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323)
신마의선-323화(323/500)
신마의선 (323)
재앙은 늘 그렇듯 예고 없이 들이닥쳤다.
“습격이다!”
비명에 가까운 고함 소리에 곳곳에 늘어져 있던 혈운사가 황급히 신형을 일으켰다.
하나 그때는 이미 새카만 화살의 구름이 하늘을 뒤덮은 다음이었다.
“크악!”
“컥!”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화살 세례에 사방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고, 진영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예상치 못한 공격에 보르테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정찰병은 대체 뭘 하고 있었단 말이냐!”
적이 이처럼 가까이 접근해 선공을 가할 때까지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니!
쏟아지는 화살 비를 뚫고 겨우 말에 오른 보르테의 눈빛이 격하게 흔들렸다.
눈으로 직접 확인한 적의 규모가 예상을 훨씬 뛰어넘고 있었다.
어림잡아도 이천을 헤아리는 숫자.
그래서 더욱 황당했다.
이 정도 병력이 접근했다면 장님과 귀머거리가 아닌 이상 진즉에 눈치채고도 남았어야 했다.
“전열을 정비해라!”
보르테의 고함 소리에 혈운사의 무인들은 최소한의 무장만 갖춘 채 말에 올랐다.
한편.
“겨우 백 명 정도인가…….”
순식간에 대열을 갖춰 후퇴하는 혈운사를 보며 바얀은 내심 쓴 입맛을 다셨다.
혈운사의 총 병력은 오백.
그런데 첫 화살 공격으로 입힌 피해는 고작 오 분의 일에 불과했다.
급습이 성공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아쉬운 성과였다.
그리고 이는 그만큼 혈운사가 전투에 특화되어 있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지금만 해도 그랬다.
후퇴하는 와중에도 혈운사는 허공에 화살을 날려 댔다.
얼핏 보기엔 흥분해 마구잡이로 날리는 화살 같았지만 눈썰미가 있는 전사라면 그것이 얼마나 뛰어난 기술인지 모를 수 없었다.
혹시 모를 추격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수법.
후미를 쫓아오는 기마들이 같은 위치를 지날 때, 시간 차를 두고 떨어진 화살에 꿰뚫리도록 정확히 계산해 날린 것이다.
더구나 후퇴 중에도 말을 탄 기수가 몸을 뒤로 돌려 화살을 날리며 응수하기도 했다.
중원인들이 배사(背射)라 부르며 몹시 경계하는 기술이었다.
그러나 바얀은 한번 거머쥔 승기를 이대로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거리를 두고 추격한다! 놈들은 곧 화살이 떨어질 것이다!”
초원의 전사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혈운사 역시 전력 대부분이 경장궁기병(輕裝弓騎兵)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갑주를 비롯한 무장을 최소화해 기동력을 높이고, 대신 활을 이용한 원거리 공격에 특화된 것이다.
그만큼 전술 자체가 개개인의 뛰어난 활 솜씨와 기마술을 기본으로 하고 있었다.
실제로 전술 자체는 간단했다.
기본적으로 화살 사거리 안에서 전투를 시작하는 것이다.
상대와의 거리를 충분히 활용해, 적의 사거리 밖에서 치고 빠지는 방식으로 화살을 퍼붓는다.
이후 적의 피해가 누적되어 대열이 무너졌을 때만 치명타를 가하기 위해 비로소 근접전을 펼쳤다.
또한 어리석은 중원의 병사들과 다르게 초원의 전사들은 후퇴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절대로 백병전에 휘말리지 않고 말을 타고 계속 주변을 돌면서 적에게 화살을 날려 대다, 적이 근접하면 망설임 없이 후퇴한다.
이를 이용해 적을 유인하고, 상대의 전열이 길게 늘어지면 기동력을 이용해 포위하여 섬멸하는 방식이다.
또한 선회전술을 응용해 끊임없이 화살로 적을 괴롭혔다.
궁기병을 여러 조로 구성해 돌아가며 활을 쏘는 것이다.
전면에 나서 화살을 전부 소진한 궁기병은 가장 마지막 대열로 돌아간다.
보통 궁기병 한 명이 쉰 발 이상의 화살을 준비하는 데다, 말도 여러 마리를 준비해 두었다가 새로운 말로 바꿔 타 선회전술의 속도를 유지했다.
한 명의 궁기병이 한 시간 이상 화살을 퍼붓는 게 가능한 이유였다.
그런 만큼 화살의 비축 여부가 무엇보다 중요했다.
문제는 혈운사 개개인의 역량이 아군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점이었다.
서로가 서로의 전투 방법에 익숙한 만큼 쉽게 거리를 내어 주지 않았다.
