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319)
신마의선-319화(319/500)
신마의선 (319)
“마교가 함정을 준비할 수도 있어요. 혈운사가 무너지면 북방에는 더 이상 그들에게 동조해 줄 세력이 없거든요. 반대로 신마상단은 더욱 북방에 영향력을 넓히게 될 테고요. 마교 입장에서는 결코 달갑게 여기지 않을 상황이 되는 거죠. 그런 만큼 분명 급습에 대해 방비를 해 두고 있을 거예요.”
“으음…….”
“무엇보다 지금은 아군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게 중요해요. 비록 한뜻으로 뭉쳤다곤 하나 뜻하지 않은 피해가 누적되면 언제 반목해도 이상하지 않은 것이 지금의 연합 체제니까요. 조금 돌아가더라도 신중하게 움직여 확실한 결과를 얻어 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바얀이 고개를 끄덕여 수긍했다.
하마터면 이를 간과할 뻔했다.
‘확실히…….’
단악선의 말대로였다.
비록 지금은 같은 적을 두고 있어 하나로 뭉쳤지만 한 부족에서 일방적으로 사상자가 많이 발생하면 언제든지 상황이 바뀔 수 있었다.
초원을 지배하는 강자존의 율법에 따라 세력이 강한 부족이 상대적으로 약해진 부족을 강제로 복속시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두 가지 경우를 모두 감안했을 때 지금은 기다리는 게 현명해요.”
단악선의 심계에 바얀은 내심 감탄했다.
만약 두 가지 예상 모두가 빗나간다고 하더라도 시간은 어차피 이쪽 편이었다.
혈운사는 기껏해야 전력을 온전히 보전하는 것이 최선일 터.
반면 이쪽은 전력이 늘어나는 속도가 더욱 탄력을 받고 있었다.
놈들을 상대로 승전을 계속 거두면서 합류하는 부족이 늘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 혈운사 내부에서 회유가 가능한 인물은 제가 알아보겠습니다.”
“적당한 사람이 있나요?”
단악선의 반문에 바얀이 의미심장한 웃음을 머금었다.
“배신은 처음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째는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아!”
단악선은 바얀이 언급한 사람이 누구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빌게라고 했었나?’
바얀과 의형제를 맺었던 사내.
원래는 대족장인 한의 손자였지만 조부를 배신하고 혈운사에 붙었다고 했다.
이익을 위해 핏줄을 배신한 만큼 혈운사가 흔들리는 지금 상황이라면 자신의 선택에 갈등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럼 부탁드려요. 그때까지는 힘을 모으는 데 집중해 주세요. 혈운사가 발이 묶인 지금이 절호의 기회니까요.”
“알겠습니다.”
단악선 말에 바얀을 비롯한 다른 부족들의 책임자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여 수긍했다.
* * *
짙은 어둠이 내려앉은 축시 말엽.
혈운사의 본단이 위치해 있는 야영지 중 유일하게 불을 밝히고 있는 게르 안의 분위기는 매우 심각했다.
“사실인가?”
“그렇다.”
“암존께서…… 돌아가셨다고?”
“…….”
“그 천하의 육마존이…… 대체 어떻게……?”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몇 번이나 되뇌는 보르테의 모습에 갈염의가 눈살을 찌푸렸다.
혈운사의 총령 정도나 되는 자가 반쯤 넋이 나가 중얼거리는 한심한 작태라니.
‘하찮은 꼭두각시 같으니.’
뒤늦게 지시를 받고 부랴부랴 흑야벌(黑夜閥)의 살수들을 대거 이끌고 이곳에 도착한 갈염의는 내심 기가 찼다.
이런 놈을 혈운사의 우두머리에 앉혀 놓은 신교의 저의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그러나 일단은 주어진 일이 먼저였다.
“교에서 하달한 명령서다.”
갈염의가 건넨 서신을 받아 든 보르테가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교에서 지급한 물품이었다.
손가락만 한 크기의 보관함에 서신을 말아 넣고 뚜껑 부분을 비틀어 돌렸다.
보관함을 열어 다시 서신을 꺼내자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붉은 글씨가 선명하게 나타났다.
―흑야벌에 협력해 신마의선을 제거하라.
침음하던 보르테가 불쑥 건넨 갈염의의 말에 와락 얼굴을 구겼다.
“이제부터 내 명령을 따라라.”
“웃기는군. 감히 이곳 초원에서 군림하는 내게 육마존도 아닌 네가 무슨 권한으로?”
엄밀히 따지자면 혈운사와 흑야벌은 협력 관계.
신교 아래로 그들의 지위는 동일했다.
보르테가 손을 뻗어 자신의 창을 움켜쥐었다.
