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310)
신마의선-310화(310/500)
신마의선 (310)
보르테가 긴장하며 되물었다.
“기회라 하심은?”
“우리가 노려야 할 것은 단악선이다. 그 꼬마를 죽이면 중원의 구심점은 사라진다. 잠시 동안은 성난 맹수처럼 날뛰겠지만 결국 뿔뿔이 흩어지겠지.”
보르테는 뭔가 더 묻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입을 잘못 놀리는 순간 자신도 앞서간 다른 이들의 전철을 밟지 말란 보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물어야 하는 것은 있었다.
“관문을 통과한 또 다른 무림인들은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최근 병합한 부족들 중 적당한 놈들을 던져 줘라.”
“하지만 놈들의 빈약한 전력으로는…….”
“그러니 던져 주라는 것이다. 그놈들이 승리에 취할 수 있게.”
보르테가 놀라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이미 그에게 지시를 내리던 인물은 안개처럼 사라진 뒤였다.
“아주 좋은 미끼가 될 것이다.”
음유하게 떠도는 목소리만이 환청처럼 근처를 떠돌 뿐이었다.
* * *
초원 위에 자리 잡은 수십 개의 게르.
그 중앙에 위치한 가장 크고 화려한 게르 앞에 거대한 솥 여러 개가 내걸렸다.
단악선은 매운 연기를 마다하지 않고 솥들을 오가며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직접 요리를 준비하는 그 모습에 무위의 사파인들이 단악선을 만류했다.
“어찌 이걸 직접 하십니까?”
“이리 주십시오. 저희가 하겠습니다.”
단악선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긴 이동으로 몸이 많이 허해졌어요. 이럴 때일수록 제대로 된 영양 보충이 필요해요. 거의 다 됐으니 조금만 기다리세요.”
그 말에 무인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렇지 않아도 하얀 음식과 빨간 음식이 전부인 이곳 초원의 식사에 질려 가던 참이었기 때문이다.
가축의 젖으로 만든 시큼한 떡은 매번 식사 때마다 빠지는 법이 없었고, 간혹 식탁에 오르는 빨간 음식인 삶은 고기는 조리법도 단순하고 양념도 거의 사용하지 않아 싱겁고 밍밍했다.
이동 중에 먹는 보존식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보르츠라 부르는 찢어 말린 고기와 천막 지붕에서 말린 시큼한 떡이 전부였다.
자기들 말로는 하얀 음식은 청렴과 진심을 상징하고 빨간 음식은 풍성함을 상징한다지만, 중원인인 그들은 화려하고 풍성한 중원의 요리들이 더욱 간절해질 뿐이었다.
끓어오르는 솥에서 퍼져 나가는 냄새를 따라 사람들이 속속 게르 앞에 모여들었다.
그런데 그 숫자만 무려 오백 명을 넘어섰다.
대부분이 중원의 음식에 호기심을 지닌 초원의 전사들이었다.
바얀의 노력이 결실을 거두며 흩어져 있던 부족 상당수가 뜻을 함께하기로 한 것이다.
이윽고 요리를 마친 단악선이 웃으며 소리쳤다.
“식사하세요!”
가장 먼저 나선 것은 바얀이었다.
“영광입니다.”
바얀이 내민 그릇에 건더기와 국물을 한가득 담아 퍼 준 단악선이 환하게 웃었다.
“맛있게 드세요.”
“하하. 누가 만든 음식인데 남길 수 있겠습니까.”
무위의 사파인들이 나서 배식을 돕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
“……!”
앞다투어 음식을 맛보던 사람들이 그대로 굳어졌다.
모처럼 맛보게 된 그리운 중원 음식에 대한 기대감에 한껏 들떠 있던 사파인들도.
기막힌 냄새를 지닌 중원 음식에 설레어 하던 초원의 전사들도.
어느 순간 경악한 표정으로 그릇을 들여다보고만 있었다.
“이 맛은……?”
음식을 맛본 초악량이 한숨을 흘렸다.
“정말 오랜만이군.”
단악선과 함께한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눈앞을 스쳤다.
그 추억을 강제로 소환하는 끔찍한 맛에 초악량은 짧게 진저리를 쳤다.
신마곡에 머물 당시에 이미 충분히 겪어 봤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적응이 되지 않았다.
한설화 역시 마찬가지.
