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311)
신마의선-311화(311/500)
신마의선 (311)
단악선은 바얀의 전사들이 그토록 각오를 다진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예전에도 몇 번인가 초원의 전사들이 말을 포획하고 길들이는 과정을 지켜본 적이 있었다.
일단 맨손을 말의 목에 걸어 균형을 무너트리고, 말의 다리를 잡아채 바닥에 쓰러트린 뒤 제압하는 방식.
다소 우악스러운 방법이었지만 그만큼 효과적이었다.
제아무리 거친 말도 한번 바닥에 나동그라지고 나면 금방 유순해져 등을 허락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방법은 어디까지나 말의 체구가 작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전통적으로 초원의 전사들은 덩치가 작더라도 지구력이 좋고 영리한 말을 선호했다.
한데 멀리 보이는 까만 말은 지금껏 보아 왔던 말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체구를 자랑했다.
단악선의 눈에 이채가 떠오른 것도 그때였다.
“그런데 저 말은 왜 혼자죠?”
검은 말은 무리와 상당히 동떨어져 홀로 풀을 뜯고 있었다.
일행 중 가장 경험 많은 중년 사내가 대답했다.
“무리를 이끌고는 있지만 평소에는 쉽게 어울리지 않습니다.”
“이질적인 외양 때문인가요?”
“그런 점도 없지 않아 있겠지만, 정확히는 놈이 무리를 따돌린다고 보는 게 맞겠지요. 녀석 같은 말이 자주 나타나지 않는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
“우두머리인 놈이 암컷들을 무시하거든요. 그러니 무리가 제대로 존속될 리 없지요. 태생부터가 외로운 팔자를 타고난 놈입니다.”
“저런……. 불쌍하네요.”
“그런 만큼 한번 주인을 인정하면 오직 그 사람만 따르곤 하지요.”
그 말을 끝으로 사내들이 신중한 눈빛을 교환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바얀의 전사 열 명이 말을 몰아 크게 포위망을 구축했다.
천천히 에워싸듯 거리를 좁혀 오는 인마를 발견한 검은 말이 낮게 투레질을 했다.
하지만 그 어디에서도 겁먹은 기색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오연한 눈빛을 뿌리며 발굽으로 바닥을 걷어차는 모습에서 생사결을 앞둔 고수와 같은 묘한 위엄마저 느껴졌다.
어느 정도 거리를 좁힌 바얀의 전사 한 명이 검은 말을 향해 올가미를 던졌다.
덩치가 워낙 커서 맨손으로 쓰러트리기엔 무리였기 때문이다.
두 개의 추를 단단한 가죽끈으로 연결한 포획 도구.
닿는 즉시 상대를 휘감아 버리는 올가미가 검은 말을 향해 날아갔다.
그런데 뜻밖에도 검은 말은 올가미가 날아드는데도 가만히 서 있었다.
그러기를 잠시.
우두커니 서 있던 말이 갑자기 뛰어올랐다.
발목을 노리고 날아드는 올가미를 끝까지 응시하다 마지막 순간에 몸을 띄워 가볍게 피해 버린 것이다.
“칫! 에워싸!”
검은 말과 거리를 좁힌 전사들이 사방에서 밧줄을 엮어 만든 올가미를 던졌다.
그 순간 검은 말이 슬쩍 머리를 젖혀 자신의 목을 향해 날아드는 올가미를 피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헛되이 허공을 가른 밧줄을 덥석 물더니 그대로 힘껏 잡아챘다.
“으악!”
밧줄을 움켜쥐고 있던 사내가 균형을 잃고 낙마했다.
검은 말의 눈에서 살기가 번뜩인 것도 동시였다.
“마, 막아!”
“이놈!”
사내들의 입에서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바닥을 향해 나뒹군 동료를 노리며 달려든 말이 발굽을 치켜들었기 때문이다.
그 광경에 단악선도 가슴이 철렁했다.
그런데 그 순간.
몸으로 부딪쳐 오는 기마들을 인지한 검은 말이 재빨리 방향을 틀었다.
그러곤 가장 가까운 기마를 몸으로 받아 밀어내더니, 후위를 향해 달려들어 뒤따르던 말의 재갈을 물어 버렸다.
고삐와 연결된 부분을 문 상태로 검은 말이 기우뚱 누우며 자신의 체중을 실었다.
머리가 짓눌린 말은 달리던 상태에서 균형이 무너지자 기수를 실은 상태에서 앞으로 거꾸러졌다.
그렇게 근접한 기마들을 단숨에 처리한 검은 말이 여유롭게 포위망을 빠져나갔다.
바얀의 전사들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유유히 멀어지는 검은 말을 바라볼 뿐이었다.
