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309)
신마의선-309화(309/500)
신마의선 (309)
가욕관 외성 문.
“문을 열어라.”
일대를 책임지고 있는 시조경의 지시에 중원과 초원 사이를 막아선 거대한 문이 활짝 열렸다.
그 사이로 말과 수레가 들어섰다.
수레에 누워 있던 부상자들은 가욕관의 거대한 규모에 일순 기가 질린 듯 신음조차 잊고 웅장한 성벽을 올려다보았다.
말을 탄 채 가욕관 안으로 들어선 사내들도 마찬가지.
비록 수레 위의 환자들만큼은 아니었으나 그들도 크고 작은 부상을 지니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바짝 긴장한 채 성문 안으로 진입했다.
길을 따라 양쪽에 도열해 있는 중원의 병사들.
그 서슬 퍼런 눈빛과 기세에 한시도 경계를 늦출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바얀의 부족을 감시하는 명의 정병들 역시 표정이 좋지 않았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건가?”
“그래도 우리에게 우호적이었던 놈들이라고 하지 않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저딴 오랑캐들을 폐하의 강역에 들이다니…….”
“명령이니 일단 따라야지. 억울하면 출세하든가.”
낯선 중원어로 저들끼리 속닥이는 병사들 사이를 가로질러 바얀의 부족은 넓은 광장에 도착했다.
미리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바얀의 부족들을 향해 다가섰다.
신마상단에서 파견한 인원들이었다.
그들 중 가장 먼저 입을 연 사람들은 의원들이었다.
“일단 환자 분류부터! 중상자와 경상자를 나누는 게 먼저다!”
“전부 다 중상자인데요?”
누군가의 반문에 처음 입을 열었던 의원이 버럭 했다.
“그럼 상처를 소독할 감총전과 지혈제부터 챙겨야지! 봉합사도!”
풍진성과 주초운 아래에서 혹독한 수련을 쌓은 의원들은 저마다 환자 한 명씩을 도맡아 치료를 시작했다.
“어?”
의원들 중 누군가가 탄성을 터트렸다.
“왜 그래?”
“여기 환자들이 이걸…….”
파견된 의원들을 지휘하던 노의원은 젊은 의원이 내민 종이를 받아 들고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단 의원님!”
부상자들은 저마다 한 장씩의 종이를 들고 있었는데, 그 안에는 부상 정도와 치료 방향이 휘갈긴 필체로 간략하게 기술되어 있었다.
그것이 있고 없고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서로 언어가 달라 환자들과 말이 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단 환자들은 곧바로 치료를 시작하고, 아녀자는 모두 간이 숙소로 이동시키게.”
급조한 천막으로 옮겨지는 환자들을 바라보던 여인들과 아이들은 불안한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이는 부상자들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부상은 둘째 치고 이곳은 그들의 영역이 아니었다.
그런 만큼 무슨 짓을 당해도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흔들리는 그들의 마음을 붙든 것은 헤어지기 전에 마주했던 단악선의 눈빛이었다.
‘그래도 그 사람이라면…….’
애써 불안을 떨친 여인과 아이들은 낯선 중원인들을 따라 이동을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그들이 도착한 곳에는 쉼터가 마련되어 있다.
비록 아늑한 게르는 아니었지만 쉬기에 부족함이 없는 건물이었다.
그 안에 들어선 여인과 아이들은 저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내부는 따듯했고 바닥에는 아늑한 보료가 깔려 있었다.
게다가 아이들을 위한 장난감도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바얀의 첫째 부인이자, 이곳 아녀자들의 우두머리 역할을 하고 있던 엥흐토야는 자신들을 인솔한 신마상단 사람들에게 중원식으로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능소밀이 웃으며 마주 인사했다.
그리고 무언가를 꺼내 그녀에게 내밀었다.
“여기 호각을 드릴 테니 필요한 게 있으시면 언제든 편하게 저희를 호출하시면 됩니다. 저희가 근처에서 늘 상주할 것입니다. 감시의 목적은 아니니 오해하지 마시고요. 여기 이 사람들은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여러분의 안전을 책임지기 위한 무인들이니 두려워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낯선 중원인이 유창하게 자신들의 언어로 말을 건네자 엥흐토야는 깜짝 놀랐다.
능소밀의 뒤에 도열해 있던 무위의 사파인들이 씨익 웃은 것도 그때였다.
그 모습을 마주한 엥흐토야는 다른 의미로 깜짝 놀랐다.
항상 빛난다는 의미의 이름을 지닌 엥흐토야였지만 이 순간만큼은 웃을 수가 없었다.
너무나 무서웠기 때문이다.
