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326)
신마의선-326화(326/500)
신마의선 (326)
자금성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황극전(皇極殿).
본래는 봉천전(奉天殿)이라 불렸으나 최근 새로 즉위한 황제에 의해 이름이 바뀌었다.
이후 대신들과 함께 국사를 논하는 정전으로 쓰이고 있었다.
황제의 부름을 받고 황극전 앞에 대기하던 능소밀이 한 차례 주위를 둘러봤다.
이곳은 황궁 내에서도 요지 중의 요지.
게다가 천하의 대사가 결정되는 곳인지라 경계가 삼엄하기 짝이 없었다.
매번 이곳을 드나들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이 무거운 공기는 영 적응이 되지 않았다.
지금만 해도 그랬다.
청명한 하늘은 완연히 푸르고 높은데 황극전 주위로는 우중충한 구름이 드리운 것처럼 더없이 분위기가 무거웠다.
게다가 밖에서 들릴 만큼 옥신각신하는 대신들의 언성이 더해지니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렸다.
‘내 팔자도 참 사납구나.’
단악선이 돌아온 지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았건만…….
밀려 있던 서로의 이야기를 제대로 나누기도 전에 이곳에 끌려와야 하는 신세가 그저 한탄스러울 뿐이었다.
“저, 혹시…….”
능소밀이 곁에 선 환관을 향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대체 오늘의 어전 회의(御前會議) 주제가 대체 무엇이길래 저렇게 열띤 공방을 주고받는 것입니까?”
“흘흘. 저같이 미천한 화자(火者) 따위가 어찌 폐하께서 주재하시는 회의 내용을 알겠사옵니까?”
스스로 화자라 낮춰 말하는 환관의 말에 능소밀이 내심 코웃음을 쳤다.
유달리 얇은 입술과 창백한 얼굴을 지닌 환관.
소위 환관을 가리켜 화자니, 정신(淨身)이니 하지만 그 의미와 다르게 실상은 욕으로 쓰였다.
대놓고 고자라고 욕할 수 없으니 그리 돌려 욕하는 것이다.
하지만 저 유들유들한 겉모습에 속아 패가망신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특히 사례감(司禮監) 소속이 분명한 눈앞의 환관은 더욱 조심해야 했다.
명을 건국한 홍무제 주원장은 본래 환관을 무시하고 수많은 제약으로 그들을 옭아맸다.
과거 환관의 발호로 망국의 길로 접어든 후한이나 당과 같은 사례를 경계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직 철저하게 황실의 심부름꾼으로만 활용했으며 심지어 글을 익히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그 뒤를 이은 건문제 역시 조부의 정책을 그대로 이어 갔다.
그것이 결국 환관들의 반발을 야기했다.
처우에 대한 불만으로 인해 결국 그들은 반란에 가담했다.
조카를 황제에서 끌어내리기 위해 군사를 일으킨 영락제.
그와 내통하여 역모를 성공시킨 것이다.
이후 환관의 처우는 물론이고 위상 역시 크게 달라졌다.
영락제는 홍무제의 유지를 뒤엎고 자신을 도운 환관들에게 특혜를 주기 시작했다.
심지어 감찰과 정보 수집에 특화된 기구인 금의위와 별도로 초법적인 특무 기관인 동창을 설립했고, 그 책임자로 환관을 앉혔다.
동창이 다루는 정보는 실로 다양했다.
역모를 비롯한 각종 음모나 대소 신료의 약점은 말할 것도 없었고, 심지어 날씨나 시정의 물가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손을 거치지 않는 정보가 없었다.
하지만 주목적은 문무 관료와 황족을 감시하면서 꼬투리만 잡히면 잡아다 족치는 것이었다.
또한 환관들이 조정에 지닌 영향력은 비단 동창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각자가 속한 아문에서 저마다 정보를 수집하여 여러 공작 정치로 활용하였고, 이를 통해 황제의 권력을 강화시켰다.
물론 모든 환관이 전부 권력을 누리는 건 아니었다.
대다수의 환관은 그저 말단직에 머물며 잡일만 하다 조용히 은퇴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개중에 황제의 눈에 뜨이거나 기존의 연줄을 이용해 권력의 핵심에 다가서기도 했다.
그런 환관은 하나같이 권모술수에 능했고, 정치력까지 갖추고 있었다.
그들의 정점에 선 기구가 바로 사례감이었다.
동창의 우두머리인 병필태감조차 사례감의 우두머리인 장인태감의 아래였다.
따라서 사례감 소속의 환관은 함부로 무시할 수 없었다.
그 안에서도 귀계와 음모가 난무하는 만큼 어느 누가 권력의 핵심으로 부상할지 섣불리 짐작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에이, 태감(太監). 그러지 마시고, 아는 것 있으면 귀띔 좀 해 주십시오.”
