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31)
신마의선-31화(31/500)
신마의선 (31)
“끄어억!”
참혹한 비명과 함께 팽무위의 사지가 벼락을 맞은 것처럼 경련을 일으켰다.
범계위가 천천히 팔을 뽑아 들었다.
그가 선혈로 번들거리는 팔을 완전히 뽑아 들자 팽무위의 신형이 허물어지듯 바닥에 무너졌다.
숨을 거두기 직전.
팽무위는 뒤늦게 무언가를 깨달았다.
“그……렇군. 당신이 바로…….”
그 말을 끝으로 팽무위의 숨이 끊어졌다.
비틀거리며 일어선 사무심이 초악량과 범계위를 향해 공손히 예를 갖췄다.
“무림 말학 사무심이 사야(邪爺) 두 분을 뵙습니다.”
사야(邪爺)는 사파 전체를 통틀어 몇 안 되는 일대종사급의 무인을 높여 부르는 존칭. 배분을 떠나 사파에서 가장 뛰어난 무공을 지닌 두 사람이었기에 그리 부른 것이다.
“어떻게 알았냐?”
범계위의 물음에 사무심이 공손히 대답했다.
“흔치 않은 거구와 지극한 경지의 무공. 그런 분이 형님으로 모시는 분과 함께라니, 그걸 모를 무림인이 어디 있겠습니까?”
초악량이 마뜩잖은 표정으로 범계위를 노려봤다.
“아예 여기저기 소문 다 내고 다니지 그러냐?”
“내가 뭘 어쨌다고 그러슈?”
“초 형이라고 불렀잖아.”
“언젠 반말한다고 뭐라더니만…….”
혼잣말을 구시렁대던 범계위가 괜히 사무심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우린 여기 온 적 없는 거다.”
“네?”
“이놈들 전부 네가 죽인 거라고.”
“아! 네, 명심하겠습니다.”
상황을 빨리 파악한 사무심이 고개를 끄덕였다. 초악량이 사무심을 바라봤다.
“긴말할 건 없고, 우리는 사정이 있어 더는 도와주지 못한다. 그러니 그만 갈 길 가도록.”
“이 은혜는 반드시 갚겠습니다.”
“은혜를 갚으려면 우선 살아야지.”
초악량의 눈빛이 심유하게 가라앉았다.
“몸을 숨기고 기다려라. 때가 되면 내가 직접 나설 것이다. 섣불리 쓸데없는 일에 휘말리지 말고.”
“명심하겠습니다.”
사무심을 뒤로한 채 초악량과 범계위가 신형을 돌렸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 범계위가 문득 생각난 듯 초악량에게 따져 물었다.
“초 형, 아까 내공 썼지?”
“쪼끔 썼다, 쪼끔. 그냥 손가락 끝에만 살짝 두른 거야.”
“맨날 나더러 멍청하다더니 그새 단 의원 말을 잊은 거요?”
“그렇다고 시퍼런 도기에 맨살을 가져다 댈 수는 없잖아!”
“단 의원에게 이를 거요.”
“그럼 우리가 여기 온 것도 말해야 할 텐데?”
“어? 그건 안 되지.”
“생각 좀 하고 살자, 생각 좀. 그 머리는 어깨 위가 허전해 올려놓은 장식이냐?”
툭탁거리며 멀어지는 두 사람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사무심은 멍한 얼굴로 그 자리를 지켰다.
* * *
풍진성이 합류한 뒤 단악선 일행은 곧장 섬서성으로 향했다. 대부분 관도로 이동했고, 마차를 타니 이동에 어려울 것도 없었다.
감숙과 섬서의 경계는 유민을 차단하기 위해 검문이 철저했지만 그 또한 풍진성이 준비한 여행 허가서와 호패가 있어 어렵지 않게 지나갈 수 있었다.
그렇게 일행들은 섬서성의 수도인 서안에 들어섰다.
“어디 불편하세요?”
단악선이 범계위의 표정을 살피며 걱정스러운 눈빛을 던졌다.
서안에 들어선 이후 내내 표정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간을 잔뜩 찡그린 채 범계위가 대답했다.
“머리가 아파.”
“머리가요?”
“여기만 오면 화산파 냄새가 나거든.”
단악선이 마차의 휘장을 걷고 킁킁 냄새를 맡았다. 하지만 아무 냄새도 느껴지지 않았다.
“화산파 냄새가 어떤 냄새인데요?”
“백 년 묵은 먼지 냄새. 아주 퀴퀴해.”
옆에 앉은 초악량이 한마디 거들었다.
“그래도 썩은 두반장 냄새보다는 나아.”
“그건 어디 냄새인데요?”
“종남.”
단악선이 실소했다.
“그래도 엄마보다는 낫네요.”
“마의께서는 뭐라 표현하셨느냐?”
초악량의 물음에 단악선이 짐짓 오만한 표정을 지었다.
