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328)
신마의선-328화(328/500)
신마의선 (328)
그런데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능소밀은 한술 더 떠 양소를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금룡상단이 안문관을 넘도록 힘을 실어 주신 분이 호부 상서셨지요?”
양소가 뜨끔해 눈을 부릅떴다.
“그게 지금 사안과 무슨 관련이 있단 말인가?”
“아직 보고를 못 받으신 겁니까? 아니면 애써 외면하고 계시는 겁니까?”
“대체 무엇을…….”
언젠가 단악선이 제갈연을 몰아붙였던 당시를 떠올린 능소밀이 양소를 궁지로 몰아넣었다.
“계속 이처럼 안일하게 폐하를 보필하셔도 괜찮은 겁니까? 모르신다면 무능이요, 알고도 언급을 피하는 거면 황상에 대한 불충일 텐데요?”
“……!”
“금룡상단으로 인해 하마터면 신마상단까지 위험에 처할 뻔했습니다. 이 사실을 정녕 모르신다는 말입니까?”
능소밀은 공을 부풀리기에 급급한 나머지 무리하게 혈운사의 영역까지 들어선 금룡상단의 실책을 소상하게 열거했다.
“게다가 신마상단 측에서 직접 찾아가 충고했음에도 불구하고 과욕에 눈이 멀어 이를 무시하고 무리한 토벌을 감행했지요. 그로 인해 자칫 혈운사 토벌 계획 전체가 실패할 수도 있었습니다. 한데 당연히 그와 관련한 문책이 있어야 함에도 아직까지 관련자들의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들었습니다.”
관짝에 밀어 넣는 것으로도 모자랐던 것일까.
능소밀은 기어이 관에 못질까지 해 버렸다.
“이것이야말로 직무 유기 아니온지요?”
창백한 얼굴로 쩔쩔매는 양소의 모습에 황제가 눈살을 찌푸리며 한숨을 흘렸다.
“더 할 말이 있는가?”
“……없사옵니다.”
힘없는 양소의 대답에 황제가 상황을 정리했다.
“앞으로 황실의 비단은 신마상단에서 납품하도록. 금룡상단에 대한 문책은 별도의 조사를 거쳐 결정할 것이다. 능 지주는 그만 물러가도록.”
“성은이 망극하나이다.”
절을 올린 능소밀이 무릎걸음으로 물러설 때였다.
뒤늦게 생각난 듯 황제가 불쑥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이번에도 그대는 원하는 바를 모두 얻어 가는군?”
“모든 것이 하해와 같은 폐하의 성은…….”
“입바른 소리는 되었다.”
능소밀의 말을 자른 황제가 의미심장한 웃음을 말아 올렸다.
“그나저나 신마의선이라 했던가?”
이어진 황제의 말에 능소밀이 깜짝 놀랐다.
“짐이 그 아이를 봐야겠다.”
“예?”
당황한 능소밀의 반문에 황제는 흥미로운 눈빛을 흘렸다.
“재미있군? 노회한 대신들을 상대로 눈 하나 깜짝 않던 그대가 이처럼 동요하다니.”
“그, 그건…….”
“조만간 함께 입궁하도록.”
단호한 황제의 명령에 능소밀이 침음했다.
“……그리하겠나이다.”
내심 한숨을 흘리며 능소밀이 물러났다.
그 와중에도 능소밀은 뜻 모를 미소를 흘리는 황제의 눈빛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 * *
무위로 돌아온 능소밀은 곧장 단악선을 찾아갔다.
황궁에서 있었던 일을 보고하자 단악선이 반색했다.
“와! 무위가 이제 주로 승격하는 건가요? 능 아저씨가 책임자로 부임하시고요?”
“어쩌다 보니……. 그리되었습니다.”
“정말 대단하세요.”
단악선의 감탄에 능소밀은 어색하게 웃었다.
무위의 승격은 다분히 의도한 바였지만 행정 구역을 다스리는 관리로 내정된 것은 계산 밖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한쪽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던 사무심이 능소밀을 추켜세웠다.
“이로써 마교도 함부로 무위를 노리지 못하겠군. 황실을 적으로 돌리는 건 저들도 부담스러울 테니까. 훌륭하네, 능 아우. 노련한 대신들을 상대하기가 쉽지 않았을 터인데……. 아주 잘해 주었어.”
“저야 곡주님과 선배님들께서 차려 놓은 밥상에 젓가락만 올렸을 뿐인걸요. 혈운사 토벌이라는 성과 덕분에 유리하게 대화를 이끌어 갈 수 있었습니다.”
능소밀의 겸양에 단악선이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 해도 대단한 건 대단한 거예요. 아마 다른 사람이었다면 절대 해내지 못했을 테니까요. 그렇지 않나요?”
단악선의 말에 초악량과 한설화도 고개를 끄덕였다.
