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331)
신마의선-331화(331/500)
신마의선 (331)
신마곡을 나선 단악선은 곧장 마을로 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장곡의 집에 도착한 단악선은 초조한 얼굴로 문 앞을 서성이는 한 사람을 마주할 수 있었다.
“단 의원님!”
단악선을 발견한 장곡이 황급히 다가왔다.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눈 밑은 퀭했고 입술은 푸석하게 말라 있었다.
“산모는요?”
장곡이 단악선의 손을 붙들고 애원했다.
“제발 도와주십시오.”
그때였다.
대문이 열리며 한 사람이 걸어 나왔다.
희끗한 머리칼 때문에 정확한 나이를 짐작하긴 어려웠지만 매우 고집스런 눈과 입매를 지닌 노파였다. 그녀의 얼굴에는 감출 수 없는 무력감이 깊이 드리워져 있었다.
노파가 한 차례 한숨을 내쉬더니 힘없이 입을 열었다.
“들어가 보시우.”
그 말에 장곡의 눈빛이 흔들렸다.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는 남편을 산실 안에 들이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아직 아이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래도 마지막 작별 인사는 하고 보내야지.”
이어진 노파의 말에 장곡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마을에서 제일 실력이 뛰어나다고 알려진 산파가 손을 놓을 정도라니.
그만큼 현재 상황이 매우 심각하다는 의미였다.
“일단 아저씨가 아내분 옆을 지켜 주세요.”
충격을 받아 안색이 창백해진 장곡을 안으로 들여보낸 뒤 단악선이 노파를 향해 물었다.
“지금 상황이 어떤가요?”
“아주 고약하지.”
다시 한 차례 크게 한숨을 내쉰 노파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몹쓸 것. 가려면 혼자 갈 것이지…….”
이어진 노파의 말에 단악선이 깜짝 놀랐다.
“외롭겠지. 빛도 보지 못하고 가는 길이 두렵기도 할 테고……. 그래서 한사코 제 어미와 함께 가려는 게야.”
“그게 무슨 뜻이죠?”
“탯줄을 목에 감았수.”
진통 과정도 자연스러웠고, 이미 문도 열린 상태였다.
원래대로라면 진즉에 배 속에서 몸을 뒤집어 산도(産道)를 따라 나와야 했는데, 목에 감긴 탯줄 때문에 그러질 못하는 것이다.
그런 노파의 설명에 단악선은 의아함을 금치 못했다.
마치 아이가 태어나길 거부하고 있다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드물지만 아주 없는 일만은 아니라오.”
단악선의 눈빛을 읽은 노파가 지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직 스스로 숨을 쉬지 못할 뿐, 배 속의 아이도 엄연한 생명이우. 온전히 표현을 못한다 뿐이지, 의지가 없는 건 아니지.”
노파가 설명을 이어 갔다.
“산모가 힘들고 괴로워하면 그 심화(心火)를 배 속의 아이도 고스란히 느낀다우.”
이는 어느 정도 납득이 갔다.
산모와 태아는 탯줄로 연결된 만큼 한 몸과도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그리되면 배 속의 아이도 겁을 먹는 거야. 그래서 세상에 나오고 싶어 하지 않는 거지. 어미의 배 속이 더 안전하다고 느끼니까.”
노파가 고개를 돌려 장곡이 들어간 집 쪽을 바라봤다.
“듣자니 오래 자리를 비웠다지? 돌아왔을 때는 온몸이 만신창이였고.”
노파가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어느 아내가 그걸 보고 애가 타지 않겠수? 모르긴 몰라도 마음고생이 아주 심했을 거요.”
단악선이 한숨을 내쉬었다.
장곡이 이 자리에 없는 게 다행이었다.
만약 노파의 말을 들었다면 스스로를 더욱 자책했을 게 분명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더없이 마음이 무거워졌다.
혈운사를 토벌하기 위해 장곡을 새외로 데려간 사람이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장곡의 부상 역시 암존으로부터 자신을 구하기 위해 몸을 던진 결과였다.
“일단 확인부터 해 봐야겠어요.”
걸음을 옮기려는 단악선을 향해 노파가 안타까운 눈빛을 흘렸다.
“말하지 않았수? 상황이 고약하다고.”
“뭐가 더 있나요?”
“일각 전부터 태동이 느껴지지 않수.”
“……!”
“지친 게지. 산모도, 아이도…….”
오랜 세월 아이를 받아 온 그녀인 만큼 그 판단을 의심할 수 없었다.
그 순간 단악선은 한 사람의 눈빛을 떠올렸다.
