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329)
신마의선-329화(329/500)
신마의선 (329)
다음 날 아침.
느지막이 잠에서 깬 염사인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눈을 뜨기 무섭게 자신의 머리맡에 서 있는 누군가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간밤에 잠을 설친 탓에 헛것을 본 게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이내 상대의 얼굴이 눈에 익다는 것을 깨닫곤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동네 사람들은 왜 이리 하나같이 귀신 놀음을 좋아하는 겐가? 아니면 나를 귀신으로 만들 요량인가? 사람 놀라게 해 심장 떨어지게 하려고?”
“그럴 리가요.”
능소밀이 어색하게 웃었다.
그런 그에게 염사인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요즘 몹시 바쁘다더니 헛소문이었나 보구먼. 할 일 없이 늙은이 머리맡이나 지키고 서 있는 걸 보면 말이야.”
염사인이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자 능소밀이 재빨리 그를 부축했다.
“아무리 내가 골골한다지만 아직 남의 손을 빌릴 정도는 아니야.”
능소밀의 손길을 밀어낸 염사인이 지그시 그를 보며 물었다.
“뭔가? 아침 댓바람부터 이 늙은이를 귀찮게 하는 이유가?”
“하하. 아무리 바빠도 안부 인사는 드려야지요.”
“흰소리는 됐고. 본론만 말하게.”
“우선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보내 주신 비단 덕분에 황제를 알현하는 자리에서 우리 쪽에 유리하게 상황을 이끌 수 있었습니다.”
“난 또 뭐라고.”
염사인이 실소했다.
“그래도 헛살지는 않은 것 같아 다행이군. 내 마지막 작품이 황제에게 진상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면 그걸로 되었네.”
늦게나마 자신의 재능과 노력이 인정받는 것 같아 염사인은 내심 흡족했다.
이 정도면 인생 말년의 업적으로 삼기에 충분한 것이다.
그런데 그 순간 능소밀이 눈에 띄게 당황했다.
“예? 그게 마지막 작품이 되면 안 됩니다만?”
“무슨 소린가?”
“그, 그게…….”
“그럼 그렇지. 단순히 감사 인사만 하러 온 게 아니었군?”
“뭐, 겸사겸사…….”
말끝을 흐리는 능소밀을 염사인이 눈빛으로 다그쳤다.
나직이 한숨을 내쉰 능소밀이 염치없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앞으로도 황제에게 진상하는 비단만큼은 계속 맡아 주셨으면 합니다.”
그 말에 염사인이 대번 눈살을 찌푸렸다.
“지금 내 꼴을 보게. 이제는 붓을 들면 손이 떨려서 난도 제대로 치지 못해. 언제 관에 누울지 모를 늙은이더러 그게 할 소린가? 딴 사람 알아보게.”
염사인이 이처럼 단박에 거절할 줄 몰랐던지 능소밀은 잠시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어르신!”
능소밀이 갑자기 그 자리에 철퍼덕 엎드려 오체투지(五體投地) 했다.
“살려 주십시오!”
“갑자기 왜 이러나?”
“불쌍한 놈 한 번 살려 주신다 생각하시고 제발…….”
“흥! 앞길이 구만리처럼 창창한 자네가 불쌍하긴 뭐가 불쌍해? 골골하는 말년에 늙은 노새처럼 계속 일하라는 소리나 듣는 내가 더 불쌍하지.”
“아닙니다! 제가 염 대야 어르신보다 훨씬 더 불쌍합니다.”
이어진 능소밀의 말에 염사인이 멈칫했다.
“제가 모시는 분이 누군지 잊으셨습니까?”
“크흠.”
염사인이 어색하게 헛기침을 터트렸다.
“그러고 보니 자넬 무위로 끌고 온 사람이 초가 녀석이라고 했었지?”
능소밀이 한껏 불쌍한 표정을 지었다.
“예. 어르신 친구분이신 혈수존자 초 선배님이요. 둘도 없는 친우 사이시니 그분 성격이 어떠신지는 누구보다 잘 아시겠지요?”
염사인이 잠시 안타까운 눈빛을 흘렸다.
하지만 이내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도 어쩌겠나? 이왕 이렇게 된 거 마음이라도 편하게 그저 팔자려니 생각하게.”
“그럼 그건 아십니까?”
“또 뭐?”
“그런 분이 비단 초 선배님뿐만이 아니라는 거요. 망산초자 범 선배님과 빙옥선자 한 선배님……. 하나같이 괴팍하기로는 초 선배님께 밀리지 않는 분들이십니다.”
능소밀은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만 같았다.
그 모습에 염사인이 자신도 모르게 혀를 찼다.
“자넨 전생에 나라라도 팔아먹었나? 어쩌다 그런 인간들과 한데 엮여서……. 쯧.”
이쯤 되니 염사인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초악량으로도 모자라 범계위와 한설화라니.
