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315)
신마의선-315화(315/500)
신마의선 (315)
입을 열어 말을 할 때마다 장곡은 울컥울컥 핏물을 게워 냈다.
깊숙하게 파고들어 사정없이 폐부를 찢어 놓은 검 때문이었다.
갈현상이 눈살을 찌푸렸다.
“의미 없는 짓을…….”
자신의 검을 회수하는 대신 갈현상은 전장에 구르는 검 하나를 대신 집어 들었다.
그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단악선의 목숨.
죽어 가는 놈이 붙들고 있는 검을 회수하느라 괜한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자 힘을 다한 듯 장곡의 신형이 무너지는 것처럼 주저앉았다.
단악선이 황급히 손을 뻗어 쓰러지는 장곡을 안아 들었다.
황급히 장곡의 혈도를 찍은 단악선이 위화신공을 끌어 올려 장곡의 몸에 쏟아부었다.
그 모습에 갈현상이 냉소를 흘렸다.
“그럴 여유가 있더냐?”
천천히 다가서는 갈현상을 발견한 장곡이 숨을 헐떡이며 입을 열었다.
“피하십시오, 곡주님…….”
“말하지 마세요.”
단악선은 크게 입을 벌린 장곡의 가슴을 두 손으로 힘껏 눌렀다.
간헐적으로 뿜어지는 핏물이 순식간에 단악선의 손을 벌겋게 물들였다.
“제발…….”
장곡에 애원에도 불구하고 단악선은 그 자리에 뿌리를 내린 듯 요지부동이었다.
심지어 거리를 좁혀 오는 갈현상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이 순간 단악선의 신경은 오직 장곡에게만 집중되어 있었다.
손을 떼는 순간 장곡이 죽는다는 것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그 모습에 갈현상이 뜻 모를 말을 중얼거렸다.
“넌 의원으로 죽겠구나. 그건 네 부모보다 낫군.”
부모님을 언급했음에도 불구하고 단악선은 흔들리지 않았다.
암존이 눈을 들어 주변 상황을 살폈다.
초악량과 한설화를 공격하던 수하들은 이미 대부분이 차가운 주검이 되어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러나 갈현상도 어차피 그들에게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잠시라도 저들의 발목을 묶어 시간을 버는 것으로 그들의 목숨은 그 가치를 충분히 다한 셈.
“이곳에서 못다 한 의술은 저승에 가 실컷 펼치도록.”
갈현상이 단악선을 향해 검을 내질렀다.
아니, 내지르려 했다.
“……!”
한순간 눈앞이 어두워지며 무언가 거대한 그림자가 갈현상을 덮쳐 왔다.
주인의 위기를 눈치챈 흑섬이 몸을 날린 것이다.
갈현상이 멈칫하며 한 걸음 물러섰다.
찌익.
육중한 위력의 말발굽이 아슬하게 턱을 스치고 지나갔다.
미물이라 얕잡아 보았다간 큰 낭패를 면치 못했을 공격이었다.
“감히!”
재차 달려들어 발길질을 하려는 거대한 말을 향해 검을 휘두르려는 찰나.
삐익!
이번에는 허공에서 무언가가 섬전처럼 얼굴을 향해 쇄도해 왔다.
그것이 한 마리의 매라는 것을 깨달은 갈현상이 벼락같이 검을 휘둘렀다.
갈현상의 눈을 할퀴기 위해 발톱을 들이댔던 매가 그대로 두 동강이 나 바닥에 처박혔다.
발목을 타고 올라오는 소름 끼치는 한기를 갈현상이 느낀 것도 그때였다.
뒤늦게 지척까지 접근해 온 한설화를 발견한 갈현상이 단악선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상황이 이쯤 되니 아무리 천하제일 살수를 자처하는 그라 할지라도 마음이 급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흑섬이 그런 갈현상을 공격하기 위해 달려들며 재차 발길질을 날렸다.
그러나 흑섬의 발굽은 헛되이 허공을 갈랐다.
갈현상의 신형이 그 자리에서 꺼지듯 흩어져 버린 것이다.
가공할 이형환위의 신법!
어느새 단악선의 배후에 나타난 갈현상이 검을 들어 단악선의 등을 찔러 갔다.
그 순간 갈현상은 전율스러운 살기가 일대를 에워싸는 것을 느꼈다.
어느새 지척에 이른 초악량의 존재감이 등 뒤에서 느껴졌다.
“…….”
찰나의 순간.
갈현상은 갈등했지만 고민은 길지 않았다.
육마존이기 이전에 그는 살수였고, 살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그 어떤 것도 마다치 않는 법.
비록 그 대가가 뼈아프더라도 살수의 본능에 충실할 때였다.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갈현상이 단악선을 찔러 갔다.
그런데…….
푸욱.
단악선의 등을 파고들던 검이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어느 순간 멈춰 섰다.
‘칫!’
