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335)
신마의선-335화(335/500)
신마의선 (335)
“그럼 누구에게 있지?”
한설화의 물음에 상단주가 순간 멈칫했다.
하지만 이내 태연하게 대꾸했다.
“이미 다른 이에게 팔렸다 들었습니다. 제가 직접 판매한 것이 아니고 보고만 들었던 터라, 누구에게 팔렸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한설화가 상단주를 지그시 응시했다.
세상 물정에 어둡다 뿐이지 그녀는 어리석거나 눈치가 없진 않았다.
눈에 띄게 당황하는 상당주의 표정과 흔들리는 눈빛.
한설화는 상대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무엇보다 조화건잠은 그리 쉽게 시중에 유통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그 이유를 잘 알기에 그토록 선뜻 그에게 판매한 것이다.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되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럴 리가.”
“예? 뭐가 말입니까?”
엉겁결에 반문하던 상단주는 이어진 한설화의 말에 낯빛이 굳어졌다.
“황실의 보물을 그런 식으로 팔았다고?”
“……!”
상단주가 대번 동요하며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 말대로였다.
처음 한설화가 그에게 비녀를 팔았을 당시, 그는 단번에 그 물건의 가치를 알아볼 수 있었다.
청옥(靑玉).
그것도 청해에서만 드물게 생산된다는 곤륜옥(崑崙玉)으로 만들어진 비녀는 그리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금방이라도 날아갈 듯 날개를 펼친 봉황 조각 역시 예사롭지 않았다.
충분히 황실에 진상되고도 남을 기물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판매를 위해 매장에 전시한 지 사흘 만에 봉잠(鳳簪)은 바로 팔려 나갔다.
아무리 이곳이 중원과 동떨어진 변방일지라도 나름 떵떵거리는 부자도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는 물건의 가치를 알아보는 심미안을 갖춘 사람도 있는 것이다.
판매 가격은 만오천 냥.
매입을 위해 지불했던 가격에 오 할이 더해진 금액이었다.
이렇게 빨리 팔릴 줄 알았다면 가격을 더 높이 책정할 걸 하는 아쉬움이 밀려들었지만 이미 자신의 손을 떠나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문제가 발생했다.
봉잠을 구입해 갔던 구매자가 환불을 요구한 것이다.
물건 자체에는 문제가 없었고 판매 과정에서도 특별한 이상이 없으니 당연히 거절했다.
한데 구매자는 사색이 된 채 무작정 환불해 달라 떼를 쓰기 시작했다.
그가 알기로 구매자는 오랜 세월 공직에 몸담고 있었던 고위 관리였다.
그가 가진 인맥으로 장사에 훼방이라도 놓으면 그 역시 곤란해지는 상황.
별수 없이 상대의 요구를 받아들여 봉잠을 다시 매입했다.
그리고 매입 가격으로 만 냥을 불렀다.
한데 오천 냥의 손해를 감수하고도 상대는 순순히 거래에 응했다.
결과적으로 그의 수중에 봉잠은 그대로였고, 거기에 더해 오천 냥의 수입을 거저 벌어들인 셈이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일이 몇 번 더 반복됐다.
더욱 높은 금액에 봉잠을 구입해 간 사람들이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돌아와 손해를 무릅쓰고 환불해 간 것이다.
처음에는 생각지도 않게 굴러들어 온 행운에 기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니고 있는 것만으로도 별반 힘을 들이지 않고 거저 돈이 굴러들어 오니 봉잠 그 자체가 화수분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비슷한 상황이 계속해서 반복되었기 때문이다.
이쯤 되니 그 역시 봉잠의 정체에 대해 의심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조용히 이 분야에 조예가 깊은 사람들을 찾아가 봉잠에 대해 수소문해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진실을 알게 된 그는 대경실색했다.
예사 물건이 아니라곤 생각했지만 설마 황실에서 흘러나온 보물이었을 줄이야.
그것도 황제의 모친인 황태후(皇太后)가 가장 아끼던 장신구였다니…….
어쩌다 그런 보물이 눈앞의 여인에게 흘러들어 갔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문제는 출처가 분명한 황실의 보물을 자신이 거래했다는 사실이었다.
진실을 알게 된 이상 그는 더 이상 봉잠을 판매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간 큰 상인이라도 황실의 위엄까지 무시할 순 없기 때문이다.
행여 운 나쁘게 누군가 조정에 투서라도 넣게 되면 삼족이 멸해질 수도 있었다.
아무리 돈에 환장한 상인이라지만 목숨은 하나뿐이다.
그래서 그는 봉잠을 깊숙한 곳에 숨겨 버렸다.
