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324)
신마의선-324화(324/500)
신마의선 (324)
‘이제 한 걸음만 더…….’
자신의 완벽한 검격 안에 단악선이 발을 내딛는 순간.
천하오절 정도 되는 고수가 아닌 이상 그 상대가 누구라 할지라도 갈염의는 목숨을 거둘 자신이 있었다.
단악선은 육마존 중 한 명인 암존마저 실패한 목표였다.
자신들이 성공한다면 흑야벌의 위상은 신교 내에서도 확고하게 자리 잡을 터.
자신을 포함해 몇 명이나 살아 돌아갈지 모르겠지만, 그리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지금은 이름까지 바꿔 가며 새외를 전전하고 있었지만 이번 살행만 성공한다면 다시금 살막의 이름을 되찾고 중원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것이 신교와의 약속이었고, 준비도 이미 모두 마친 상태였다.
이를 위한 조건은 단 하나.
바로 단악선은 죽음이었다.
그리고 갈염의는 성공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들어왔다!’
자신의 검격 안에 완벽하게 들어선 단악선을 확인한 갈염의가 품 안의 비수를 움켜쥐었다.
그런데 그때.
“그러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
단악선이 갑자기 말을 건네 왔다.
“…….”
갈염의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단악선을 응시했다.
그리고 이내 그의 눈에 의아함이 서렸다.
차분한 단악선의 시선.
그 어디에서도 다급함이나 걱정이 느껴지지 않는, 지극히 담담한 눈빛이었다.
갈염의는 단번에 신분이 노출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천하제일의 살수 단체를 이끄는 수장으로서 더없이 민망하고 난감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알았느냐?”
“어떻게 모를 수가 있겠어요?”
반문한 단악선이 주위를 둘러봤다.
“모두 서른 명인가요?”
갈염의가 멈칫했다.
자신들의 위장은 완벽하다 자부했다.
“놀라실 것 없어요. 제 눈에는 다 보이니까요. 그러니 더 이상 의미 없는 연기는 하지 않으셔도 돼요.”
처음에는 허풍이라 생각했다.
뒤늦게 함정에 빠진 것을 깨닫고 어떻게든 살길을 모색하기 위해 아무 말이나 주워 담는 거라 여긴 것이다.
한데 아니었다.
눈빛이나 분위기가 그랬다.
완벽하게 승기를 거머쥔 자만이 지닐 수 있는 여유가 느껴졌다.
아니나 다를까.
이어진 단악선의 말에 갈염의는 일순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제게 적아의 구분은 어렵지 않아요. 전 이 자리에 있는 모두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으니까요.”
“……!”
갈염의는 믿을 수가 없었다.
단악선이 초원의 부족들과 함께한 시간은 기껏해야 두 달 남짓.
이천을 헤아리는 모두의 얼굴을 외우는 것이 가능하단 말인가?
그러다 문득 한 줄기 의혹이 고개를 들었다.
“우리가 올 줄 알고 있었느냐?”
단악선이 쓰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들의 집요함을 누군가 경고하셨거든요. 게다가 암존을 통해 깨달은 게 있었어요.”
“……?”
“그는 최후의 순간까지 오직 저만을 노렸어요. 그래서 제가 목표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죠. 당신들은 포기하지 않을 것이고, 그렇다면 이번이 마지막 싸움이 될 테니 이 기회를 놓치지 않으리라 생각했어요.”
“하!”
갈염의는 내심 기가 막혔다.
상황을 자신이 계획하고 주도했다 여겼는데 이제 보니 눈앞의 꼬맹이 손바닥 안에서 놀아난 셈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갈염의가 섬뜩한 눈빛으로 단악선을 응시하며 품속에서 비수를 꺼내 들었다.
“너는 살아서 이곳을 벗어날 수 없다.”
단악선이 나직이 한숨을 흘렸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요?”
단악선의 손에는 어느새 묵룡이 들려 있었다.
그 모습에 갈염의가 차가운 조소를 말아 올렸다.
“건방…….”
단악선을 조롱하려던 갈염의가 말을 삼키며 황급히 물러섰다.
돌연 희끗한 묵빛 섬광이 가슴팍을 향해 날아들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단악선이 갑작스럽게 선공을 해 올 줄이야!
이를 예상치 못한 갈염의는 집요하게 따라붙는 묵봉을 걷어 내려 했다.
갈염의의 눈에 감출 수 없는 당혹감이 떠오른 것도 그때였다.
무언가가 잘못되었다고 느낀 것은 그 직후였다.
