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332)
신마의선-332화(332/500)
신마의선 (332)
“소하……. 장소하.”
몇 번이고 그 이름을 되뇌이던 장곡이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그 이름에 걸맞은 아이가 되도록 최선을 다해 키우겠습니다.”
“저도 응원할게요.”
명주실을 집어 아이의 배와 이어져 있는 탯줄에 묶은 단악선이 한편에 놓여 있던 날붙이들을 가리켰다.
“탯줄은 아버지가 자르셔야죠?”
장곡이 긴장한 얼굴로 가위를 집어 들었다.
사내아이일 경우에는 낫으로, 여자아이의 경우에는 가위로 탯줄을 자르는 것이 민간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문화였다.
장곡이 실로 묶여 있는 탯줄 윗부분을 가위로 자르기 시작했다.
써걱…….
예상외로 좀처럼 쉽게 잘리지 않는 질긴 탯줄에 장곡은 잠시 당황했다.
한 생명을 지탱해 온 생명 줄은 그만큼 질기고 단단했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탯줄을 자르는 장곡의 모습에 단악선은 자신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어느 누가 지금의 그를 보고 그토록 악명 높던 구유음소라 생각할 수 있을까.
이윽고 탯줄을 모두 자르자 산파가 대야에 따듯한 물을 가져왔다.
그러곤 단악선으로부터 아기를 건네받아 꼼꼼히 씻기기 시작했다.
“갓난아이가 이렇게 예쁘기도 어려운데……. 어쩜 이렇게나 고울까?”
제 자식이 특별하다는 말에 싫어할 부모는 없는 법.
“제 엄마를 닮았나 봅니다.”
“성격은 아빠를 닮은 것 같은데?”
“예?”
“내가 열여섯에 처음 아이를 받은 이래 육십 년 가까이 산파 노릇을 해 왔는데 이렇게 일찍 눈을 뜬 아이는 처음이야. 자네 성격 급하다는 말 자주 듣지 않나?”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니 요 녀석의 급한 성격은 제 아비 성격을 물려받은 게로군.”
아기 몸에 묻은 물기를 정성스럽게 닦아 낸 산파가 모포로 아기를 칭칭 감싸 황 부인 품에 안겨 주었다.
“흐엥. 흐에엥…….”
“그래, 아가. 엄마야.”
엄마 품에 안기기 무섭게 다시 칭얼거리기 시작하는 아기를 내려다보는 황 부인의 뺨을 타고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장곡 역시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그런 모녀를 따듯하게 바라보며 웃음 짓고 있었다.
반면 단악선은 양수와 핏자국으로 얼룩진 침대와 난산으로 인한 사투의 흔적들을 눈에 담았다.
이를 보고 있자니 자신도 모르게 마음 한구석이 찡해졌다.
‘나도 저렇게 태어났겠지?’
부디 저 아이만큼은 부모님과 함께 오래오래 행복하길 바랐다.
“아이 젖을 물리셔야 할 테니 저는 그만 나가 볼게요.”
단악선의 말에 장곡 내외가 진심을 담아 감사를 건넸다.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황 부인 역시 한시라도 빨리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싶었다.
아기 울음소리를 듣자마자 빠르게 젖이 돌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전에 혹시 모르니 진맥 좀 해 봐도 될까요?”
허락을 얻어 황 부인의 맥문에 손을 올린 단악선이 잠시 움찔했다.
“왜 그러십니까? 혹시 무슨 문제라도?”
걱정 가득한 장곡의 음성에 단악선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단지 이런 맥은 처음이라서요.”
모든 힘을 쏟아붓고 약해질 대로 약해진 기의 흐름.
마치 무림인이 진원진기까지 모조리 태워 내 버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단악선이 나직이 탄성을 흘렸다.
“사람이 이렇게까지 기력을 소진할 수도 있는 거였군요.”
한 사람이 태어나기 위해서는 이토록 위대하고 아름다운 헌신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장곡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우리 부인은 괜찮은 겁니까?”
“걱정 마세요. 돌아가는 대로 기력을 보충하는 약재를 지어 드릴게요. 그것만 잘 드시고 푹 쉬시면 금방 예전처럼 회복하실 수 있을 거예요.”
환하게 웃던 것도 잠시.
장곡이 염치없다는 듯 머뭇거리며 말을 이어 갔다.
“저……, 그런데 죄송하지만 우리 아이도 한번 살펴봐 주실 수 있겠습니까?”
미소로 대답을 대신한 단악선이 아기의 손목에 손가락을 살포시 얹었다.
신생아의 맥을 확인하는 건 단악선도 처음이었다.
이내 단악선의 얼굴에 놀라움이 자리 잡았다.
엄청난 속도로 뛰는 힘찬 맥박.