아슬아슬한 거리에서 화살을 날린 뒤, 후퇴하길 반복하고 있었다.
바얀의 진영 곳곳에서 커다란 깃발이 나타난 것도 그때였다.
펄럭.
바람에 나부끼는 깃발.
거기 쓰인 문구를 확인한 보르테의 눈이 뒤집어졌다.
―대열을 이탈하는 자는 쫓지 않겠다.
황급히 주위를 둘러보던 보르테가 빠드득 이를 갈았다.
예상치 못한 선공을 허용해 패색이 짙은 상황.
거기에 몸의 상태도 온전하지 못한 혈운사 일부의 표정에 동요한 기색이 역력했다.
“놈들의 간교한 수작에 놀아나지 마라! 저들은 우리를 살려 줄 생각이 없다! 등을 돌리는 놈은 내가 직접 목을 치겠다!”
보르테의 살기등등한 고함 소리에 혈운사는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았다.
그 말대로였다.
자신들이 그랬던 것처럼 저들이 자비를 베풀 리 없었다.
그간 자신들이 저지른 악행을 그들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시간이 지날수록 혈운사의 피해는 점점 더 커져 갔다.
기마 대 기마.
거기에 같은 전략을 구사하는 만큼 상당한 집중력이 필요했다.
하지만 독으로 인해 몸의 상태가 좋지 않은 데다, 마음까지 어지러워지니 온전히 전투에 집중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 미세한 차이가 모이고 모여 피해가 점차 누적되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보르테의 눈 위로 짙은 의혹이 떠올랐다.
불리한 조건을 모두 감안한다 해도 기동력이 너무 현저하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이유를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자신들의 진영 일부가 흐름이 묘하게 엉켜 있는 것을 뒤늦게 발견할 수 있었다.
이를 유심히 관찰하던 보르테의 눈에서 차가운 한광이 번뜩였다.
부친인 한을 배신하고 휘하 전력을 이끌고 혈운사에 합류했던 빌게.
그놈이 후퇴하는 병력을 교묘하게 교란하며 이동을 방해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정찰을 담당한 것도 놈이 이끄는 병사들이었다.
무엇보다 자신들과 달리 빌게와 그의 수하들은 마치 습격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이 미리 무장을 마치고 있었다.
의심은 이내 확신이 되었다.
“저 배신자가!”
보르테가 빌게를 향해 말을 몰았다.
이를 알아챈 빌게가 황급히 말 머리를 돌렸다.
하지만 이미 가속이 붙어 속도가 정점에 이른 보르테를 따돌릴 수 없었다.
뒤늦게 빌게가 칼을 뽑아 응수하려 했지만.
서컥.
이미 그를 스쳐 간 보르테가 휘두른 칼이 목을 긋고 지나간 뒤였다.
솟구치는 피와 함께 빌게의 머리가 바닥을 굴렀다.
부친을 배반하고, 또다시 혈운사를 배반한 자의 비참한 말로였다.
그러나 보르테 역시 대가를 치러야 했다.
한순간의 분노에 사로잡혀 지휘 지역을 이탈하는 바람에 그의 명령을 전달하던 전령들이 그를 따라 함께 이동했고, 그 바람에 진열이 길게 늘어지듯 형성된 것이다.
그리고 이는 혈운사의 결정적인 패착이 되었다.
“지금이다!”
바얀의 명령에 창과 칼로 중무장한 중기병이 일제히 돌격을 시작했다.
그리고 균형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혈운사가 급히 진열을 갖춰 창과 칼을 들어 올렸지만 기세를 등에 업은 상대의 돌격을 저지하는 건 여의치가 않았다.
“크악!”
“아악!”
혈운사의 진영 곳곳에서 피가 튀고 비명이 터져 나왔다.
수비하던 선두 진열이 무너지자 혈운사의 힘에 굴복했던 부족들 사이에서 동요가 퍼졌다.
그리고 이는 전열을 이탈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처음이 어렵지 한번 대열을 이탈하기 시작하자 점차 그 숫자가 늘어났다.
천하의 혈운사로서도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전황이 기울어진 것이다.
빠르게 거리를 좁혀 오는 상대를 노려보며 보르테가 최후의 결의를 다졌다.
하지만 몇 번 칼을 휘둘러 보기도 전에 한 사람의 손에 칼이 붙들렸다.
초악량이었다.
돌격해 온 중기병의 절반 이상이 무위의 고수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서로 어지럽게 뒤얽힌 근접전이야말로 그들이 원하던 상황.
그들은 모처럼 본연의 실력을 제대로 뽑아내기 시작했다.
