기 짝이 없었다.
저들의 습격은 그야말로 불에 뛰어드는 부나방과 다를 바 없었다.
평지에서 맞부딪친다 해도 전력은 이쪽이 훨씬 우세했다.
게다가 지형상으로도 자신들이 유리함을 점하고 있었다.
얕은 구릉이라 할지라도 고지대를 선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경사진 비탈을 오르는 건 말에게도 부담이 된다.
저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기껏해야 거리를 두고 화살을 날려 대는 것뿐.
불시에 허를 찌른다면 효과적이었겠지만 지금처럼 만반의 준비를 갖춘 상황에서는 의미가 없었다.
곳곳에 흩어진 성벽의 잔재들을 이용해 엄폐하면 그만이다.
“기다려라.”
아우르거의 차가운 음성이 투레질을 하며 금방이라도 달려 나갈 것 같은 말들을 진정시켰다.
습격자들의 투지는 높이 사지만 어리석은 용기는 그저 만용일 뿐.
그런데…….
‘뭐 하는 짓이지?’
아우르거의 눈에 의아함이 떠오른 것도 그때였다.
예상대로 놈들은 화살을 날리기 시작했다.
한데 그 화살 절반은 이쪽에 닿지도 못하고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뒤늦게 무언가를 깨달은 아우르거는 내심 어이가 없었다.
저들 중 절반가량은 말을 제대로 다루지도 못하고 허둥거리고 있었다.
‘어디서 저런 오합지졸들을.’
아우르거가 헛웃음을 흘렸다.
저래서야 귀한 화살을 헛되이 소모할 뿐이다.
“놈들의 화살이 소진되면 치고 나간다.”
아우르거의 명령에 훈련을 거치며 더욱 흉포해진 전사들이 발을 건 등자에 힘을 실었다.
언제든지 치고 나갈 수 있도록 전의를 불태우던 그때.
“음?”
눈앞에 펼쳐진 의아한 광경에 아우르거가 고개를 갸웃했다.
놈들이 갑자기 말을 돌려 달아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무언가 이질적인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 이유를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후퇴하는 기마에 말을 모는 기수가 보이지 않았다.
지면에 바짝 붙어 이쪽을 향해 달려오는 일단의 무리가 눈에 들어온 것도 그때였다.
한데 빠르게 접근하는 그 속도가 심상치 않았다.
‘무림인!’
하나같이 초절한 신법으로 거리를 좁혀 오는 저들의 모습에 아우르거가 놀라 소리쳤다.
“응전해라!”
아우르거가 빠드득 이를 갈았다.
놈들이 날린 화살은 처음부터 시선을 허공에 붙들어 두기 위한 미끼에 불과했던 것이다.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혈운사의 전사들이 창 대신 칼을 뽑아 들었다.
이미 거리를 내어 준 이상 근거리 전투에서는 단병이 훨씬 효율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크악!”
“끄어!”
아우르거의 눈에 감출 수 없는 당혹감이 떠올랐다.
‘고수!’
무기를 몇 번 휘둘러 보지도 못하고 말 위에서 거꾸러지는 수하들의 모습에 아우르거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어떻게 손을 쓸 방법이 없었다.
그만큼 상대가 그의 예상을 아득히 넘어선 고수들이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유리하다 생각했던 지형의 이점이 오히려 치명적인 독이 되었다.
벽 사이를 뛰어다니며 정신없이 검기와 경력을 날려 대는 놈들의 공격에 순식간에 오십 명이 넘는 수하가 쓰러졌다.
그야말로 속수무책.
맨몸인 적을 상대로 한 기마의 유리한 점 중 하나가 상대적으로 높은 위치에서 가하는 공격이었는데, 그 점이 사라진 것이다.
더구나 방해물이 많아 신속하게 기동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아우르거도 만만치 않았다.
“저놈들을 먼저 친다!”
아우르거가 말을 몰아 달려 나가자 그의 수하들도 급히 말을 몰아 그 뒤를 따랐다.
실전을 통해 오랫동안 몸에 밴 그의 노련함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그 와중에도 서른 명이 넘는 혈운사가 쓰러졌다.
급하게 선회하느라 허술하게 등을 내준 탓이다.
그래도 재빨리 기지를 발휘했기에 그 대단한 고수들을 닭 쫓던 개로 만들어 버렸다.
‘빌어먹을!’
한 차례 이를 간 아우르거가 전면을 노려보았다.
그래도 그에게는 아직 이백이 넘는 기마가 남아 있었다.