그리고 능소밀은 흔들리는 염사인의 눈빛을 놓치지 않았다.
덥석.
염사인의 손을 꼭 붙잡은 능소밀이 간절하게 애원했다.
“살려 주십시오!”
“…….”
“어르신께서는 황제에게 진상할 것만 맡아 주시면 됩니다. 나머지 납품하는 비단들은 어르신께서 기술을 전수한 젊은 장인들과 합심해 어떻게든 해내겠습니다.”
“으음…….”
“우리가 황실에 비단을 납품한다는 것이 알려지면 중원 각지에서 주문이 빗발칠 테고, 그만큼 수익이 늘어날 것입니다. 허락만 하신다면 어르신을 따라 무위로 함께 이주한 사람들 역시 경제적으로 풍족한 삶을 누릴 수 있게 될 겁니다.”
그래도 여전히 대답을 망설이는 염사인의 모습에 능소밀이 결국 진짜 이유를 털어놓았다.
“우리가 황실에 반드시 비단을 납품해야 하는 이유는 또 있습니다.”
“그게 뭔가?”
“금룡상단에게 타격을 입히기 위해서입니다.”
“금룡상단? 중원 제일 상단이라는 그곳 말인가?”
“예.”
“굳이 그들을 적대할 이유가 있는가? 지금의 신마상단 규모를 생각하면…….”
순간 능소밀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놈들에게 복수하기 위해서입니다.”
“복수라니? 그들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길래?”
“그놈들 때문에 단 의원님께서 위험에 처했었거든요.”
“뭐라?”
화들짝 놀라 벌떡 일어서는 염사인을 향해 능소밀이 설명을 이어 갔다.
“놈들이 우리를 견제하기 위해 호부 상서를 비롯해 오군도독부와 각계 고위 관리들에게 막대한 돈을 풀었습니다.”
금룡상단이 돈으로 끌어모은 무림인들이 안문관을 통해 초원에 진입했고, 그들로 인해 단악선이 함정에 빠져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다는 이야기를 능소밀은 소상히 전했다.
“그런 처죽일 놈들이!”
“제 말이요!”
염사인이 극도로 분노해 노성을 터트리자 능소밀이 고개를 끄덕였다.
“놈들은 오랜 세월 황실에 비단의 납품을 독점하면서 상계에 독보적인 입지를 굳혔습니다. 이를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한 건 말할 것도 없고요. 그래서 놈들에게 가장 상징적인 물품인 비단을 빼앗아 올 겁니다.”
이를 통해 금룡상단은 명성에 큰 타격을 받을 터.
아울러 이는 다른 물품들의 판매에도 영향을 끼칠 것이 분명했다.
비단을 무기로 다른 물품들도 끼워 파는 형태를 취해 왔던 금룡상단에게 있어 자금줄의 근간을 뒤흔드는 가장 잔인한 복수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금의 흐름이 경색되고 마르다 보면 기존에 정계와의 단단했던 유착에도 금이 갈 터.
“하지만 어르신께서 도와주시지 않으면 방법이 없습니다.”
능소밀의 애원에 염사인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 그런 이유라면 당연히 도와야지. 이왕 칼을 뽑았다면 제대로 놈들에게 한 방 먹이게!”
“감사합니다, 어르신!”
염사인의 확답을 얻어 낸 능소밀은 비로소 안도하며 웃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럼 전 무위로 돌아가 어르신과 마을 사람들이 머물 곳을 다시 한 번 점검하겠습니다.”
“수고하게.”
“예, 그럼.”
정중하게 인사를 올리고 돌아선 능소밀에게 염사인이 몇 마디 말을 덧붙였다.
“이보게. 초가 그 녀석을 잘 부탁하네. 성격은 괴팍하고 행동도 제멋대로지만, 알고 보면 불쌍한 친구야.”
“하하, 염려 마십시오. 그게 제 일인걸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능소밀이 방문을 열었다.
그러곤 벼락을 맞은 것처럼 그 자리에 굳어 버렸다.
문 앞에 초악량이 서 있었기 때문이다.
“어, 언제부터 계셨습니까?”
“누구? 괴팍하고 불쌍한 나 말인가?”
초악량의 대답에 능소밀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자네가 염가 저 친구보다 불쌍하다고 울먹이던 때부터?”
“전부…… 들으셨군요.”
“뭐 어떤가. 없는 데서는 황제 욕도 한다는데, 뭘.”
초악량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었다.
그런데 그 모습에 능소밀은 더욱 소름이 끼쳤다.
입은 웃고 있는데 눈은 웃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천천히 뒷걸음질 친 능소밀이 염사인을 붙들고 늘어졌다.
“살려 주십시오, 어르신!”
“자네 나한테 목숨이라도 맡겨 놨나? 뭘 매번 살려 달래?”
