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313)
신마의선-313화(313/500)
신마의선 (313)
“예?”
당황한 금룡상단의 무인들을 노려보며 초악량이 서늘한 눈빛을 흘렸다.
“……!”
뼛속 시린 살기의 폭풍을 마주한 무림인들은 비로소 북풍의 추위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정작 지척에서 초악량의 살기를 뒤집어쓴 등위평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등위평은 돌연 가슴이 답답해지더니 속이 매스꺼워졌다.
동시에 눈앞이 캄캄해지며 의지와 상관없이 사지가 덜덜 떨려 왔다.
“끄으으…….”
금방이라도 거품을 물고 쓰러질 것 같은 그의 모습에 단악선이 재빨리 앞으로 나섰다.
타타탁.
단악선이 몇 군데 혈도를 짚자 등위평은 비로소 막혔던 긴 한숨을 내쉬었다.
“괜찮으세요?”
“……네.”
등위평이 간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창백한 그의 얼굴에서는 비 오듯 땀이 쏟아지고 있었다.
처음의 당당했던 기세는 찾아볼 수 없었다.
한설화가 불쑥 입을 연 것도 그때였다.
“중원을 떠났다고 예의까지 두고 온 건가?”
금룡상단 일행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발밑에서 시작된 한기가 어느새 무릎까지 올라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압도적인 힘의 차이를 절감한 무인들이 뒤늦게 황망히 고개를 조아렸다.
“무, 무림의 말학들이 두 분 선배님을 뵙습니다.”
그러나 정작 저들에게 예의를 강요한 한설화는 그 인사를 받아 주지도 않았다.
상대할 가치도 없다는 듯 차가운 코웃음과 함께 고개를 돌려 버렸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무인들은 바짝 얼어 그 어떤 불만도 내색하지 못했다.
그런 일행의 모습에 등위평은 쓴웃음을 삼켰다.
반면 단악선은 해맑게 인사를 건네 왔다.
“안녕하세요. 단악선이라고 해요.”
“…….”
꿀 먹은 벙어리처럼 굳게 입을 다문 무인들.
마지못해 어색한 웃음을 흘리는 그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단악선이 차분하게 말을 이어 갔다.
“반갑게 맞아 주셔서 감사해요.”
예전이라면 저들을 배려한다며 스스로 낮은 위치를 자처했을 단악선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그간의 강호 경험을 통해 단악선도 이제는 아는 것이다.
굳이 주도권을 저들에게 넘겨줄 이유가 없었다.
그 모습에 초악량이 슬쩍 웃었다.
반면 한설화는 아미를 살짝 찡그렸다.
“나쁜 것만 배웠어.”
이때 뒤늦게 정신을 차린 등위평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런데 이곳에는 어인 일로 방문하셨는지……?”
단악선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어차피 우리는 같은 적을 두고 싸우고 있잖아요. 그래서 몇 가지 알려 드리려고 왔어요.”
“……?”
등위평은 순간 자신이 무언가를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자신들이 신마상단을 견제하기 위해 나섰다는 것을 눈앞의 소년이 모를 리 없을 터.
그런데 굳이 정보를 공유하겠다니.
쉽사리 이해하기 힘든 행동이었다.
‘어쩌면 우리를 농락하기 위한 기만책일지도.’
몇 가지 거짓 정보를 섞어 헛걸음을 하게 만들 계책일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이어진 단악선의 설명에 등위평은 당황했다.
‘정말……, 순수한 호의인가?’
단악선이 제공한 정보들 중 일부엔 자신이 앞서 얻은 것과 일치하는 정보들도 있었다.
이를 다시 머릿속에서 교차 검증해 보니 단악선은 지금 사실만 말하는 것이 분명했다.
어째서 자신들을 돕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언제 혈운사와 조우할지 모르는 그들 입장에서는 상당히 유용한 정보들이었다.
“듣고 계시죠?”
“예? 예!”
잠시 딴생각을 하던 등위평이 서둘러 대답하자 단악선이 설명을 이어 갔다.
“무엇보다 그들은 기마를 이용한 무공에 특화되어 있어요. 그러니 절대 말을 타고 정면으로 부딪치지 마세요. 가급적 말을 먼저 노리되, 말에서 떨어트렸다고 해도 방심하지 마시고요. 떨어진 상대에 집중하면 반드시 뒤를 노리고 동료가 달려들거든요. 집단전에 매우 능한 자들이에요.”