태생적인 한계일까.
나름 저마다 최대한 부드럽게 웃기 위해 노력한 것이었지만 흉악한 인상을 지닌 사내들이 일제히 웃자 그 자체만으로도 공포스러웠다.
그때였다.
“부인!”
사람들 사이를 헤치며 앞으로 나서는 사내가 있었다.
엥흐토야 옆에 말없이 서 있던 여인 한 명이 깜짝 놀라 달려 나갔다.
그녀의 시비이자 오랜 친구인 졸침께였다.
갑자기 나타난 남편을 얼싸안은 그녀가 눈물을 터트렸다.
혈운사와 첫 일전에서 부상을 입고 오래전 옮겨진 남편을 이곳에서 조우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난 괜찮소. 그러니 울지 마시오.”
“하지만…….”
울먹이는 아내를 토닥이던 바얀 부족의 사내, 바이라가 엥흐토야 앞에 무릎을 꿇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다친 곳은 괜찮은가요?”
엥흐토야의 물음에 바이라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 부상은 금방 아물 것입니다. 부상이 낫는 대로 다시금 바얀께 달려가 함께 말을 몰겠습니다.”
“무리하지 마세요. 그나저나…….”
“……?”
“이곳의 생활은 어떤가요?”
“조금의 불편함도 없습니다. 잠자리는 편하고 음식도 풍족합니다.”
능소밀과 무위의 사파인들은 저들이 편하게 대화할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 주었다.
그 배려에 감사하며 엥흐토야는 좀 더 상세히 여러 가지를 묻기 시작했다.
앞서 이곳의 생활을 겪은 바이라는 자신이 느낀 바를 솔직하게 설명했다.
“이곳을 관리하는 자들도 그 어떤 차별 없이 극진히 아이들을 돌보고 있습니다. 실제로 아이들의 상태도 좋아졌습니다.”
“그렇다고 마음까지 편하진 않겠지요.”
“조금만 견디십시오. 바얀께서 뜻을 꺾지 않고, 우리 초원의 전사들이 함께하는 이상 반드시 우리 손으로 승리를 쟁취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를 저도 바라요.”
엥흐토야가 눈을 들어 저 멀리 초원 쪽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비록 거대한 장성이 가로막고 있어 초원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곳에서 불어오는 바람만큼은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북풍이 불 때마다 고향을 향해 운다는 호(胡) 나라의 말도 이런 심정이리라.
벌써부터 남편과 드넓은 초원이 그리운 엥흐토야였다.
* * *
와직.
자단목으로 만들어진 단단한 의자 손잡이가 움켜쥔 손아귀 아래 그대로 으스러졌다.
“전멸이라고? 삼백에 달하는 전력이?”
수하의 보고에 혈운사를 이끌고 있던 총령, 보르테의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그것도 고작 나약하기 짝이 없는 일족에게?”
서슬 퍼런 보르테의 눈빛에 그 앞에 부복한 수하들이 더욱 바짝 엎드렸다.
“하!”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보르테는 어이가 없었다.
비록 훈련 과정이 끝나지 않았다고 하나 병합한 부족 내에서 제법 사나운 놈들만 추리고 추린 전력이었다.
더구나 그들의 훈련을 맡은 이는 혈운사 내에서도 제법 이름 높은 전사인 아우르거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날아드는 비보들은 하나같이 보르테를 분노케 만들었다.
연락이 끊긴 정찰대가 주검으로 발견된 건 예사였고, 자신들에게 굴복해 숨죽이고 있던 부족들도 슬슬 딴마음을 먹기 시작한 것 같았다.
보르테는 눈앞에 놓인 독한 화주를 벌컥벌컥 들이켜 가슴 속에서 치미는 불길을 억눌렀다.
그러나 이어진 다른 수하의 보고에 결국 노성을 터트리고 말았다.
“바얀을 중심으로 인근 부족들이 속속 결집하고 있습니다.”
“그걸 지켜만 보고 있었다는 말이냐!”
“…….”
보르테 앞에 부복한 그의 수하가 입을 다물었다.
무언의 항변인 셈.
그 모습이 보르테의 속을 더욱 뒤집었다.
‘이것들이?’
눈앞의 수하가 자신의 목을 걸고 건방을 떠는 이유를 그라 해서 모르지 않았다.
자신이 전대 총령의 적통을 잇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나 그게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초원에서는 오직 힘이 전부인 법이다.
보르테의 눈에서 뭉클거리는 살기가 쏟아졌다.
총령의 권위를 위해서라도 이쯤에서 본보기가 필요하다 판단한 것이다.
이를 눈치챈 다른 수하가 재빨리 입을 열었다.