그러면서 능소밀은 환관의 소매에 슬며시 무언가를 밀어 넣었다.
태감이라는 말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환관의 눈이 가늘게 휘어졌다.
본래 태감은 환관들이 맡고 있는 아문의 장을 뜻하지만 때로는 이처럼 존칭으로 쓰이기도 했다.
그래서 환관치고 태감이라 불리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 없었다.
“이건?”
“향낭(香囊)입니다. 이번에 서역에서 아주 질 좋은 용연향이 들어왔거든요. 폐하께 진상할 물품을 제하고, 상단에 배정받은 것 일부를 따로 조금 챙겨 두었습니다.”
“……!”
환관이 깜짝 놀라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자신들 대부분은 스스로의 의지와 상관없이 요실금을 지닌 경우가 많았다.
거세의 부작용 때문이다.
그래서 평소 냄새를 감추기 위해 향낭을 지니고 다녔다.
일반적으로 당귀나 천궁, 박하처럼 짙은 향기가 나는 한약재를 섞어 만들곤 했는데, 핵심 권력자인 태감들의 경우에는 간혹 값비싼 사향으로 대신하기도 했다.
그런데 용연향은 사향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비싼 향료였다.
사냥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사향과 달리 용연향은 간혹 바닷가에서 낮은 확률로 발견되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행운에 의지해야 했다.
그 가치가 높은 건 당연히 말할 것도 없었다.
무엇보다 환관의 입장에서 상관의 환심을 사기에 이보다 훌륭한 뇌물은 없었다.
당황하던 것도 잠시.
환관은 이내 침착함을 되찾고 능소밀을 바라봤다.
“본관과 같은 미관 말직에게 허락된 일은 지극히 한정적이옵니다. 해서 그와 같은 내용은 감히 입에 담을 수 없사옵니다.”
“그러십니까…….”
애써 실망감을 감추는 능소밀을 향해 환관이 슬며시 눈웃음을 건넸다.
그러곤 입술을 달싹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영문을 몰라 의아해하던 능소밀은 이내 상황을 깨닫고 화들짝 놀랐다.
한때 정보 단체를 이끌었던 경험이 있었던 만큼 능소밀은 독순술(讀脣術)도 익히고 있었다.
상대의 입술의 움직임과 표정을 통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내는 기술.
그래서 눈앞의 환관이 언급하는 내용을 파악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상대 역시 수화(手話)와는 대비되는 개념인 구화(口話)를 구사하고 있어 입술을 읽기 더욱 쉬웠다.
하지만 능소밀이 진짜 놀란 이유는 따로 있었다.
―……작은 불을 내 큰불을 막으려 했으나 오히려 그 불이 더욱 큰 위험이 되었으니, 이는 공보다 과가 크다 할 것입니다.
지금 서 있는 이곳과 황극전과의 거리는 얼추 잡아도 오십 장이 넘는 거리였다.
그런데 자신조차도 명확히 구분하기 힘든 목소리를 눈앞의 환관은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지청술(地廳術)!’
원래는 땅에 귀를 대고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를 분석하는 방법이었다.
그런데 눈앞의 환관은 귀를 바닥에 대기는커녕 꼿꼿하게 선 채 황극전 안에서 나누는 대화를 고스란히 입술 모양으로 옮기고 있었다.
아무래도 자신들은 알 수 없는 환관들만의 비전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비로소 능소밀은 그가 보통의 능구렁이가 아님을 깨달았다.
‘황궁은 무서운 곳이다.’
능소밀은 내심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확실히 한시도 방심할 수 없는 곳이었다.
그래도 어쨌거나 눈앞의 환관 덕분에 어전 회의에서 어떤 내용이 오가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이것들이?’
능소밀의 눈썹이 꿈틀했다.
서로 입장을 달리해 대치하고 있는 대신들의 대화를 전해 듣고 있자니 속에서 열불이 치밀어 오른 것이다.
그때였다.
“곧 폐하께서 부르실 것 같으니 의관을 정제하도록 하십시오.”
환관의 말에 능소밀이 표정을 수습했다.
그러곤 의복을 단정하게 정돈한 뒤 환관을 향해 정중하게 물었다.
“혹 실례가 안 된다면 태감의 함자를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환관이 조용히 웃었다.
“윤봉(尹鳳). 그것이 소관의 이름이옵니다.”
“그렇군요. 기억하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능소밀이 윤봉이라 자신을 밝힌 환관을 따라 황극전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 * *
“북쪽의 불온한 무리인 혈운사를 토벌한 것은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큰 공입니다!”