싸늘한 초악량의 눈빛을 마주한 염사인이 슬그머니 능소밀의 손을 뿌리쳤다.
“크흠. 옛 어르신들 가르침 중에 이런 말이 있지. 입은 재앙이 드나드는 문이요, 혀는 몸을 자르는 칼이라고…….”
“어, 어르신?”
“자고로 입이 화근이라 했네. 자네는 구화지문(口禍之門)이란 말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새기는 게 좋을 게야.”
헛기침을 하며 애써 시선을 외면하는 염사인의 모습에 능소밀이 이번에는 진짜로 울상을 지었다.
황제 앞에서도 늘 당당하던 그였지만 지금은 눈앞이 캄캄했다.
* * *
그로부터 며칠 후.
염사인 일행과 함께 무위로 돌아온 초악량은 가장 먼저 의가로 향했다.
단악선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며칠째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는 의원들의 말에 발걸음을 돌렸다.
한데 막상 신마곡에 들어서자 평소와는 다른 고요한 적막이 그를 맞이했다.
고개를 갸웃하며 곳곳을 둘러보던 도중.
폭포 옆에 우두커니 서 있는 한설화를 발견할 수 있었다.
“단 의원은?”
초악량의 물음에 한설화는 폭포 너머에 위치해 있는 동굴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초악량이 쓰게 웃으며 반문했다.
“또?”
한설화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혈운사를 토벌하고 무위로 돌아온 지 한 달째.
단악선은 이따금 폭포 너머 동굴 속에 들어가곤 했다.
그리고 며칠째 두문불출하며 수련에 매진했다.
폭포가 시야뿐만 아니라 외부에서의 소음도 완벽하게 차단하기에 사실상 그보다 좋은 폐관 수련 장소는 찾기 힘들었다.
일용한 물품들이 모두 갖추어진 데다가 식수도 쉽게 구할 수 있어서 식사 대용으로 사용할 벽곡단 몇 개만 챙기면 되는 것이다.
“이번에는 며칠 째야?”
초악량의 물음에 한설화는 말없이 손가락을 펼쳐 보였다.
“나흘이나 저 안에 틀어박혀 있었다고?”
어째서 한설화가 망부석처럼 이곳을 지키고 있는지 초악량은 비로소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걸 기뻐해야 할지, 우려해야 할지 모르겠군.”
암존과의 싸움에서 자신의 한계를 맞닥뜨렸기 때문일까.
이곳에 돌아온 이후 단악선은 더욱 자신을 담금질하고 있었다.
벽을 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대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안쓰러웠다.
동시에 걱정도 앞섰다.
너무 빠른 성장은 그만큼 부작용을 동반할 소지가 크기 때문이다.
이미 단악선은 그 나이에 도달할 수 없을 만큼 높은 성취를 이룬 상태였다.
그런데도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스스로를 더욱 혹독하게 몰아붙이고 있었다.
‘문제는 그 기준이 너무 높다는 점이지.’
비슷한 또래가 아닌 자신들의 무위를 눈높이로 두고 있기에 단악선 본인이 만족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그렇다고 무작정 말릴 수만도 없었다.
단악선이 이토록 자신을 다그치며 수련에 매진하는 이유를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오롯이 서기 위해서인가…….”
의지가 강하면 하늘이 시험하고 의지가 약하면 이 땅이 조롱하니, 스스로 홀로 땅을 딛고 우뚝 선 자만이 능히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는 법이다.
실제로 지금도 단악선은 빠르게 강해지고 있었고, 그 발전 속도는 초악량 자신이나 한설화도 놀랄 정도였다.
흑야벌의 수장을 격퇴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단악선은 이미 상당한 고수의 반열에 올랐음을 스스로 증명해 냈다.
그것도 고작 열여섯 나이에 이뤄 낸 성과였다.
이는 무림 역사를 통틀어 전례를 찾기 힘든 경우.
가까이에서 직접 지켜보지 않았다면 자신들도 믿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가끔은 단악선에게 주어진 운명이 안타깝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그리고 이는 한설화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초악량이 나직하게 한숨을 흘렸다.
“그나저나 조만간 황제를 만나게 될 텐데, 그것도 걱정이군. 듣자니 꽤나 제멋대로인 성격인 것 같던데.”
그때까지 말이 없던 한설화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아무 일도 없을 거야. 내가 함께 갈 테니까.”
“황궁에 가겠다고 했던 말이 진심이었느냐?”
초악량의 반문에 한설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전에 다녀올 곳이 있어.”
“어디 가려고?”
초악량의 말을 무시한 채 한설화가 훌쩍 신형을 날렸다.
호법을 대신할 초악량이 왔으니 미뤄 두었던 일을 처리할 때가 된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찾아간 곳은 신마상단의 본점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한 선배님.”
예의를 갖춰 맞이하는 소적산을 향해 한설화가 불쑥 입을 열었다.
“돈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