초원의 일을 비롯해 암암리에 음모를 진행하는 것으로 보아 마교 역시 당장은 전면전을 벌이지 않을 터.
당분간은 무위의 안전이 확보된 셈이었다.
사파의 무림인들이 버티고 있다 하나 무위의 주민 대다수는 무공을 모르는 일반 백성이었다.
더구나 서역의 상단을 비롯해 중원 각지에서 지금도 사람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그런 만큼 치안 유지와 안전 확보를 위해서도 군대의 주둔은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그나저나 지주라니……. 이제 능 대인이라 불러야 하는 것인가?”
웃으며 건넨 초악량의 농담에 능소밀이 정색했다.
“아이고, 그냥 이름 석 자면 충분합니다. 어차피 제가 원해서 하는 벼슬도 아닌걸요.”
“아니지, 아무리 그래도 나라의 법도가 지엄하거늘. 아! 그러고 보니 이제 이곳 출입도 자제해야겠군?”
“예?”
“관무 불가침. 이제 본격적인 벼슬길에 올랐으니 당연히 무림과는 거리를 둬야 할 게 아닌가?”
잠시 당황해 입술만 벙긋거리던 능소밀이 정색하며 돌아섰다.
“당장 사직서를 올리고 오겠습니다.”
그런 능소밀은 단악선이 만류했다.
“진정하세요. 초 아저씨께서 농담하신 거예요.”
“농담……이요?”
능소밀과 시선이 마주치자 초악량이 실소했다.
“쯧. 그렇게 담이 작아서야……. 황제와 대신들은 어찌 상대했누?”
반신반의하며 초악량의 표정을 살핀 능소밀은 뒤늦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심장에 안 좋습니다. 그런 농담.”
그러나 한편으로는 감개가 무량했다.
살다 보니 이렇게 혈수존자와 농담을 주고받는 날도 오는 것이다.
“잘 해내실 거라고 믿어요. 누구보다 이곳 무위를 아끼시는 분이시잖아요.”
단악선의 격려에 능소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한번 애써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다 문득 생각난 듯 능소밀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황제를 알현하는 건 괜찮으시겠습니까?”
“어쩔 수 없잖아요. 어차피 한 번은 만나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니 너무 염려 마세요.”
초야에 몸을 묻거나 심산유곡에 은거하지 않는 이상 피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한설화가 불쑥 입을 연 것도 그때였다.
“나도 함께 가마.”
“예?”
“으음?”
능소밀과 초악량이 놀란 눈으로 한설화를 응시했다.
그만큼 한설화가 꺼낸 말이 뜻밖이었기 때문이다.
뒤늦게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한 한설화가 두 사람을 노려봤다.
“왜 표정이 그렇지?”
“그야…….”
능소밀이 곤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며 말끝을 흐렸다.
반면 초악량은 대놓고 눈살을 찌푸렸다.
“무림에서 사고를 친다면 그나마 수습이 가능하지만 황궁만큼은 내 영향 밖이다.”
범계위에 가려져서 그렇지 사실 괴팍하고 제멋대로인 성격으로 따지자면 한설화도 범계위 못지않았다.
한설화가 어이없다는 눈빛을 흘리며 그 말을 잘랐다.
“내가 당신들 같은 줄 알아?”
그 말에 초악량이 발끈했다.
“당신들? 설마 방금 나를 범가 그 녀석과 한데 엮어 취급한 것이냐?”
상대할 가치도 없다는 듯 한설화가 고개를 돌려 버렸다.
“야! 너…….”
분위기가 험악해질 것 같자 단악선이 재빨리 나섰다.
“아주머니께서 함께 가 주신다면 저야 든든하죠.”
다른 사람들과 달리 단악선은 크게 염려하지 않았다.
한설화가 이렇게 고집을 부리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으리라 짐작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한설화가 의미 모를 말을 중얼거렸다.
“다른 곳도 아닌 황실이라면 나만이 유일하게 단 의원의 안전을 책임질 수 있어.”
“그건 또 무슨 소리냐?”
초악량이 되물었지만 한설화는 굳이 설명할 필요를 못 느꼈다.
연달아 무시당한 초악량의 눈빛이 대번 사나워졌다.
“이게 진짜……?”
이때 뒤늦게 무언가가 생각난 듯 사무심이 초악량을 향해 물었다.
“그런데 초 선배님께서는 여기 이렇게 계셔도 되는 겁니까?”
“음?”
“지난번에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염 대야 어르신께서 사천에서 식솔들을 대동하고 이쪽으로 오고 계시다고. 오늘 감숙성에 들어오신다 했으니 지금쯤 아마 서화의 객잔에서 여정을 풀고 계실 겁니다.”
초악량의 얼굴에 당혹감이 떠올랐다.
오랜만에 돌아와 여독을 풀며 모처럼의 여유를 만끽하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게 오늘이었나?”
