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327)
신마의선-327화(327/500)
신마의선 (327)
“뭐, 뭐라?”
능소밀의 말에 병부 상서가 기함했다.
‘저 미친놈은 대체 왜?’
기껏 열심히 그를 비호해 준 병부 상서로서는 그저 황당하고 기가 막힐 뿐이었다.
왜 호부가 아닌 자신을 걸고넘어지는 건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암암리에 금룡상단을 지원한 호부상서 양소 역시 당황스럽긴 마찬가지.
반면 황제는 오히려 그 점이 기꺼웠다.
능소밀이 육부 가운데 어느 곳에도 선을 대지 않고 있다는 것이 더욱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당혹감과 분노가 한데 뒤섞인 여러 대신들의 눈빛을 뒤로한 채 능소밀이 계속해서 말을 이어 갔다.
“이제 와 다른 이를 탓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모든 것이 제 소관이고 제 판단 실수로 비롯된 것이니 그 어떤 벌이라도 달게 받겠나이다. 다만…….”
“다만?”
“이후 벌어진 상황에 대해 간언하도록 허락해 주소서.”
그 말에 황제가 흥미를 보였다.
“허한다.”
능소밀이 내심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새로운 달단 부족의 연합은 활용하기에 따라 폐하께 아주 큰 득이 될 것이옵니다.”
“골칫거리가 아니라 득이 된다라?”
“그렇사옵니다.”
능소밀이 준비했던 한 방을 터트렸다.
“이번에 세력을 키워 크게 융성한 부족 연합. 그들을 이끌고 있는 자는 바얀이라는 족장으로, 우리 쪽 사람들을 형제라 칭할 만큼 우호적인 관계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지난번 소신이 언급했던 이이제이의 묘를 살려 오랑캐로 하여금 오랑캐를 상대하게 하소서.”
“그게 가능하겠느냐?”
비록 북방으로 쫓겨났다 하나 저들의 단합력이 얼마나 굳건한지 익히 아는 황제로서는 선뜻 확신할 수 없었다.
“물론이옵니다.”
능소밀이 기다렸다는 듯 재빨리 말을 이어 갔다.
“최근 저들의 대족장인 대칸이 보낸 칙사를 무시하고 그냥 돌려보낸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황제의 눈에 놀라움이 떠올랐다.
“그게 사실이더냐?”
“감히 제가 어찌 황상께 거짓을 고하겠습니까? 당시 그는 대칸의 칙사를 향해 ‘혈운사에게 자신들이 죽어 갈 때 칸은 대체 무엇을 했느냐.’며 원망을 드러냈다 합니다. 게다가 우리 쪽 인물들을 추방하라는 대칸의 명령을 거부하고 끝까지 예의를 갖추어 환송했다고 합니다.”
황제의 표정이 풀리는 것을 확인한 능소밀이 가져온 상자를 앞으로 내밀었다.
“바얀이라는 자 휘하에 속한 이십여 부족장들이 우호의 상징으로 보내온 자신들의 깃발이옵니다.”
혹시라도 다른 대신들이 딴지를 걸까 싶어 능소밀이 재빨리 말을 덧붙였다.
“그 과정을 직접 본 사람들이 적지 않으니 확인은 어렵지 않을 것이옵니다.”
“이이제이라…….”
말끝을 흐리며 고심하는 황제의 모습에 능소밀이 설득을 계속했다.
“그들을 폐하의 그늘 아래 두면 여러모로 쓸모가 많을 것이옵니다. 만에 하나 있을지 모를 달단의 침공이나 마교의 발호도 저들이 일차적으로 폐하의 방벽이 될 터이니, 그만큼 대응할 여력이 충분할 것이옵니다. 아울러 북쪽에 근거지를 두고 있는 대칸의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그만. 충분히 들었노라.”
황제가 손을 들어 능소밀의 말을 잘랐다.
이쯤 되니 황제도 능소밀의 의견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혹, 그에 따른 계획을 수립해 놓은 것이 있느냐?”
능소밀이 곧장 대답했다.
“저들을 완벽하게 폐하의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한 가지 조건이 필요하옵니다.”
“조건?”
“예. 그들이 신마상단과 서역 사이의 교역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셔야 합니다. 가능하다면 관문을 통과할 수 있는 권한까지도 부여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 말에 대신들이 곧장 반발하고 나섰다.
“그런 말도 안 되는!”
“관문을 만든 이유가 무엇이오? 바로 오랑캐가 두 번 다시 중원 땅을 밟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요!”
“저들이 한순간 돌변해 입장을 달리한다면?”
“폐하! 아니 될 말이옵니다. 이야말로 스스로 문을 열고 절까지 해 가며 도둑을 맞이하는 개문이읍도(開門而揖盜)의 우를 범하는 것이옵니다.”
황제가 손을 들어 능소밀을 성토하는 대신들의 입을 닫게 만들었다.
그러곤 물었다.
“그리해야 하는 이유가 있겠지?”
“물론이옵니다.”
“계속하라.”
“폐하의 성덕과 대칸의 부덕함이 비교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비교?”
