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333)
신마의선-333화(333/500)
신마의선 (333)
“설마 관리인 귀하께서 우리를 해치겠다는 것이오?”
“그런 짓을 벌이고도 무사할 줄 아시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군관들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어느새 수많은 무림인들이 자신들을 에워싼 채 살벌한 눈빛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살기에 숨이 턱 막혀 왔다.
당장 눈앞에 서 있는 능소밀 단 한 명에게 이 자리의 모두가 초주검이 된 상황.
저들까지 나선다면 이곳에서 뼈를 묻게 되리란 건 누가 봐도 자명했다.
능소밀이 서늘한 웃음을 말아 올렸다.
“그걸 누가 알지?”
그 소름 끼치는 눈빛과 스산한 목소리에 그들은 그대로 압도당해 버렸다.
“급류에 쓸려 짓이겨지고 으깨진 시체를 무슨 수로 찾을 건데? 뭐, 발견된다 해도 상관없지. 물에 퉁퉁 불어 터진 시신의 인상착의를 제대로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으니까.”
비로소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은 군관들의 얼굴이 파랗게 질려 가기 시작했다.
이때 단악선이 앞으로 나서 능소밀을 제지했다.
“그렇게 너무 겁박하지 마세요. 누가 들으면 진짜인 줄 알겠어요.”
단악선을 향해 고개를 돌린 능소밀이 어색하게 웃었다.
지나치게 흥분해 잠시 단악선을 간과한 것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깜짝 놀랐다.
단악선 뒤에 말없이 서 있는 초악량을 그제야 발견했기 때문이다.
순간적으로 울컥해 앞뒤 안 재고 깽판을 놓았지만, 이 자리에 그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이처럼 무턱대고 뛰어들지는 않았을 터.
“언제부터 거기 계셨습니까?”
“단 의원과 계속 같이 있었지.”
초악량의 대답에 능소밀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도 이자들의 망발을 보고만 계신 겁니까?”
“나도 황당해서 그랬다.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말을 지껄이는 놈들이 있을 줄 어찌 알았겠느냐?”
게다가 원래 이런 일은 범계위나 한설화가 전문이었다.
무엇보다 능소밀이 먼저 워낙 크게 설쳐 놓은 바람에 뒤늦게 나서기도 뻘쭘해졌다.
초악량이 혀를 찬 것도 그때였다.
“쯧쯧. 좀 살살하지. 관직에 오르더니 성격만 더 나빠졌군.”
“예?”
능소밀은 몹시 억울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혈수존자라 불리며 중원 무림의 공포로 군림하는 그가 할 말은 아닌 것이다.
하지만 이어진 전음에 쓴웃음을 머금었다.
―단 의원 앞에서 대놓고 죽인다고 협박하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이냐? 일단 단 의원을 돌려보낸 뒤 조용히 처리해라.
그럼 그렇지.
단악선에게 무례를 범한 순간부터 저들은 이미 황천에 반쯤 몸을 담근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때 단악선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설마 나중에 몰래 해코지할 생각은 아니시죠?”
“……!”
내심 뜨끔해 대답을 주저하는 능소밀이었다.
그런 그를 향해 단악선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지 마세요. 저분들이 죽을죄를 지은 것도 아니잖아요.”
“곡주님을 모욕한 죄야말로…….”
“오늘은 참 좋은 날이에요.”
단악선이 웃으며 능소밀을 달랬다.
“적어도 오늘만큼은 더 이상의 나쁜 일은 없었으면 좋겠어요.”
입술을 달싹이던 능소밀이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습니다.”
그 모습에 군관들이 하나같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대체 저 소년이 누구길래?’
직예주로 바뀐 이곳 무위의 행정 책임자인 지주가 소년의 몇 마디 말에 고분고분한 모습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그때였다.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이냐?”
장내에 한 사람이 들어서더니 호통을 내질렀다.
능소밀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단단해 보이는 체구와 군관 특유의 삼엄한 눈빛을 지닌 사십 대 중반의 사내.
그가 나타나기 무섭게 질끈 눈을 감으며 땅바닥에 고개를 처박는 군관들의 모습으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저들의 상급자가 분명했다.
처음에는 엉망인 몰골로 바닥에 널브러진 수하들의 모습에 분노하던 사내는 능소밀의 얼굴을 확인한 뒤 화들짝 놀랐다.
“혹시 능 지부 대인이 아니신지?”
“당신은 누구시오?”
능소밀의 반문에 사내가 정중히 포권을 취했다.
“새로 주둔하게 된, 이곳 무위영(無違營)에 속해 있는 정천호(正千戶) 엄석이라 하외다.”