그런데 처음 자신에게 봉잠을 팔았던 당사자가 다시 찾아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게다가 봉잠의 정체에 대해 알고 있었고, 그 행방을 추궁하기까지 하니 자신도 모르게 거짓말을 하고 만 것이다.
그래서 더욱 전전긍긍하던 이때.
‘잠깐?’
문득 뇌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어쩌면 이건 위기가 아니라 기회란 생각이 들었다.
눈앞의 여인은 누가 봐도 무림인이 분명했다.
‘애물단지를 처분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만약 봉잠을 판매한 사실이 알려져 관부로부터 추궁을 받더라도 위협을 받아 어쩔 수 없었다 변명하면 그만이었다.
무엇보다 원래의 소유자에게 돌아가는 것이니 자신은 최대한의 이문만 남기면 그만.
“험험.”
이마의 식은땀을 훔치며 목소리를 가다듬은 상단주가 애써 태연한 척 입을 열었다.
“파는 거야 저희 마음 아니겠습니까? 그래도 혹시 모르지요. 타당한 금액을 지불할 의향이 있으시다면 저희가 직접 행방을 수소문해 볼 수는 있습니다.”
한설화는 내심 어이가 없었다.
“타당한 금액? 이만 냥으로는 부족하다는 뜻인가?”
“그야 직접 발품을 팔아야 하는 일이니까요. 그 과정에서 지불하는 정보료와 혹시 모를 위험 수당까지 감안해야 하는 점을 감안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얼마를 원하지?”
“적어도 삼만 냥 정도라면…….”
상단주는 이내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자신을 마주한 눈빛에서 느껴지는 살기 때문이었다.
정말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자 온몸이 덜덜 떨려 왔다.
그때였다.
“엇? 혹시 선자님 아니십니까?”
흑룡상단 안으로 들어선 누군가가 한설화를 향해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한설화가 고개를 돌려 상대를 바라보자, 시선을 마주친 장년인이 놀란 표정을 짓다 넙죽 고개를 숙였다.
“아이고, 맞으시군요! 본 단에서 전갈을 받고 미리 나가 기다리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길이 엇갈렸던 모양입니다.”
가만히 장년인을 살피던 한설화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신마상단 특유의 복색을 갖춰 입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신마상단 소속이군.”
“예. 이곳 흑룡강성 지부의 양이서라고 합니다. 부족하나마 제가 이곳의 지부장을 맡고 있습니다.”
자신을 양이서라 밝힌 장년인이 공손한 태도로 한설화에게 다가섰다.
“그나저나 이 궁벽한 곳까진 어인 일이십니까? 필요한 게 있으시다면 저희들에게 시키셔도 되는데요.”
한설화는 대답 대신 흑룡상단의 상단주를 노려봤다.
뒤늦게 양이서는 장내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냉기를 뿜어내는 한설화의 모습은 누가 봐도 노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반면 그녀와 마주한 흑룡상단의 상단주는 눈썹이며 수염이 하얗게 얼어 고드름이 매달릴 지경이었는데도 꼿꼿하게 선 채 한 치 물러섬도 없이 그녀와 대치 중이었다.
‘아무리 돈에 목숨을 거는 게 상인이라지만…….’
그 모습에 양이서는 내심 혀를 찼다.
그는 지금 자신이 누굴 상대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게 분명했다.
“이분이 누군지는 알고 계시오?”
양이서의 물음에 흑룡상단의 상단주가 멈칫했다.
그러고 보니 아직까지 상대의 신분이나 정보가 전무했다.
하지만 최근 무서운 기세로 사업을 확장해 나가는 신마상단의 지부장이 이처럼 깍듯한 데에는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을 터.
“대체 누구시길래……?”
양이서가 한숨을 내쉬었다.
“혹시 이분께 실수라도 하신 건 아니지요?”
이어진 양이서의 설명에 상단주가 화들짝 놀랐다.
“이분이 바로 무위의 신마삼존이라 불리시는, 빙옥선자 한설화 여협 본인이십니다.”
“그, 그런…….”
“만약 이분께 조금이라도 무례를 저지르셨다면 앞으로 저희 신마상단과는 두 번 다시 거래하실 수 없게 될 겁니다. 아니, 저희가 목숨 걸고 그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할 것입니다.”
“…….”
“저희가 흑룡상단이 다루는 주요 품목을 건드리지 않는 것은 상호 공생을 도모하라는 상단주님의 지시가 있었기 때문이지, 능력이 부족해 못 한 것이 아닙니다.”
“그, 그건 고맙게 생각하고 있소이다.”
“그렇다면 무슨 일인지 확실하게 설명해 주십시오.”
말은 공손했지만 그 안에는 명백한 경고가 담겨 있었다.
그리고 이를 모를 상단주가 아니었다.