움켜쥐었던 암존의 칼에 손가락이 잘려 나가고도 두 팔로 칼을 감싸 안아 온몸으로 받아 냈던 장곡.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자신에게 달아나라 외치던 그의 눈빛이 눈앞에 선명했다.
“포기하긴 일러요.”
그 말과 함께 단악선이 장곡의 집 안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방 안에 들어서자 피범벅인 침상과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기진맥진한 산모가 눈에 들어왔다.
녹초가 된 상태에서도 그녀는 단악선을 향해 입술을 달싹였다.
비록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지만 단악선은 그녀가 하는 말을 분명히 들을 수 있었다.
“최선을 다할게요.”
고개를 끄덕인 단악선이 산모에게 다가섰다.
그러곤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그녀의 배 위에 올린 채 가만히 눈을 감았다.
역시나…….
노파의 말대로 태동을 비롯한 그 어떤 생명의 징후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도 단악선은 포기하지 않았다.
아니, 포기할 수 없었다.
위화신공을 끌어 올린 단악선이 천천히 진기를 흘려 넣었다.
그 순간 황 부인은 따듯하면서도 청량한 기운이 지친 사지에 스며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반면 단악선은 조심스럽게 진기를 움직이며 배 속의 아이 상태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위화신공은 그 자체만으로 위력적인 내공심법이기도 하지만 애초부터 치료를 목적으로 한 위화요법에 기반하고 있었다.
그런 만큼 환자의 상태를 살피기에 이보다 적합한 무공도 없었다.
그러기를 잠시.
단악선이 눈을 떴다.
비록 미약했지만 분명한 생명의 징후가 느껴졌다.
단악선이 조용히 입을 연 것도 그때였다.
“우리 포기하지 말자.”
장곡과 아내의 눈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내 단악선이 누구에게 말을 걸고 있는지 깨달았다.
두 손을 모아 황 부인의 배에 올린 단악선이 입을 가까이 가져다 댄 뒤 계속해서 속삭였기 때문이다.
“엄마 아빠가 너를 기다리고 계시잖아. 그러니까 우리 조금만 더 힘내자.”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지만 단악선은 계속해서 배 속의 아이에게 속삭였다.
“안심하렴. 네가 태어날 곳은 분명 살기 좋은 곳일 테니까.”
노파에게 들었던 이야기.
물론 단악선도 이를 전부 믿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얼마든지 허무맹랑한 미신으로 치부할 수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단악선은 그러지 않았다.
“왜냐하면 네 아빠는 좋은 분이시거든. 네 아빠가 아니었다면 나는 지금 이렇게 너에게 말을 걸 수도 없었을 거야. 그러니 이번에는 내가 널 도울 수 있게 해 줘. 네 아빠가 내게 그랬던 것처럼.”
그때였다.
퉁.
“……!”
단악선의 눈이 이채가 떠올랐다.
마치 자신의 말에 대답하듯 미약한 태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충분했다.
단악선이 고개를 돌려 황 부인을 바라봤다.
“지금부터 엄청나게 고통스러울 거예요.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요.”
황 부인의 눈빛이 두려움에 흔들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어진 단악선의 말에 그녀의 결연한 의지가 두려움을 밀어냈다.
“그 고통만 견디면 무사히 아기를 안아 보실 수 있을 거예요.”
지친 기색이 역력했지만 황 부인은 확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단악선이 장곡을 향해 말했다.
“아내분의 손을 잡아 주세요.”
“예? 예!”
장곡이 아내 곁으로 다가가 두 손을 맞잡았다.
그 순간 단악선이 황 부인의 배를 힘껏 눌렀다.
“……!”
갑작스럽고도 우악스러운 손길에 황 부인이 눈을 부릅떴다.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악선은 손을 멈추지 않았다.
“아악!”
뒤늦게 터져 나온 황부인의 날카로운 비명이 방 안을 가득 채웠다.
그 비명 소리에 허겁지겁 달려온 노파가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다 돌리는 방향이 틀리면 탯줄이 더 아기의 목을 조일 텐데…….”
노파의 우려에 단악선이 단호한 눈빛으로 대답했다.
“진기를 흘려 보내 탯줄의 위치와 감겨 있는 방향을 확인했어요. 게다가…….”
얼마나 긴장했는지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단악선이 말을 이어 갔다.
“이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이를 보내는 것보다는 나아요.”
그 말에 노파는 둔기로 머리를 맞은 듯 일순 멍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녀는 이내 황 부인의 다리 쪽으로 서둘러 자리를 옮겼다.
“지금은 아니야! 힘을 아껴 둬! 숨 쉬어! 길게 천천히! 옳지, 그렇게 계속해!”