“예. 대칸을 따르는 자들은 여전히 배고프고 부족한 채로 고단한 삶을 이어 가고 있사옵니다. 반대로 하해와 같은 폐하의 성덕을 입은 부족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풍족해질 것입니다. 이는 무엇으로도 메울 수 없는 차이가 되어 오랑캐들 사이에서 갈등을 일으키는 원인이 될 것입니다.”
풍요를 누려 본 자들은 다시 굶주림을 자초할 수 없는 법.
“시간이 지날수록 폐하의 그늘에 들기를 원하는 자들이 더욱 늘어날 것입니다. 반대로 대칸의 힘은 약해질 것이 자명하옵니다. 무엇보다…….”
“……?”
“조공 무역과 같이 조정의 세수를 낭비하지 않아도 되니, 이보다 나은 일거양득의 효과는 누리지 못할 것입니다.”
“과연…….”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이던 황제가 다시 입을 연 것은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였다.
“하나 네 제안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이어진 황제의 말에 능소밀은 내심 뜨끔했다.
“그들이 지닌 호의와 신뢰는 신마상단에 한정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대의 충심은 의심치 않으나 신마상단은?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적이 더욱 위험한 법. 행여라도 신마상단이 다른 마음을 품는다면 어찌할 텐가?”
그래도 나름 상황을 예리하게 파악하는 안목은 지니고 있었던 것일까.
핵심을 짚는 황제의 말에 능소밀이 서둘러 대답했다.
“그러한 일은 결코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 되는 일! 신마상단은 앞으로도 계속 변함없이 충심으로 폐하를 따를 것이옵니다.”
“무작정 네 말만 믿고 그와 같은 대사를 결정하라는 뜻이냐?”
“폐하의 근심을 해결할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다만 소신의 재량으로는 감히 사안의 가부를 가늠하기가 어려워 입에 담지 못하고 있었나이다.”
“무엇이냐? 말하라.”
“바로 무위를 승격시키는 것입니다.”
“승격?”
“예. 현재 현(縣)인 무위를 연경(延慶)과 보안(保安)처럼 주(州)로 승격시키는 것이옵니다. 그리고 그곳에 정규군을 주둔시키면 관리와 감시가 동시에 될 것이옵니다.”
“무위를 직예주(直隶州)로 삼으라는 뜻이냐?”
경사(京師)인 북경과 남경 주변에 행정 기구인 포정사를 설치하지 않고, 직접 경사에 예속시키는 구역이 바로 직예였다.
이에 병부뿐만 아니라 능소밀을 견제하던 호부와 다른 육부의 대신들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황제가 대신들을 향해 물었다.
“다들 어찌 생각하느냐?”
신하들은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능소밀을 계속 견제해 온 호부로서는 말릴 이유가 없었다.
정규군을 둔다는 것 자체가 스스로 족쇄를 차겠다는 의미와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다.
하나 그 안에 담긴 저의를 파악하지 못했기에 선뜻 대답하기 망설여졌다.
그리고 이는 능소밀 편에 서 있던 이부와 근래 들어 노선을 달리한 병부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찌 말들이 없는가?”
황제가 재차 다그치자 대신들이 마지못해 대답했다.
“묘, 묘안이라 생각됩니다.”
“좋은 의견이라 사료됩니다.”
대신들 중 어느 누구도 반대할 수가 없었다.
능요능설(能要能說)이라 불릴 만큼 이미 당대 최고의 달변가로 등극한 능소밀이었다.
섣불리 입을 열었다간 되레 상대의 요사한 논리에 역공을 당할 소지가 컸다.
거기에 명분까지 거머쥔 이상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화려한 언변을 당해 낼 수 없었다.
한 차례 고개를 끄덕인 황제를 통해 재가의 명령이 떨어졌다.
“능 경력의 제안은 실로 타당하도다. 오직 충심에서 발로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의견일 터. 해서 무위를 순천부(順天府)와 마찬가지로 별도의 포정사를 두지 않는 직예로 삼을 것이다. 아울러 능가 소밀을 그곳의 지주(知州)로 임명하노니, 능 지주는 장관으로서 그 소임을 다하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만족스러운 결과를 이끌어 낸 능소밀은 내심 쾌재를 불렀다.
이로써 무위의 안전을 오롯이 조정의 몫으로 떠넘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살짝 당황했다.
‘내가…… 지주대인?’
종오품의 품계인 지주는 정칠품인 지현은 말할 것도 없었고, 현재의 직책인 경력보다 몇 단계나 높았다.
그사이 황제가 말을 이어 갔다.
“또한 무위에 주둔할 정규군의 책임자는 병부가 아닌, 오군도독부(五軍都督府) 산하의 장수로 임명하여 독립적인 감찰 권한을 부여하노라.”
능소밀은 황제의 의중을 곧바로 파악했다.
병부와 오군도독부는 군권을 놓고 경쟁하는 사이.
서로 견제하는 구조를 확립해 철저하게 무위를 감시하겠다는 의도였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애초부터 능소밀의 목적은 무위의 안전이었기 때문이다.
“현명하신 결정이옵니다.”
병부를 제외한 모든 대신들이 황제의 결정에 수긍했다.
