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321)
신마의선-321화(321/500)
신마의선 (321)
범계위가 흥분해 소리쳤다.
“나도 가야겠어! 그 멍청이들에게 단 의원을 맡겨 두기 불안해!”
벽파영이 내심 쾌재를 불렀다.
‘됐다!’
그 순간 벽화령의 표정이 흐려졌다.
“절 두고…… 가신다고요?”
범계위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어? 무슨 소리야? 내가 가면 당연히 내 여자도 가는 거지.”
“하지만 아직 본 파 무인들의 실력을 목표했던 수준까지 끌어올리지 못했잖아요.”
“으으…….”
고심하던 범계위의 모습에 벽파영은 속이 바짝 타들어 갔다.
‘그냥 가! 가라고! 둘 다 가!’
간절한 그의 염원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점차 이상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범계위가 벌컥 역정을 내더니 벽파영을 노려본 것이다.
“이게 다 이 둔재들 때문이야! 우리 화령이 반만큼만 됐어도 진작에 끝났을 텐데!”
벽화령이 나직이 한숨을 흘렸다.
“안타깝지만 모두가 다 저 같지는 않아요, 가가.”
벽파영은 순간 울컥했다.
괴롭히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더니, 지금이 딱 그랬다.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원래부터 좀 이상한 동생이었지만 함곡도(含哭島)의 지옥팔관(地獄八關)을 나선 이후 더 이상해진 것 같았다.
‘원래 고수들은 다 이런가?’
그러고 보니…….
그가 만난 고수들은 어딘가 이상한 사람들이 많았다.
“안 되겠어.”
씩씩대던 범계위가 벽파영을 향해 지시했다.
“전부 집합시켜. 훈련 시작한다.”
“예?”
난데없는 명령에 벽파영은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
“저, 매제님? 지금은 휴식 시간…….”
“쉴 시간이 어딨어?”
이글거리는 범계위의 눈빛을 마주한 벽파영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아니나 다를까.
“오늘부터는 야간 훈련도 추가한다! 잠도 자지 말고, 똥도 싸지 말고 훈련만 해!”
“그, 그게 무슨…….”
당황해 입을 열던 벽파영을 향해 범계위가 버럭 했다.
“그 실력에 잠이 와? 그 실력에 똥이 나오냐고?”
“그거랑 수련이랑 무슨 상관입니까?”
“우리 사부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셨어.”
“예?”
벽파영은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
왜 뜬금없이 여기서 사부 이야기가 튀어나온단 말인가?
“숨을 쉬듯, 잠을 자듯……. 수련을 일상처럼 느껴야만 고수가 될 수 있다고. 그런데 너희들은 수련을 일상처럼 하지 않아. 그러니 너희의 일상에 맞게 수련 수준을 맞춰야지.”
“…….”
벽파영은 기가 막혀 할 말을 잃어버렸다.
이때 벽화령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가가. 그건 말이 안 돼요.”
벽파영이 반색했다.
그래도 역시 믿을 건 혈육밖에 없었다.
벽파영이 누이를 향해 간절한 도움의 눈길을 던졌다.
막무가내인 범계위와 달리 벽화령은 그나마 이야기가 통하리라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이어진 벽화령의 말에 안색이 흙빛이 되어 버렸다.
“그 말대로라면 숨을 쉬는 것도, 밥을 먹는 것도 금지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미친 게냐!’
한데 범계위의 대답은 더욱 가관이었다.
“생각 같아서는 그러고 싶지. 하지만 숨을 못 쉬게 하고 밥도 안 먹이면 죽어 버리잖아.”
“아! 그러니까 사부님의 가르침을 가가 나름의 방식대로 재해석한 수련 방식이로군요? 역시, 우리 범 가가!”
애틋한 눈빛을 던지며 범계위에게 매달리는 누이의 모습에 벽파영은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내 사색이 되었다.
잠을 못 자도, 똥을 누지 못해도 죽는 건 마찬가지다.
단지 빠르냐 느리냐의 차이일 뿐.
‘망했다!’
교각살우(矯角殺牛).
쇠뿔을 바로잡으려다 소를 죽인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창해각에 돌아가서 지금 상황을 설명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눈앞이 아득해졌다.
“오라버니?”
“어?”
“뭐 하세요? 얼른 집합시키지 않고.”
벽파영이 살기 어린 눈빛으로 벽화령을 노려봤다.
‘네가 제일 나빠! 이년아!’
* * *
어둠이 깔린 초원.
말을 탄 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던 바얀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멀리서 달려오는 세 마리 말이 시야에 들어왔다.
