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312)
신마의선-312화(312/500)
신마의선 (312)
등위평이 무인들을 향해 말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전리품은 모두 은자로 바꿔 여러분의 공적에 걸맞게 정확히 지급될 것입니다.”
“오오!”
무인들의 사기는 하늘을 찔렀다.
자신들이 손해를 보는 것도 아니고, 금룡상단 측에서 알아서 전공을 부풀려 준다는 데 마다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참에 혈운사 본단까지 쓸어버릴까?”
누군가의 솔깃한 제안에 고수들은 벌써부터 몸이 달았다.
이 자리에 운집한 고수들만 해도 어지간한 문파는 일각 만에 쓸어버릴 수도 있는 전력.
제아무리 흉명을 드날리는 혈운사라 할지라도 어디까지나 변방의 마적 무리에 불과했다.
한껏 의기양양해진 무인들은 당장이라도 혈운사 본진으로 달려갈 기세였다.
그런 그들을 만류한 사람은 등위평이었다.
“굳이 그럴 필요 있습니까? 물길을 트는 이들은 따로 있으니 우리는 논에 물을 대기만 하면 됩니다.”
가만히 앉아서 남이 고생 끝에 얻은 성과를 누린다는 의미의 좌향기성(坐享基成).
이를 강남식 속담으로 표현한 그 말에 무인들이 왁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그건 또 그렇군.”
“하긴 힘든 일을 해 주는 머슴이 따로 있는데, 굳이 주인이 나설 필요는 없지.”
등위평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이렇게 겁 없이 덤비는 놈들만 처리해도 충분합니다.”
생각해 보니 일리가 있는지라 금룡상단을 따라나선 무인들은 매우 흡족해했다.
* * *
초지를 어슬렁거리며 한가로이 풀을 뜯던 검은 말 한 마리가 단악선을 향해 다가섰다.
편하게 앉아 드넓게 펼쳐진 지평선을 응시하던 단악선은 흑섬(黑閃)이 다가와 콧등으로 어깨를 툭툭 건드리자 빙그레 웃었다.
“벌써 또 달리고 싶어진 거야?”
푸륵.
마치 단악선의 말을 알아들은 것처럼 흑섬이 고개를 주억였다.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바얀 부족의 전사들은 그저 기가 막힐 뿐이었다.
그토록 흉포하게 날뛰던 괴물 같은 놈이 이처럼 친근하게 애교를 부리는 모습은 매번 봐도 신기했다.
삐익.
허공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진 것도 그때였다.
날개를 접고 쏜살같이 하강하는 한 마리 매.
순식간에 바닥을 쓸 듯 무언가를 낚아챈 매가 단악선이 세워 놓은 횃대에 내려섰다.
툭.
매가 들고 있는 들쥐 한 마리를 단악선 앞에 떨어트렸다.
“나 먹으라고 가져온 거야?”
녀석의 호의가 기특해 단악선이 매의 부리 아랫부분을 손가락으로 살살 긁어 주었다.
그 손길을 즐기듯 매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러기를 잠시.
푸드득.
매가 날갯짓을 하며 단악선의 어깨로 뛰어 올랐다.
그러곤 잠시 부리로 깃털을 가다듬나 싶더니 금세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바얀의 부족들은 저마다 탄성을 터트렸다.
“타고났군, 타고났어.”
애초에 선물로 주기로 했던 흑섬은 단악선 스스로 길들였기에 그들은 대신 한 마리 매를 선물했다.
그런데 하루도 지나지 않아 저렇게 친해지다니.
매를 길들이는 과정이 얼마나 까다롭고 지난한지 누구보다 잘 아는 그들인지라 그 모습이 더욱 신기했다.
그렇게 눈앞에 펼쳐진 지극히 평화로운 모습에 바얀의 전사들은 잠시나마 시름을 잊을 수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바얀의 게르에서 누군가가 나와 단악선을 향해 걸어갔다.
초악량이었다.
그런데 표정이 좋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나요?”
그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단악선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초악량이 눈살을 찌푸리더니 한 장의 서신을 단악선에게 건넸다.
상당한 거리까지 나가 있는 정찰대가 보내온 보고서였다.
“안문관을 통해 넘어온 금룡상단 놈들이 찰령(㳐零) 인근에 진을 치고 있다는구나.”
“그래요?”
단악선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괜찮을까요?”
“놈들이 딱히 방해될 일은 없을 게다. 우리와 같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니까.”
“제가 걱정하는 건 그게 아니에요.”
이어진 단악선의 말에 초악량이 어이없는 눈빛을 흘렸다.