‘일단 눈앞의 적을 쓸어버린 뒤 전장을 이탈한다.’
배후에 남기고 온 고수들이 아무리 대단하다 한들 상대하지 않으면 그뿐.
아무리 뛰어난 경공을 지니고 있다 한들 지구력에서는 말을 따라올 수 없었다.
이후 진영을 재정비한 뒤 일거에 놈들을 쓸어버리면 되는 것이다.
그때였다.
달아나는 것을 포기했는지 가장 최후미의 기수가 말 머리를 돌리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 말에서 내리기까지?
‘나름 무공에 자신 있다 이건가? 어리석은.’
무림인들이 흔히 간과하는 부분.
군세를 이룬 기마의 돌진이 지닌 파괴력이었다.
특히나 이처럼 평지에서 그 위력은 극대화되는 법.
제아무리 뛰어난 호신강기도 종잇장처럼 찢어발기는 창날의 해일 앞에서는…….
그러나 아우르거는 더 이상 생각을 이어 갈 수 없었다.
갑자기 섬뜩한 오한이 전신을 감싸나 싶더니.
그가 몰던 말이 달리던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진 것이다.
“……!”
허공에 튕겨진 아우르거가 황급히 착지해 자세를 바로잡았다.
그리고 이내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눈을 부릅떴다.
‘이게 대체?’
무릎 아래로 매끄럽게 잘려 나간 애마의 다리.
그것도 모자라 온몸에서 피를 뿜어내며 버둥거리고 있었다.
마치 바닥에서 솟구친 칼에 온몸이 난자당한 것만 같았다.
“헉!”
“으악!”
곳곳에서 당혹성과 비명이 터져 나온 것도 그때였다.
선두의 말과 기수가 한데 뒤엉켜 핏물에 잠긴 참혹한 지옥도!
돌연 소름 끼치는 예기가 가슴을 베어 오는 걸 느낀 것도 그때였다.
써컥.
“……!”
본능적으로 물러서며 창대를 들어 올린 아우르거의 안색이 해쓱해졌다.
분명 방비했음에도 두부처럼 잘려 나간 창대.
게다가 길게 갈라진 가슴팍에서는 시뻘건 핏물이 솟구치고 있었다.
가까스로 피하지 않았다면 그대로 상체가 양단되었을 터.
하지만 언제까지 넋을 놓고 있을 수만도 없었다.
저만치 달아나던 바얀의 부족이 기수를 돌려 이쪽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주님을 구해!”
삼십여 기의 기마가 눈앞의 고수를 에워쌌다.
때마침 도착한 지원에 간신히 숨을 돌린 아우르거는 주인을 잃고 허둥대는 말을 잡아탔다.
그사이 적들이 도착했고, 전장은 순식간에 난전으로 치달았다.
“죽엇!”
자신을 향해 돌격해 오는 적을 향해 아우르거가 창을 내질렀다.
퍽.
어깨에 창이 꿰인 상대가 그대로 굴러떨어져 피를 토했다.
예상대로였다.
놈들의 전투 실력은 처음부터 자신들에게 비할 바가 못 되었다.
이를 증명하듯 곳곳에서 일방적인 전투가 속출했다.
다만 신경 쓰이는 건…….
‘계집이었나?’
자신의 애마를 죽이고 가슴의 부상을 안긴 고수.
그 상대를 확인한 아우르거는 가슴 깊은 곳에서 천불이 치밀었다.
‘제기랄!’
그녀를 에워싸고 있던 수하들이 제대로 힘 한번 써 보지 못하고 속절없이 쓰러지고 있었다.
꿈이 아닌가 싶을 만큼 비현실적인 광경이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뒤늦게 합류한 바얀 부족은 완벽하게 압도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사내는 전부 죽이고 계집은…….”
명령을 내리던 순간 아우르거는 자신을 응시하는 차가운 시선을 느끼고 흠칫했다.
“……버리고 이탈한다.”
그러나 아우르거는 얼마 안 가 이 결정을 후회해야 했다.
예상보다 바얀 부족의 사내들이 질기게 버티고 있었다.
발굽에 치여 피투성이가 되고, 칼날에 사지가 떨어져 나갔음에도 목숨을 던져 가며 집요하게 달라붙었던 것이다.
그렇게 어지럽게 엉키는 와중.
혈운사의 전사 한 명이 바얀 측의 사내 한 명을 쓰러트린 뒤 가슴에 칼을 박아 넣었다.
아니, 박아 넣으려 했다.