쾅!
폭음과 함께 갈염의가 나가떨어졌다.
삼 장 정도를 꼴사납게 굴러간 갈염의가 황급히 자세를 바로잡았다.
그의 얼굴에는 낭패한 기색이 역력했다.
단악선의 손에 들려 있던 묵룡이 유령처럼 흔들리나 싶더니 그대로 검격을 비껴들어 파고든 것이다.
게다가 가슴팍 부근에서 돌연 가공할 경력을 뿜어냈다.
비록 호신강기 덕에 얕은 내상으로 그쳤지만, 상황이 좋지 않았다.
아무리 얕은 내상이라도 이처럼 계속 반복해 누적되면 위중한 부상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만 포기하세요.”
독기를 줄줄 흘리며 비수를 고쳐 쥐는 갈염의를 향해 단악선이 나직이 경고했다.
“은밀하게 숨어 암습을 가했다면 모를까 정면에서 겨룬다면 당신은 절대 저를 이길 수 없어요.”
“닥쳐라!”
“게다가 이미 당신은 시간을 많이 허비했어요. 그리고 제 곁에는…….”
이어진 단악선의 말에 갈염의의 눈빛이 흔들렸다.
“늘 무서운 분들이 함께 계시죠.”
그 순간.
콰직.
서컥.
근처에서 들려온 섬뜩한 소리에 고개를 돌린 갈염의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제대로 반격 한번 못 하고 소리 없이 죽어 나가는 수하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느새 지척에 이른 두 고수의 존재를 발견한 갈염의는 비로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하나같이 흑야벌의 최고 정예로 가려 뽑은 살수들.
자신이 대동한 스물아홉 명은 그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는 고수들이었다.
그러나 그 상대가 너무 나빴다.
불길한 명호만큼이나 적수를 찾아보기 힘든 일대종사 둘.
진면목을 드러낸 초악량과 한설화를 상대로는 손쓸 방법이 전무했다.
반격은커녕, 단 한 번의 손짓조차 막아 낼 수 없었다.
다급해진 갈염의가 그대로 단악선을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의 비수는 단악선에게 닿지 못했다.
째앵!
돌연 눈앞에서 묵빛 호선이 번뜩이나 싶더니, 그의 손에 들려 있던 비수가 산산이 박살 나 허공에 흩뿌려졌다.
손목을 타고 올라온 지독한 충격이 내부를 진탕시킨 것도 동시였다.
“우웩!”
갈염의가 그 자리에 주저앉아 한 사발이 넘는 피를 토했다.
뒤늦게 갈염의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바짝 거리를 좁힌 단악선에게 마혈이 찍혀 버린 뒤였다.
“역시.”
갈염의의 턱을 움켜쥐고 억지로 입을 벌리게 한 단악선이 어금니 쪽에 숨겨져 있던 독단을 꺼내 들었다.
초악량과 한설화가 단악선 옆에 도착한 것도 그때였다.
“이번이 마지막이다.”
초악량이 단악선을 향해 삼엄한 눈빛을 던졌다.
“두 번 다시 네가 미끼가 되는 일은 허락하지 않겠다.”
“이자를 생포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어요.”
초악량이 한숨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갈염의는 머릿속이 어지러워졌다.
‘빌어먹을!’
죽음 따위는 두렵지 않았다.
실제로 이곳으로 향했을 때부터 살아 돌아갈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아니, 애초에 살수의 길을 선택했을 때부터 늘 죽음의 그림자를 등에 업고 살아온 그였다.
하지만 그런 그도 임무의 실패만큼은 두려웠다.
그리고 그보다 더 두려운 것은…….
“이놈이 많은 걸 알고 있어야 할 텐데.”
“걱정 마세요. 그게 뭐든 아는 건 전부 말하게 될 테니까요.”
바로 자신이 쥐고 있는 정보들이 적에게 넘어가는 것이었다.
이로써 모든 싸움이 마무리되었다는 걸 깨달은 것일까.
바얀을 위시한 전사들의 함성이 초원을 쩌렁하게 뒤흔들었다.
계획대로 흑야벌의 우두머리를 생포하는 데 성공한 단악선도 비로소 긴장을 풀며 그들과 함께 환호했다.
* * *
혈운사의 전멸 소식은 순식간에 초원 전체로 퍼져 나갔다.
바얀의 세력이 무섭게 불어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끝까지 합류를 망설이던 부족들도 뒤늦게 바얀을 찾아와 복속을 자처했다.
