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314)
신마의선-314화(314/500)
신마의선 (314)
‘한발 늦었어!’
상당한 병력이 이동한 흔적을 발견한 단악선의 마음이 더욱 다급해졌다.
그런 주인의 마음을 눈치챈 흑섬이 더욱 속도를 높였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어제 금룡상단 인사들과 조우했던 장소에 다다른 단악선은 저 멀리 어지러운 횃불과 그 아래 반사되어 번뜩이는 병장기를 목도할 수 있었다.
“……!”
단악선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의당 들려와야 할 병장기 부딪치는 금속성이 들려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백했다.
혈운사의 일방적인 학살.
이미 싸움은 진즉에 끝난 것이다.
한 줄기 나팔 소리가 밤하늘을 뒤흔든 것도 그때였다.
그와 동시에 일대를 휩쓸던 혈운사가 일사불란하게 병력을 물리기 시작했다.
지원군이 도착한 것을 눈치챈 것이다.
“추격하지 마라!”
썰물처럼 순식간에 빠져나가는 혈운사를 보고도 바얀의 전사들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피해를 감수하고 추격한다면 어느 정도 놈들의 머릿수는 줄일 수 있었다.
하지만 교활하기 짝이 없는 혈운사를 상대로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어떤 함정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섣부른 추격은 피해를 키울 뿐.
지금처럼 밤이 깊은 상황에서는 더욱 그랬다.
“아!”
장내에 들어선 단악선이 안타까운 탄식을 터트렸다.
예상보다 너무 빨리 무너진 금룡상단.
눈앞에 펼쳐진 참담한 광경에 할 말을 잃어버린 것이다.
불과 하루 전만 해도 그토록 기세 높던 그들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곳곳에 널브러진 처참한 시신과 부상자의 신음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당황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부상자부터 치료할게요! 일단 중증인 사람을 발견하면 알려 주세요.”
말에서 내린 단악선이 상황을 수습하기 시작했다.
그나마 남은 생존자들이라도 살리기 위해서는 응급 처치를 최대한 서둘러야 했다.
가장 먼저 단악선의 눈에 들어온 사람은 금룡상단을 이끌고 있던 등위평이었다.
창에 관통당한 듯 가슴 부근에서 연신 더운 피가 솟구치고 있었다.
재빨리 그에게 다가간 단악선이 침과 내공을 이용해 그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주변을 향해 크게 외쳤다.
“아저씨, 아주머니. 좀 도와주세요. 혼자서는 무리예요.”
그나마 일행 중 어깨너머로라도 의술을 배운 사람은 두 사람이 유일했다.
초악량과 한설화가 부상자들을 살피기 위해 흩어졌다.
이때 단악선 옆으로 슬쩍 다가서는 사람이 있었다.
장곡이었다.
평소 단악선을 호위하던 초악량과 한설화가 사라진 이상 누군가는 곁을 지켜야 했기 때문이다.
“아!”
단악선의 입에서 무거운 탄식이 새어 나온 것도 그때였다.
막 치료를 시작한 부상자가 제대로 손을 써 보기도 전에 숨이 끊어졌기 때문이다.
입술을 지그시 깨문 단악선의 모습에 장곡은 덩달아 마음이 무거워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단악선은 다른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재차 몸을 움직였다.
그 순간.
“으으…….”
고통에 겨운 신음 소리에 단악선이 돌아섰다.
그리 멀지 않은 곳.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어 신음을 흘리고 있는 부상자가 눈에 들어왔다.
단악선이 급히 환자를 향해 다가섰다.
“음?”
환자의 상태를 살피기 위해 맥문에 손가락을 올린 단악선의 눈에 의아함이 서렸다.
심각한 부상을 입은 환자라 생각했는데 진기의 흐름이 자연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한순간 상대의 몸속에 흐르던 진기가 폭발적으로 짙어지나 싶더니.
부상자가 번쩍 눈을 떴다.
“……!”
단악선은 가슴이 서늘해졌다.
차갑게 식어 있는 상대의 눈.
그 안에서 휘몰아치는 강렬한 살기를 읽어 냈기 때문이다.
섬뜩하기 짝이 없는 예기가 단악선의 가슴을 향해 날아든 것도 동시였다.
카앙!
눈앞에서 새파란 불꽃이 번뜩이며 저릿한 충격이 손목을 타고 올라왔다.
본능적으로 묵룡을 들어 막았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눈앞의 초로인이 휘두른 검에 가슴을 내어 줄 뻔했다.
