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318)
신마의선-318화(318/500)
신마의선 (318)
마침 게르 안으로 들어서던 초악량이 의식을 회복한 장곡을 발견하곤 눈살을 찌푸렸다.
“울든지 웃든지 하나만 해라.”
“푸흐흐.”
뒤늦게 자신의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깨달은 장곡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다시 뵙는 초 선배님이 이렇게 반가울 줄은 몰랐습니다.”
“흥! 죽다 살아난 놈이 말은 청산유수로군.”
초악량의 핀잔에도 장곡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초악량의 눈빛만큼은 더없이 온화했기 때문이다.
그 안에 담긴 자신을 향한 걱정과 안도의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고맙다.”
불쑥 건넨 초악량의 말에 장곡의 눈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설마?
‘천하의 그 혈수존자가?’
“네 덕에 천추의 한을 남기지 않을 수 있었다. 너는 단 의원에게 은인이지만 우리에게도 은인이다. 애썼다. 내 잊지 않으마.”
“은인…….”
장곡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 말을 몇 번이고 되뇌었다.
“그럼 쉬세요.”
푸석한 얼굴로 일어서는 단악선을 장곡이 불러 세운 것도 그때였다.
“저……, 곡주님.”
단악선이 자신을 돌아보자 장곡이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부탁이요?”
“네.”
고개를 끄덕인 장곡이 고통스러운 와중에도 힘겹게 말을 이어 갔다.
장곡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난 단악선은 곤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왜 하필…….”
“제 일생일대의 소원입니다.”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몇 번이고 거듭 확인하는 단악선을 향해 장곡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부탁드립니다.”
“후우. 알았어요.”
한숨을 내쉰 단악선이 마지못해 장곡의 부탁을 수락했다.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하물며 죽다 살아난 사람의 소원이라면야 말할 것도 없었다.
장곡의 얼굴이 더없이 밝아졌다.
“흐흐, 감사합니다.”
옆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초악량이 짧게 혀를 찼다.
“쯧쯧. 어떻게 된 게 주변에 온전한 놈이 하나도 없누.”
범계위는 말할 것도 없었고, 이상하게 단악선 주변에는 하나같이 이상한 놈들만 모여드는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장곡은 그저 희희낙락할 뿐이었다.
준비를 마친 단악선이 장곡 옆에 앉았다.
그러곤 손에 든 침 끝에 먹물을 묻혀 장곡의 가슴 부근을 조심스럽게 찔러 갔다.
막 아물기 시작하는 상처 바로 아랫부분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한참을 집중해 장곡이 부탁한 문신을 모두 새겨 넣은 단악선이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 냈다.
“다 됐어요.”
“감사합니다. 제 평생의 자랑이 될 겁니다.”
장곡이 진심을 담아 고마워했다.
그 과정이 상당히 고통스러웠을 텐데도 실제로 장곡은 인상 한번 찌푸리지 않았다.
“혹시 거울 있습니까?”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장곡이 이내 쓴웃음을 머금었다.
전장에 그런 사치품이 있을 리 만무했기 때문이다.
초악량이 무언가를 불쑥 내민 것도 그때였다.
“이걸 써라.”
그건 한 자루 검이었다.
손을 쓰지 못하는 장곡을 위해 초악량이 그의 눈 위에 검을 기울여 주었다.
잘 닦인 검날로 거울을 대신한 것이다.
―가정(嘉靖) 칠 년, 이월 초닷새. 찰령(㳐零) 인근 구계(口啟)에서 장곡이 신마의선을 구명(救命)하다.
검날에 반사되어 비친 문구.
자신의 상처 아래 분명하게 새겨진 글귀를 확인한 장곡이 웃음을 터트렸다.
“크흐흐. 윽!”
고통에 잠시 인상을 찌푸렸지만 장곡은 다시 흡족한 눈빛을 흘리며 몇 번이고 가슴에 새겨진 문신을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그런 장곡을 향해 단악선이 입을 열었다.
“사흘 뒤에 가욕관에서 호송단을 보내올 거예요. 그때 그들과 함께 무위로 돌아가세요. 의가에는 미리 언질을 해 뒀으니 곧장 입원해 치료를 계속 이어 가시고요.”
“끝까지 지켜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장곡 아저씨가 아니었다면 저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거예요. 다시 한 번 감사드려요.”
장곡이 씨익 웃었다.
“덕분에 이처럼 곡주님께서 친히 새겨 주신 문신을 얻지 않았습니까? 이건 두고두고 가보로 삼겠습니다.”
그 말에 초악량이 코웃음을 쳤다.