검을 움켜잡아 멈춰 세운 손 하나를 발견한 갈현상이 이를 악물었다.
한설화였다.
절호의 기회를 놓친 갈현상이 당혹감을 금치 못하던 그때.
옆구리를 파고드는 지극히 음유한 장력이 느껴졌다.
갈현상은 순식간에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퍼억.
초악량의 전사경이 사정없이 갈현상의 늑골에 틀어박혔다.
초악량이 미미하게 눈살을 찌푸렸다.
손끝에 걸리는 충격이 너무나 가벼웠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갈현상의 신형이 눈앞에서 안개처럼 흩어지고 있었다.
‘암형무보(暗形霧步)!’
갈현상이 자부하는 절학 중 하나인 신법이었다.
제아무리 마교의 육마존 중 하나인 그라 해도 초악량과 한설화 정도의 고수를 동시에 상대는 건 무리라 판단한 것이다.
‘아직 근처에 있다.’
기척마저 지운 채 완벽하게 어둠에 녹아든 갈현상을 찾기 위해 초악량이 기감을 펼쳤다.
하나 기감의 그물 어디에도 그의 존재가 걸리지 않았다.
초악량이 경계를 하며 주변을 감시하는 사이.
단악선의 등에 한 치 정도 파고든 검을 뽑아낸 한설화가 재빨리 상처를 지혈했다.
한설화는 놀란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설마 단악선이 미동도 하지 않고 맨몸으로 검을 받아 낼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괜찮으냐?”
한설화가 걱정을 담아 물었지만 단악선은 대답이 없었다.
단악선의 시선은 오직 눈앞의 장곡에게 고정된 채 움직일 줄 몰랐다.
장곡의 상태를 확인한 한설화가 고개를 저었다.
“이미 늦었다.”
그 말에 단악선이 이를 악물었다.
“아니에요. 조금만……. 조금만 더 하면 돼요! 이 출혈만 잡으면…….”
한설화가 안타까운 눈빛을 던졌다.
정작 눈앞의 단악선부터 이미 온몸이 만신창이었다.
넝마처럼 곳곳에 베이고 찢어진 옷 사이로 크고 작은 상처가 벌겋게 입을 벌리고 있었던 것이다.
한설화가 가만히 손을 뻗어 피로 물든 단악선의 손을 움켜잡았다.
“그만 보내 주거라.”
“아니에요. 살릴 수 있어요.”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다는 건 너도 이미 알고 있지 않느냐?”
그래도 단악선은 포기하지 않았다.
“제 품속에 성수신단이 있어요. 그걸 꺼내 장곡 아저씨의 입에 넣어 주세요.”
한설화가 나직이 한숨을 흘렸다.
그런다 한들 장곡의 상세를 돌이킬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까닭이다.
그러나 단악선의 간절한 눈빛을 외면할 수 없었다.
한설화가 단악선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밀랍에 쌓인 환단을 꺼내 손으로 짓이긴 뒤 장곡의 입 속에 넣고 목울대 근처의 천돌혈을 툭 건드렸다.
그러자 장곡의 목이 한 차례 꿀렁이더니 성수신단을 삼켰다.
그러나…….
한참의 시간이 지나도 기사회생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아아…….”
단악선이 왈칵 눈물을 터트렸다.
“저 때문에……. 저 때문에 장곡 아저씨가…….”
울먹이며 말을 잇지 못하는 단악선의 모습에 초악량과 한설화가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한설화가 가만히 단악선을 끌어안았다.
품속에서 흐느끼는 단악선을 토닥이던 한설화가 눈을 들어 초악량을 바라봤다.
서로의 시선이 마주치자 초악량이 씁쓸하게 고개를 저었다.
“놓쳤다. 놈을 찾을 수 없어.”
초악량과 한설화가 기감을 끌어 올리며 철통처럼 주변을 경계했다.
이대로 포기하고 쉽게 물러날 놈이 아니었다.
마지막 순간.
놈의 눈빛에 스쳤다 사라지는 집요한 광기를 분명히 보았기 때문이다.
분명 지금도 어디선가 숨죽인 채 기회를 노리고 있을 터.
흑섬이 돌연 기이한 행동을 한 것도 그때였다.
갑자기 투레질을 하며 발밑의 흙을 차올린 것이다.
그 순간 단악선이 묵룡을 휘둘렀다.
카앙!
새파란 불꽃과 함께 묵룡이 허공에 튀어 올랐다.
“큭!”
단악선을 에워싸고 있던 어둠이 한차례 출렁인 것도 그때였다.
그 너머로 일순 흐릿하게나마 갈현상의 신형이 드러났다.
한데 그 모습이 결코 멀쩡하진 않았다.
비록 정면에서 맞서지 않고 흘려 냈다곤 하나 한설화와 초악량의 기공 일부는 고스란히 감내해야 했기 때문이다.
초악량과 한설화의 눈빛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두 사람이 갈현상을 향해 신형을 날리려던 찰나.
