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317)
신마의선-317화(317/500)
신마의선 (317)
“자, 잠깐!”
양홍서가 황급히 단악선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단악선과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양홍서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분명 온화한 성품이라 들었건만 단악선은 이 무도한 자들을 만류할 생각이 없는 것 같아 보였다.
오히려 차갑게 식은 눈으로 자신을 응시할 뿐이었다.
비로소 양홍서는 상황이 심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하지만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는 법.
오히려 그들을 말리기 위해 나선 것은 바얀 부족의 전사들이었다.
“진정하십시오.”
“저희는 괜찮습니다.”
“초원의 전사들은 이 정도 모욕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번 피를 보기로 마음먹은 초악량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다.
“아니. 저놈은 선을 넘었다.”
다른 건 차치하고 단악선에게 건방지게 군 것은 그냥 보아 넘길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때였다.
삐이익!
허공을 찢는 날카로운 소리가 귓전을 파고들었다.
소리를 좇아 고개를 돌리자 멀리 허공을 가르는 한 대의 커다란 화살이 눈에 들어왔다.
대초명적(大哨鳴鏑).
효시(嚆矢)라고도 하는, 촉 대신 큰 호각(號角)을 달아서 소리가 나게 하는 신호용 화살이었다.
그 뒤로 말을 몰아 이쪽으로 달려오는 일단의 군세가 보였다.
연락을 받기 무섭게 부랴부랴 군을 꾸려 가욕관에서 출발한 시주경이 비로소 도착한 것이다.
이를 확인한 양홍서가 반색했다.
하지만 이내 두 눈에 짙은 의혹이 떠올랐다.
속속 도착해 도열하는 가욕관 소속의 기마들의 배치가 이상했기 때문이다.
마치 포위하듯 자신들을 에워싸기 시작하더니, 그것도 모자라 심지어 시위를 장전한 활을 겨누기까지 하고 있었다.
“대체 무슨 짓을?”
당연히 같은 군문 소속으로서 자신들을 구원해 주리라 여겼던 가욕관 산하의 군대가 이리 나오자 양홍서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리고 그 당혹감과 두려움은 고스란히 그의 수하들에게도 옮겨 갔다.
안문관에서 출진한 기병들 역시 예상치 못한 상황에 크게 동요했다.
“시 장군! 시 장군!”
목이 터져라 시주경을 부르는 양홍서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가욕관 소속의 기병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이미 출병하기 전 단단히 지시를 받은 것이 분명했다.
그사이 기병들을 이끌고 있던 시주경이 말을 몰고 앞으로 나섰다.
그러곤 양홍서에게는 눈길 한번 주지 않고 곧바로 초악량을 향해 다가섰다.
말에서 내린 시주경이 초악량과 한설화에게 고개를 숙인 뒤 곧바로 단악선을 향해 예의를 갖췄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간 무사하셨는지요.”
양홍서와 다르게 단악선을 대하는 시주경의 태도는 지극히 공손했다.
자신과 한배를 탄 능소밀이 실제로는 누구를 위해 일하는지 모를 그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부디 진노를 거두어 주십시오. 저자의 무례는 제가 책임지고 합당한 대가를 받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아니, 시 장군! 지금 대체 무슨 소릴 하는…….”
눈치 없이 소리치는 양홍서를 향해 시주경이 날 선 눈빛을 던졌다.
“비공식적이라 하나 이분들은 폐하의 밀명을 받들어 임무를 수행하는 첨병관(尖兵官)이시다. 뒷일을 어찌 감당하려고 이 같은 무례를 범한단 말인가.”
“그대나 나나 폐하의 신하이거늘, 어째서 저들을 두둔하고 내게 칼을 겨누는 것이오?”
이쯤 되니 시주경도 인내심이 바닥났다.
“그만 좀 닥치지?”
“뭐? 방금 뭐라고…….”
“죽기 싫으면 그만 그 입 다물라고.”
기껏 살려 주려 했더니 부득불 고집스레 황천을 향해 기어들어 가려 하는 양홍서의 어리석음에 시주경은 그저 기가 막힐 뿐이었다.
비록 자신과 마찬가지로 천하구새 중 한 곳인 안문관을 다스리는 책임자라 하나 그에 눈에는 아비의 위세만 믿고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애송이에 불과했다.
“귀하가 나를 죽이겠다고?”
그래도 믿지 못하겠다는 듯 반문하는 양홍서를 향해 시주경이 더없이 한심하다는 눈빛을 던졌다.
“뭔가 큰 오해를 하고 있나 보군. 양 장군.”
“……?”
“귀하와 그대의 부대들을 죽인 것은 우리가 아니야.”