단악선이 품속에서 지도 한 장을 꺼내 등위평에게 건넸다.
“지금까지 파악한 혈운사의 거점들이에요. 그 근처로는 절대 접근하지 마세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기동력을 지니고 있는 만큼 조금만 발이 묶여도 순식간에 에워싸여 곤경에 처할 수 있어요.”
설명을 듣던 등위평의 눈에 의아함이 떠오른 것도 그때였다.
지도 어느 곳에도 단악선 일행이 머무는 진영이 표시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등위평의 표정에서 속내를 눈치챈 단악선이 슬쩍 웃었다.
“우리 위치를 알려 드릴 수 없는 점은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만에 하나 그들에게 정보가 넘어가는 경우도 대비하지 않을 수 없거든요.”
등위평 뒤에 시립해 있던 무인들의 눈매가 꿈틀했다.
그들이라 해서 단악선이 한 말의 의미를 모를 만큼 아주 눈치가 없진 않았다.
혈운사와 부딪쳤을 경우 자신들의 패배를 당연하게 상정해 두고 있는 게 분명했다.
가만히 단악선을 응시하던 등위평이 입을 열었다.
“저희들의 안전을 원하시는 겁니까? 아니면 공을 세우지 못하도록 발을 묶는 것입니까?”
초악량과 한설화의 눈빛이 험악해지자 단악선이 재빨리 대답했다.
“당연히 안전을 위해서예요.”
“그 말을 믿어도 되겠습니까?”
“어차피 공과를 부풀릴 생각으로 오셨잖아요. 그러니 무리하지 마시고 안전하게 머물다 돌아가시는 편이 좋지 않겠어요?”
등위평이 멈칫했다.
반면 단악선은 상관없다는 듯 여유로운 표정으로 말을 이어 갔다.
“우리는 여러분들을 적대하거나 방해하지 않아요. 그러니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세요. 혈운사는 절대 만만한 적이 아니에요.”
이때 누군가가 발끈했다.
단영문의 문주, 강소기였다.
“우리를 너무 우습게 보시는군요. 이미 우리는 세 번의 습격을 받았고 모두 물리쳤습니다. 포획한 말만 백 마리가 넘습니다. 신마상단에 비해 결코 공이 적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 말에 초악량이 피식했다.
“공이라. 그런 하찮은 이유라면 살아남기 힘들겠군.”
노골적인 조롱에 금룡상단 측 무인들의 얼굴이 구겨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못난 놈들이 모여 있으면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겨운 법이지.”
비록 농담 같았지만 그 안에는 엄중한 경고가 담겨 있었다.
그것을 알기에 금룡상단 측 무인들은 어느 누구 하나 함부로 입을 놀릴 수 없었다.
“그럼 앞으로도 조심하세요.”
마지막으로 재차 주의를 당부한 단악선이 금룡상단 진영을 떠났다.
등위평은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
정보를 건넨 대가로 당연히 무언가를 요구하리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황당해하는 사람은 그만이 아니었다.
“정말 정보만 주러 온 건가?”
“그것도 모르고 괜히 긴장했군.”
견제할 줄 알았던 신마상단 측의 호의에 몇몇 무인들이 동요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좀 더 살갑게 굴 걸 그랬어. 신마의선 말대로 어디까지나 같은 적을 둔 동료나 다름없는데 말이야.”
당황한 등위평이 무인들을 향해 소리쳤다.
“모두 정신 차리시오! 저들은 우리를 우습게 여기고 무시한 것이오! 마치 어린애를 다루듯 하지 않았소?”
무인들 중 몇 명이 짧게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대부분이 고개를 끄덕여 등위평의 말에 힘을 실어 주었다.
어쨌거나 자신들을 이끄는 책임자가 그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우리는 저들의 말에 흔들릴 필요 없이 애초에 우리가 세운 계획대로 움직일 것입니다.”
그렇게 무인들의 마음을 다잡은 등위평이 단악선 일행이 사라진 곳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사납게 몰아치던 바람은 어느새 잠잠해져 있었다.
* * *
바얀의 진영으로 돌아오는 내내 단악선은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말 위에서 생각에 잠기는 것이 그리 드문 일도 아니었기에 초악량은 처음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그 시간이 길어지자 이유를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왜 그러느냐?”
“좀 이상하지 않나요?”
“……?”
