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334)
신마의선-334화(334/500)
신마의선 (334)
“저……, 그러지 마시고…….”
어떻게든 사태를 무마해 보고자 태도를 달리한 엄석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하지만 이내 한숨을 흘리며 돌아설 수 밖에 없었다.
그만큼 능소밀의 눈빛과 표정이 너무 단호했기 때문이다.
결국 엄석 휘하의 군관들은 잔뜩 풀이 죽은 채 서로를 부축해 물러갔다.
그들이 완전히 사라지자 단악선이 나직이 한숨을 흘리고는 능소밀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괜찮으시겠어요?”
“뭐가 말입니까?”
“방금 전의 이야기가 황제나 다른 대신들에게 보고된다면 괜히 약점을 잡히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가뜩이나 황제의 총애를 등에 업은 능소밀의 벼락출세에 불만을 가진 사람이 많을 터.
자칫 누군가가 트집을 잡는다면 관리로서의 능력이 의심받을까 우려되었다.
그러나 능소밀은 태연자약했다.
“그래 주면 저야 고맙죠.”
“예?”
“그래야 더 이상 승진을 못 할 거 아닙니까?”
능소밀이 낮게 한숨을 흘렸다.
“여기서 더 승진하면 갈 곳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아……!”
그 말의 의미를 파악한 단악선이 짧게 탄성을 흘렸다.
바로 황궁이었다.
능소밀이 쓴웃음을 머금었다.
“저 이제 승진 그만 해야 합니다.”
안하무인인 황제와 더불어 뱃속에 능구렁이 수십 마리를 품고 있는 늙은 대신들.
그들과 아옹다옹하며 인생을 허비하고 싶진 않았다.
능소밀의 너스레에 단악선이 빙긋 웃었다.
“아저씨 능력이 대단하다는 걸 새삼 다시 느꼈어요. 황제가 왜 아저씨를 그토록 욕심내는지 알겠네요.”
초악량이 불쑥 끼어든 것도 그때였다.
“그 대단한 녀석을 데려온 사람이 바로 나다.”
단악선이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늘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반면 능소밀은 입술을 삐죽였다.
아무리 그래도 말은 바르게 해야지.
누가 들으면 삼고초려라도 한 줄 알 것 아닌가.
“데려온 게 아니라 끌고 온 거죠.”
“뭐?”
“아닙니다. 아무것도.”
초악량의 눈빛이 서늘해지자 능소밀이 황급히 말을 삼켰다.
이래서 습관이 무서웠다.
황제나 대신들에게 물러서지 않고 직언하던 버릇이 몸에 남아 자신도 모르게 초악량에게 대든 것이다.
군관들이 사라진 방향을 응시하던 단악선이 다시 한 번 한숨을 흘렸다.
“그나저나 걱정이네요.”
단악선의 염려를 눈치챈 능소밀이 재빨리 대답했다.
“걱정 마십시오. 이번 일에 대해 무위영 책임자인 지휘사에게 단단히 따져 물어 두 번 다시 오늘과 같은 불상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그와 같은 강경책은 오히려 저들의 불만만 높일 수도 있어요. 어쨌거나 저들도 자청해서 이곳에 주둔하게 된 건 아니니까요.”
군영을 설치한 이유는 무위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서였다.
게다가 이를 추진한 사람은 능소밀이었으니 따지고 보면 이쪽의 책임도 아주 없는 건 아니었다.
“혹 생각해 둔 방법이 있으십니까?”
능소밀의 물음에 단악선은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잠시.
문득 단악선은 한 가지 방법을 떠올렸다.
“우선 사 총관님과 더불어 상의를 해 봐야 할 것 같아요.”
“지금쯤이면 아마 상단에 계실 겁니다.”
소적산의 대답에 단악선은 곧장 신마상단으로 향했다.
잠시 후.
모두가 한자리에 모이자 단악선이 사무심에게 물었다.
