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32)
신마의선-32화(32/500)
신마의선 (32)
다른 곳도 아닌 화산파의 영역인 서안에서 그를 다시 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잠시 후.
다수의 무림맹 무인들이 사무심이 사라진 방향으로 달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한눈에 봐도 사무심을 쫓는 모양새였다.
이때 매화검수 한 명이 조용히 객잔 밖으로 나갔다 돌아왔다.
“무슨 일이더냐?”
진현진인의 물음에 매화검수가 공손한 자세로 대답했다.
“무림맹의 무인들입니다. 악인 한 명이 저들의 감시망에 포착된 듯합니다.”
“악인?”
“수전귀야라 불리는 사무심이라 합니다.”
진현진인이 마뜩잖은 눈빛으로 짧게 혀를 찼다.
“쯧. 그래서 저 난리인가?”
명검이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자 진현진인이 고개를 저었다.
“나서지 마라. 네가 낄 자리가 아니다.”
“하오나 사숙조님…….”
“저들이 해야 할 일이다. 지금 넌 본 파의 이름을 걸고 귀한 손님을 모시는 중이고.”
준엄한 꾸짖음에 명검이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제자가 성급했습니다.”
“무엇보다 세상에 영원한 적도, 아군도 없는 법이다. 지금은 뜻을 함께하고 있지만, 무림맹과 화산을 하나라 여지기는 말아라.”
“알겠습니다.”
명검이 대답과 함께 자리에 앉는데 옆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할아버지는 무림맹이 마음에 들지 않으신가 봐요?”
“할아버지?”
진현진인이 일순 당황했다.
하지만 그 질문을 던진 사람이 단악선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사람 좋은 웃음을 머금었다.
“모든 이들의 뜻이 같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단악선을 대하는 풍진성의 태도가 정중했기에 진현진인도 예의를 갖춰 언행에 신경을 썼다.
“어떤 부분이 다른가요?”
진현진인이 대답을 생각하는 사이 명검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사백, 듣는 귀가 많습니다.”
“우리가 언제 주변의 눈치를 살폈더냐.”
“하지만 편할 대로 말을 가져다 붙이는 아전인수(我田引水)의 무리는 경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괜찮다. 옳음을 옳다 하는 것인데.”
코웃음 친 진현진인이 들으라는 듯이 입을 열었다.
“현 무림맹의 행보는 그 과함이 지나쳐 오만해진 지 오래다. 무림의 평화를 위한다는 초심은 대체 어디로 간 건지.”
“사백…….”
“노적성해(露積成海)라 했다. 이슬이 모여 바다를 이루듯, 쌓고 있는 업보가 감당할 수 없이 커지는 걸 어찌 모른단 말이냐.”
이쯤 되니 명검도 포기한 듯 쓰게 웃을 뿐이었다.
자칫 이 이야기가 새어 나가면 무림맹과 화산 사이에 적잖은 갈등이 야기될 것이 분명했다.
“산속에 처박혀 있어 세상 돌아가는 데 무지한 줄 알았더니 그래도 생각은 제대로 박혀 있군.”
“명색이 화산의 일대 제자인데, 저 정도 식견은 마땅히 갖춰야지.”
악일과 악공 두 사람은 호의적인 듯싶어 명검도 마음을 조금 놓을 수 있었다.
갑자기 진현진인이 단악선을 향해 물었다.
“단 의원 생각은 어떠신지?”
“아직 어려서 잘 모르겠지만…….”
단악선이 웃으며 덧붙였다.
“아픈 사람에 정사의 구분은 없다고 배웠어요.”
진현진인이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원론적인 답변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구분이 없다 함은 무슨 뜻일까요?”
진현진인의 물음에 명검이 쓴웃음을 머금었다.
산문 안에서도 매번 이런 식의 선문답으로 제자들을 괴롭히던 진현진인이었기 때문이다.
되묻는 질문에 계속 답을 하다 보면 결국엔 할 말이 궁해지는 법.
그제야 짧은 정문일침으로 스스로의 부족함을 깨우치게 만드는 방법이었다.
“사숙조님…….”
넌지시 자신을 부르는 명검의 목소리에 뒤늦게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진현진인이 소탈하게 웃었다.
“하하, 이거 실례했습니다. 곤란하다면 굳이 대답하지 않아도 됩니다. 집안에서 새는 쪽박 나가서도 샌다더니, 몸에 밴 습관이란 게 이리 무섭습니다.”
“괜찮아요. 먼저 질문한 사람은 저였는걸요.”
단악선은 의외로 선선히 대답했다.
“바다는 강물을 가리지 않고 받아들인다는 의미예요.”
“호오?”
