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320)
신마의선-320화(320/500)
신마의선 (320)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해남도의 선착장은 부산했다.
범계위와 벽화령.
두 사람의 결혼식을 기점으로 육지와 해남도를 오가는 선박들이 어마어마하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특히나 신마상단은 최근 해남도에 해상 운송의 기반인 거점 기지까지 마련했다.
이로 인해 해남도는 전례 없는 호황을 맞고 있었다.
신마상단의 깃발을 앞세운 선박 한 척이 항구로 들어선 것도 그때였다.
“어서 오시오!”
배를 대기 무섭게 해남검파의 무인들이 배에 올라 환한 웃음과 함께 인사를 건넸다.
신마상단과 교류가 잦아지면서 꽤나 사이가 돈독해진 것이다.
선박의 책임자인 행수가 반갑게 그들을 맞이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깜짝 놀라 해남검파의 무인들을 바라봤다.
“안색들이 왜 그러십니까?”
해남검파의 무인들이 머쓱하게 웃으며 서로의 얼굴을 살폈다.
하나같이 퀭한 눈에, 눈 밑은 검게 죽어 가는 모습이 언제 쓰러져도 이상해 보이지 않을 만큼 초췌해 보였다.
해남검파 무인 중 한 명이 한숨을 내쉬었다.
“특별훈련이 시작돼서 그렇다네.”
“네? 그건 일부만 참여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원래는 그랬었는데……. 어제부터 전원 참석으로 바뀌었네.”
고소를 머금은 그가 해남도 본파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저 소리 들리나?”
“소리요?”
그러고 보니 산정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희미하게 곡소리가 들려오는 것도 같았다.
“그나마 우리는 근무조로 편성되어 숨이라도 돌리고 있지만…….”
다른 해남검파 무인이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저쪽은 그야말로 지옥일세. 인세의 아비규환이 따로 없지.”
예상치 못한 말에 당황하길 잠시.
“저런…….”
안타까움에 혀를 차던 행수가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내밀었다.
“이것 좀 드셔 보십시오. 저희가 지니고 다니는 피로 회복제인데, 효과가 아주 뛰어납니다.”
“어이쿠, 이 사람. 누구 경을 치게 하려고? 아서게.”
혹시 모를 사달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해남검파의 문주인 벽대경은 그 어떤 선물이나 뇌물도 받지 말라고 엄중한 지시를 내려 둔 상태였다.
“에이, 그러지 마시고 모른 척 챙겨 두십시오. 이번에 저희 상단에서 판매하기 시작한 청심단입니다. 멀미나 피로 회복에 아주 탁월한 효험을 지니고 있지요.”
“아닐세. 고맙지만 그 성의만 받겠네.”
한사코 거절하는 해남파 무인들의 고집에 행수가 슬쩍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럼 이렇게 하면 어떻겠습니까?”
“……?”
“닷 문을 주고 구입한 것인데 여섯 문만 받고 팔도록 하지요. 그리하면 정당한 거래고, 저도 이문을 남기고 파는 셈이니 서로에게 이익 아니겠습니까?”
해남검파의 무인들이 반색했다.
제대로 된 값만 치른다면 그 어떤 문제의 소지도 없었다.
게다가 신마상단을 통해 유통되는 약들의 효과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들은 주저하지 않고 값을 치렀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복용하자마자 속이 따듯해지며 지친 몸에 활력이 돌기 시작했다.
“허허, 효과가 끝내주는군. 혹시 더 가지고 있는 게 있으신가?”
청심단의 효험을 확인하니 자연스럽게 구매 욕구가 생겨났다.
“아직은 시험 삼아 소량만 생산되는지라 물량이 넉넉지는 않습니다. 머지않아 대량으로 입고된다 했으니 그때 넉넉히 챙겨 오겠습니다.”
“그래 주면 우리야 고맙지. 값은 제대로 치르겠네.”
그렇게 그들이 대화를 나누던 와중에도 신마상단 소속의 일꾼들은 부지런히 움직였다.
선착장에 보급 물자를 내리고, 해남도의 특산품인 약재들과 해적들로부터 노획한 물품들을 배에 실었다.
“아! 그리고 이건 정기 서한입니다. 문주님께서 확인하시고 범 대인께 전해 주시면 됩니다.”
“매번 고맙네.”
“뭘요. 저야 전해 드리기만 하면 되는 일인걸요.”
능소밀이 작성한 서한은 지체 없이 전달하는 것이 원칙.
신마상단의 배가 떠나가자 해남검파의 무인은 곧장 본산으로 신형을 날렸다.
해남파의 모든 대소사가 결정되는 창해각(滄海閣).
회의를 주재하는 벽대경을 중심으로 좌우에 나누어 앉은 장로들이 앞다투어 목소리를 높였다.