이윽고 서로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바얀이 입을 열었다.
“왜? 혼자 오기는 겁이 나던가?”
스스로 생각해도 민망했던 것일까.
독대를 청했음에도 호위를 달고 나타난 빌게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 모습에 바얀이 실소하며 재차 말을 건넸다.
“지금쯤 그쪽은 꽤나 시끄럽겠군?”
“네가 상관할 바가 아니다.”
차갑게 응수한 빌게가 스산한 눈빛으로 바얀을 응시했다.
“혹시 모르지. 네 목을 가져간다면 잠잠해질지.”
단순히 빈말이 아닌 것 같은 빌게의 엄포에 바얀이 실소했다.
“조부를 배신한 것도 모자라 이제는 혈배(血杯)를 나눈 안다의 맹세까지 어길 셈인가? 그리하면 더 이상 이 초원에 설 자리가 없을 텐데?”
움찔하는 빌게와 달리 바얀은 여유를 잃지 않았다.
“자신 있으면 해 보게.”
바얀의 도발에도 빌게는 선뜻 나서지 못했다.
머릿수에서는 우위를 점하고 있지만 바얀은 초원의 전사들 중에서도 손꼽히는 기마술을 지닌 사내.
무엇보다 지금의 당당함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어 보였다.
게다가 주변에 깔린 어둠 너머 무엇이 도사리고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상황이 여의치 않다 판단한 빌게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왜 보자 한 것이냐?”
“안다니까.”
“뭐?”
예상치 못한 말에 빌게가 멈칫했다.
그런 그를 향해 바얀이 말을 이어 갔다.
“너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지금도 너를 나의 형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기회를 주려는 것이다.”
물끄러미 빌게를 응시하던 바얀이 불쑥 입을 열었다.
“혈운사는 곧 무너진다.”
“헛소리!”
“진정 그리 생각하나? 아니면 그렇게 믿고 싶은 건가?”
“…….”
“누구보다 똑똑한 네가 흐름이 바뀌기 시작했다는 것을 모를 리 없을 텐데?”
바얀은 흔들리는 빌게의 눈빛을 놓치지 않았다.
“아직 늦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잘못을 바로잡는다면 한께서도 분명 용서하실 터.”
“흥! 그 노인네 성정을 몰라서 하는 소린가?”
“알지. 그래서 네 선택을 누구보다 안타까워했던 거고.”
“그딴 감언이설로 나를 유혹할 생각이라면…….”
“내 목을 걸지.”
“너……?”
“자네가 한께 용서를 구한다면 나 또한 그 옆에서 함께 엎드리겠네.”
복잡한 표정으로 말을 잇지 못하는 빌게의 모습에 바얀이 진심을 담아 다시 조언했다.
“이익을 따라 섣불리 움직였던 실수를 만회할 유일한 기회다. 이대로 시간이 지나면 더 이상 돌이킬 수가 없을 거야. 훗날을 도모하기 위해서라도 일단은 명분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갈등의 빛이 역력한 빌게의 눈을 응시하던 바얀이 천천히 돌아섰다.
“이번만큼은 부디 현명한 선택을 하길 바라네.”
그 말을 끝으로 바얀이 말을 몰아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빌게는 그 자리에 선 채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멀어지는 바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더없이 심란한 눈빛을 흘릴 뿐이었다.
* * *
빌게가 바얀의 제안을 수락한 것은 사흘이 지나고 나서였다.
자신의 수하를 은밀하게 전령으로 보내온 것이다.
빌게의 수하로부터 건네받은 서신의 내용을 확인한 바얀은 곧장 단악선을 찾아갔다.
“현재 혈운사는 외부 활동을 줄이고 내부 단속에 힘을 쏟고 있다 합니다.”
“마교에서의 증원은요?”
“딱히 이렇다 할 움직임은 없는 것 같습니다.”
“으음.”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던 단악선이 고개를 갸웃했다.
상식적으로 마교의 대응이 이해 가지 않았다.
이미 그들은 육마존 중 둘을 잃었다.
게다가 이대로라면 혈운사가 초원의 지배권을 잃는 것도 시간문제였다.
“대체 무슨 생각일까요?”
분명 시간을 끄는 이유가 있을 터.
한데 짐작 가는 이유가 없었다.
초악량이 입을 열었다.
“짚이는 바가 없다 해도 조심해야 한다. 분명 우리가 모르는 칼을 숨겨 두고 있을 것이다. 그리 쉽게 물러설 놈들이 아니다.”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마교의 집요함을 누구보다 잘 아는 초악량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단악선이 운을 뗀 것은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였다.