평생을 말과 함께 지내 온 그들조차 눈앞에서 벌어진 상황은 그저 황당할 뿐이었다.
그만큼 기민한 대응과 움직임은 말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여기서 포기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단악선이 보고 있는 이상 빈손으로 돌아갈 순 없는 노릇이었다.
다시금 전의를 불태우며 검은 말을 에워싸기 시작했다.
이후로는 그야말로 악전고투.
목숨을 건 대결을 방불케 할 만큼 치열한 싸움이 이어졌다.
그리고 그 결과는 검은 말의 승리였다.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들 만큼 놀라운 반격에 초원의 전사들도 결국 두 손을 들었다.
전사들에게 단련되어 맹수와 날붙이도 두려워하지 않고 달려든다는 말들조차 나중에는 검은 말의 투지에 질려 슬금슬금 피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저거 말 맞아?”
바얀의 전사들이 한숨을 터트렸다.
마치 뻐기는 듯이 여유롭게 투레질을 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기도 차지 않았다.
전사 열이 매달렸음에도 얻은 것이라곤 상처뿐.
물론 그 과정에도 검은 말의 몸에도 크고 작은 생채기가 가득했다.
“저는 괜찮아요. 녀석을 잡는다 해도 제가 다룰 엄두가 안 나고요.”
보다 못한 단악선이 전사들을 불러 세웠다.
“이거 참……. 면목이 없습니다.”
“아니에요. 그보다 다친 곳을 보여 주세요.”
한참 동안 꼼꼼하게 바얀 부족 사내들을 치료하던 단악선이 눈을 들어 어딘가를 바라봤다.
마침 이쪽을 바라보던 검은 말과 시선이 마주친 것도 그때였다.
서로가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음에도 녀석의 새카만 눈동자가 더없이 뚜렷하게 눈에 들어왔다.
방금 전까지 흉포한 투기를 뿜어내던 눈빛이 지금은 너무나 고요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 눈빛이 단악선의 마음을 움직였다.
“위험합니다!”
단악선이 검은 말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자 바얀의 전사들이 황급히 만류했다.
그러나 단악선은 웃으며 입을 열었다.
“괜찮을 거예요.”
단악선의 말에 바얀의 전사들은 당황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무공만 놓고 보자면 자신들 모두가 달려들어도 눈앞의 소년에겐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뒤늦게 떠올렸기 때문이다.
푸륵.
다가서는 걸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거칠게 투레질하는 검은 말을 향해 단악선이 빙긋 웃었다.
“괜찮아. 널 해치려는 게 아니야.”
사람의 말을 알아들을 리 없었지만 단악선은 그렇게 말을 걸었다.
동시에 위화신공을 운용했다.
언젠가 위화신공을 익힐 당시, 위화신공의 기운에 감응한 동물들이 한꺼번에 몰려들곤 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처음에는 거부감을 보이던 검은 말이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홀린 듯이 단악선을 향해 다가왔다.
하지만 눈 속 깊이 자리 잡은 경계심만큼은 여실히 느껴졌다.
그렇게 거리를 좁힌 단악선이 말없이 검은 말을 응시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단악선이 천천히 손을 뻗었다.
단악선의 손이 닿자 흑종마가 움찔했다.
하지만 처음처럼 적개심을 드러내진 않았다.
검은 말의 피부 곳곳에 새겨진 상처들을 확인한 단악선이 새살을 돋게 하는 생기산을 꺼냈다.
그러자 검은 말이 화들짝 놀라 뒷걸음질 쳤다.
“무서워할 것 없어. 이건 너를 치료하기 위한 약이니까.”
스스로 먼저 생기산을 자신의 팔에 바르는 것을 보여 준 단악선이 다시 검은 말에게 다가섰다.
상처에 단악선의 손이 닿을 때마다 멈칫했지만 검은 말은 끝까지 단악선을 공격하지 않았다.
약을 모두 바른 단악선이 검은 말의 콧등을 조심스럽게 쓰다듬고는 천천히 물러섰다.
그렇게 다시 일행에게 돌아온 단악선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여러분의 마음은 감사하지만 선물은 받지 않을게요.”
그 말에 바얀의 전사들도 선선히 수긍했다.
제대로 곤욕을 치른 이상 재차 도전할 엄두도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단악선이 고개를 돌려 검은 말을 향해 외쳤다.
“자유롭게 살아!”
그 말을 끝으로 단악선은 일행과 함께 발걸음을 돌렸다.
검은 말은 가만히 서서 멀어지는 단악선을 응시할 뿐이었다.
거처로 돌아오는 내내 어딘가 시무룩한 사내들의 모습에 단악선이 위로를 건넸다.
“애써 주셔서 감사해요.”
사내들이 머쓱하게 웃었다.