능소밀이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마주 포권했다.
“능소밀이오.”
정천호의 품계는 정오품.
품계로만 따지자면 서로 동일한 위치인 셈이다.
최근 직예주로 승격한 무위의 행정 체계는 일반적인 지방 직제와 여러모로 달랐다.
본래는 하나의 성에 행성이라는 기구를 둔다.
군사를 관리하는 도지휘사(都指揮使)와 민사를 관리하는 포정사(布政司), 형사를 관리하는 안찰사(按察使).
이른바 삼사(三司)라 불리는 그들이 주어진 권한을 지니고 주어진 소임을 다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무위는 병권을 제외한 대부분의 권한을 지주인 능소밀이 거머쥐고 있었다.
반면 무위의 군사 책임자는 오군도독부에서 직접 파견한 지휘사(指揮使)였다.
하나의 위소를 전담하는 정삼품의 직책.
그가 관할하는 위소 아래로는 다섯 개의 천호소가 구성되었으며, 천호소마다 정천호 한 명을 임명하였다.
일반적으로 정천호는 천 명의 군병들에 관한 지휘권을 지니고 있었다.
정천호 아래로는 종오품인 부천호(副千戶)와 종육품인 진무(鎭撫)가 있었다.
진무는 주로 군법과 형옥에 관련된 일을 맡았고, 천호 아래의 백호(百戶)를 대신하여 사무를 담당하는 식이다.
엄석이라 자신을 밝힌 정천호가 따지듯 입을 열었다.
“대체 무슨 연유로 제 수하들을 다치게 한 것입니까?”
엄석의 물음에 능소밀이 짧게 코웃음을 쳤다.
“귀관의 수하들에게 묻는 게 더 빠를 것이오.”
예상보다 훨씬 날이 선 능소밀의 반응에 엄석이 소태를 씹은 표정이 되었다.
상황을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진급 축하연을 열기 위해 요청했던 수하들의 보고에 흔쾌히 허락한 사람이 그였기 때문이다.
술로 인해 느슨해진 군기가 결국 이 사달을 야기한 것이다.
직접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 돌이킬 수 없는 사안으로 이어졌을 수도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대체 당신들은 수하들을 어떻게 관리는 거요?”
다짜고짜 따져 묻는 능소밀의 책망에 엄석이 당황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능소밀이 계속해서 언성을 높였다.
“이 지역에 새로 배속된 병사들이 충군(充軍)한 자들이라는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들을 지휘하는 군관들마저 이토록 엉망일 줄은 짐작도 못 했소이다.”
원래 초창기 위소군(衛所軍)은 세 부류로 나뉘었다.
징발된 자와 귀부한 자, 충군한 자들이었다.
징발된 자는 농민군이나 과거 원나라에 반대하는 입장을 가지고 있던 자들이었고, 귀부한 자는 주로 투항한 원나라 군사들이었다.
마지막으로 충군한 자는 범죄자로, 군역으로 형벌이 대체된 자들이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며 위소군의 성격도 많이 바뀌었다.
그래서 지금은 전국 각지에서 평민을 징발하여 군적(軍籍)을 부여한 타집군(垜集軍)과 죄인들로 구성된 충군이 대부분이었다.
군적은 군호(軍戶)라고도 불렸고, 이는 기본적으로 후대에게 세습되었다.
그런 만큼 한 지역에 뿌리를 내리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에 무위가 직예주로 승격되며 오군도독부에서는 급하게 병력을 꾸려야 했고, 이동의 제한이 많은 타집군보다 범죄자들로 구성된 충군의 비율을 높일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이곳 무위영에 파견된 고위 군관들 역시 수하들을 다루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었다.
“돌아가는 대로 엄중히 처벌하도록 하겠소이다.”
엄석의 말에 능소밀이 눈살을 찌푸렸다.
“고작 그것뿐이오?”
“무엇이 더 필요한 것이오?”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은?”
“그건…….”
엄석이 곤란한 듯 말끝을 흐렸다.
실수를 인정하는 순간 그 책임은 오롯이 정천호인 자신의 몫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그런 그의 모습에 능소밀이 코웃음을 쳤다.
“됐고, 당신 상관을 불러오시오.”
엄석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의 상관이라면 위소 담당자인 지휘사였기 때문이다.
군과 행정 직책이 품계를 떠나 서로 관여치 않고 각자의 지휘를 인정한다고 하지만, 그래도 정오품인 지주가 정삼품인 지휘사를 데려오라니.
엄석의 목소리도 자연 싸늘해졌다.
“서로 예의를 갖추는 것이 어떻겠소?”