시주경이 손을 들어 먼 곳을 가리켰다.
“바로 이곳을 휩쓸고 지나간 혈운사 놈들이지.”
“그게 무슨……?”
“그대들이 금룡상단을 구하기 위해 이곳에 도착했지만 어리석게도 매복해 있던 혈운사를 눈치채지 못했지. 제대로 힘 한번 써 보지 못하고 놈들의 파상 공세에 그대로 쓸려 나간 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야.”
여전히 상황 파악을 못 하던 양홍서도 이어진 시주경의 말에 안색을 달리해야 했다.
“불행한 첩지를 접하고 우리가 서둘러 이곳에 구원 병력을 보냈지만 너무 늦어 버렸군. 그대들이 전멸했다는 보고를 올려야 하는 내 입장에서도 참으로 착잡하기 그지없네.”
“자, 잠깐! 시 장군!”
황급히 자신을 불러 세우는 양홍서를 향해 시주경이 얼음장 같은 눈빛을 던졌다.
“선택하게. 죽어서 이름을 남길 텐가? 아니면 살아서 굴욕을 감내할 텐가?”
시주경이 피식 웃었다.
“하긴. 이끌던 군이 전멸하면 남길 이름이랄 것도 없겠군. 심히 유감이야. 자네뿐만 아니라 도독동지(都督同知)로 계시는 자네 부친의 명예까지 먹칠을 하게 될 테니.”
“……!”
시주경의 말이 단순한 엄포가 아니라는 것을 직감한 양홍서가 주위를 둘러봤다.
이곳에 앞서 도착해 있던 달달(達達) 부족 전사들의 숫자는 오백 명 남짓.
거기에 후위는 완벽하게 가욕관의 기병들에게 막혀 있는 상태였다.
그야말로 앞뒤로 둘러싸인 형국인 것이다.
게다가 가욕관의 기병들은 시위를 먹인 활까지 겨누고 있는 상태.
아무리 봐도 빠져나갈 길이 보이지 않았다.
“잘못…….”
“방금 뭐라고 했나?”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웅얼거리던 양홍서가 질끈 눈을 감았다.
“잘못을 인정하겠소!”
시주경이 단악선을 향해 싱긋 웃었다.
“그렇다는군요.”
단악선이 쓰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 정도로 마무리 짓도록 하죠.”
비록 내키지는 않았지만 초악량과 한설화도 마지못해 살기를 거두며 한 걸음 물러섰다.
시주경이 이 자리에 없었다면 모를까, 그가 이처럼 적극적으로 자신들 편에서 중재에 나섰음에도 불구하고 피를 본다면 훗날 그만큼 단악선의 입지가 좁아질 것이 자명했기 때문이다.
“운이 좋은 놈이군.”
그 말을 마지막으로 초악량이 양홍서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만약 이 자리에 범계위가 있었다면 목이 날아가도 진작에 날아갔을 터.
어깨를 늘어트린 채 참담한 표정으로 돌아서는 양홍서를 시주경이 불러 세운 것도 그때였다.
“아, 참. 양 장군.”
“……?”
“금룡상단 측 시신과 부상자들은 제대로 수습해 돌아가시오. 안문관을 통해 넘어온 자들이니 끝까지 귀하께서 책임을 져야 하지 않겠소?”
그 말에 양홍서가 이를 악문 채 원독 어린 눈빛을 흘렸다.
하나 지금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전부였다.
그렇게 가욕관 군사들의 삼엄한 감시 아래 양홍서가 수하들을 시켜 금룡상단의 무인들을 수습해 떠났다.
“저들을 이렇게 보내도 후환이 없겠나?”
초악량의 우려에 시주경이 웃으며 대답했다.
“뒷일은 제가 책임지고 처리할 테니 염려 마십시오.”
사실 원래부터 둘의 사이는 그리 돈독하지 않았다.
비록 같은 군문에 몸담고 있다 하나 배경이 다르고, 입지가 다르기 때문이었다.
황제의 허락이 떨어지고 가욕관과 안문관이 열리기 이전부터 그들은 서로를 견제하며 경쟁해 온 입장이었다.
그래도 여전히 초악량의 표정이 풀어지지 않자 시주경이 입을 열었다.
“병부는 출병(出兵)의 명을 내릴 수 있지만 통병(統兵)의 권한이 없고, 오군은 통병의 권한은 있지만 출병의 명을 내릴 수 없다는 말을 들어 보셨습니까?”
시주경이 설명을 이어 갔다.