“아니, 문주님! 이건 너무한 것 아닙니까?”
“훈련이라니! 내년이면 내 나이 여든 하고도 넷이외다. 문주님께서는 어찌 그리 쉽게 전 문도의 참여를 허하신 것입니까?”
사방에서 쏟아지는 장로들의 성토에 벽대경이 곤혹스런 눈빛을 흘렸다.
장로들 중 한 명이 창해각의 입구 쪽을 가리켰다.
“저 꼴을 보십시오. 저게 어디 사람 몰골입니까?”
그가 가리킨 곳에는 초췌해진 몰골로 반쯤 넋이 나가 있는 장년인 둘이 자리하고 있었다.
눈빛에 생기가 느껴지지 않는 두 사람은 각각 전투선을 지휘하는 단주들이었다.
그리고 방금 항의한 장로의 아들들이었다.
“제가 며느리들 볼 낯이 없습니다. 가뜩이나 바다로 나설 때마다 가슴 졸이며 애태우는 며느리들인데, 이러다 속이 문드러져 이 늙은이보다 먼저 갈까 두려울 지경입니다.”
그 말을 다른 장로가 받았다.
“아무리 사위의 요청이라도 그렇지, 이 나이에 어떻게 새카만 후배들과 같이 뒹굴란 말입니까?”
“후우.”
한숨을 내쉰 벽대경이 훈련 참여를 극구 반대하는 장로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같이가 아닙니다. 따로 자리를 마련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게 그렇게까지 거부할 일입니까?”
하지만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벽대경이 쉽게 뜻을 꺾지 않을 것 같자 곳곳에서 앓는 소리가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면 얼마나 산다고…….”
“잠자리에 누울 때마다 내일 뜨는 해를 볼 수 있을까 싶은 나이요. 언제 가도 이상하지 않은데, 이제 와 무슨 영광을 누리겠다고…….”
벽대경이 쓰게 웃으며 좌중을 둘러봤다.
“장로님들. 그거 아십니까?”
곳곳에서 쏟아지는 의아한 시선에 벽대경이 더없이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전원 참석이라는 건 저도 포함된다는 의미입니다.”
화들짝 놀란 장로들이 일순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그러기를 잠시.
“아버님! 안 됩니다!”
“그 둘은 악마입니다!”
“어떤 고초가 기다리는지 아직 겪어 보지 못하셨기에 하시는 말씀입니다!”
앞다투어 만류하는 세 아들을 향해 벽대경이 근엄한 눈빛을 던졌다.
“장문인이라면 의당 모든 문도들의 모범이 되는 것이 당연한 일!”
이미 결심을 굳힌 듯 벽대경의 의지는 확고했다.
“이는 진정 본 파를 위한 결정이다! 성장을 위해 고통을 감내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으냐? 그 스승이 딸이면 어떻고 사위면 어떻단 말인가? 본 파가 강해지기 위해서라면 나는 그 어떤 괴로움도 기쁘게 감내할 것이다.”
벽대경의 음성에서 묻어나는 단호함에 창해각 곳곳에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벽대경이 말을 이어 갔다.
“나는 우리 해남파가 중원의 그 어떤 문파보다 앞장서 천하를 위협하는 마교 놈들을 물리치기를 바란다. 그때 피를 쏟으며 죽느니, 당장은 고되더라도 땀을 쏟는 것이 낫지 않더냐?”
아들들에게 하는 말이었지만 벽대경의 시선은 극구 훈련을 반대하던 장로들에게 향해 있었다.
삼엄한 벽대경의 눈빛과 위엄이 실린 음성.
그리고 장문인으로서의 박력에 장로들은 입을 다물었다.
이때 누군가가 창해각 안으로 들어섰다.
“신마상단에서 전해 온 서신입니다.”
“이리 주게.”
무심코 서한을 받아 들고 내용을 확인하던 벽대경이 멈칫했다.
능소밀이 작성한 서신에는 현재 단악선을 중심으로 한 토벌단의 행보와 무림 정세가 자세하게 기술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혈운사와의 싸움 과정이 시간 순서에 따라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무위의 정예가 현재 혈운사를 상대하고 있다고 하는군요.”
“정예라 하시면……?”
“신마의선을 필두로 혈수존자와 빙옥선자, 거기에 스무 명 남짓한 사파의 고수들로 구성되었다고 합니다.”
갑자기 청해각 내부가 조용해졌다.
서로의 표정을 살피며 분위기를 파악하길 잠시.
장로들 중 한 명이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그들은 우리의 둘도 없는 동맹. 그토록 힘든 싸움을 하고 있다면 당연히 본 파가 지원에 나서야 할 것입니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벽대경의 세 아들이 번쩍 손을 들었다.
“제가 가겠습니다!”