내색지 않으려 애썼지만 누가 봐도 먹는 속도가 처음보다 현저하게 느려져 있었다.
전에는 아무렇지 않게 먹었던 음식이었지만 감각이 회복되며 미각도 점차 돌아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자리에서 유일하게 식사를 계속하는 사람은 오직 단악선뿐.
그런 단악선을 신기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사파인들이 이내 울상을 지었다.
“혹시 우리 지금 벌 받는 건가?”
“대체 뭘 잘못한 거지?”
“잘 생각해 봐. 이러시는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으실 거야.”
사파인들이 자신들끼리 속닥였다.
그것 말고는 달리 짐작 가는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자신들을 괴롭힐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의혹은 여전했다.
자신들은 그렇다 치고 혈운사를 견제하기 위해 죽어라 말을 달린 초원의 전사들은 무슨 죄란 말인가.
그러다 문득 주변의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은 단악선이 고개를 들었다.
떠들썩하던 평소의 식사 시간과 달리 너무나 조용했기 때문이다.
의아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던 단악선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을 제외한 대부분이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그릇을 들고만 있었기 때문이다.
“다들 왜 안 드세요? 맛이 없나요?”
“아, 아닙니다!”
화들짝 놀란 장곡이 이를 악물었다.
때마침 그릇에 담겨 있던 음식도 적당히 식은 상태.
건더기를 건져 우걱우걱 씹어 삼킨 장곡이 남은 국물까지 단숨에 벌컥벌컥 들이켰다.
“크으……. 정말 맛있습니다.”
“……!”
그 모습에 사파 무림인들이 존경 어린 눈으로 장곡을 바라봤다.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도 끝까지 웃어 내는 불굴의 정신!
단악선의 추종자를 자처하려면 적어도 저 정도는 되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도 질 수 없지!’
‘곡주님을 향한 마음은 우리도 장 형 못지않아!’
‘고작 이 정도 시련에 굴할 수 없다!’
갑자기 결연한 의지로 번뜩이는 중원인들의 눈빛을 마주한 초원의 사내들이 깜짝 놀랐다.
그만큼 비장한 각오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한마음 한뜻으로 그릇을 들어 입으로 가져가던 그때.
사파의 무인들이 흠칫했다.
“입맛에 맞으신다니 다행이에요. 그럼 좀 더 드세요.”
단악선이 기뻐하며 장곡의 그릇에 새로운 음식을 한 번 더 가득 퍼 담아 주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대로 얼어붙은 장곡의 모습에 사파인들이 서로 눈치를 보며 슬그머니 그릇을 내려놓았다.
“맛이…… 없나요?”
흐려지는 단악선의 표정에 모두가 질끈 눈을 감았다.
“아, 아닙니다!”
“그럴 리가요!”
허겁지겁 음식을 입에 욱여넣는 중원인들의 모습에 초원의 전사들도 한숨을 내쉬며 마지못해 단악선이 만든 음식을 들기 시작했다.
상대의 호의가 담긴 음식을 거부하는 건 초원의 예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모습에 초악량이 슬쩍 자리를 피했다.
그렇게 식사가 마무리되어 갈 때 즈음.
멀리서 이쪽을 향해 달려오는 한 무리의 기마를 발견한 부족들이 경계 태세를 갖추었다.
그러기를 잠시.
앞서 언덕 위에서 주변을 정찰하던 초병이 짧은 수신호를 보냈다.
“우리 형제다!”
바얀 휘하의 전사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혈운사와의 일전으로 부상을 입고 가욕관 너머로 호송되었던 일족.
그들이 부상을 치료하고 다시금 합류한 것이다.
게르 앞에 도착한 그들이 말에서 내려 바얀 앞에 부복했다.
“다친 곳은 괜찮은가?”
“하루 종일도 달릴 수 있습니다.”
“그대들이 돌아와 참으로 든든하구나.”
그 말에 바얀 앞에 부복해 있던 수하가 단악선 쪽을 바라봤다.
그리곤 더없이 정중하게 예를 갖추었다.
“은공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는 바얀에게 가욕관 안에서 겪은 일들을 상세하게 보고했다.
신마상단의 상인들과 신마의가의 의원들.
그들이 얼마나 성심성의껏 자신들을 도왔는지 하나도 빼놓지 않고 설명하자 바얀을 비롯한 초원의 전사들 모두가 감동한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
초원의 전사들이 단악선에게 저마다 감사 인사를 건넸다.