“화산파 말코들이 왜 그렇게 매화에 집착하는 줄 아니? 그건 천년 묵은 홀아비 냄새를 감추기 위해서란다.”
“흐…….”
마의의 평가가 꽤나 만족스러웠던지 범계위가 웃음을 흘렸다.
“종남파는?”
얼음 가루가 풀썩일 듯한 쌀쌀맞은 말투로 단악선이 대답했다.
“천하삼십육시랄 새끼들.”
“큭!”
종남파의 비전 절기인 천하삼십육검에 빗댄 욕설. 짧지만 강력한 한 방에 초악량이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풍진성이 쓴웃음을 머금었다.
“이제 곧 무림맹 사람들이 마중 나올 겁니다. 그러니 부디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풍진성은 단악선을 보며 말했지만, 그게 초악량과 범계위를 향한 말이란 사실을 모를 순 없었다.
두 사람은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이때 풍진성을 향해 다가서는 누군가가 있었다.
머리에는 단정한 도관을 쓰고 감색 도포를 걸친, 청수한 느낌이 물씬 묻어나는 도사들이었다.
그중 선두에 선 초로의 도사를 발견한 풍진성이 깜짝 놀라 그에게 다가갔다.
“아니, 이게 누구십니까!”
풍진성이 알은 척을 하자 초로의 도사가 예를 갖춰 응했다.
“오랜만입니다, 가주님.”
“이리 직접 걸음을 다 하시고……. 이 풍모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와야지요. 아무리 길이 멀다 해도 와야지요.”
초로의 도사가 부드러운 미소를 건넸다.
“지난번 본 파의 제자들이 크게 신세를 졌다 들었습니다. 빈도가 불민하여 이제야 감사를 올립니다.”
초로의 도사가 고개를 숙이자 풍진성이 깜짝 놀라 그를 일으켜 세웠다.
“과례는 비례라 하였습니다. 적벽(赤壁)의 청심홍매(靑心紅梅)께서 어찌 이 보잘것없는 일개 촌의에게 고개를 숙이신단 말입니까.”
마차 안에서 구시렁대는 소리가 들려온 것도 그때였다.
“적벽? 화산파 말코였어?”
“쳇, 우리한텐 그렇게 허리가 뻣뻣하더니, 이때 쓰려고 아껴 놓은 거였구먼?”
풍진성의 얼굴에 맺혀 있던 미소가 흔들렸다.
자신이 들은 이야기를 눈앞의 인물이 놓칠 리 만무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청심홍매 진현진인.
현 장문인인 화산신검 진명진인의 사제이자, 화산의 일대 제자 배분을 지닌 그가 마차 쪽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다행입니다.”
“예?”
“저리 걸출한 입담을 지닌 일행과 함께하셔서 긴 노정이 지루하진 않으셨겠습니다.”
풍진성은 내심 안도의 한숨을 흘렸다. 다행히 크게 기분이 상한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이때 진현진인이 고개를 돌려 뒤쪽을 바라봤다.
“와서 인사 올려라. 진성의가의 가주님이시다.”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뒤쪽에 도열해 있던 화산파의 도인들이 검을 쥔 채 포권을 취했다.
그중 선두의 청년 도사가 낭랑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화산파 삼대 제자 명검이 진성의가의 가주님을 뵙습니다.”
풍진성이 놀란 눈으로 명검이라 자신을 밝힌 청년을 바라봤다.
화산파를 떠받치는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스물네 명의 매화검수. 그 매화검수를 이끄는 매화총검(梅花總劍)이 바로 그였기 때문이다.
그만큼 화산파에서 자랑하는 후기지수 중에서도 단연 발군의 실력과 인품을 지닌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한데 이렇게 직접 보니 젊어도 너무 젊었다.
기껏해야 약관 남짓?
그가 매화총검의 직책에 오른 것이 삼 년 전이라는 것을 감안하니 그 놀라움은 더욱 컸다.
화산이 품고 있는 와룡(臥龍).
서악일기(西岳一器)라는 명호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모습이었다.
무림에서 가장 대표적인 도가 문파는 바로 화산과 무당이다.
특히 화산파는 정통 도가의 일맥을 온전히 계승하고 있었는데, 도교 대부분의 기틀을 완성한 전진파의 시조 왕중양의 일곱 제자인 전진칠자(全眞七子) 중 광녕자(廣寧子) 학대통이 세운 문파였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자긍심이 그 어느 곳보다 높았다.
간혹 이 때문에 갈등이 생기기도 했다.
본인은 자부심이라 생각하지만 외부에는 오만함으로 비칠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 명검의 당당하고 올곧은 눈빛과 태도는 그 어떤 오해의 여지조차 남기지 않았다.
그만큼 당당하면서도 겸손함마저 갖춘 모습이었다.
“그날은 경황이 없어 제대로 된 감사도 올리지 못했습니다.”