이토록 작은 몸 어디에서 이만한 힘을 내는지, 그저 신비롭고 경이로울 뿐이었다.
“어떻습니까?”
불안한 표정으로 묻는 장곡을 향해 단악선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건강하네요. 감동스러울 정도로요.”
단악선의 솔직한 대답에 비로소 장곡도 안도하며 만면에 미소를 머금었다.
“감사합니다.”
“그럼 나중에 봬요. 몸조리 잘하시고요.”
장곡의 배웅을 받으며 집을 나선 단악선은 한 무리의 인파를 발견하고 걸음을 멈췄다.
초악량과 풍진성.
그리고 그 뒤로도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있었다.
그들 역시 아기 울음소리를 들었는지 하나같이 표정이 밝았다.
“다행입니다.”
초악량과 나란히 서 있던 풍진성이 웃으며 말을 건네 왔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도 저마다 한마디씩 입을 열었다.
“산모랑 아이는 괜찮은 거지요?”
“아휴, 무슨 일 나는 줄 알고 조마조마했네.”
“예끼, 이 사람아. 단 의원님이 계시는데 설마.”
장곡을 축하하기 위해 저마다 한 아름씩 선물을 챙겨 온 마을 사람들을 보며 단악선은 새삼 이곳 무위가 더욱 좋아졌다.
“괜찮으냐?”
초악량의 물음에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옷에 묻은 핏자국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직까지 손에 남아 있는 아기의 느낌을 되새겼다.
“아주 소중한 경험을 했어요.”
유심히 단악선을 살피던 초악량이 희미하게 웃었다.
‘다행이군.’
이곳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어딘가 위태로워 보였던 단악선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분위기가 매우 차분하고 안정적으로 바뀌어 있었다.
‘어쩌면 조만간 벽을 넘게 될지도.’
육체와 정신의 괴리.
그리고 그에 따른 혼란.
사실 이런 위기도 아무나 접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이는 곧 그만큼 단악선이 고수의 반열에 들어섰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어쨌거나 이번 일이 단악선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한 것이 분명했다.
그때였다.
퍼엉.
난데없는 폭음에 단악선이 고개를 돌렸다.
멀리 마을 중심 쪽.
허공에서 비산하는 폭죽의 불꽃이 눈에 들어온 것도 그때였다.
그런데 폭죽은 한 번으로 그친 것이 아니었다.
파파파팡.
폭죽 터지는 소리가 연달아 들려오며 고요하던 밤의 적막을 뒤흔들었다.
마을 사람 중 한 명이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자중하라고 말했건만 또 저러네.”
“무슨 일이죠?”
단악선의 질문에 방금 전 입을 열었던 사내가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얼마 전 인근에 자리 잡은 병영(兵營) 소속의 군관들입니다. 이번에 누군가가 진급을 한 모양이더군요. 저녁 무렵부터 밤새 저러고 있습니다.”
단악선이 눈살을 찌푸렸다.
지금은 산모와 아이가 안정을 취해야 할 때였다.
동시에 한편으로는 지금 상황이 쉽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곳 무위에 정착한 사파 무림인들.
그들의 거친 성정을 익히 알기 때문이다.
평소 장곡과 친분이 두터운 그들이 이와 같은 소란을 묵과할 리 없을 터.
그런데 이어진 설명에 그들이 잠잠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가급적 저들과 충돌을 빚지 말라는 지주 대인의 엄명이 있었습니다.”
“아!”
지주 대인이라면 능소밀이다.
이곳 무위 사람치고 그의 말을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기껏해야 신마삼존과 사무심 정도였다.
그런 만큼 화가 나도 애써 참아야만 했던 것이다.
잠시 우두커니 서서 무언가를 생각하던 단악선이 폭죽 소리가 들려온 곳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잠시 후.
단악선은 기루 앞에 모여 왁자지껄 떠들어 대는 서른 명 정도의 군관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하하하! 축하드립니다, 백 진무(鎭撫)……. 어? 아니지, 이제 날이 바뀌었으니 오늘 자로 부천호(副千戶)시지? 소관이 아주 큰 실수를 했습니다그려.”
“괜찮네, 괜찮아. 나 백연정은 그런 사사로운 실수에 연연하는 소인배가 아닐세. 벌주 석 잔으로 기꺼이 용서해 주지.”
“으하하. 기쁜 마음으로 받겠습니다.”
단악선이 곧장 그들 중 가장 직책이 높아 보이는 사내를 향해 다가갔다.
부천호라 했으니 천호소의 우두머리인 정오품, 정천호(正千戶).
그를 보좌하는 종오품의 품계일 터.
“밤이 깊었어요. 죄송하지만 목소리를 좀 낮춰 주시겠어요?”
“응?”