단악선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친구의 가족은 내 가족이나 다를 바 없다면서요? 저는 초원의 가르침에 충실했을 뿐이에요. 다들 잘 계신다니 다행이에요.”
그렇게 말한 단악선은 자신이 만든 음식을 가득 떠 방금 도착한 부족원들에게 건넸다.
“먼 길 오느라 수고하셨어요. 식사부터 하세요. 한결 몸이 따듯해질 거예요.”
단악선의 배려에 막 도착한 바얀 휘하 전사들이 다시 한 번 감동했다.
그렇지 않아도 북쪽의 찬 바람을 뚫고 달려온 터라 뜨거운 국물이 절실하던 참이었다.
그러다 뒤늦게 이상한 분위기를 눈치챘다.
묘한 눈빛을 흘리며 웃고 있는 동료들 때문이었다.
“어서 먹게.”
“우정이란 위기를 함께 나누었을 때 더욱 굳건해지는 법.”
뜻 모를 말을 건네는 동료들의 모습은 더욱 이해하기 어려웠다.
“……!”
음식을 먹고 뒤늦게 그 이유를 깨달은 전사들이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비로소 동료 전사들이 고개를 돌리고 웃는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친구의 마음과 성의가 담겨 있는데 무엇이든 마다할까.”
바얀이 그 말과 함께 단악선이 만든 음식을 단숨에 들이켰다.
그 모습에 다른 전사들도 그릇을 다시 들었다.
꾸역꾸역 음식을 삼키는 그들을 보며 단악선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식사에 이렇게까지 비장할 이유가 있나요?”
“…….”
“…….”
그러나 어느 누구도 진실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 * *
짙었던 어둠이 물러가고 먼동이 터 오르기 시작한 어스름한 새벽.
바얀의 전사들이 일찍부터 무언가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 비장한 표정과 눈빛에 단악선이 호기심을 드러냈다.
“이렇게 일찍 어디 가시는 건가요?”
“흑오려(黑烏驪)를 포획하러 나서던 참입니다.”
“흑오려요?”
단악선의 반문에 노회한 전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드물게 발견되는 놈으로, 중원에서는 흑오명웅마(黑五明雄馬)라 불리는 놈입니다.”
“아!”
단악선도 언젠가 들어 본 적이 있었다.
주둥이를 비롯해 눈과 발뒤꿈치, 꼬리까지 모두 검다는 말.
바얀의 전사들이 설명을 덧붙였다.
“무리를 이끄는 야생 종마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놈으로, 길들이기만 한다면 그보다 훌륭한 놈이 없습니다.”
“한데 놈이 호락호락하지가 않습니다. 일단 덩치부터가 남다른 데다, 교활하고 영민하기는 여우 뺨치고 사나운 성격은 호랑이 못지않거든요.”
“초원의 전사들조차 지금껏 놈을 길들인 사람이 손에 꼽으며, 간혹 놈에게 밟혀 죽는 사람도 나올 정도입니다.”
단악선이 깜짝 놀랐다.
“그럼 저도 같이 가요. 혹시 치료가 필요할지도 모르니까요.”
그 말에 바얀의 전사들이 곤란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 모습에 의아해하던 것도 잠시.
바얀의 전사들 중 한 명이 쓰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시지요. 어차피 은인께 올릴 선물이었으니까요.”
“제 선물이요?”
“말을 선물한다는 것은 상대를 부족의 일원으로 인정한다는 의미입니다. 초원의 전사라면 의당 자신만의 말이 필요한 법이니까요.”
이제는 상당히 기마술에 익숙해진 단악선을 위해 뛰어난 말을 선물하고자 한 것이다.
“그럼 더더욱 저랑 같이 가요. 저 때문에 다치는 건 싫으니까요.”
자얀의 전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다 같이 이동해 녹야평이라 불리는 곳에 도착한 단악선은 저 멀리 옹기종기 모여 있는 야생마 무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초원에서 한가하게 풀을 뜯는 무리 중 유독 눈에 뜨이는 검은색 말.
어째서 녀석에게 흑오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지 단악선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까마귀 깃처럼 은은한 윤기를 머금어 새카맣게 빛나는 자태가 단번에 눈을 사로잡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