“예상보다 너무 깊숙이 들어왔어요. 이대로라면 틀림없이 문제가 생길 거예요. 자신들의 영역을 침범한 그들을 혈운사가 그냥 보고 있지만은 않을 테니까요.”
“저들의 안위를 우리가 걱정할 필요가 있느냐?”
금룡상단의 목적을 단악선이라 해서 모를 리 없었다.
저들이 토벌단을 꾸린 이유는 오직 하나.
바로 신마상단을 견제하기 위해서였다.
하나 자신의 앞마당을 순순히 내어 줄 만큼 혈운사는 그리 호락호락한 집단이 아니었다.
그래서 단악선은 더욱 걱정이 앞섰다.
“그들이 아무리 명분을 쌓고 서역과의 교역권을 얻어 낸다 해도 우리는 손해 볼 게 없어요.”
신마단과 독계산을 독점으로 취급하는 이상 금룡상단은 기본적으로 신마상단을 교역에서 앞지를 수 없었다.
더구나 완성을 목전에 둔 무위의 유흥 시설도 있었다.
서역 상인들을 대거 끌어들일 수단을 미리 강구해 놓은 만큼 금룡상단이 얻어 낼 수 있는 이익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무엇보다 저들에겐 없는 것이 신마상단에는 있었다.
이미 중원에서 독보적인 위치로 올라선 신마의가.
그 명성과 존재감이 신마상단의 영향력을 넓히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초악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능소밀 그 녀석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긴 했지.”
“당장은 초원의 평화를 되찾는 게 급선무예요.”
무엇보다도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교역을 위해서는 초원 부족의 마음을 얻어 낼 필요가 있었다.
그러다 뒤늦게 초병이 보낸 보고서를 확인한 단악선이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비로소 초악량이 내내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던 이유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금룡상단 쪽 사람들을 만나 봐야겠어요.”
단악선이 한숨을 내쉬었다.
보고서 안에는 금룡산단 일행이 한 부족을 멸문시켰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혈운사가 강제로 복속시켰던 부족 중 하나였다.
아무리 습격을 받았다곤 하나 이는 너무 과한 대응이었다.
혈운사가 무너지면 억지로 따르던 부족들도 언젠가는 본래의 자리로 돌아갈 터.
금룡상단의 파괴적인 방식은 한계가 있었다.
아울러 중원인에 대한 초원의 반감만 부추길 뿐이었다.
단악선이 혈운사만을 적으로 한정 지은 이유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저들은 혈운사를 쉽게 생각하고 있어요.”
혈운사의 활동 권역 안에 당당히 들어선 것만 보아도 짐작할 수 있었다.
흑섬에 몸을 싣는 단악선을 향해 초악량이 말했다.
“혹시 모르니 함께 가자. 나도 말을 가져오마.”
게르로 돌아온 초악량은 쉬고 있던 말 위에 안장을 올렸다.
그 모습을 본 한설화가 불쑥 입을 열었다.
“어디 가는 거지?”
“금룡상단에.”
“왜?”
“단 의원이 그들에게 할 말이 있다더군.”
그 말에 한설화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자연스럽게 초악량을 따라나섰다.
초악량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말은?”
“그냥 달리는 게 빨라.”
곧 죽어도 승마에 소질이 없다는 말은 하지 않는 한설화의 모습에 초악량은 내심 어이가 없었다.
“누군 그걸 몰라서 말을 타냐?”
단거리라면 모를까 장거리 이동은 말이 훨씬 수월했다.
만에 하나 있을지 모를 전투에 대비해 체력을 비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초원의 단체 전투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었다.
병법과 진형에 깔려 있는 기본 개념 자체가 기마술에 기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설화는 초악량의 핀잔을 무시한 채 이미 저만치 앞서 걷는 중이었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절레절레 고개를 흔든 초악량이 말을 몰아 단악선에게 향했다.
한편 단악선은 다가오는 한설화를 보고 곧장 그녀의 생각을 눈치챘다.
“함께 가시려고요?”
한설화가 어느새 곁에 온 초악량 쪽을 힐끔 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말은요?”
“…….”
스스로 생각해도 민망했던지 한설화가 입을 다물었다.
그 모습에 단악선이 쓰게 웃었다.
이곳에 온 지도 상당한 시간이 흐른 상태.
한설화를 제외한 대부분이 이제는 상당히 말에 익숙해졌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일행 중 오직 한설화만이 여전히 승마를 꺼려 했다.
그렇다고 그녀만 직접 달리게 하기에는 단악선의 마음이 편치 않았다.
“어쩔 수 없죠.”
단악선이 내민 손을 발견한 한설화의 눈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같이 타자는 말이냐?”