단악선의 대답에 진현진인이 흥미를 보였다.
“우리 어린 의원님께서는 바다를 꿈꾸고 계시는구려.”
명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진현진인이 물었다.
“하면 내 하나만 여쭈어보리다. 바다는 어찌하여 그 모든 것을 품어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인지 생각해 보신 적이 있소?”
단악선이 순진한 눈빛으로 대답했다.
“그야 가장 낮은 곳에 있으니까요.”
진현진인이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쳤다.
“옳거니! 실로 우문현답이로다! 우문현답이야!”
명검이 놀란 눈으로 단악선을 보았다.
자신의 사숙조가 이처럼 흔쾌히 상대를 인정하는 것은 그만큼 매우 드문 일이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부러움과 부끄러움이 밀려들었다.
그와 같은 질문에 이처럼 빨리, 그리고 만족스러운 대답을 하지 못했으리란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까닭이다.
새삼 단악선이 달리 보였다.
때 묻지 않은 아이다운 답변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더욱 놀라운 건 그런 단악선의 모습을 일행은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만큼 평소에도 이와 같은 상황에 익숙하다는 의미였다.
반면 단악선은 어리둥절했다.
의원으로서 늘 생각하고 있던 바를 이야기했을 뿐인데, 진현진인이 이처럼 추켜세울지 몰랐던 것이다.
그때 범계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뒷간에 좀 다녀오마.”
“또요?”
범계위가 어색하게 웃었다.
“급하게 먹었나 봐. 속이 좀 불편하네.”
단악선이 의아한 눈으로 범계위 앞에 놓인 음식을 바라봤다.
손대지도 않아 처음 나올 때 그대로인 상태였다.
이를 깨달은 범계위가 허겁지겁 음식을 입으로 가져갔다. 몇 번 씹지도 않고 위장에 욱여넣다시피 삼킨 범계위가 황급히 자리를 떴다.
“똥이 식기 전에 돌아오마.”
그 순간 초악량도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세요?”
“저놈 변비가 심해서 말동무를 해 줘야 해. 그래야 빨리 싸니까.”
경멸 가득한 한설화의 시선을 뒤로한 채 초악량이 범계위를 따라나섰다.
* * *
사무심은 갑작스레 펼쳐진 상황에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삼십 명에 달하던 무림맹의 추적조가 눈 깜짝할 사이에 차가운 주검으로 변해 흥건한 핏물 속에 누워 있었다.
시산혈해(屍山血海)!
마치 한 폭의 지옥도를 펼쳐 놓은 것만 같았다.
그 지옥도 한가운데서 자신을 향해 손짓하는 사람이 있었다.
범계위였다.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사무심이 다가오자 범계위가 한껏 눈을 부라렸다.
“너 왜 아직도 여기서 어슬렁거려?”
“그, 그게…….”
“이걸 그냥 확!”
범계위가 피 묻은 주먹을 치켜들자 사무심이 경기를 일으키듯 부르르 몸을 떨었다. 저 손에 걸리는 족족 맥없이 죽어 나가던 무림맹 인간들의 모습이 아직도 선명했기 때문이다.
이때 유심히 사무심을 바라보던 초악량이 입을 열었다.
“이유가 뭐냐?”
“…….”
“두 번이나 구해 줬으면 들을 자격은 되지 않나?”
대답을 주저하는 사무심을 향해 초악량이 물었다.
“내가 우스운 게로군.”
“아닙니다!”
화들짝 놀란 사무심이 두 번 생각하지 않고 속내를 털어놨다.
“무림맹에서 찾아야 할 물건이 있습니다.”
“물건?”
사무심이 손바닥을 붙여 그 사이를 약간 띄웠다.
“요만한 크기의 목함입니다. 그자들이 제 은신처를 습격해서 탈취해 갔는데, 어디에 보관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어서…….”
“그 목함이 뭔데? 보물이라도 들어 있는 것이냐?”
“보물은 아니지만……. 제겐 그보다 귀한 것입니다.”
“목숨을 걸 만큼?”
“그렇습니다.”
범계위가 고개를 갸웃했다.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며?”
초악량이 고개를 끄덕이며 사무심에게 말했다.
“포기해라. 목숨보다 가치 있는 것은 없다.”
“다음에 또 눈에 띄면 무림맹이 아닌, 내 손에 죽을 거야. 알았어?”
범계위의 으름장에 사무심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명심하겠습니다.”
확답을 받아 내고 돌아서려던 초악량이 지나가는 말로 물었다.
“거두었던 그 아이들은?”
“안전합니다.”
사무심의 대답에 초악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아이들을 위하는 마음 절반만큼만이라도 스스로를 챙겨라.”