퍼헉.
칼을 움켜쥐고 있던 혈운사 전사의 머리가 수박처럼 터져 나갔다.
후두둑.
쏟아지는 핏물 너머, 차가운 눈빛을 뿌리고 있는 초악량을 발견한 바얀 측 전사의 눈에 뜨거운 눈물이 차올랐다.
죽음을 앞둔 절체절명의 상황.
모든 것이 끝났다 여긴 그 순간에 한 줄기 희망이 드리운 것이다.
그 모습에 아우르거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뿔싸!’
눈앞이 아득해졌다.
순식간에 처리한 뒤 치고 나갔어야 하는 예상치 못한 사태에 발이 묶여 너무 지체해 버렸다.
아니나 다를까.
분명 유리했던 전황은 어느새 단번에 뒤집혀 있었다.
그사이 거리를 따라잡아 속속 합류하기 시작한 정체불명의 고수들 때문이었다.
“퇴각하라! 전장을 이탈한다!”
명령을 내리는 것과 동시에 아우르거가 등자를 힘껏 걷어찼다.
그 순간 시커먼 무언가가 눈앞을 가득 메웠다.
뒤늦게 그것이 하나의 묵봉이 그려 낸 잔영이라는 것을 깨달은 아우르거가 있는 힘껏 창을 내질렀다.
“……!”
자신의 창이 헛되이 허공을 가른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
우드득.
무지막지한 충격이 어깨를 부수며 끔찍한 고통이 밀려들었다.
“크악!”
다시 한 번 말에서 굴러떨어진 아우르거가 찢어지는 비명을 내질렀다.
그러나 정작 그를 공격해 쓰러트린 단악선은 차디찬 눈빛으로 아우르거를 내려다볼 뿐이었다.
단악선의 손에 들려 있던 묵룡이 재차 움직였다.
빠악.
인정사정없는 단악선의 손속에 아우르거는 턱뼈가 바스러졌다.
혼절해 널브러진 아우르거를 뒤로한 채 단악선이 곧장 신형을 날렸다.
“움직이지 마세요!”
쓰러져 있는 바얀 부족의 사내에게 다가선 단악선은 황급히 그의 혈도를 눌렀다.
동시에 길게 베여 뭉클거리며 피가 쏟아지는 그의 옆구리를 지혈했다.
“살 수 있어요. 그러니 포기하지 마세요.”
그리고 재차 다른 곳으로 신형을 날렸다.
빠악!
가까운 혈운사의 등에 일격을 가해 쓰러트린 단악선이 그가 노리던 다른 바얀 사내를 향해 외쳤다.
“조금만 버티세요. 싸움이 정리되는 대로 치료해 드릴게요.”
이후에도 단악선은 지체 없이 몸을 날려 닥치는 대로 혈운사를 쓰러트리며 제압했다.
동시에 부상자들을 구해 한곳으로 모으기 시작했다.
급한 대로 금나수와 지풍을 이용해 지혈하고, 마혈을 찍어 상처가 벌어지는 것을 막았다.
그 와중에 장내의 상황은 완전히 아군 측으로 승기가 기울었다.
몇몇 혈운사의 생존자가 달아나긴 했지만 그 숫자는 극소수.
채 열이 넘지 않았다.
“지옥에서도 한 사람은 의원이로군.”
한 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단악선의 모습에 초악량의 눈 위로 복잡한 감정이 자리 잡았다.
그때,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이겼다!”
“혈운사는 전멸했다!”
곳곳에서 승전의 함성이 울려 퍼지자 단악선은 묵룡을 내려놓고 침을 들었다.
그런 단악선을 응시하던 바얀의 부족 전사들은 격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원래대로라면 죽었어야 할 심각한 부상자들.
한데 단악선의 손을 거치니 적어도 목숨만큼은 부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이라 해서 혈운사를 상대하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을 모를 리 없었다.
아니, 오히려 겪어 본 바가 있어 더욱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려움을 떨치고 이곳까지 함께한 이유는 오직 하나.
부족과 가족을 위해 나선 이방인들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가장 위험한 미끼가 되기로 했다.
그 결과.
초원의 부족 어느 누구도 해내지 못한 영광을 거머쥘 수 있었다.
압도적인 병력의 혈운사를 소수로 쓰러트린 것이다.
그야말로 계란을 던져 바위를 깬 이란격석(以卵擊石)의 기적.
바람을 타고 전해질 이 소식은 그야말로 새로운 희망이 되어 다시금 초원의 영혼을 깨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