“네.”
“그 녀석이 좋아할까?”
단악선이 웃으며 흑섬의 목덜미를 어루만졌다.
“허락할 거예요. 얘도 은근히 초 아저씨랑 성격이 비슷하거든요.”
졸지에 말 못 하는 짐승과 비교당한 초악량이 발끈했다.
“저놈이 나랑 비슷하다고?”
단악선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는 경계하고 가까워지는 걸 거부하지만, 한번 마음을 열면 뭐든 다 들어주잖아요.”
“…….”
할 말이 없어진 초악량이 괜히 애꿎은 등자를 걷어찼다.
“해 지기 전에 놈들이 있는 곳에 도착하려면 서둘러야 할 게다.”
그 말을 남긴 채 초악량이 앞서 말을 달리기 시작했다.
“아주머니도 어서요.”
단악선의 재촉에 한설화가 마지못해 손을 뻗었다.
그런 그녀의 손을 덥석 움켜쥔 단악선이 힘주어 한설화를 끌어당겼다.
“……!”
가볍게 자신을 말 위에 올리는 단악선의 모습에 한설화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묘한 기분을 느꼈다.
손을 통해 전해지는 강인한 힘.
이곳 초원에서 지내는 동안 한층 더 성숙해진 단악선이었다.
더 이상 그녀가 알던 어린애가 아닌 것이다.
더구나 내심 우려하던 것과 달리 흑섬도 의외로 선선히 등을 허락했다.
“히럇!”
단악선의 신호에 흑섬이 초원을 질주하기 시작했다.
단악선이 직접 지어 준 이름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속도와 기세였다.
* * *
“제기랄! 날씨 한번 더럽군!”
난데없는 돌풍에 발이 묶인 금룡상단의 토벌대는 뜻밖의 곤욕을 치르고 있었다.
아침까지만 해도 잠잠하던 날씨가 정오가 지나자 갑자기 미쳐 날뛰기 시작한 것이다.
가뜩이나 살을 엘 것 같은 동장군을 동반한 북풍인 데다, 바람도 몹시 세서 날아드는 모래 알갱이와 흙먼지에 눈이 따가웠다.
등위평을 위시한 금룡상단의 토벌대는 허겁지겁 천막을 설치했다.
기둥 사이에 천 하나만 올린, 허술하기 짝이 없는 천막이었다.
중간중간 몇 번인가 오랑캐와 싸움을 치르며 상당한 노획물을 손에 넣은 그들이었다.
그리고 그중에는 놈들의 이동식 주택인 게르도 있었다.
한데 당최 설치하는 방법을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렇게 급조한 천막에 의지해 바람을 피해야만 했다.
하나 시간이 지나도 바람은 좀처럼 잦아들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두 기의 기마가 이쪽을 향해 접근하고 있습니다!”
정찰을 하던 무인의 외침에 금룡상단 소속 무인들이 각자의 무기를 거머쥐었다.
“뭐지? 고작 두 기 가지고 습격을 하러 온 건 아닐 텐데?”
잠시 후 난생처음 보는 거대한 흑마가 시야에 들어오자 무인들이 탄성을 터트렸다.
말을 보는 안목이 그리 뛰어나지 않은 그들이었지만 눈앞의 말이 그 가치를 매기기 힘들 정도로 훌륭한 명마임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놈을 손에 넣어 중원에 가져가면 돈 좀 있는 놈들은 앞다투어 달려들 터.
반면 흑마 뒤를 따르는 말은 한눈에 봐도 평범한 초원 부족의 작은 말이었다.
이때 누군가가 깜짝 놀라 외쳤다.
“혀, 혈수존자!”
놀랍게도 보잘것없다 여긴 말에 타고 있는 사람은 꿈속에서도 마주치기 꺼려 하던 존재였다.
게다가…….
“빙옥선자까지? 그럼 저 흑마의 기수는……?”
“신마의선이다!”
흑섬 위에 타고 있는 단악선과 한설화마저 알아본 금룡상단 무인들의 느슨했던 눈빛이 사라졌다.
그리고 감출 수 없는 긴장감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실질적으로 금룡상단을 이끌고 있는 총관, 등위평이 동요한 무림인들을 진정시켰다.
“걱정할 것 없소. 우리 또한 조정의 허락을 얻어 이곳에 온 것이니까.”
그렇게 말한 등위평이 보란 듯이 당당하게 앞으로 나서 단악선 일행을 맞이했다.
속도를 줄여 금룡상단 쪽에 가까이 온 초악량이 눈살을 찌푸렸다.
“여전히 무기를 든 자들이 있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