노파의 외침에 황 부인이 입술을 깨물었다.
턱을 타고 핏물이 줄줄 흘러내렸으나 정작 그녀는 입술의 고통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그보다 훨씬 지독한 고통이 그녀를 괴롭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됐어요!”
단악선이 얼굴이 환해졌다.
황 부인의 배를 압박해 물리적으로 태중의 아이를 돌려놓는 데 성공한 것이다.
“잘 참았어. 이제 힘 줘! 힘!”
산파의 외침에 황 부인의 입에서 다시 한 번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아아아악!”
아내의 손을 맞잡고 있던 장곡이 깜짝 놀랐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 악을 쓰며 자신의 손을 움켜쥐는 아내.
고수라 자부하는 그조차도 깜짝 놀랄 만큼 상당한 악력이었다.
그만큼 그녀는 사력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옳지! 머리가 보인다! 잘하고 있어! 조금만 더 그렇게! 힘내, 아기 엄마!”
“아악!”
산파의 격려와 황 부인의 비명이 한데 뒤섞여 있던 그때.
갑자기 실내에 정적이 찾아왔다.
단악선이 놀라 산파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환하게 웃고 있는 산파의 얼굴을 마주한 건 그 직후였다.
그런데 이상했다.
의당 들려왔어야 할 아기 울음소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때 산파가 한 손으로 아기를 받치더니 다른 손으로 작은 대롱을 꺼내 아기의 코로 가져가 콧속을 막고 있던 양수를 빨아냈다.
그러자 아기가 입 안에 머금고 있던 양수를 꿀꺽 삼키더니 이내 울음을 터트렸다.
“흐에엥.”
오랜 시간 배 속에서 체력을 소진했던 탓일까.
생각보다 우렁찬 울음소리는 아니었다.
그래도 막상 아기의 울음을 듣고 나니 비로소 단악선은 크게 안도할 수 있었다.
“축하하우. 어여쁜 따님이우. 손가락 발가락 모두 다 멀쩡하고, 조금 지친 것만 빼면 어디 하나 이상한 곳 없이 멀쩡하우.”
산파의 말에 장곡이 울먹이며 단악선과 산파를 향해 고개를 조아렸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크흑.”
초췌한 모습으로 누워 있던 황 부인이 입을 연 것도 그때였다.
“우리 아기를 안아 봐도 되나요?”
갈라 터진 입술로 힘없이 중얼거리는 그녀를 향해 단악선이 미소를 건넸다.
혼절하기 직전이었지만 그녀는 초인적인 의지로 감겨 오는 눈꺼풀을 억지로 버티고 있었다.
엄마라는 존재의 위대함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어이쿠, 내 정신 좀 보게.”
뒤늦게 무언가를 깨달은 산파가 황급히 단악선을 향해 물었다.
“탯줄 자르는 법 아시우?”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이자 산파가 조심스럽게 아기를 넘겼다.
“나는 식은 물을 데워 오리다.”
양수와 핏물 범벅인 아이를 씻기려면 따듯한 물이 필요했다.
얼떨결에 아기를 안은 단악선은 품 안의 따스한 온기에 일순 할 말을 잃었다.
그러기를 잠시.
울고 있는 아이를 향해 단악선이 말을 건넸다.
“무사히 태어나 줘서 고마워.”
놀라운 일이 벌어진 건 그 직후였다.
단악선의 음성에 아기가 거짓말처럼 울음을 그친 것이다.
이를 본 단악선이 아기 쪽으로 손을 뻗었다.
그러자 아기가 그 작고 앙증맞은 손으로 단악선의 손가락을 움켜쥐었다.
어째서일까?
그 작은 힘이 온기가 되어 자신의 심장을 덮어 주는 것 같았다.
무위가 금지로 선포된 이후 이곳에 일신을 의탁한 각양각색의 사파 무림인들.
그들과 무위의 일반 백성 사이에서 태어난 첫 아이였다.
이때 장곡이 불쑥 입을 열었다.
“우리 아이의 이름을 지어 주십시오.”
“제가요?”
당황한 단악선을 향해 장곡이 고개를 끄덕였다.
“의원님이 아니었다면 이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을 아이니까요.”
단악선은 간절한 장곡의 눈빛을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단악선이 고개를 숙여 품 안의 아기와 시선을 맞췄다.
“네 이름은…….”
잠시 고민하던 단악선이 이내 환하게 웃었다.
“그래. 소하(笑河), 소하로 하자.”
흐르는 강처럼 끊이지 않는 웃음.
부디 그 이름처럼 미소가 마르지 않는 삶이 되길.
그 희망을 담아 단악선은 진심으로 바라고, 또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