당돌하게 말을 걸어오는 어린 소년의 모습에 군관들은 처음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여러분의 축하연을 방해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방금 아이가 태어나서요. 산모와 아이 둘 다 안정을 취해야 해요.”
이어진 단악선의 말에 군관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이곳 무위 텃세가 그리 심하다고 하길래 내심 걱정했는데, 설마 이런 꼬맹이마저 우리를 괄시할 줄이야.”
“얘야. 설마 우리가 누군지 모르는 건 아니겠지?”
“아이가 태어났다고? 그럼 축하를 해야지! 바로 이렇게!”
또 다른 폭죽에 불을 당기는 저들의 모습에 단악선이 한숨을 내쉬었다.
“정 축하연을 이어 가고 싶으시다면 제가 따로 자리를 마련해 드릴게요. 그러니 더 이상의 소란은 주의해 주시길 부탁드려요.”
그와 동시에 단악선이 가볍게 손을 휘둘렀다.
팍.
심지를 따라 타들어 가던 불꽃이 그대로 꺼진 것도 동시였다.
그 순간 군관들 사이를 채우고 있던 웃음이 거짓말처럼 뚝 끊어졌다.
그리고 한 사람이 단악선 앞으로 걸어 나왔다.
이 자리의 주인공.
부천호라 불렸던 백씨 사내였다.
흥겹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단악선이 몹시 못마땅했던지 그는 험악한 눈빛을 흘리며 으르렁댔다.
“대체 어느 집 자식이길래 이토록 버릇이 없는지 모르겠군. 부모님께서 가르쳐 주지 않더냐? 어른들 일에 함부로 나서는 거 아니라고.”
“두 분 다 돌아가셨어요.”
“뭐?”
당황한 것도 잠시.
백연정이 피식 웃었다.
“뭐야? 비빌 언덕도 없는 고아였어?”
술에 취해 불콰해진 얼굴로 그가 이죽거렸다.
“그런 놈이 어디 어른 말씀하시는데 재수 없게 또박또박 말대꾸야?”
그 순간.
단악선의 눈앞에서 백연정이 사라졌다.
꽈앙.
요란한 소리와 함께 그가 바닥에 나뒹군 것도 동시였다.
“방금 너 뭐라고 했냐?”
갑자기 난입해 있는 힘껏 백연정의 가슴을 걷어차 멀찍이 날려 버린 사내는 그러고도 분이 풀리지 않았던지 상대의 멱살을 잡아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그러곤 그대로 다시 바닥에 패대기쳐 버렸다.
쾅!
“크헉!”
“뭐? 비빌 언덕도 없는 고아?”
콰앙!
“크아악!”
“더 지껄여 봐.”
꽈앙! 쾅! 콰직.
“사, 살려……. 컥!”
사정없이 상대를 휘둘러 내동댕이치는 상대의 압도적인 폭력!
이를 목도한 군관들은 일순 당황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야말로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따로 없었다.
“지, 지금 무슨 짓을!”
“그 손 놓지 못할까? 감히 폐하의 군병에게 위해를 가하다니! 그러고도 네놈이 무사할 성싶으냐?”
뒤늦게 그들이 괴한을 향해 외쳤지만 돌아온 것은 싸늘하게 식은 눈빛뿐이었다.
“너희도…….”
노여움에 말을 잇지 못하던 사내의 눈에서 섬뜩한 안광이 폭사되었다.
“일단 좀 맞자.”
사내의 신형이 흐릿하게 변하더니 그대로 군관들 사이를 헤집고 들어갔다.
우드득.
“크아악!”
빠악.
“컥!”
소름 끼치는 격타음과 비명 소리가 사방에 난무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고된 훈련을 거친 정병이라 하나 술에 취한 상태.
게다가 일정한 진열을 갖춘 것도 아니어서, 나름 고수 반열에 들어선 그가 제대로 마음먹고 쓴 손속을 상대하는 건 불가능했다.
울려 퍼지던 비명 사이로 한 줄기 경악성이 터져 나온 것도 그때였다.
“호, 혹시 귀하는 이곳 무위의 지주 대인 아니시오?”
“그렇다면?”
능소밀의 반문에 군관 중 누군가가 황급히 외쳤다.
“서로가 마찬가지로 나라의 녹봉을 받는 처지에 어째서 이리 본관들을 핍박하시는 게요?”
“유언은 그게 끝이냐?”
“뭐요?”
“어디 보자. 전부 서른 명인가?”
능소밀의 눈에서 쏟아지는 살기에 군관들은 일순 숨이 턱 막혔다.
하지만 이어질 말에 비하면 이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지금부터 너희들은 술에 취해 뱃놀이하다 실종된 거야. 그렇게 보고가 올라갈 테니 알고나 있으라고.”
단번에 술이 확 깰 만큼 차디찬 음성.
거기에 눈빛 역시 진심이라 더욱 섬뜩한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