“아닙니다. 맏이인 형님은 가문을 이으셔야 하니 차남인 제가…….”
“사지가 될지도 모르는 곳에 어찌 형님들을 보낼 수 있겠습니까. 그래도 우리 형제들 중 무공이 제일 뛰어난 제가 가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지원을 자처하고 나선 이들은 비단 그들만이 아니었다.
“아무래도 이런 사안은 강호의 경험이 많고 노련한 저희가 나서는 것이…….”
“험험. 황 장로 생각도 그렇소? 역시 앞날이 구만 리 같은 젊은이들보다야 언제 죽어도 미련 없는 우리들이 앞장서는 것이 순리겠지요?”
“암요. 당연히 그래야지요. 여기서 할 일 없이 식량이나 축내느니, 혈운사 토벌에 손을 보태 본 파의 명성을 드높인다면 그보다 영광스러운 일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심지어 장로들까지 앞다투어 자원했다.
사실 해남검파의 무인들 대부분이 그러하듯 그들 역시 평생을 바다 위에서 보내 왔다.
그래서 하나같이 해상전과 선상 전투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그에 반해 초원의 전투 방식은 잘 알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나서는 데에는 다른 이유가 없었다.
일단 해남도만 벗어나고 보자!
그것이 그들의 한결같은 생각이었다.
돌아가는 분위기를 보아하니 이미 전 인원의 훈련 참여는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
차라리 목숨을 건 전장이 나았다.
범계위와 벽화령이 주도하는 훈련은 그만큼 끔찍하고 지독했다.
그들 부부가 머무는 해남도는 그야말로 지옥이었다.
“잠깐만 기다려 보십시오.”
이때 벽대경의 장남이 중인들을 제지하며 앞으로 나섰다.
“어쩌면 말입니다.”
이어진 그의 말에 모두의 얼굴이 한순간 밝아졌다.
“이 상황을 알게 되면 화령이 부부가 과연 가만히 있을까요? 당장 북방으로 달려갈 수도 있는 일 아닙니까?”
그 말에 모두의 얼굴에 화색이 감돌았다.
자연스레 모두의 시선이 상석을 차지한 벽대경에게 모아졌다.
“커험.”
졸지에 모두의 기대를 한 몸에 받게 된 벽대경이 나직하게 헛기침을 터트렸다.
그러곤 능소밀이 보낸 서신을 슬쩍 탁자 위로 내밀었다.
“자고로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는 법이지.”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인가?
서로 눈치만 살피며 어느 누구 하나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기를 잠시.
“제게 맡겨 주십시오.”
한 사람이 앞으로 나섰다.
비장한 표정으로 걸어가 서신을 집어 드는 사람은 다름 아닌 벽대경의 장남, 벽파영이었다.
서신을 챙긴 벽파영이 보무도 당당하게 청해각을 나섰다.
그런 그의 뒷모습을 응시하는 사람들의 눈빛에 생기가 돌았다.
‘힘내시오, 대공자!’
‘우린 대공자만 믿소!’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그를 응원하고 있었다.
* * *
해남도에서 가장 동떨어진 외곽의 별채.
쿵. 쿵. 쿵.
별채와 가까워질수록 점차 뚜렷해지는 묘한 진동에 벽파영이 눈살을 찌푸렸다.
‘설마 이 벌건 대낮부터?’
해남도의 건물들은 태풍을 견뎌야 하기에 하나같이 튼튼하게 지어져 있었다.
별채 역시 마찬가지.
한데 지금은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처럼 건물 전체가 들썩이며 흔들리고 있었다.
벽파영이 나직이 한숨을 흘렸다.
처음에는 해남파 본관에 신방을 차린 두 사람이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문도들의 민원이 빗발쳤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서로를 갈구하는 두 사람의 체력이 워낙 절륜했기 때문이다.
결국 두 사람은 신방을 옮겨야만 했다.
벽파영은 민망한 얼굴로 주위를 서성이다 진동이 멈추자 인기척을 냈다.
“험험. 화령이 있느냐?”
잠시 후.
상기된 얼굴로 별채를 나선 벽화령 뒤로 바지만 걸친 범계위가 모습을 드러냈다.
“오라버니가 이 시간에 웬일이에요?”
벽화령의 물음에 벽파영이 바로 본론을 꺼냈다.
“아무래도 신마의선이 위기에 처한 것 같다.”
“뭐?”
깜짝 놀란 범계위가 성큼 다가와 벽파영이 들고 있던 서신을 낚아챘다.
“이럴 수가!”
범계위의 당혹성에 벽화령이 놀라 되물었다.
“정말 신마곡이 위험에 처했나요?”
서신을 움켜쥐고 있던 범계위가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러기를 잠시.
범계위가 분노해 소리쳤다.
“나만 빼고 자기들만 재미 보고 있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