문제는 그의 공격이 끝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카가각.
마치 살아 있는 뱀처럼 묵룡을 긁으며 타고 오른 검이 그대로 단악선의 심장을 노리며 쇄도해 왔다.
화들짝 놀란 단악선이 사력을 다해 물러섰다.
그 순간 상대의 검이 변화를 일으켰다.
방금 전까지 신음을 흘리던 사람이라 믿어지지 않을 만큼 쾌속한 움직임이었다.
서억.
가슴 부근을 긋고 지나가는 섬뜩한 통증!
가까스로 치명상은 피했지만 길게 갈라진 단악선의 가슴팍에서 핏물이 솟구쳤다.
“곡주님!”
비명에 가까운 장곡의 외침에 초악량과 한설화가 뒤늦게 변고가 벌어졌음을 깨달았다.
“멈춰라!”
멀리 떨어져 있던 초악량과 한설화가 단악선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그 순간.
바닥에 쓰러져 있던 시신들이 신형을 일으켰다.
‘귀식대법(龜息大法)!’
자신들에게 달려드는 열 명의 검수.
두 사람조차 눈치채지 못할 만큼 하나같이 완벽에 가까운 귀식대법이었다.
그리고 이 정도 실력을 지닌 사람은 흔치 않았다.
단순히 호흡을 멈추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심장의 박동까지 정지시켜 그야말로 시체와 같은 상태로 자신들의 존재를 지워 낸 것이다.
그것도 한 놈도 아니고 열 놈씩이나!
초악량은 뒤늦게 놈들의 정체를 깨달았다.
‘마교!’
그렇지 않고서는 놈들의 전신에서 뭉클거리며 쏟아지는 마기가 설명되지 않았다.
‘그렇다는 건?’
초악량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저 멀리, 단악선 앞에 서 있는 초로인의 얼굴이 유독 낯익었다.
“암존(暗尊)!”
마교를 지탱하는 여섯 명의 절대고수 육마존.
비록 한 명이 죽어 지금은 다섯 명밖에 남지 않았지만, 그중에서도 암존은 초악량조차 경시할 수 없는 고수였다.
목숨을 도외시한 채 달려드는 놈들을 향해 초악량과 한설화는 주저하지 않고 살수를 쏟아 내기 시작했다.
“……!”
등 뒤에서 날아든 초악량의 음성에 단악선이 경악하며 상대와 더욱 거리를 벌렸다.
재빨리 가슴의 자상을 지혈하는 한편, 묵룡을 들어 상대의 공격에 대비했다.
그 모습에 갈현상이 마른 웃음을 풀썩였다.
“조금 얕았나?”
“…….”
“제법이군. 이 거리에서 그걸 피하다니.”
갈현상의 눈에서 차디찬 한광이 번뜩였다.
“어디 이것도 피해 보아라.”
한순간 단악선은 눈앞에서 초로인이 사라지는 것을 목도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오직 한 자루 검만 남았다.
단악선은 밀려드는 암담함 속에서도 어떻게든 정신을 집중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밀려드는 두려움까지 걷어 낼 수는 없었다.
너무나 극명한 실력 차이.
만약 초악량이 검을 들었다면 이렇지 않을까 싶을 만큼 눈앞의 검은 그 자체로 어마어마한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었다.
순간 단악선은 본능적으로 상체를 젖혔다.
칙.
분명 묵룡으로 방어했다고 생각했는데, 날카로운 통증이 어깨를 긋고 지나갔다.
난생처음 겪어 보는 가공할 속도!
독니 같은 검이 어깨에 닿고 나서야 상대가 움직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단악선의 눈빛이 흔들렸다.
분명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생각했는데, 암존 정도 되는 고수에게는 처음부터 거리는 의미가 없었던 것이다.
단악선은 비로소 일대의 공간이 완벽하게 그의 지배 아래 놓여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단악선의 눈빛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자신을 겨누고 있는 한 자루 검.
거기서 뿜어지는 가공할 예기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위협이 담겨 있었다.
그 순간 두 번째 검이 날아들었다.
흘러내리는 피를 지혈도 하지 못한 채 단악선이 급히 상체를 틀었다.
눈으로 보고 피한 것이 아니었다.
본능적인 감각에 무의식적으로 반응한 것이다.
찌익.
핏빛 노을을 연상시키는 가느다란 협봉검이 단악선의 허벅지 부근을 훑고 지나갔다.
‘흠.’
갈현상은 연이어 빗나간 자신의 공격에 내심 감탄했다.