그보다 더욱 빨리 움직이는 그림자가 있었다.
단악선이었다.
콰득!
“……!”
갈현상이 두 눈을 부릅떴다.
그러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명치를 부수며 파고든 시커먼 묵봉을 내려다보았다.
“커헉!”
뒤늦게 갈현상의 입에서 폭포와 같은 핏물이 터져 나왔다.
때문에 단악선은 정면에서 그 피를 고스란히 뒤집어써야만 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스스로 생각해도 어이가 없었던지 갈현상이 힘없이 중얼거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갈현상의 고개가 천천히 꺾이더니 그대로 숨이 끊어졌다.
눈물 가득한 얼굴로 갈현상을 노려보던 단악선이 묵룡을 거두었다.
털썩!
갈현상의 신형이 썩은 짚단처럼 무너져 내렸다.
초악량과 한설화가 경악 어린 표정으로 시선을 교환했다.
천하가 놀랄 일이었다.
마교의 육마존 중 일 인이자 소리 없는 죽음이라 알려진 암존.
죽음의 상징처럼 군림하던 천하제일 살수가 신마의선이라 불리는 소년 의원에 의해 유명을 달리한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단악선의 단호한 손속에 놀랐다.
두 사람 모두 단악선이 이처럼 일격에 갈현상의 숨통을 끊어 버릴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이글거리는 눈으로 갈현상을 노려보던 단악선이 이윽고 터벅터벅 걸어와 장곡 앞에 주저앉았다.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그 순간.
움찔.
“쿨럭!”
피 기침을 토하며 장곡의 신형이 들썩였다.
“……!”
단악선도, 그리고 초악량과 한설화도 깜짝 놀랐다.
방금 전만 해도 숨이 끊어졌다 생각했던 장곡이 힘겹게 눈을 떠 자신들을 올려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 시진 후.
“후우…….”
긴 한숨을 토한 단악선이 지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푸석푸석하게 메말라 갈라진 입술은 말할 것도 없었고 눈빛에서도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장곡을 포함해 금룡상단 측 생존자들의 치료가 비로소 끝난 것이다.
피로가 쌓여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면서도 단악선은 비틀거리며 장곡이 누워 있는 곳으로 걸어왔다.
그사이 장곡은 깊게 잠이 들어 있었다.
규칙적인 가슴의 기복과 고른 호흡.
마지막으로 잘린 손가락을 접합한 부분을 몇 번이고 확인한 단악선이 피곤한 얼굴로 웃었다.
“이제 고비는 넘긴 것 같아요.”
비로소 장곡에게서 시선을 돌린 단악선이 저 멀리 먼동이 터 오르는 지평선을 눈에 담았다.
“이제 좀 쉬거라.”
염려가 담긴 초악량의 눈빛에 단악선이 고개를 저었다.
“그 전에 확인할 게 있어요.”
단악선이 시신을 옮기는 사람들에게 걸어갔다.
그리고 이미 한쪽에 치워진 갈현상의 시신을 우두커니 서서 내려다보았다.
그러기를 잠시.
단악선이 갈현상의 품속을 살피기 시작했다.
“놈이 가지고 있던 물건은 이미 따로 빼놓았다.”
어느새 곁에 다가선 초악량의 말에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확인해 볼 수 있을까요?”
초악량이 눈살을 찌푸렸다.
모든 상황을 감안한다 해도 현재의 단악선은 지극히 불안해 보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처음으로 살인을 경험했다.
아무리 내색지 않으려 애쓰곤 있었으나 마음과 정신이 멀쩡할 리 만무했다.
초악량이 입을 열어 무언가 말을 하려는 순간.
한 줄기 전음이 날아들었다.
―그냥 지켜보자. 어차피 저 아이 스스로 극복해야 할 몫이니까.
“…….”
잠시 단악선을 응시하던 초악량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놈이 지니고 있던 물건이다.”
초악량은 갈현상이 소지하고 있던 물건들을 단악선 앞에 내려놓았다.
크고 작은 암기 몇 개와 육마존의 신분을 증명하는 신분 패.
악귀상이 새겨진 정교한 신분 패를 응시하던 단악선이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정말 암존이었군요.”
“놈을 상대해본 느낌이 어땠느냐?”
단악선이 새삼 한숨을 내쉬었다.
“그야말로 손쓸 수 없는……. 정해진 죽음과 맞닥뜨린 기분이었어요.”
문득 상대의 뼈를 부수며 파고들던 묵룡.
그리고 이를 통해 손에 전해진 생생한 느낌을 떠올린 단악선이 한차례 부르르 진저리를 쳤다.
한순간 여러 감정이 어지럽게 뒤섞였다.
그 순간.
“그런데 이건 뭐죠?”
뒤늦게 갈현상의 소지품 중 이상한 물건이 섞여 있다는 것을 눈치챈 단악선이 손을 뻗어 무언가를 집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