이로써 어전 회의의 가장 큰 문제를 해결한 황제가 한결 가벼워진 표정으로 능소밀을 바라봤다.
그러곤 넌지시 입을 열었다.
“공과의 판단은 마쳤고, 공을 세운 능 지주는 품계를 올려 주는 것으로 포상을 했으니 불만은 없을 터. 하나 이번 일을 주도하여 성공한 신마상단에게도 상을 내려야 할 것인데, 어떤 것이 적당하다 여기느냐?”
능소밀이 겸손하게 대답했다.
“폐하께서는 이미 그들에게 서역과의 거래에 관한 권한을 허락하셨나이다. 상단에게 있어 그보다 후한 상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렇다 해도 그들이 세운 공에 비하면 부족하다 할 것이다. 이를 제대로 치하하지 않는다면 이야말로 짐의 체면을 깎는 일. 능 지주는 합당한 포상안을 궁리하여 간언하라.”
잠시 고민하던 능소밀은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폐하께 충성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면 어떻습니까?”
“충성할 수 있는 기회?”
회심의 미소를 머금은 능소밀이 황제 곁을 지키던 환관에게 시선을 던졌다.
“소신이 폐하께 진상할 물품 중에 붉은 상자가 있사온데, 반입을 허해 주신다면 직접 보여 드리고 설명하고자 하옵니다.”
“그리하라.”
황제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환관들이 능소밀이 챙겨 온 상자를 가져와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 안에는 비단이 들어 있었다.
“……?”
황제의 눈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이는 환관들과 대신들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상자 안에 들어 있는 비단은 염색된 색사(色絲)로 문양을 넣어 두텁게 짠 금(錦)도 아니었고, 여러 종류의 문양(文樣)을 다양하게 섞어 독특한 결이 나타나는 능(綾)도 아니었다.
하물며 금보다 아래로 치는 단(緞)도 아니었다.
다양한 종류들 가운데 크게 가치가 떨어지는 견(絹).
명주실 자체만으로 짜기에 성글고 얇은 데다, 특별한 무늬도 없는 지극히 평범한 비단이었다.
하지만 능소밀이 이를 꺼내 펼쳐 들자 곳곳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 안에서 금방이라도 살아서 하늘로 날아오를 것 같은 용이 그려져 있었다.
주로 황실의 서화용(書畵用)으로는 능이 많이 사용되지만, 민간에서는 이처럼 평범한 견을 화견(畵絹)으로 사용하곤 했다.
그런데 비단의 품질을 떠나 그 안에 그려진 그림은 실로 범상치 않았다.
심지어 황제조차 어좌에서 엉덩이를 들썩일 정도였다.
눈치 빠른 환관들이 재빨리 그림을 황제 앞으로 가져갔다.
“오오!”
구름을 헤치며 날아오르는 화폭을 유심히 들여다보던 황제가 새삼 감탄하며 좀처럼 눈을 떼지 못했다.
그 모습에 능소밀이 회심의 미소를 머금었다.
‘역시 염 대야 어르신!’
그림을 그린 사람은 초악량의 친우인 염사인이었다.
“신마상단에게 비단을 진상할 기회를 주신다면, 저들 또한 크게 기뻐할 것입니다.”
“고작 그것만으로 포상이 되겠느냐?”
황제의 반문에 능소밀이 곧장 대답했다.
“물론이옵니다. 그들에게 있어 이는 더할 나위 없는 명예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 정도의 귀물은 대량 생산이 불가하기에 오직 폐하께만 진상할 수 있사옵니다.”
단번에 그림에 마음을 빼앗긴 황제는 흔쾌히 이를 수락했다.
“좋다. 허하노라.”
이내 고개를 조아리고 있던 내관에게 물었다.
“황실에 비단을 납품하는 상단이 어디더냐?”
“사십 년 넘게 금룡상단이 도맡아 오고 있나이다.”
“앞으로는 신마상단에게 맡기도록 하지.”
“그리 조치하도록 하겠나이다.”
황제의 입장에서도 비단 한 품목만이라면 그리 큰 부담이 아니었다.
하지만 호부상서 양소의 얼굴은 해쓱해졌다.
양소가 서둘러 입을 열었다.
“폐하. 비단은 지금까지 금룡상단에서 오랫동안 공급하던 품목입니다. 큰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닌데, 갑자기 이를 바꾼다면 분명 말이 나올 것…….”
능소밀이 재빨리 끼어들어 그 말을 잘랐다.
“폐하께서는 천하에서 가장 좋은 걸 쓰셔야 합니다. 더 좋은 것이 있다면 당연히 그것을 쓰는 게 당연하지 않습니까?”
“이보게, 능 지주!”
“뭐가 문제입니까? 지금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금룡상단에서 이보다 더 좋은 걸 바치면 되는 것 아닙니까? 전에 언급하셨던 대로 형평성과 공정한 경쟁 원리에 입각해서요.”
“……!”
양소는 할 말을 잃었다.
금룡상단이 안문관을 넘을 수 있도록 그가 주장했던 논리.
그것이 고스란히 돌아와 자신의 목을 죄어 오니 도저히 반박할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