“신마상단 자금에 여유가 있나요?”
뜬금없는 질문에 의아해하길 잠시.
“이유를 물어도 되겠습니까?”
사무심의 반문에 단악선이 머쓱하게 웃었다.
“한 가지 사업을 추진하고 싶은데, 아시다시피 제가 금전적인 감각은 부족하잖아요. 그래서 그 전에 의견을 구하고 싶어서요.”
소적산과 시선을 마주한 사무심이 빙그레 웃었다.
“아주 많습니다. 규모나 사업의 다양성은 기존의 거대 상단들에 조금 밀릴지 모르나, 가용 자금과 동원력만큼은 중원 제일이라 자부합니다.”
“하지만 최근 큰 공사를 진행하고 있잖아요. 혹시 자금이 부족하거나 그러진 않나요?”
이번에는 소적산이 자신 있게 대답했다.
“그걸 감안하더라도 유보금(留保金)은 넘쳐 납니다.”
“그렇다면 당장에는 이득이 없는 사업을 진행해도 될까요?”
“네, 됩니다.”
고민조차 없이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는 소적산의 모습에 단악선이 당황했다.
“무슨 사업인지 아직 말하지도 않았는데요?”
소적산이 씨익 웃었다.
“곡주님께서 원하신다면 그게 무슨 일이든 추진해야지요. 자금이 부족하다면 신마상단을 팔아서라도 마련하겠습니다.”
“그러지 말고 냉정하게 대답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럼 어떤 사업인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아이들을 위한 시설을 만들고 싶어요.”
“아이들을 위한…… 시설이라면?”
“이곳 무위에 학관을 설치하고 싶어요. 그곳에서 글도 가르치고, 원하는 아이들은 무공도 배울 수 있게요.”
사무심과 능소밀, 소적산은 서로의 얼굴을 보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기를 잠시.
“이유가 궁금하군요.”
능소밀의 말에 단악선이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전부터 생각해 왔던 계획이었는데, 오늘 장곡 아저씨의 아이가 태어나는 것을 보며 마음을 굳혔어요.”
거기에 단악선은 몇 가지 이유를 덧붙였다.
“학관이 설립되면 무위영에 소속되어 있는 군병들도 일종의 소속감을 지니게 될 거예요.”
“소속감이요?”
“네. 그들이 진심을 다해 무위를 지키려면 우선 이곳에 애정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요.”
단악선이 생각한 건 일종의 강온(强溫) 정책이었다.
우선 능소밀이 호되게 몰아붙였으니 반대로 그들을 포용할 온건책도 필요하다 여긴 것이다.
“그들이 이곳에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그동안 우리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해야지요.”
“아!”
단악선의 말에 능소밀이 뒤늦게 무언가를 깨닫고 탄성을 흘렸다.
당장은 이곳 무위영의 군사들 상당수가 죄인들로 구성된 충군이었다.
그렇다곤 하지만 모두가 홀몸인 것은 아니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가정을 꾸리고 있었다.
머지않아 그들에게도 군적(軍籍)이 부여될 것이고, 이후 군적은 자연스럽게 자식에게 세습될 터.
결국 언젠가는 온전히 이곳에 정착해 타집군(垜集軍)으로서의 모습을 갖추게 될 것이다.
그들의 자녀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한다면 그만큼 무위의 구성원으로 빨리 자리 잡게 될 가능성이 컸다.
게다가…….
‘자식 맡긴 부모가 죄인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지.’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만한 동기 부여도 없었다.
칠종칠금(七縱七擒)이 달리 있는 게 아니었다.
무엇보다 교육의 혜택을 받고 자란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아비의 군적을 물려받게 되었을 때, 그들은 이곳 무위의 진정한 구성원으로서 최선을 다해 이곳을 지킬 게 분명했다.
“훗날을 위한 일종의 투자로군요.”
“그렇다면 저도 반대할 이유가 없습니다.”