“예. 난주에서 만나기로 하셨으니 서두르지 않으면…….”
사무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초악량의 신형이 그대로 꺼지듯 사라졌다.
“앗!”
뒤늦게 무언가를 깨달은 능소밀도 초악량을 따라 신형을 날렸다.
“저도 함께 다녀오겠습니다.”
“아저씨도요?”
“예, 염 대야 어르신께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능소밀의 신형이 한 줄기 빛살처럼 허공을 갈랐다.
순식간에 작은 점으로 화해 사라지는 능소밀의 뒷모습을 보며 단악선이 작게 탄성을 흘렸다.
“능 아저씨도 경공이 많이 느셨네요.”
사무심이 웃으며 그 말을 받았다.
“시간이 날 때마다 수련을 했으니까요. 특히 경공은 시간을 쪼개 가며 열심히 연마하더군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조금이라도 빨리 움직여야 맡은 일을 다 처리할 수 있다더군요.”
“아!”
벌써 시야에서 사라진 능소밀.
그곳을 응시하는 단악선의 눈 위로 안타까운 감정이 떠올랐다.
* * *
늦은 밤.
염사인은 잠을 청하기 위해 침상에 몸을 눕혔다.
눈을 감기 무섭게 잠이 쏟아졌다.
아무리 날이 풀렸다곤 하나 사천에서 이곳까지 오는 여정은 실로 만만치 않았다.
노구를 이끌고 움직이는 여행 자체가 고단한 일인 것이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수마를 벗 삼아 가물가물 의식이 흐려지던 그때.
불현듯 어디선가 불어오는 한 줄기 바람에 염사인이 눈을 떴다.
달빛을 등진 채 머리맡에 드리운 시커먼 인영 하나.
이를 발견한 염사인이 미간을 찡그렸다.
“도둑이면 헛다리 짚은 거고, 귀신이면 옆방 늙은이나 데려가라.”
불퉁스러운 염사인의 음성에 초악량이 슬쩍 웃었다.
“날세.”
귀에 익은 음성에 염사인이 나직이 한숨을 내쉬더니 천천히 신형을 일으켰다.
“내 이럴 줄 알았다.”
이어진 염사인의 말에 초악량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천지 분간 못 하고 이리저리 들이받고 다니더니 결국 객사를 면치 못하는구나.”
“뭐?”
“얼굴 봤으니 됐다. 그러니 이 세상 미련 털어 내고 어여 삼도천 건너가. 괜히 밤이슬 맞아 가며 이승 헤매 봐야 좋은 소리 못 들어. 날 밝는 대로 천도제는 제대로 치러 주마. 지전도 많이 보태 주고.”
“이젠 아예 원귀 취급이냐?”
초악량이 쓰게 웃으며 유등에 불을 밝혔다.
“아주 죽으라고 고사를 지내지?”
“저 멀리 새외 어딘가를 헤매고 있다 들었는데?”
“돌아왔지. 얼마 전에.”
“그나저나 그사이 직업을 갈아탔냐? 도둑놈처럼 밤늦게 남의 방은 왜 기웃거려?”
“보고 싶어서?”
염사인이 실소했다.
“퍽이나.”
초악량이 웃으며 돌아섰다.
“더 자게. 피곤해 보이는군.”
“잘 자는 놈 깨워 놓고 그게 할 소리냐?”
“그럼 술이나 한잔할까?”
초악량이 품속에서 술병 하나를 꺼내 마개를 열었다.
방 안 가득 퍼지며 코끝을 사로잡는 그윽한 향기에 염사인이 깜짝 놀라 외쳤다.
“설마…… 그거 도원향인가?”
“마셔 본 적 있나?”
“십 년 전쯤에 딱 한 번.”
염사인이 반색하며 뛰어내리듯 침상에서 내려왔다.
그런데 그때였다.
“단 의원님께서 금주하라 하셨는데요.”
옆방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염사인이 당황했다.
초악량은 그 목소리의 주인이 오랜 세월 염사인을 보필해 온 장 총관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염사인이 투덜거렸다.
“자네 아직까지 안 자고 있었나?”
“…….”
이번에는 돌아오는 대답이 없었다.
초악량이 고소를 머금었다.
“그럼 차나 한잔…….”
염사인이 목소리를 낮춰 그 말을 잘랐다.
“그게 사람이 할 말이냐? 도원향이 눈앞에 있는데 차가 목구멍으로 넘어가겠어?”
그러곤 눈짓으로 도원향이 든 술병을 가리켰다.
어서 내놓으라는 무언의 압박에 초악량이 술병을 건네려던 찰나.
“단 의원님께 이릅니다?”
다시 한 번 옆방에서 들려온 총관의 목소리에 염사인이 분통을 터트렸다.
“세상 귀신들은 다 뭐 하나 몰라? 저 노괴 안 잡아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