보르테 역시 이를 눈치챘으나 상황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여기까지다.”
초악량의 서늘한 눈빛을 마주한 보르테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본능적으로 칼을 휘둘러 반격을 꾀하려 했지만 상대는 천하오절.
그것도 금나수로는 적수를 찾아볼 수 없다는 근접전의 고수였다.
우드득.
“……!”
자신의 가슴에서 터져 나오는 소름 끼치는 소리에 보르테가 눈을 부릅떴다.
뒤늦게 등골을 타고 올라오는 끔찍한 고통!
가슴뼈를 으스러트리며 파고든 손이 폐부를 갈가리 찢더니 기어이 심장을 터트려 버렸다.
‘이런 개 같은……!’
목구멍 끝까지 차오른 욕설을 내뱉지도 못하고 보르테는 숨을 거두었다.
허망한 눈빛을 흘리며 그가 말에서 굴러떨어지자 혈운사의 진열은 단번에 붕괴되기 시작했다.
사기가 바닥을 치고 있는 데다 우두머리까지 잃은 이상 더 항거할 의지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자신들의 최후를 직감했던 것일까.
일부 혈운사는 끝까지 생사를 도외시한 채 달려들었다.
그러나 양패구상을 노린 마지막 항전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쫓지 마라.”
바얀은 패잔병으로 후퇴해 달아나는 혈운사의 잔존 병력을 끝까지 추적하지 않았다.
약속은 약속.
게다가 어차피 저들은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었다.
구심점이 사라진 데다 한번 결속력이 무너진 이상 두 번 다시 세력을 모으기 어려울 터.
그동안 쌓아 온 악업이 있어 그들은 이 초원 어디에도 두 번 다시 발을 붙일 수 없었다.
철저한 배척과 고립 속에서 서서히 말라 죽을 터.
“부상자들을 이쪽으로 데려오세요!”
그사이 단악선은 전투로 인해 발생한 환자들을 치료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비록 승리를 거두었다 하나, 아군의 부상자도 적지 않았다.
그때였다.
“중상자입니다!”
누군가의 외침에 단악선이 고개를 돌렸다.
한 사람을 부축한 채 절뚝거리며 걸어오는 피투성이의 사내가 눈에 들어왔다.
단악선은 반사적으로 그곳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부상자로 위장하고 있던 갈염의는 그런 단악선의 모습에 내심 조소를 흘렸다.
지금은 신마의선이란 거창한 명호를 얻고, 구파일방과 녹림을 비롯한 무림 세력에 지대한 영향력을 지닌 존재로 자리 잡았다지만 무위를 금지로 선포하기 위한 연판장을 완성하기 전만 해도 극히 일부만 알고 있던 어린 소년이었다.
하지만 신교는 일찍부터 단악선을 주목하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모든 행보가 하나같이 신교의 행사를 방해했기 때문이다.
어이없는 것은 그 행보들이 신교를 노리고 행동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하지만 그 결과로 인해 신교는 오랜 세월 공들여 차근차근 진행하던 계획에 막대한 차질을 빚었다.
이미 육마존 가운데 두 명이 죽었고, 북해빙궁과 당가는 너무나 맥없이 무너져 버렸다.
제갈세가를 중심으로 정파 무림을 재편하려 했던 계획도 무산되었으며, 사파인들을 포섭해 무림정복의 첨병으로 활용하려던 목표도 일부의 작은 성과만 얻었을 뿐이다.
‘숙명이라는 게 정말 존재하는 것일까.’
신의와 마의.
어쩌면 그 두 사람의 핏줄이었기에 운명이라는 괴물이 저 아이를 지금의 자리까지 끌어올렸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한 건 그것도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점이다.
이미 단악선을 상대로 한 여러 번의 암살 시도가 있었다.
결과는 모두 실패.
그래도 아주 성과가 없는 건 아니었다.
지금까지 쌓인 자료들을 토대로 단악선의 성격과 행동 양식을 철저하게 분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몇 번의 암살 시도 가운데 거의 성공에 근접했던 경우.
바로 암살자가 환자로 위장했을 때였다.
곤륜에서 그랬고, 이곳 초원에서 그랬다.
실제로 암존은 성공에 거의 접근했었다.
환자를 상대할 때 드러내는 무방비함.
그것이 단악선의 유일한 약점이었다.
‘변수는 오직 하나.’
바로 고수의 개입 여부였다.
실패했던 두 번 모두 초악량이나 한설화 같은 고수가 단악선 곁을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승전에 들떴기 때문일까.
그 어떤 호위도 없이 거리를 좁혀 오는 단악선의 모습에 갈염의는 성공을 확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