능소밀과 소적산이 동의하자 단악선이 고개를 돌려 사무심을 향해 빙긋 웃었다.
“사 총관님께서도 오랫동안 꿈꾸셨던 일이죠?”
“알고 계셨습니까?”
단악선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마교와의 싸움이 완전히 끝나면 추진하려고 했어요. 행여라도 아이들이 위험해 처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제 이곳에 군영이 배치되어 어느 정도 안전이 확보되었으니 더 이상 미루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문제는 재정이었다.
“그래서 여쭤보고 싶었어요. 교육 과정을 전부 무료로 한다면 신마상단이 지닌 자금으로 몇 명까지 가르칠 수 있을까요? 다섯 살부터 열다섯 살까지로 한정 짓는 다면요.”
능소밀과 소적산이 의미심장한 눈빛을 주고받았다.
“이곳 무위뿐만 아니라 인근 지역의 아이들까지 모조리 받아들인다 해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당장이라면 만 명도 가능합니다. 시간을 두고 장소와 교육 인력을 확충한다면 그 이상도 가능하고요.”
두 사람의 대답에 단악선이 깜짝 놀랐다.
“신마상단에 돈이 그렇게 많나요?”
“지금도 무섭게 불어나는 중이지요.”
소적산의 대답에도 불구하고 단악선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어쨌든 가능하다니 좋네요. 그럼 학관 사업을 추진해도 될까요?”
소적산과 능소밀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든지요.”
“물론입니다. 신마상단의 주인은 어디까지나 곡주님이시니까요.”
그들이 짓고 있던 함박웃음이 단악선에게 옮겨 갔다.
“그럼 이 일은 사 총관님께서 맡아 주시겠어요?”
단악선의 말에 사무심이 다시 한 번 확답을 받았다.
“정말로 전액 무료로 진행해도 괜찮겠습니까?”
“네, 그랬으면 좋겠어요. 적어도 배움의 기회는 동등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렇다면 날이 밝는 대로 추진하겠습니다.”
“아! 혹시라도 아이들에게 공부를 시키지 않으려는 부모님이 계신다면 잘 설득해 주세요. 절대 강압적인 방법은 쓰지 마시고요.”
“그리하겠습니다. 그리고…….”
“……?”
“감사합니다.”
단악선 덕분에 숙원을 이루게 된 사무심이 뜨거운 눈빛으로 자신의 마음을 전했다.
“뭘요. 우리 모두를 위해서인걸요.”
* * *
열흘 뒤.
무위가 떠들썩했다.
저자 곳곳에 붙은 방문(榜文) 때문이었다.
―무위 학관 학도 수시 접수.
더불어 학관에서 근무할 인원을 모집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구름처럼 모여 방문의 내용을 확인한 무위 백성들은 저마다 열을 올리며 단악선을 칭송하기 바빴다.
“아이들을 무료로 가르쳐 주신다는데?”
“글뿐만 아니라 무공까지?”
“그게 전부 무료라며?”
“중식과 석식까지 제공하고, 다치거나 아픈 아이들도 별도의 비용 없이 치료해 준다는군.”
“그뿐만인가? 학관에서 고용하는 훈장과 무공 교관의 급여 조건은 또 어떻고? 어지간한 관리들보다 높게 보장한다지 않나?”
“적당한 일을 구하지 못해 백수로 지내던 무림인들은 신났겠군.”
“그렇지 않아도 앞다투어 지원하고 있다더군. 무공 실력만큼은 하나같이 출중하니 더할 나위 없지.”
“그나저나 그 돈이 다 어디서 나오는 거야?”
“신마상단이겠지. 최근 아주 돈을 갈퀴로 쓸어 담는다고 하던데?”
마침 근처를 지나가던 신마상단 소속의 상인이 마을 사람들에게 붙들렸다.
“이보게. 저기 붙은 방문 내용이 사실인가?”