“하나 폐하, 그로 인해 더 큰 달단 부족이 만들어졌사옵니다. 작은 불을 내 큰불을 막으려 했으나 오히려 그 불이 더욱 큰 위험이 되었으니, 이는 공보다 과가 크다 할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의 우호 세력입니다. 실제로 가욕관의 책임자로부터 자세한 보고가 올라와 있지 않습니까?”
“오랑캐를 어찌 믿는단 말입니까? 수많은 세월과 노력을 쏟아부어 기껏 세를 약화해 북쪽으로 쫓아냈건만, 이래서야 의미가 없지 않소이까.”
“그렇사옵니다, 폐하. 이는 오히려 오랑캐의 발호를 부추기는 행위이옵니다. 섣불리 속단하고 예단하여 조정의 대계를 그르친 능가 소밀에게 엄벌을 내리셔야 합니다.”
“어허! 엄벌이라니! 능 경력은 폐하의 명을 받자와 북방의 혼란을 잠재운 공신이오! 포상을 내려도 부족할 판에 그 무슨 가당치 않은 말이외까.”
“그만.”
목에 핏대까지 세워 가며 서로를 몰아붙이던 대신들이 거짓말처럼 입을 다물었다.
단 한마디 말로 대신들의 발언을 중지시킨 황제가 손가락으로 옥좌의 팔걸이 부분을 두들겼다.
“경들의 의견도 나름 일리가 있으나 속단하긴 이르다. 하여 짐이 직접 능 경력의 입을 통해 의견을 듣고 판단하고자 한다.”
황제가 내관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능 경력은 도착했느냐?”
“예. 밖에서 기다리고 있사옵니다.”
“들라 이르라.”
잠시 후 황극전 안에 들어선 능소밀이 그 자리에 부복하며 대례를 올렸다.
“만세, 만세, 만만세! 신 능소밀이 지엄하신 황제 폐하를 알현하나이다.”
이미 이곳에서 오가는 논쟁을 파악한 능소밀은 보란 듯이 눈빛과 목소리에 당당함을 내비쳤다.
그런 능소밀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황제가 불쑥 입을 열었다.
“혈운사는 괴멸시켰다고?”
“모든 것이 위대하고 또 위대하신 황제 폐하의…….”
“됐다. 한데 결과적으로는 엉뚱하게 오랑캐 세력을 키워 준 꼴이 되었구나.”
황제의 눈빛은 어느새 차갑게 식어 있었다.
“듣자니 그 일련의 상황에 너와 네 무리들의 역할이 적지 않다 들었다. 이에 관해 할 말이 있느냐?”
흩어져 있던 달단의 부족들이 하나의 세력으로 결집한 것은 당장은 아니더라도 훗날의 화근이 될 소지가 다분했다.
대답 여하에 따라 이 자리에서 능소밀의 생사가 결정되리라.
능소밀이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쉰 것도 그때였다.
“모든 것이 소신의 불찰이옵니다.”
“네 과를 인정한다는 뜻이냐?”
황제는 일순 당황했다.
설마 능소밀이 이처럼 선선히 자신의 책임을 인정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대신들이 그러하듯, 적어도 변명을 하거나 그에 준하는 이유를 들어 책임을 회피하리라 여겼건만…….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혈운사가 그리 약할지는 정녕 몰랐나이다.”
황제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혈운사가 약했다?”
“소신의 계획대로였다면 혈운사와 달단 부족 연합은 마지막 대결전에서 서로의 힘을 소진하고 양패구상을 했어야 하옵니다. 적어도 달단 부족 연합이 막대한 타격을 입어 재기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리리라 예상했건만…….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혈운사가 너무 맥없이 무너져 보고를 듣는 저 또한 심히 당혹스러웠나이다.”
그러면서 능소밀은 슬쩍 병부 상서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병부에서조차 좀처럼 놈들을 뿌리 뽑지 못하고 있다 하기에 꽤 강한 자들이라 여긴 제 실수이옵니다.”
자연스럽게 병부를 걸고넘어지는 능소밀의 발언에 병부의 책임자인 상서가 발끈했다.
“그거야 무림인들이 합류했기 때문…….”
능소밀이 피식 웃으며 그 말을 잘랐다.
“무림인이라 해 봐야 고작 스무 명 남짓입니다. 그들의 무공이 아무리 대단하다 한들 어찌 대명의 군세와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도 여느 장수들처럼 기마에 능한 자들도 아닌데 말입니다.”
“그, 그건…….”
당황한 병부 상서가 말을 잇지 못하는 사이 능소밀이 다시 한 번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겨우 그런 놈들을 왜 아직까지 토벌하지 못하고 있었는지, 소신은 이해를 못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