“죽으면 관 속에 들어갈 육신을 어떻게 가보로 물려준단 말이냐?”
“그야 살가죽만 따로 떠서 표구해 놓으면 되지 않겠습니까?”
정신 나간 소리를 너무나 태연하게 지껄이는 장곡의 표정에 초악량이 아연실색했다.
이 정도면 추종자를 넘어, 광신도에 가까웠다.
“미친놈…….”
“크큭. 윽!”
장곡이 웃다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곤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래 봐야 어디 선배님들만 하겠습니까?”
“뭐라?”
초악량의 눈빛이 싸늘해지자 장곡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 아니요! 제 말뜻은 그게 아니라……!”
도중에 말을 건너뛰는 바람에 상황이 꼬였다.
듣기에 따라서는 충분히 오해할 수 있는 상황.
“곡주님을 위하는 마음 말입니다. 곡주님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아깝지 않다는 그런 의미였습니다! 큽!”
서둘러 변명을 이어 가던 장곡이 밀려드는 고통이 인상을 찌푸렸다.
지그시 장곡을 쏘아보던 초악량이 그제야 시선을 거두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 장곡이 단악선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럼 다시 뵐 때까지 부디 보중하십시오.”
단악선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저씨도요.”
사흘 후.
예정대로 가욕관에서 병사들과 수레가 도착했다.
그들을 통해 장곡을 포함한 중상자들을 실어 보낸 단악선은 능소밀이 보내온 전서를 통해 몇 가지 상황을 보고 받을 수 있었다.
우선 안문관의 책임자였던 양홍서는 도독부에서 파견한 감찰관에게 호된 질책을 받고 북경으로 불려 갔다고 했다.
일종의 파면 조치인 셈이다.
양홍서의 부친인 양조경은 오군도독부 내에서도 확고한 입지를 다지고 있었다.
자신의 위로는 좌우도독밖에 없는, 고위직 중의 고위직인 것이다.
그래서 평소 자식의 보좌와 교육을 겸해 자신의 보좌관인 도독첨사(都督僉事) 아래서 실무를 관장하는 경력사(經歷司)를 감찰관 명목으로 안문관에 파견해 두었다.
한데 아들이 사고를 쳤으니 위기를 직감한 그가 곧장 아들을 불러들인 것이다.
이후 안문관 쪽에서는 별다른 동향이 없다고 했다.
다만 황실 내부에서는 군권을 둘러싼 오호도독부와 병부의 갈등이 극에 달하고 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능소밀은 원래 제삼자로서 그 권력 다툼을 관전하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쪽에서 있었던 일이 알려지며 생각을 달리한 듯싶었다.
원래부터 사이가 안 좋은 오군도독부와 병부였지만 그들의 갈등을 이처럼 부추긴 원인은 따지고 보면 단악선의 초원행 때문이었다.
“언제든 그 이전투구에 뛰어들 준비를 마쳤다고?”
서신 말미에 적힌 능소밀의 전언을 확인한 초악량이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었다.
“하여튼 이놈도 제정신은 아니야.”
그러다 문득 얼굴에 와닿는 시선을 느꼈다.
고개를 돌리자 빤히 자신을 응시하는 한설화와 눈이 마주쳤다.
더없이 한심하다는 듯 자신을 바라보는 한설화의 눈빛에 초악량은 잠시 의아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그 의미를 깨닫고 정색했다.
“뭐냐? 그 눈빛은.”
한설화가 실소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동안 범계위에 가려져 티가 덜 났을 뿐이지, 이상한 걸로 따지면 초악량도 남 말할 처지는 못 되었다.
발끈한 초악량이 한마디 쏘아붙이려던 찰나.
문득 이상한 분위기를 느끼고 단악선 쪽을 바라봤다.
환자들이 없어 한적해진 게르.
그 안에 우두커니 선 채로 무언가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단악선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한데 그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무슨 문제라도 있느냐?”
초악량의 물음에 단악선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러곤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아무것도.”
초악량과 한설화가 시선을 마주했다.
말은 저리해도 무언가 고민이 있다는 것을 그간의 경험을 통해 직감한 것이다.
“저 좀 쉬어도 될까요? 며칠 잠을 설쳤더니 피곤해서요.”
“그래. 그러려무나.”
초악량이 한설화를 향해 눈짓했다.
그렇게 두 사람이 게르 밖으로 사라지자 홀로 남은 단악선이 나직이 한숨을 흘렸다.
환자들을 모두 후방으로 이송하고 여유가 생겼기 때문일까.