“오지랖 넓은 놈치고 명 긴 놈들 못 봤어.”
범계위도 한마디 거들었다.
* * *
오랜 풍찬노숙에 지친 일행은 여독도 풀 겸 객잔에서 묵어가기로 했다. 그동안의 여행이 꽤 고됐던지 단악선은 침상에 눕자마자 금세 잠이 들었다.
그리고 남은 사람들은 대화를 이어 가기 여념이 없었다.
“쌤통이다. 무림맹도 어지간히 콩가루고만.”
범계위의 말에 풍진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 더욱 갈등이 심각해진 것 같습니다. 그 내홍을 다스리기 위해 계속해서 외부로 시선을 돌리는 것이겠지요.”
초악량이 그 말을 받았다.
“무림맹이 존재할 명분을 위해 없는 적조차 만들 기세군.”
“아까 그 화산 말코도 어지간히 무림맹을 싫어하는 눈치 아니었수?”
“그게 어디 그자뿐일까? 들여다보면 한둘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짐작일 뿐이었다.
외부인인 그들에게 무림맹 내부 상황을 들여다볼 방법이 전무했던 것이다.
그러다 문득 초악량은 한 사람을 떠올렸다.
“그래, 그놈이 있었군.”
정사 중간의 정보 단체인 신소방.
그 신소방을 이끌고 있는 능소밀을 떠올린 초악량이 희미하게 웃었다.
“조만간 놈을 한 번 더 만나야겠어.”
“그게 누구요?”
“있다, 그런 녀석이. 호랑이를 꿈꾸지만 간이 작아 여우밖에 못 되는 녀석.”
딱히 궁금하지 않았던 듯 범계위가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저 꼬맹이들은 어쩌지? 이대로 계속 혹을 달고 다닐 수는 없는 일 아니우.”
진현진인은 돌아갔지만 명검을 비롯한 매화검수 네 명이 호위를 이유로 같은 객잔에 머물고 있었다.
초악량도 이에 대해서는 딱히 묘책이 없었다.
풍진성이 받아들인 이상 이제 와 돌려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범계위가 머리를 긁적이며 투덜댔다.
“가발도 벗을 수가 없잖아. 땀 차서 얼마나 가려운데. 신경 쓰여서 무공 연구도 못 하고.”
짜증을 내던 범계위가 스윽 일어났다.
“그냥 내가 처리해야겠수.”
“어떻게?”
범계위가 씨익 웃더니 엄지손가락으로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초악량이 눈살을 찌푸렸다.
“네가 아주 단 의원을 사지로 모는구나. 화산파 앞마당에서 화산파 제자를 죽이겠다고? 그것도 장문인의 적통을 이은 적전제자(嫡傳弟子)를? 모르긴 몰라도 정마대전 이후로 가장 많은 화산문하를 보게 될 게다.”
“아, 그럼 어쩌란 말이오!”
말없이 입을 다물고 있던 한설화가 조용히 일어선 것도 그때였다.
“어디 가?”
초악량의 물음에 한설화가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해결하러.”
“뭐?”
황당해하는 초악량을 뒤로한 채 한설화가 계단으로 사라졌다.
“괜찮겠습니까?”
풍진성의 우려에 초악량이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사고나 치지 않길 바라는 수밖에.”
그 순간 범계위가 벌떡 일어섰다.
“좋아!”
범계위가 의미심장한 웃음을 머금었다.
“마녀가 없는 지금이 기회야!”
“기회? 무슨 기회?”
“유흥가 탐방!”
초악량이 눈살을 찌푸렸다.
“넌 머릿속에 든 게 그런 것뿐이냐?”
“그럼. 나는 늘 단 의원 생각뿐이지.”
“거기서 단 의원이 왜 나와?”
언젠가 범계위가 했던 말을 떠올린 초악량이 표정이 그대로 굳어졌다.
“너……. 설마?”
혹시나 싶었는데 역시나였다. 범계위가 갑자기 방을 나서더니 단악선의 침소로 들어갔다.
“단 의원, 일어나 봐. 우리 갈 곳이 있어.”
“으음……. 어디요?”
“진짜 남자로 새롭게 태어나는 곳.”
잠이 덜 깨 눈을 비비는 단악선을 안은 범계위가 창문 밖으로 신형을 날려 사라졌다.
초악량이 미처 말리기도 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난데없는 그의 돌발 행동에 풍진성은 그저 황당할 뿐이었다.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그에게 초악량이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걱정 말게. 내가 데리고 오지.”
한숨만 푹푹 내쉬는 풍진성을 뒤로한 채 초악량 역시 창문 밖으로 신형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