거듭 고개를 숙이는 명검의 모습에 풍진성이 고개를 저었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가주님께서는 부디 말씀을 편하게 해 주십시오. 이 후배가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화산의 매화총검에게 그래도 어찌…….”
명검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풍진성을 바라봤다.
“과례는 비례라고 앞서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어엇?”
“그러니 말씀 편하게 해 주십시오. 그래야 이 후배도 마음의 부담을 덜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넉살 좋은 명검의 태도에 풍진성은 결국 웃음을 터트렸다.
“허헛. 알겠네. 내 그리하지.”
두 사람의 대화를 흐뭇한 미소로 지켜보던 진현진인이 풍진성을 향해 말했다.
“앞으로 저 아이들이 무림맹까지 호위를 할 것입니다.”
풍진성은 깜짝 놀랐다.
호위에 매화검수까지 나설 줄은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다. 풍진성이 힐끔 마차 쪽을 바라봤지만 달리 거절한 명분이 없었다.
“그럼 당분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풍진성이 고개를 끄덕이자 명검이 마차 앞쪽으로 향했다. 그걸 보며 진현진인이 말했다.
“일단 식사부터 하시죠. 화려하지는 않지만, 맛은 훌륭한 곳으로 예약을 해 두었습니다. 이곳 토박이밖에 알지 못하는 숨겨진 명소지요.”
진현진인의 안내에 따라 도착한 객잔에는 이미 많은 음식들이 차려져 있었다. 소박해 보이는 객잔 외관과 달리 요리 하나하나가 예사롭지 않았다.
음식을 들기 전, 풍진성이 일행을 소개했다.
“이쪽은 단자 성에 악선이라는 이름을 쓰는, 제 스승님의 자제분이십니다.”
진현진인이 놀란 눈으로 단악선을 바라봤다.
“성수신의의 자제분이라고요?”
단악선이 일어나 화산파 도인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단악선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풍진성이 빙그레 웃었다.
“나이는 어리지만 제가 감히 따라가지 못할 만큼 뛰어난 의술을 지니고 계시지요.”
“……!”
진현진인을 비롯한 화산파 도사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황실의 어의들도 한 수 접어준다는 풍진성의 명성을 익히 아는 까닭이다. 그런 풍진성이 스스로를 낮출 만큼 뛰어난 실력이라니.
당사자에게 듣고도 믿기가 힘들었다.
자신에게 모아진 시선들이 부담스러웠는지 단악선이 어색하게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풍진성이 이번에는 초악량과 범계위를 가리켰다.
“이분들은 의가 사람들로, 악공과 악일이라는 이름을 쓰십니다.”
진현진인이 묘한 눈빛으로 두 사람을 바라봤다.
남다른 분위기도 분위기였지만 가주인 풍진성이 존칭을 사용한 것이 의아했기 때문이다.
이를 눈치챈 풍진성이 설명을 이어 갔다.
“제가 특별히 초빙한 분들입니다.”
“아, 조금 전 그 입담 좋던 분들이시군요.”
진현진인이 친근한 미소를 건넸다.
“저분들과 함께라면 우리 아이들도 호위가 따분하지만은 않을 것 같습니다.”
범계위가 피식했다.
“누가 누굴 호위한다는 건지.”
퉁명스러운 대꾸에 화산파 사람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풍진성이 수습을 위해 황급히 입을 열었다.
“세상에 거의 나오지 않고 틀어박혀 연구만 하는 분들이다 보니 사교성이 많이 부족합니다. 조금만 이해해 주시지요.”
“허허. 아닙니다. 본산의 계곡과 골짜기 곳곳을 차지하고 계시는 어르신들도 괴팍하기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십니다. 저희는 익숙하니 신경 쓰지 마십시오.”
풍진성은 내심 진현진인의 언변에 감탄했다.
정중하게 말하고 있었지만, 실상은 두 사람이 무척 괴팍하구나, 라고 돌려 까는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두 사람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동행이 불편하시더라도 최근 이곳 분위기가 흉흉해서 말입니다. 본 파가 터를 닦아 놓은 이곳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한다면 본 파로서는 여간 곤혹스럽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조금만 이해해 주십시오.”
“화산의 성의를 어찌 마다하겠습니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풍진성이 한설화 쪽을 바라봤다.
“이분은…….”
그러나 풍진성은 말을 이을 수 없었다.
객잔 밖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졌기 때문이다.
객잔과 인접한 저자를 가득 메운 인파 사이로 비명과 욕설이 난무하고 있었다. 막무가내로 인파들을 뚫고 지나가는 한 사람 때문이었다.
그를 알아본 초악량과 범계위가 눈살을 찌푸렸다.
“저놈이 왜 여기서 알짱거려?”
“그걸 내가 어찌 알겠수?”
조용히 몸을 숨기고 있어야 할 사무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