드넓은 초원을 가득 메운 어마어마한 숫자의 게르.
이것만으로도 현재 바얀의 명성과 위세가 얼마나 대단한지 짐작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중원의 형제들에게 소홀함이 없도록 대접하라. 행여 다른 부족원들이 실례를 범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도록.”
바얀의 지시에 그의 오른팔 격인 중년의 사내가 웃으며 한 곳을 가리켰다.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저길 보십시오.”
게르와 게르 사이에 마련된 중앙의 공터.
수많은 사내들이 어울려 뿜어내는 열기로 후끈 달아오른 그곳에서는 연신 왁자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하하! 주량이 겨우 그것밖에 안 되나?”
“우리 집 여덟 살 꼬맹이도 그것보다는 많이 마신다네.”
“야! 술 가져와. 오늘 본때를 보여 준다!”
저마다 술 항아리를 앞에 두고 내기를 벌이는 사내들.
서로 복색도 다르고 언어도 달랐지만 그 어디에서도 어색함을 찾아볼 수 없었다.
거리낌 없이 어울리며 승리를 자축하는 그들의 모습에 바얀은 슬쩍 미소를 감아올렸다.
문득 지난날이 눈앞을 스쳤다.
혈운사를 피해 소수의 부족만을 이끌고 탈출했던 그가 지금은 단기간에 부족을 병합해 대족장에 버금가는 세력을 일구어 냈다.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
그래서 그 여느 때보다 인연의 무게를 절실하게 느끼는 중이었다.
그런데 그때.
저 멀리서부터 달려오는 일단의 기마가 눈에 들어왔다.
“……!”
선두에 선 기마병이 휘날리는 깃발을 발견한 바얀의 눈빛이 급변했다.
북원을 계승한 정통 후계를 자처하는 이곳 초원의 지배자.
대칸이 보낸 전령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전성기 시절.
초원의 전사들은 한때 중원을 정복해 발아래 두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치세는 백 년 남짓.
혼란을 틈타 일어난 주원장에 의해 원이 무너졌다.
마지막 황제인 원순제(元順帝) 토군테무르는 왕족과 남은 부대를 이끌고 자신들의 조상이 일찍이 나라를 일으켰던 초원으로 물러났다.
이는 징기스 칸부터 엄청나게 영토를 확장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사실 원나라는 제국의 일부에 불과했다.
원나라의 황제는 몽골제국의 대칸이기도 했으며 제국 전역 부락에 대하여 종주권을 행사하고 있었다.
비록 원나라는 사라졌지만 중원의 영토만을 잃었을 뿐, 제국 자체는 여전히 존재했던 것이다.
중원의 군대가 끊임없이 북벌을 시도했던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원순제가 사망한 이후에도 명은 지속적으로 북벌을 단행했고, 심지어 초원의 악몽으로 회자되는 서달(徐達)이라는 대장군은 초원의 근거지라 할 수 있는 대본영까지 밀고 들어온 적도 있었다.
서달은 실로 대단한 지휘관이었다.
심지어 ‘그가 서 있는 곳이 곧 만리장성’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였다.
그런 그를 저지한 것은 다름 아닌 대자연.
바로 광활한 초원이었다.
명의 군대는 전선이 너무 길어지자 결국 뒤를 받쳐 주지 못하고 투라라고 부르던 강 앞에서 진격을 포기했다.
지금의 대칸이 북쪽의 초원에 근거지를 마련한 이유도 그래서였다.
이후로도 몇 차례나 북벌을 단행했음에도 명이 성공을 거두지 못한 것도 보급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주공산이나 다름없는 초원의 남쪽 영토를 차지한 것이 바로 흑운사였다.
“어서 오십시오.”
앞으로 나선 바얀이 예의를 갖춰 대칸이 보낸 칙사를 맞이했다.
말에서 내린 칙사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규모에 적지 않게 당황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표정을 수습하며 바얀에게 다가가 대칸의 서한을 펼쳐 들었다.
“뛰어난 초원의 전사이자, 하치운의 아들 바얀의 용맹함과 지혜를 치하하노니…….”
그렇게 시작한 서한은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해 혈운사 토벌을 높이 평가했다.
아울러 상당한 양의 말과 양을 하사하는 것으로 바얀의 업적을 추켜세웠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바얀의 표정은 눈에 띄게 굳어 가기 시작했다.
온갖 수식어를 제외하고 나니 서한의 핵심은 의외로 간단했다.
―그곳의 중원인을 쫓아내고 바얀은 대칸의 알현을 위해 대본영으로 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