‘이번 기회를 놓쳤다면 상당히 귀찮아졌겠어.’
그만큼 눈앞의 소년이 지닌 무공은 나이에 비해 믿어지지 않는 성취였다.
하나 그것도 오늘까지였다.
얼음장 같은 갈현상의 눈빛 위로 짙은 살기가 일렁였다.
교의 행보에 지대한 지장을 초래한 훼방꾼을 처리할 절호의 기회였다.
그리고 그 기회를 놓칠 그가 아니었다.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설쳐 대던 천둥벌거숭이.
그 어린놈의 심장에 작은 구멍 하나 내 주면 그만인 것이다.
완벽하게 승기를 잡은 갈현상이 연속해서 공격을 이어 갔다.
차가운 검날이 허공을 가를 때마다 대기가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그때마다 어김없이 단악선의 몸에서는 핏물이 튀었다.
하나 그 와중에도 단악선은 정신을 집중했다.
열세에 처한 것은 분명했으나 극복할 방법이 아주 없는 건 아니었다.
단 한 순간.
그 찰나의 틈만 비집고 들어가면 되는 것이다.
단악선이 초인적인 집중력을 발휘해 눈앞의 검을 응시했다.
다행히 어느 순간 검 너머의 상대가 보이기 시작했다.
칙.
그때 또다시 단악선의 어깨 근처에서 핏물이 솟구쳤다.
묵룡을 바로 세운 단악선의 눈이 차갑게 번뜩인 것도 그때였다.
비록 실낱같은 틈이었으나 검을 뻗고 거두는 순간, 미약한 공백이 느껴졌다.
빈틈이라 말하기도 애매한 극히 작은 공간.
단악선의 신형이 한 줄기 빛살이 되어 갈현상을 향해 쇄도한 것도 그때였다.
갈현상의 얼굴에 비릿한 웃음이 떠올랐다.
“기다리고 있었다.”
“……!”
뒤늦게 속았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단악선은 묵룡을 거둘 수 없었다.
그러기에는 너무 늦어 버린 것이다.
단악선은 상대의 빈틈에 욱여넣은 묵룡이 헛되이 허공을 가르는 것을 느꼈다.
그 순간.
단악선은 눈앞에 자욱한 운무가 펼쳐진 듯한 착각을 느꼈다.
지금까지와는 확연히 다른 검법이었다.
쾌검 위주의 공격을 이어 가던 암존이 한순간 방법을 달리한 것이다.
섬뜩한 핏빛 운무는 폭발하듯 불어난 검날이 중첩되며 만들어 낸 착시 현상이었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파괴력은 결코 허상이 아니었다.
겹겹이 응집된 검기가 유형화된 것으로, 지금껏 단악선이 경험한 그 어떤 무공보다 강력하고 파괴적인 상승 무공이었다.
단악선이 짓쳐 드는 운무를 걷어 내기 위해 묵룡을 휘둘렀다.
콰앙!
귀청이 떨어질 것 같은 굉음과 함께 단악선의 신형이 크게 휘청였다.
그리고 돌아온 것은 손목이 부러질 것 같은 충격이었다.
“왁!”
한 움큼의 피를 토한 단악선은 처음으로 눈앞에 드리운 죽음을 실감했다.
어디에서도 벗어날 틈이 보이지 않았다.
아연한 표정으로 우두커니 서 있는 단악선을 향해 갈현상이 검을 찔러 넣었다.
푸욱.
“……?”
갈현상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의 손에 들려 있던 협봉검이 단악선의 심장을 찌르기 직전.
난데없이 어디선가 튀어나온 인영이 앞을 막아선 것이다.
장곡이었다.
“아저씨!”
놀라 외치는 단악선을 향해 장곡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입을 열었다.
“피하십……시오.”
그 말과 함께 장곡은 두 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꿰뚫은 검날을 움켜쥐었다.
그의 손바닥이 길게 갈라지며 핏빛 검신을 타고 핏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구유음소인가.”
한때 교의 영입 대상에 포함되어 있었던 만큼 갈현상은 장곡을 알아볼 수 있었다.
“쓸데없는 짓을.”
갈현상이 귀찮다는 듯 가볍게 검을 떨쳐 냈다.
후두둑.
가닥가닥 잘려 나간 장곡의 손가락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그러나 장곡은 도리어 두 팔로 더욱 깊게 갈현상의 검을 끌어안았다.
“곡주님께는…….”
연신 피를 토하면서도 장곡이 새하얗게 웃었다.
“……보내 주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