괜히 부상자가 늘어나 봐야 단악선만 번거롭게 만들 뿐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까닭이다.
그렇게 얼마나 이동했을까.
습관처럼 뒤쪽을 확인하던 사내 한 명이 깜짝 놀라 외쳤다.
“어? 저놈이 왜 따라오지?”
말을 세우고 모두가 뒤를 돌아봤다.
오십 장 남짓한 거리를 두고 조용히 따라오는 검은 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혹시나 싶어 다시 이동했지만 이번에도 마찬가지.
여전히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따라오기 시작했다.
잠시 고민하던 단악선이 말에서 내렸다.
그러곤 검은 말을 향해 다가섰다.
검은 말은 그 자리에 얌전히 선 채 단악선을 기다렸다.
“같이 가고 싶어?”
이윽고 검은 말과 가까워지자 단악선이 물었다.
커다란 녀석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던 단악선은 문득 깨닫는 바가 있었다.
“너도 외로웠구나.”
푸륵.
단악선이 손을 뻗어 갈기를 매만지자 검은 말이 짧게 투레질을 했다.
그 소리는 마치 마음을 알아줘 고맙다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눈빛과 눈빛으로 교감을 나누길 잠시.
검은 말이 앞발을 들어 바닥을 긁었다.
그 몸짓에서 단악선은 말이 건네는 뜻을 읽어 낼 수 있었다.
“괜찮겠어?”
푸르륵.
단악선이 건넨 말에 검은 말이 더욱 적극적으로 반응했다.
더욱 바짝 거리를 좁히더니 단악선의 얼굴에 뺨을 가져다 댄 것이다.
훌쩍 신형을 날려 검은 말의 등에 올라타는 단악선의 모습에 바얀의 전사들이 깜짝 놀랐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검은 말은 얌전했다.
그 순간.
한 차례 투레질을 하더니 검은 말의 발굽이 대지를 박찼다.
비록 안장과 등자, 고삐도 없었지만 단악선은 검은 말의 등에 납작 엎드린 상태를 유지했다.
놀라운 속도로 초원을 질주하는 그 모습은 마치 한 줄기 검은 선이 대지를 가로지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저 괴물 같은 놈이 스스로 사람을 태우다니…….”
바얀 부족의 전사들은 눈앞의 기적에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 * *
“흥! 별거 아니군.”
날카로운 눈매의 중년인이 검신에 묻은 핏물을 털어 내며 조소를 흘렸다.
그런 그의 발밑에는 핏물에 잠긴 오랑캐의 주검이 놓여 있었다.
시신은 비단 한 구만이 아니었다.
본래는 녹색의 이끼와 풀로 뒤덮여 있어야 할 초지는 곳곳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사방에 즐비한 시신과 내를 이뤄 흐르는 핏물은 탱화 속 지옥도를 고스란히 옮겨 놓은 것만 같았다.
검을 회수한 육지겸은 죽을 자리라는 것도 모른 채 달려든 한심한 오랑캐들을 비웃었다.
비록 정사 어디에도 속해 있지 않았지만 천하의 백대고수를 꼽으라면 반드시 이름을 올릴 만큼 검으로 일가를 이룬 고수가 바로 그였다.
비록 떠돌이라 하더라도 무림에서 감히 그를 함부로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물며 이깟 야만인들 따위야.
“자, 자. 전리품 챙깁시다.”
일행 중 누군가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강서 일대에서 탄탄한 입지를 다진 단영문의 문주, 강소기였다.
“이거 보상이 두둑하겠는데.”
누군가의 말에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만면에 웃음을 띠었다.
첫 싸움부터 대승을 거둔 데다 이로 인한 수확 역시 기대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를 우습게 봤군. 겨우 오십 명으로 덤벼들다니.”
그 말에 금룡상단의 토벌대를 이끌던 총관, 등위평이 흡족한 미소를 머금었다.
이곳에 함께한 무인들 대부분이 어느 누구 하나 허투루 볼 수 없는 고수들이었다.
금룡상단이 막대한 거금을 쏟아부어 영입한 만큼 실력 하나만큼은 확실했던 것이다.
게다가 그 숫자만 해도 이백여 명에 달했다.
비록 약간의 부상자가 발생했지만 그 숫자는 열 명 남짓.
그것도 찰과상 정도의 경상에 불과했다.
“축하드립니다. 삼백의 적을 처리하시다니.”
등위평의 말에 중인들의 눈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어진 말에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언뜻 숫자를 헤아려도 삼백은 족히 넘지 않습니까? 포획한 말도 백 마리는 될 듯합니다만?”
뒤늦게 그 의미를 깨달은 무인들 몇 명이 맞장구를 치며 호응했다.
“하하! 그렇군. 다시 보니 삼백이 넘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