“과거 태조께서는 과거에 설립했던 대도독부(大都督府)를 폐지하고, 오군도독부(五軍都督府)를 설치했습니다. 그러나 오군도독부가 모든 병권을 장악한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주로 군적(軍籍)과 훈련, 군정(軍政)만을 담당하지요. 반대로 군관의 임명과 승진, 군령 이동 등은 병부(兵部)가 책임지고 있습니다.”
이는 군권이 지나치게 어느 한 대신의 손에 집중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따라서 병부는 오군도독부의 사무에 관여할 권한이 없습니다. 이는 오군도독부 역시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건국 초기만 하더라도 명의 최고 군사 지휘관은 오군도독부의 최고 장관인 좌, 우 도독이라고 할 수 있었다.
건국 초기에는 황권은 당연히 무력에 지탱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좌, 우 도독의 직급은 정일품으로, 정이품인 병부상서보다 높았다.
“과거를 통해 선발된 인원들로 충당되는 병부와 달리 오군도독부의 인선은 대부분 공신과 숙장(宿將)이거나, 그들의 핏줄을 이은 자들이 대부분입니다.”
공신, 숙장은 대부분 전쟁의 경험이 많기에 군에 대한 이해가 높고 지휘관으로서의 역량도 뛰어났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관료들의 입김이 강해지며 지금은 대부분의 군을 병부가 장악한 상황이었다.
정일품의 좌, 우 도독이 자신들보다 낮은 품계인 병부상서를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이유였다.
그런 만큼 군권을 둘러싸고 오군도독부와 병부가 끊임없이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는 상황.
그가 도독을 보좌하는 종일품의 도독동지(都督同知)를 아비로 둔 양홍서를 압박할 수 있었던 것도 자신이 속한 병부를 믿고 있기 때문이었다.
“저 역시 이번 일에 대해 상세한 보고를 올릴 예정입니다. 그러니 너무 심려치 않으셔도 됩니다.”
따지고 보면 양홍서의 경망한 행동으로 인해 하마터면 능소밀이 그리고 황제가 허락한 큰 그림이 망가질 뻔했다.
누구에게 질책이 떨어질지는 불 보듯 뻔한 것이다.
어찌 되었든 덕분에 가욕관의 책임자로 있는 자신에게 명분이 실린 상황.
시주경의 입장에서는 거저 굴러온 복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더욱 단악선을 깍듯하게 대했다.
“고마워요. 우선 치료를 마친 부상자들부터 옮겨 주시고, 중환자 다섯 명은 이동을 견디지 못할 테니 여기서 치료를 계속 이어 갈게요. 이틀 후에 다시 수송할 인력을 보내 주세요.”
“그리하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시주경이 수하들을 향해 지시를 내렸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병사들의 모습을 뒤로한 채 초원의 전사들 몇 명이 단악선에게 다가섰다.
“감사합니다.”
처음엔 이유를 몰라 의아했지만 이내 그 이유를 깨닫곤 멋쩍게 웃었다.
그들은 자신들을 위해 대신 나서 분노해 준 단악선 일행에게 더없이 고마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뭘요. 당연한 일인걸요.”
그들이 건넨 뜨거운 눈빛.
그 안에 담겨 있는 진심은 차가운 북풍도 비껴갈 정도였다.
* * *
장곡이 다시 의식을 회복한 것은 닷새가 지나고 나서였다.
그동안 단악선은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그의 곁을 지키며 함께 밤잠을 설쳤다.
성수신단을 복용시켰음에도 안심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부상이 심각했고, 상태 역시 위중했다.
실제로도 장곡은 하루에도 몇 번씩 생사의 기로를 넘나들곤 했다.
“크윽.”
신음을 흘리며 눈을 뜬 장곡은 온몸에 맺혀 비명을 질러 대는 고통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러기를 잠시.
“……?”
무심코 손을 들어 올린 장곡의 눈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잘려 나갔던 손가락이 멀쩡히 제자리에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두꺼운 붕대에 칭칭 감겨 있었지만 손가락 하나하나 확실하게 감각이 느껴졌다.
“아직 움직이시면 안 돼요.”
목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린 장곡이 눈을 비비며 기지개를 켜던 단악선과 시선이 마주쳤다.
“제가…… 살아 있는 겁니까?”
단악선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접합한 손가락이 완전히 회복되려면 상당한 시일이 걸릴 테지만요. 거기다 재활하는 데에도 적잖은 시간이 필요할 거예요. 그러니 조바심 내지 마세요. 다소 시간이 걸릴지언정 반드시 회복시켜 드릴 테니까요.”
“곡주님…….”
장곡은 잠시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지금도 끊임없이 지독한 고통이 밀려들었지만 상관없었다.
아내와 곧 태어날 아이를 살아서 다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든지 감내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