“금룡상단이요. 세 번이나 습격이 있었다고 했는데, 생각보다 피해가 적어서요.”
초악량은 얼핏 보았던 금룡상단 측 무인들을 떠올렸다.
“나름 실력자들을 추려 뽑은 것 같더구나.”
육지겸이나 강소기 같은 자들만 해도 구대문파의 장로에 필적하는 무공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단악선은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그들의 전리품도 너무 적어요.”
초악량도 뒤늦게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습격에 무언가 의도가 담겨 있었다는 것이냐?”
“혈운사는 지는 싸움을 일부러 하지 않아요. 한 번은 그럴 수 있지만 세 번이나 반복된 건 이상해요.”
무엇보다 지금까지 단악선이 경험한 혈운사의 방식과는 너무나 달랐다.
“하나 우리가 굳이 관여할 필요가 있겠느냐? 저들도 나름의 계획이 있는 만큼 알아서 할 게다.”
한설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베푼 호의만으로도 너는 충분히 할 만큼 했다.”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럴게요. 우리 일이 더 급하니까요.”
혈운사와 맞서기 위해 지금 이 순간에도 바얀은 전사들을 이끌고 끊임없이 타 부족과 접촉하고 있었다.
특히 최근에는 바얀의 신경이 극도로 예민해진 상태였다.
규모로는 자신들보다 훨씬 우위를 점하고 있는 부족과의 협상을 목전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단악선은 이내 금룡상단에 대한 걱정을 거두었다.
* * *
다음 날 저녁 무렵.
게르 안에서 바얀이 맞은편의 사내와 두 손을 맞잡았다.
“우리 또한 그대들과 뜻을 함께하겠소.”
협상을 무사히 마친 두 부족장을 향해 단악선이 끼어들었다.
“여자와 아이들을 보호할 병력을 편성해야겠어요. 이번에는 규모가 커서 혈운사가 노릴 가능성이 커요.”
얼핏 무례한 행동일 수도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제지하지 않았다.
지금껏 해 온 일이 있었기에 단악선의 존재를 경시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게까지 생각해 주어 고맙소.”
상대 부족장의 감사에 단악선이 미소로 화답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인걸요.”
화기애애한 게르 안으로 한 사람이 뛰어든 것도 그때였다.
“혈운사가 움직였습니다.”
수하의 보고에 바얀의 표정이 굳어졌다.
“규모는?”
“별동대를 포함해 삼백에 달하는 병력입니다.”
“삼백?”
바얀의 눈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그리고 이는 단악선도 마찬가지였다.
바얀 부족을 중심으로 최근 결속을 다지는 부족이 빠르게 늘어났고, 지금 이 자리에 운집한 병력만 해도 천 명에 육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녀자와 노인들을 제외한 순수한 전사들의 숫자였다.
제아무리 혈운사라 할지라도 부담스러운 전력이었다.
“혹시 근처에 다른 부족이 있었던가?”
의아해하는 바얀의 음성에 단악선은 불현듯 깨닫는 바가 있었다.
“아! 그들의 목표는 우리가 아니에요!”
“……?”
“저들이 노리는 목표는 금룡상단이에요!”
“중원에서 왔다는 그 무자비한 자들 말인가?”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한 바얀의 음성에 단악선이 쓰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원 병력을 보내야 해요.”
처음에는 썩 내켜 하지 않았던 바얀이었지만 이어진 단악선의 설득에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금룡상단의 존재가 혈운사는 입 안의 가시처럼 느껴질 거예요. 동시에 혈운사의 이목을 우리에게서 분산시키는 효과도 있고요.”
“저들이 조금만 버텨 준다면 오히려 우리가 놈들의 배후를 노릴 수도 있겠군.”
고개를 끄덕인 바얀이 전사들에게 출진을 명령했다.
금룡상단을 미끼 삼아 혈운사 삼백을 포위해 섬멸한다면 충분히 이득을 가져올 수 있다 판단한 것이다.
서둘러 출진한 단악선은 가장 선두에서 부족을 이끌었다.
이미 밤이 깊어지기 시작한 초원은 온통 어둠에 잠겼다.
희미한 달빛과 별빛에 의지해 달려야 하는 만큼 진군 속도는 매우 더뎠다.
밤과 함께 찾아온 추위 역시 끊임없이 전사들을 괴롭혔다.
그러다 어느 한순간.
어둠 속을 꿰뚫고 있던 단악선의 눈빛이 미미하게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