“예의?”
능소밀이 히죽 웃었다.
“그 말 감당하실 수 있겠소?”
“무슨 뜻이오?”
“고작 정천호에 불과한 당신이 앞으로 일어날 사태를 책임질 수 있느냔 뜻이오.”
상대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능소밀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그럼 그렇게 합시다. 원하신다니 제대로 예의를 갖춰 드리지.”
능소밀이 목소리를 높여 한 사람을 불렀다.
“소 단주!”
그 음성이 채 흩어지기도 전에 기다렸다는 듯 어디선가 소적산이 나타났다.
그런데 그의 품에는 수북한 책자들이 쌓여 있었다.
난데없는 신마상단 단주의 등장에 엄석이 당황했다.
“여기 있습니다.”
소적산이 능소밀에게 책자들을 건넸다.
그 안의 내용을 확인한 능소밀이 눈살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이틀 전 귀소 소속의 병사들이 인근 노점에서 무전취식을 했군? 비슷한 사례가…….”
소적산이 즉시 대답했다.
“도합 스물한 건 더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폭행 사건도 있었군?”
이번에도 소적산이 그 말을 받았다.
“사소한 언쟁과 폭언, 모욕을 비롯해 부녀자 희롱 및 지역 비하를 포함하면 총 백여든네 건이 더 있습니다.”
능소밀이 고개를 끄덕였다.
“보고서 형태로 소상히 작성해 내게 올리도록.”
능소밀과 소적산의 대화가 이어질수록 눈에 띄게 당황하기 시작한 엄석이 결국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황상께 간언이라도 할 셈이오?”
“아니.”
이어진 능소밀의 말에 엄석의 눈동자가 지진을 일으켰다.
“당신네들 도독에게 직접 찾아갈 거요.”
“……!”
엄석뿐만 아니라 단악선에게 시비를 걸었던 그의 수하들까지 사색이 되었다.
그 말대로라면 자신들의 출셋길은 막힌 셈이나 다름없었다.
오랜 세월 군에 몸담아 온 만큼 군의 생리를 누구보다 잘 아는 그들이었다.
그런데 진짜 재앙은 따로 있었다.
능소밀이 소적산이 건넨 다른 장부를 확인했다.
“신마상단에서 무위영에 제공하는 물품들이 뭐가 있지?”
“쟁기를 비롯해 도끼와 같은 농기구들은 무상으로 대여해 주고 있습니다.”
“그로 인한 수리비는?”
“저희가 부담하고 있습니다.”
“내일 당장 회수해.”
“알겠습니다.”
“건축 자재들을 비롯한 소금과 천, 의약품은?”
“유통하는 시세의 절반 가격으로 공급하고 있습니다.”
“그것들도 마찬가지. 내일부터는 제값을 받고 판매하도록.”
그 말에 엄석은 눈앞이 아득해졌다.
그들 위소군은 대부분 스스로 땅을 개간해 농사를 짓는 둔전병(屯田兵)이다.
명나라 초기에는 내지에서 군량을 수급해 변방으로 수송했지만 그로 인한 폐해 때문에 현재는 군량을 자체적으로 조달하기 위한 방편으로 둔전 정책이 뿌리내린 지 오래였다.
이곳에 군영이 자리 잡은 지는 얼마 되지 않은 상황.
따라서 물자는 턱없이 부족했고, 상황도 몹시 열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난관을 타개할 수 있었던 이유는 신마상단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주 대인! 잠시만 기다려…….”
“그러게 진작 상관을 불러오지 그랬소?”
엄석이 황급히 능소밀을 불렀지만 돌아온 건 싸늘한 음성뿐이었다.
그럼에도 대놓고 따지거나 불만을 토로할 수도 없었다.
능소밀은 분명 눈앞의 사태를 수습할 기회를 주었고, 이를 걷어찬 사람이 본인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이로써 가뜩이나 척박한 이곳 생활이 한층 더 고단해지리라는 건 보지 않아도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상부에서 따로 예산을 추가로 책정해 준다면 다행이지만, 크게 기대할 수도 없었다.
그만큼 오군도독부의 예산 담당 관리들은 소금보다 짜기로 유명했기 때문이다.
“이곳 무위의 백성들이 베푼 호의를 당신들은 자신의 권리인 양 당연히 여기는 것도 모자라 그 호의를 악의로 갚았소. 그런 상대라면 당연히 그에 걸맞은 예를 갖춰야겠지.”
당황해 말을 잇지 못하는 엄석을 향해 능소밀이 축객령을 내렸다.
“수하들을 데리고 그만 돌아가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