“그렇다면 더 이상 시간을 끌면 안 되겠네요.”
천시불여지리(天時不如地利) 지리불여인화(地利不如人和).
맹자는 왕도론이라는 책을 통해 전쟁에서 이기기 위한 조건으로 천시(天時)와 지리(地利), 인화(人和)를 강조했다.
만약 저들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때를 기다리고 있다면 굳이 기다려 줄 이유가 없었다.
주변 부족과의 연합을 통해 저들의 활동 권역을 줄여 두었으니 지리는 이쪽이 유리한 상황.
그렇다면 남은 건 인화뿐인데, 이 또한 이미 대책을 세워 두었다.
바얀이 조심스레 자신의 생각을 밝힌 것도 그때였다.
“한 달 정도만 기다리면 혈운사를 압도할 충분한 전력이 모일 것 같습니다.”
단악선은 고개를 저었다.
“전면전은 가급적 피해야 해요. 혈운사를 괴멸시킨다 해도 아군의 피해가 적지 않을 테니까요.”
“그렇다면 달리 방법이 있습니까?”
단악선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혈운사와 초원 부족의 가장 큰 차이점을 이용해 저들을 흔들어 볼까 해요.”
“차이점이요?”
“바로 보급의 방식이죠.”
양과 말을 키우기 위해 초지를 찾아 이동하는 이들 부족과 달리 혈운사는 철저하게 약탈에 의존하고 있었다.
“식량을 계속 비축해 온 우리와 달리 저들의 상황은 현재 그리 여유롭지 않을 거예요. 필요할 때마다 약탈을 하면 되니 따로 저장해 둔 식량도 많지 않을 테고요. 더구나 지금은 한곳에 많은 인원이 모여 있는 만큼 식량을 소비하는 속도도 빠르겠죠.”
“부족한 음식은 사냥을 통해 조달할 수도 있습니다.”
의외로 초원에는 많은 야생 동물이 살고 있었다.
붉은 사슴을 비롯해, 커다란 쥐를 연상케 하는 토발서(土拨鼠).
거기에 곳곳에 서식지를 틀고 있는 늑대들까지.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식량이었지만 굶주림 앞에는 장사 없는 법.
게다가 그들은 사냥에도 능숙했다.
단악선이 빙그레 웃었다.
“바로 그 점을 이용하려고요.”
단악선은 곧장 한 장의 서신을 작성해 바얀에게 건넸다.
“신마상단에 연락해서 여기 적혀 있는 약재들을 대량으로 보내 달라고 해 주세요.”
“약재요? 이걸 대체 어디에 쓰시려고……?”
이어진 단악선의 말에 바얀이 놀라 반문했다.
“그들에게 독을 풀려고요.”
“어떻게 말입니까? 그들도 분명 독에 대해 대비를 하고 있을 텐데요?”
“맞아요. 그래서 직접 그들에게 독을 사용하는 것이 아닌, 그들이 확보할 사냥감을 이용할 생각이에요.”
독 중에는 짐승에게 무해하나 인간에게만 중독 증상을 일으키는 종류도 있었다.
물론 단번에 목숨을 앗아 가는 치명적인 극독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지러움과 매스꺼움, 발열과 발진 등을 동반하기 때문에 충분히 상대의 전력을 약화할 수 있었다.
바얀이 미간을 찌푸리며 반문했다.
“그들이 사냥할 동물들을 미리 중독시킨다는 것입니까?”
바얀은 회의적일 수밖에 없었다.
언뜻 듣기에는 괜찮아 보여도 이 계획에는 커다란 문제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놈들이 사냥할 장소를 어떻게 알아낸단 말입니까?”
아무리 독을 많이 만든다 해도 이 광활한 초원 전체에 독을 뿌리는 건 애초에 불가능했다.
하지만 이어진 단악선의 말에 바얀이 탄성을 터트렸다.
“신마곡과 마을을 오갈 때마다 짐승들로부터 저를 지키기 위해 지니고 다니던 약초가 있어요.”
“아! 산짐승들이 매우 꺼려 해 피하게 만든다는?”
“네. 이걸 혈운사가 노릴 만한 사냥터에 뿌리려고요. 그 일대의 짐승들은 머물던 곳을 이탈할 테고, 결국 혈운사는 사냥감을 찾아 우리가 남겨 놓은 사냥터로 오게 될 거예요.”
단악선이 결연한 의지를 드러냈다.
“이제 이 싸움을 끝낼 때가 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