―그나마 넌 의원으로 죽겠구나. 그래도 그건 네 부모보다 낫군.
갑자기 암존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미 부모님의 죽음은 받아들인 지 오래였다.
하나 반복해 접하는 부모님의 죽음은 그때마다 매번 가슴을 아프게 만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게 무슨 뜻일까?’
암존의 말을 달리 해석하면 두 분은 의원으로서 죽지 못했다는 의미가 된다.
그 말이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
한데 지금 당장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다 문득 벼락처럼 머릿속을 스치는 한 가지 생각이 있었다.
“설마……?”
심각한 얼굴로 허공을 응시하길 잠시.
단악선이 이내 고개를 저었다.
피곤하다 보니 별생각이 다 떠오른다 싶었던 것이다.
일말의 가능성을 무시할 순 없었지만 섣불리 단정 짓는 건 아직 일렀다.
특히나 지금처럼 피곤에 절어 머릿속이 뒤죽박죽인 상태에서는 더욱 그랬다.
단악선이 게르 한쪽에 깔려 있는 담요에 몸을 뉘었다.
일단은 눈을 붙이고 나서 다시 생각해 볼 요량이었다.
그렇게 일각쯤 지났을까.
단악선이 다시 몸을 일으켜 마른세수를 했다.
막상 눕고 나니 몸은 나른했지만 반대로 의식은 더욱 뚜렷해졌다.
결국 단악선은 자리에서 일어나 게르 밖으로 나섰다.
당장 뭐라도 하지 않으면 계속 그 상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을 것 같았다.
“왜 벌써 나왔느냐?”
의아해하는 초악량의 물음에 단악선이 애써 밝게 웃었다.
“충분히 쉬었어요.”
한설화가 무언가를 말하려 했으나 초악량이 눈짓으로 제지했다.
그라 해서 단악선이 속내를 털어놓지 않는 게 걱정되지 않는 건 아니었지만 그러는 데에는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으리라 믿었다.
이때 바얀의 부족 전사 한 명이 일행을 향해 다가섰다.
“바얀께서 찾으십니다.”
고개를 끄덕인 세 사람은 곧장 바얀이 머물고 있는 게르로 향했다.
안에 들어서자 바얀을 위시한 각 부족의 책임자들이 한 장의 지도를 사이에 둔 채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향후 계획을 논하기 위해서였다.
“혈운사를 지원하던 마교의 고수가 죽었으니 지금쯤 놈들도 내부적으로 혼란스러울 것입니다. 지금이 놈들을 칠 절호의 기회라 생각됩니다.”
바얀의 의견에 다른 부족의 책임자들도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적이 흔들리고 있을 때 진화타겁(趁火打劫)의 기세로 몰아친다면 충분한 승산이 있다 판단한 것이다.
게다가 기병의 숫자도 이쪽이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그러나 단악선은 고개를 저었다.
일반적인 상황이었다면 그의 의견에 동의했겠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라 판단한 것이다.
“당분간은 혈운사의 동향을 살피는 데 주력해 주세요. 그리고 혹시 그들 중에 이쪽으로 회유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까요?”
“이유가 있습니까?”
“네. 두 가지 이유가 있어요.”
바얀의 반문에 고개를 끄덕인 단악선이 설명을 이어 갔다.
“우선은 그들을 더욱 흔들어 놓을 필요가 있어요. 마교의 핵심 고수인 암존이 죽었으니, 한동안은 저들도 피해를 보고하고 수습할 대책을 고심할 게 분명해요. 마교와 혈운사의 결속력 역시 크게 약해질 테고요.”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던 바얀이 고개를 끄덕였다.
“혼전계(混戰計) 중 스무 번째 계책인 혼수모어(混水摸魚)의 책략이군요.”
부족을 이끄는 우두머리이기 이전에 그 역시 초원의 전사.
삼십육계의 기본 병법은 숙지한 지 오래였다.
흐린 물에서 고기를 잡는다는 의미대로, 혼수모어는 적의 내부가 혼란한 틈을 타 상대 일부를 자신 편에 끌어들여 혼란을 더욱 부추기는 계책이었다.
실제로 혈운사의 수장인 보르테가 흩어졌던 혈운사를 다시 규합한 것은 그 배후에 마교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갑작스런 암존의 공백은 혈운사 내부에 동요를 불러올 터.
이를 이용해 저들을 더욱 반목시킨다면 그 효과는 극대화될 것이 분명했다.
알아서 자멸해 준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적어도 전력의 약화를 꾀할 수만 있어도 성공적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가 더 중요해요.”
이어진 단악선의 말에 바얀의 눈빛이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