“놈들을 따라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보르테가 눈살을 찌푸렸다.
“여자와 아이들이 있는데 어떻게 우리보다 빨리 움직일 수 있단 말이냐?”
“사내들뿐입니다.”
“뭐?”
“게르도 포기하고 바얀과 그의 수하들만 이동하고 있습니다. 여자와 아이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
보르테의 눈치를 살피던 그의 수하가 계속해서 보고를 이어 나갔다.
“무엇보다 놈들이 세를 불리는 바람에 이동 경로가 제한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로 인해 정찰조 역시 놈들의 이목을 피하기가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그걸 말이라고!”
퍽.
쨍그랑.
보르테가 집어 던진 술잔에 이마를 얻어맞은 사내가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더욱 고개를 숙여 이글거리는 눈빛을 감추었다.
이마에서 흘러내린 피를 닦지도 않고 바짝 엎드려 있는 수하의 모습에 보르테의 눈빛이 살짝 누그러졌다.
“흩어져 있는 조장들에게 집결 명령을 전달해라.”
이렇게 된 이상 그가 직접 나서는 수밖에 없었다.
혈운사의 정예를 이끌고 초원을 피로 물들이리라.
혈운사가 왜 혈운사라 불리는지 저들의 피와 영혼에 확실하게 새겨 주리라 다짐하는 그의 두 눈 위로 자욱한 살광이 일렁였다.
그의 지시를 받은 수하들이 부복한 채 무릎걸음으로 게르를 빠져나갔다.
그런데 여전히 보고할 것이 남았는지 수하 한 명이 여전히 그 자리에 엎드려 있었다.
“뭐냐?”
끝까지 남아 있던 외눈 사내가 입을 열었다.
“일단의 무리가 안문관을 통해 초원으로 들어왔습니다. 규모는 이백 명 정도로, 무림인으로 짐작됩니다.”
“무림인?”
“어찌할까요?”
“……일단 지켜봐라.”
엎친 데 덮친 격이라더니.
가뜩이나 바얀 쪽에 중원인들이 합류하며 동향이 묘하게 돌아가고 있었는데, 여기서 또다시 무림인이 장성을 넘었다는 사실이 적잖은 부담으로 작용했다.
수하가 물러가고 홀로 남은 보르테가 침중한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분명 방금 전까지 아무도 없었건만, 어느새 그의 등 뒤에는 한 사람이 유령처럼 서 있었다.
시체를 연상시키는 창백한 피부와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서늘해지는 눈빛.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웠지만 그 기도만큼은 절로 위축감을 느끼게 했다.
마교 내에서도 천마를 제외하고 가장 강하다는 여섯 명.
육마존 중 한 명이자, 그 누구라도 명부 책에 이름을 새겨 넣을 수 있다 알려진 은밀한 죽음이 바로 그였기 때문이다.
수하들 앞에서는 황제처럼 굴었던 보르테가 정중한 태도로 고개를 숙이고 있는 이유였다.
전대 총령의 그늘에 가려 항상 이인자의 자리에 머물러 있던 그를 지금 이 자리에 올려 준 사람이 바로 눈앞의 초로인이었다.
새외의 공포로 군림하던 혈운사였지만 연이은 불행에 의해 예기치 못한 내홍(內訌)에 휩싸였다.
당시 혈운사를 이끌던 총령.
그의 후계자였던 한 명뿐인 아들이 어떤 무림인에게 사로잡혀 바얀 부족에게 넘겨진 것이다.
분노한 총령은 당시 수행에 나섰던 혈운사를 직접 참살해 버렸다.
이에 불만을 가진 혈운사 일부가 반란을 일으켰고, 결국 서로 죽고 죽이는 싸움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총령이 죽어 버렸다.
뒤늦게 총령을 살해한 자가 마교 측 인물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상황은 이미 돌이킬 수 없었다.
스스로 수보라 밝힌 그는 자신에게 혈운사의 전권을 맡겼다.
혈운사 일부를 이끌고 총령과 대립하던 자들은 중원에서 건너온 칠절마군이라는 자에게 쓸려 나간 상태.
흩어져 있던 혈운사는 자연스럽게 보르테의 깃발 아래 다시 모였다.
그 과정에서 보르테는 눈앞의 초로인의 무서움을 뼛속 깊이 깨달았다.
자신을 거스르거나 반대하던 자들은 하나같이 죽음을 피해 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암존(暗尊).
자신의 뒤에 그가 버티고 있는 이상 감히 총령의 권위에 도전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이때 초로인이 슬쩍 웃으며 입을 열었다.
“좋은 기회로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