그와 동시에 어둠 속에서 속속 걸어 나오는 인영들이 있었다.
유령처럼 밤의 장막에 은신해 있던 살수들.
그 숫자는 서른 명에 달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과거 살막(殺幕)의 살수들을 상징하던 독문병기인 날카로운 협봉검을 거머쥐고 있었다.
포위하듯 자신을 에워싼 살수들을 마주하고도 보르테는 물러서지 않았다.
“어디서 개수작을.”
오히려 흉성이 발작한 듯 두 눈에서 살광을 줄기줄기 흘리며 나직이 으르렁댔다.
“착각하지 마라. 내가 두려워한 사람은 암존이지 너 따위가 아니다.”
살기를 뿜어내는 보르테의 모습에 갈염의가 쓴웃음을 머금었다.
궁지에 몰리면 쥐도 고양이를 문다 했던가.
눈앞의 겁쟁이가 딱 그랬다.
아닌 말로 말 한마디면 놈의 목을 따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말을 타고 집단을 이루었을 때나 무섭지, 개개인을 놓고 보면 무공이 그리 대단한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염의는 끝내 보르테를 죽일 수 없었다.
위에서 내려온 명령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건 그 역시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치솟는 살의를 한숨으로 덮은 갈염의가 입을 열었다.
“신교에서 우리에게 지시한 것은 단 한 가지. 바로 신마의선을 죽이는 것이다.”
“그게 말만큼 쉬운 일이었다면 암존께서 그리되진 않았을 테지.”
끝까지 투덜대며 딴죽을 거는 상대의 모습에 갈염의의 눈에서 차가운 불꽃이 튀었다.
말없이 보르테를 응시하길 잠시.
갈염의가 입을 열었다.
“내 도움 없이 그 자리를 지킬 수 있을 것 같은가?”
“뭐라?”
“애초에 네 능력으로 오를 수 없는 자리였다. 네 뒤를 암존께서 봐주셨기에 가능한 일이었지.”
“너…….”
“하나만 묻지. 그때와 지금이 뭐가 다르지?”
그 말에 보르테가 입을 다물었다.
암존의 죽음이 알려진 이상 자신에게 불만을 품고 있던 자들이 언제 들고 일어설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갈염의가 피식 웃었다.
“당장은 혈운사 내부 단속에 집중하도록. 그리고 놈을 죽일 기회가 주어지면 우리에게 협력하라. 그게 네가 할 일이다. 그때까지는 네가 그 자리를 지킬 수 있도록 협조하지.”
“마음만 먹으면 누구라도 쉽게 죽일 수 있을 것처럼 말하는군?”
자존심이 상했던지 보르테의 목소리에는 불만이 가득했다.
날 선 그의 눈빛을 마주한 갈염의가 피식 웃었다.
“우리가 누구라고 생각하지?”
그 말과 함께 갈염의의 신형이 흐릿해지더니 어둠 속에 녹아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흩어지는 안개처럼 눈앞에서 사라져 버렸다.
주위를 에워싸고 있던 서른 명의 살수들 역시 마찬가지.
그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진 저들의 귀신같은 은신술에 보르테는 가슴이 서늘해졌다.
무림 역사상 전무후무한 전설적인 살수 집단인 살막(殺幕).
그 후예를 자처하는 저들의 암연환허(黯然換虛)의 수법은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들었다.
‘제기랄!’
홀로 남은 보르테가 으스러져라 이를 악물었다.
암존의 부재.
그렇게 두렵기만 하던 그의 존재가 이처럼 절실해질 줄이야.
어디서 날아들지 모를 살수들의 칼도 두려웠지만, 언제 갑자기 반란을 일으킬지 모를 수하들은 더욱 신경 쓰였다.
‘쓸모를 증명해야 해.’
보르테는 초조함을 느꼈다.
필요 없다 판단되면 사람 하나 갈아 치우는 건 마교에게 있어 일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 * *
유난히 청명한 어느 날.
게르를 나선 단악선이 걸음을 옮겨 야트막한 언덕 위로 올라섰다.
겨울의 초원은 딱히 볼만한 게 없었다.
드넓게 펼쳐진 대지와 끝없이 잇닿아 있는 하늘.
거기에 가끔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만이 전부였다.
어찌 보면 삭막하게만 느껴지는 풍광이었지만 그래도 단악선은 이곳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바람이 멈추고 나면 찾아드는 정적과 탁 트인 시야를 벗 삼아 더없이 호젓한 기분을 만끽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고개를 돌려 멀리 게르가 운집해 있는 곳을 바라본 단악선이 빙그레 미소를 머금었다.
분주히 움직이며 무언가를 준비하는 초원의 전사들.
이제는 꽤 사이가 돈독해진 무위의 사파인들도 그들과 한데 어울리고 있었다.