입을 열기 주저하며 머뭇거리던 것도 잠시.
이윽고 한설화와 나눈 대화들을 상단주가 털어놓자 양이서는 기가 막혀 할 말을 잃었다.
“하…….”
흑룡상단의 상단주가 시중에서는 함부로 유통할 수 없는 귀물을 다룬다는 소문은 그 역시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그리고 한눈에 봐도 그가 봉잠을 지니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만한 가격의 물품이 거래되었다면 이 좁디좁은 바닥에서 소문이 나지 않을 리 없었다.
그가 들었던 마지막 소문은 팔렸던 봉잠이 다시 환불되었다는 사실이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한설화를 상대로 사기에 가까운 흥정을 벌이고 있었다니.
돈에 대한 집착은 이토록 무서운 것이다.
같은 상인으로서 아주 이해를 못 하는 바는 아니었다.
실제로 그에게는 봉잠을 이용해 수익을 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기 때문이다.
나직한 한숨과 함께 양이서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그거 아시오?”
의아해하는 흑룡상단의 상단주를 향해 양이서가 안쓰러운 눈빛을 던졌다.
“오래 살려면 명의도 보약도 필요 없소. 그저 욕심만 부리지 않고 순리를 따르면 되는 것이오.”
이어진 상인의 말에 흑룡상단의 상단주가 흠칫했다.
“과욕에 눈이 머는 순간 죽음은 이미 근처를 맴돌고 있다오.”
“……!”
“나도 상인인지라 크게 이문을 남기고자 하는 그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오. 하나 아무리 돈이 좋다지만 죽고 나면 무슨 소용이요? 저승에 싸 갈 거요?”
잠시 멍한 표정으로 서 있던 상단주가 한설화와 양이서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한설화는 둘째 치고 당장 눈앞의 양이서를 적으로 돌려 좋을 게 없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내당으로 이어진 문을 통해 뒤쪽으로 사라졌던 상단주가 잠시 후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손에는 작은 목갑이 들려 있었다.
목갑을 열어 그 안에 담긴 내용물을 확인시킨 그가 머뭇거리며 목갑을 내밀었다.
“흥.”
조화건잠을 확인한 한설화가 차갑게 코웃음 쳤다.
그러곤 내력을 거두며 상단주를 응시했다.
“너는 저 사람을 평생의 은인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가 방금 네 목숨을 구했으니까.”
“…….”
상단주가 푹 고개를 숙였다.
입이 있어도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에게 한설화가 전표를 던졌다.
“어? 벌써 가십니까?”
돌아서는 한설화를 양이서가 붙들었다.
“그래도 모처럼 이곳까지 오셨는데 식사라도 하고 가시지요. 아무 대접도 하지 않고 선자님을 그냥 보낸 것이 알려진다면 분명 본 단에서 한 소리 할 겁니다.”
“난 괜찮으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아이고,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죠. 이대로 그냥 가시면 제 딸아이 볼 면목도 없습니다.”
“딸?”
한설화의 반문에 양이서가 환하게 웃었다.
“예, 소화라고……. 전에 선자님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고 하더군요. 그 뒤로 얼마나 선자님 이야기를 하던지……. 나중에 커서 선자님처럼 훌륭한 고수가 되겠다고 난리입니다. 하하.”
한설화는 문득 한 소녀의 얼굴을 떠올렸다.
“귀 아래 점이 있던 그 아이로군.”
“기억해 주시다니 영광입니다.”
“웃는 모습이 참 예쁜 아이였지.”
“다음에 딸아이를 만나면 꼭 전해 주겠습니다. 무척이나 좋아할 겁니다.”
“다음에?”
“제 어미와 함께 무위에 있습니다. 아무래도 이곳보다는 그곳이 안전할 것 같아서요.”
“아비를 무척이나 좋아하고 따르던 아이로 기억하는데, 많이 보고 싶겠군.”
그 말에 양이서의 눈빛이 애잔해졌다.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식구들 입에 풀칠하려면 별수 없지요.”
그리움 가득 묻어나는 그의 목소리에 한설화의 눈매가 부드럽게 휘어졌다.
한설화가 고개를 돌려 흑룡상단 상단주를 바라봤다.
“잠깐.”
이 자리가 못내 민망해 말없이 슬금슬금 물러나던 상단주가 그 자리에 굳어졌다.
그런 그를 향해 한설화가 말했다.
“물건값을 좀 깎아야겠다.”
“예?”
당황해 반문하는 그를 한설화가 말없이 노려봤다.
흑룡상단의 상단주가 울상을 지었다.
계산을 끝낸 거래를 이제 와 다시 흥정하자니…….
그래도 지은 죄가 있어 거절하지 못하고 힘없이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