“전부 사실입니다. 이미 능 지주 대인께서도 허가하셨고, 소 단주님께서도 상단의 예산 사용을 재가하신 지 오래입니다. 때문에 학관에 사용될 물품들을 마련하느라 상단 전체가 비상이고요.”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건가?”
“방문에 적혀 있는 대로 무위에 거주하는 다섯 살부터 열다섯 살 사이의 아이는 남녀 구분하지 않고 누구라도 입관할 수 있습니다. 부모가 없는 아이들의 경우에는 기숙사도 제공이 되니 널리들 알려 주십시오.”
그 설명이 끝나기 무섭게 곳곳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하나같이 단악선을 찬양하기에 바빴다.
아무리 눈치 없는 사람들이라도 이제는 이곳 무위가 대충 어떻게 굴러가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소문은 무위뿐만 아니라 이내 인근 마을까지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 * *
무위를 떠난 한설화가 흑룡강성에 도착한 것은 사흘이 지나고 나서였다.
남쪽에 자리 잡은 송화강(松花江)을 건너 합이빈에 들어선 그녀는 곧장 한 곳을 찾아갔다.
이곳 흑룡강성은 매우 척박한 곳이었지만 그래도 이곳 합이빈은 나름 성도인 만큼 꽤 번화한 거리와 상점을 갖추고 있었다.
그중 한설화가 향한 곳은 흑룡상단이라는 현판이 걸린 삼 층 누각이었다.
한설화가 무심한 표정으로 상단에 들어섰다.
“어서 오십시……!”
습관적으로 응대하던 상단 소속의 상인이 말을 잇지 못하고 그 자리에 굳어졌다.
이런 궁벽한 오지에서 이처럼 눈이 번쩍 뜨이는 미인을 마주할 줄은 생각지도 못한 것이다.
그런 그에게 한설화가 불쑥 입을 열었다.
“상단주를 불러와라.”
“실례지만 누구신지…….”
한설화가 살짝 아미를 찡그렸다.
그 순간 흑룡상단 소속의 상인은 가슴이 철렁했다.
이 순간 그는 어째서 경국지색(傾國之色)이라는 말이 나왔는지 절감할 수 있었다.
달기와 더불어 희대의 미인으로 꼽히던 여인, 포사(褒姒).
도통 웃지를 않는 그녀가 유일하게 웃는 순간이 바로 비단이 찢어지는 소리를 들었을 때였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의 미소를 보기 위해 왕은 비싼 비단을 있는 대로 구입해 찢어 댔고, 결국 국고를 탕진해 몰락해 버렸다.
그 어리석음을 가리킨 말이 바로 천금매소(千金買笑)였다.
하지만 능력만 된다면 그 역시 기꺼이 천금을 들여 눈앞의 선 여인의 미소 살 의향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상인이 넋을 잃고 멍하니 자신을 보고만 있자 한설화의 눈빛이 대번 차가워졌다.
쩌저적.
그녀의 발밑에서 시작된 서리가 순식간에 건물 내부를 뒤덮었다.
“헉!”
뒤늦게 당황한 상인이 헛바람을 터트리는 순간.
“이게 무슨 난리냐!”
내당과 연결된 문을 통해 한 사람이 달려오더니 한설화를 발견하곤 깜짝 놀랐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도저히 잊히지 않는 미모였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흑룡상단의 상단주를 알아본 한설화가 대뜸 품속에서 전표를 꺼내 그에게 내밀었다.
“이건 뭡니까?”
이만 냥짜리 전표를 받아 든 흑룡상단의 단주가 놀라 되물었다.
“조화건잠(造化鍵簪)을 찾으러 왔다.”
한설화의 대답에 상단주는 일순 크게 당황했다.
“그때 제게 팔았던 그 봉잠(鳳簪) 말입니까?”
고개를 끄덕이는 한설화의 모습에 상단주가 곤혹스러운 눈빛을 흘렸다.
“그 물건은 제게 없습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