서로 마주 선 사내들이 엎치락뒤치락하며 힘을 겨루기 시작했다.
저들의 언어로 ‘부흐’라고 하는, 일종의 전통 씨름이었다.
초원 부족들의 몇 안 되는 여흥거리 중 하나이기도 했다.
처음에는 사파 무림인들이 압도적으로 우세를 점했다.
하지만 초원의 전사들이 무언가 항의를 했고, 다시 시합이 재개되자 상황은 달라졌다.
나름 고수라 자부하던 무위의 사파인들이 몇 수 버티지 못하고 나가떨어졌던 것이다.
내공을 사용하지 않고 공평한 조건으로 겨루기로 한 듯싶었다.
그리고 결국 경험과 관록을 앞세운 초원의 전사들이 승리했다.
잠시 후.
초원의 전사들이 말들을 가져오자 무위의 사파인들이 불만스러운 얼굴로 말 위에 올랐다.
아무래도 내기가 오갔던 모양이다.
초원의 전사들은 그야말로 혹독하게 무위의 사파인들을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한눈에 봐도 기마술을 전수해 주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처음에는 소 닭 보듯 서로와 거리를 두고 있던 그들이 지금은 더없이 끈끈한 동지애로 얽혀 있었다.
민족과 문화를 떠나 이제 저들은 생사고락을 함께한 전우고, 형제였기 때문이다.
그들에게서 시선을 거둔 단악선이 언덕 위에 발을 뻗고 누웠다.
그러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모처럼 한가한 시간을 보내던 단악선은 익숙한 인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지척에 다가선 초악량이 부드러운 눈빛을 건네 왔다.
“이제 말해 주겠느냐?”
“네?”
의아해하는 단악선을 향해 초악량과 함께 걸어온 한설화가 질문을 던졌다.
“이번 원정단을 소수 정예로 꾸린 이유 말이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무위의 무림인들을 대거 동원하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었다.
제아무리 초원의 싸움에 특화된 자들이라 해도 압도적인 전력 차이 앞에서는 의미가 무색해지는 법.
더구나 단악선을 따라오고 싶어 하는 고수들도 많았다.
단악선이 웃으며 대답했다.
“만에 하나 있을지 모르는 위험을 대비해 두고 싶었어요.”
“위험?”
초악량의 반문에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전에 말했다시피 혈운사가 사라지는 걸 마교가 그냥 보고만 있지 않으리라 판단했거든요. 게다가 우리에게 범 아저씨도 없는 상황이니 마교가 전력을 쏟아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초악량이 코웃음 쳤다.
“녀석이 없다 해도 우리 쪽 전력의 공백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녀석이니 골치만 아팠을 게다.”
“어쨌든 마교에서 극단적인 방법도 감안할 거라 생각했어요. 제가 마교 입장이었다면 큰 희생을 치르더라도 두 분만큼은 반드시 제거하고 싶었을 테니까요.”
“우리를?”
“사실상 두 분이 이번 토벌단의 구심점인 셈이니까요.”
초악량과 한설화가 내심 어이없다는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이번 토벌단의 구심점은 누가 뭐라 해도 단악선이었다.
그런데 정작 본인만 이를 모르고 있다니.
그런 두 사람의 속내도 모른 채 단악선이 말을 이어 갔다.
“만에 하나 최악의 상황과 맞닥뜨리더라도 소수 정예의 인원이라면 피해를 최소화해서 후퇴하는 게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상황은 예상과 크게 엇나갔다.
예상보다 마교의 대응이 소극적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요. 어째서 저들은 총력전을 펼치지 않는 걸까요?”
최악의 경우, 육마존 중 남아 있는 전원이 투입될 가능성도 아주 배제할 수 없었다.
“혹시 짚이는 바가 있느냐?”
“지금으로서는 한 가지 이유밖에 떠오르지 않아요.”
잠시 고민하던 단악선이 기련산이 위치한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나서지 않는 게 아니라 나설 수 없는 사정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생각한 이유가 있느냐?”
초악량의 물음에 단악선은 잠시 멈칫했다.
그러기를 잠시.
“어쩌면…….”
말끝을 흐리던 단악선이 고민 끝에 말을 이어 갔다.
“마교는 천마를 치료하기 위해 부모님을 납치했어요. 그런데 포달랍궁에서는 천마가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했고요. 게다가 암존이 남긴 말도 마음에 걸려요.”
부모님이 의원으로서 죽지 못했다는 이야기.
그 정보들을 바탕으로 단악선은 한 가지 가설을 세울 수 있었다.
잠시 후.
이어진 단악선의 말에 초악량과 한설화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혹시 부모님께서 천마를 죽인 것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