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336)
신마의선-336화(336/500)
신마의선 (336)
“얼마나 깎아 주길 원하시는지…….”
“열 냥.”
돌아온 대답에 흑룡상단의 상단주가 반색했다.
처음엔 잘못 들은 게 아닌가 싶었다.
이만 냥이라는 거금을 지불했으면서 고작 열 냥을 깎는다니?
굳이 앓는 소리를 할 필요도 없었다.
상대가 흔쾌히 열 냥을 꺼내 놓자 한설화는 이를 다시 양이서에게 건넸다.
“이걸 왜 제게?”
영문을 몰라 의아해하는 양이서를 향해 한설화가 짧게 대답했다.
“거간비(居間費)다.”
얼떨결에 열 냥을 받아 든 양이서는 이어진 한설화의 말에 울컥했다.
“구운 오리를 좋아한다고 하더구나.”
“예?”
“네 딸 말이다. 좋아하는 음식을 물었더니 그리 대답했었다.”
“아!”
갑자기 흐려지는 양이서의 표정에 한설화가 의아한 눈빛을 던졌다.
그러기를 잠시.
“제 딸은 오리 구이를 먹어 본 적이 없습니다.”
양이서가 뜻밖의 이야기를 꺼냈다.
“오리구이는 제가 좋아하는 음식입니다. 언젠가 제 생일날 딸이 묻더군요. 부자가 되면 가장 먹고 싶은 음식이 무엇이냐고. 그래서 제가 어렸을 때 맛보았던 오리구이가 생각나 그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그걸…….”
목소리가 잦아드는 양이서의 모습에 한설화가 고개를 갸웃했다.
“고작 오리구이 하나 사 먹지 못할 만큼 사정이 어려운 것이냐? 신마상단에서 지급하는 급료가 적지 않은 걸로 아는데?”
“빚이 좀 있거든요.”
“빚?”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 양이서가 빚을 지게 된 연유를 설명했다.
“제 선친께서는 천석꾼 소리를 들으시던, 제법 크게 농사를 짓던 부농이셨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크게 범람한 강이 물길을 틀어 농지를 덮쳤다.
급하게 이를 수습하기 위해 논으로 향했던 부친은 물에 휩쓸려 돌아가셨고, 그해 농사도 크게 망쳤다.
문지방 닳도록 찾아오는 빚쟁이들을 상대로 당시 어렸던 양이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생긴 빚을 끌어안고 어떻게든 살아 보려 아등바등했지만…… 참 쉽지가 않더군요. 한동안 유민으로 떠돌며 전전하다 무위에 정착하게 되었고, 그나마 지금은 급료로 차곡차곡 빚을 갚아 나가는 중입니다.”
딸에게 재산을 물려주지는 못할지언정 최소한 빚만큼은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일가족이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생필품을 구입하는 돈을 제외하고 급료 대부분을 채무를 탕감하기 위해 쏟아붓는 중이었다.
변방이라 모두가 마다하는 이곳 지부장으로 자원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이런저런 명목으로 추가 급료가 붙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오리구이 같은 음식은 쉽게 엄두를 낼 수도 없었습니다.”
물끄러미 양이서를 응시하던 한설화가 불쑥 입을 열었다.
“빚이 전부 얼마지?”
“대략 이백 냥 정도 됩니다.”
고개를 끄덕인 한설화가 이번엔 흑룡상단의 상단주를 향해 시선을 던졌다.
“그렇다는군.”
“예?”
어리둥절해 말을 잇지 못하던 상단주는 이어진 한설화의 말에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
“설마 은인의 곤경을 외면할 생각인가?”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흑룡상단의 상단주가 황급히 입을 열었다.
“무, 물론 제가 대신 갚아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양이서가 그 제안을 거절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단호한 양이서의 태도에 한설화가 아미를 찡그렸다.
“왜지?”
“만약 그가 제 빚을 대신 갚아 준다면 앞으로 이곳 지부를 운영하며 온갖 구설수에 시달릴 게 분명합니다. 저는 이곳을 제대로 관리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정당한 거래에도 불구하고 상대에게 편의를 제공한 것이 아닌가, 혹은 상단에 손해를 끼친 것이 아닌가 하는……. 그런 억측들이 나오기 시작하면 신마상단의 신뢰는 크게 추락할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 사람을 떠올린 양이서가 환하게 웃었다.
“딸아이에게만큼은 떳떳한 아비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자식에게 당당한 아비이고 싶은 그 마음을 어찌 모를까.
한설화 역시 그의 선택과 의지를 존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 아이가 아비를 자랑스러워하는 이유가 있었군.”
한설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거간비는 챙기도록.”
그러곤 희미한 미소를 머금었다.
“오리구이는 꼭 사라.”
“오리구이라고 해 봐야 한 냥이 채 안 될 텐데요.”
“그럼 여러 번 먹으면 되겠구나.”
이렇게까지 챙겨 주는데 감히 거절할 수도 없었다.
“감사합니다. 선자님께서 베푸신 호의를 잊지 않겠습니다. 무위로 돌아가면 반드시 딸아이에게 오리구이를 사 주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한설화가 말없이 돌아섰다.
이내 두 사람을 남겨 둔 채 신형을 날렸다.
‘단 의원도 오리구이를 좋아했었지.’
언젠가 범가 멍청이가 북경까지 가서 사 왔던 오리구이.
과자처럼 바삭바삭하게 씹히는 껍질의 식감에 신기해하던 단악선을 떠올린 한설화가 자신도 모르게 빙긋 웃었다.
닷새 후.
한설화가 돌아오자 단악선이 누구보다 기쁘게 맞아 줬다.
“어서 오세요! 보고 싶었어요.”
한설화가 조용히 웃으며 등 뒤에 감추고 있던 무언가를 꺼내 단악선에게 내밀었다.
“이게 뭔가요?”
한설화가 건넨 대나무 광주리를 연 단악선이 환하게 미소 지었다.
언젠가 맛보았던 오리구이였다.
어느새 곁에 다가온 초악량이 의외란 표정을 지었다.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군. 한 누이가 먹을 걸 사서 오다니 말이야.”
그러다 문득 초악량이 의아한 눈빛을 던졌다.
“응? 이건 진짜 제대로 된 북경고압(北京烤鴨)인데?”
북경식 오리구이는 원래 남경 황실의 명물 요리였다.
그러나 영락제가 북경으로 수도를 옮긴 이후 자연스럽게 북경을 상징하는 요리로 자리 잡았다.
최대한 껍질을 바삭하게 구운 오리 요리를 흔히 북경식 오리구이라고 통칭하지만 사실은 그 종류가 다양했다.
정통 북경 오리구이는 조리법 자체가 매우 까다로웠다.
우선 재료부터가 아무 오리나 쓰지 않는다.
부화한 지 두 달 보름을 채운 오리를 사용하되, 잡기 보름 전에는 충분히 살을 찌우기 위해 억지로 음식을 먹인다.
이후 손질한 오리는 대통을 꽂아 공기를 주입해 풍선처럼 부풀려 껍질과 고기 사이에 공기층을 만든 다음, 끓는 물로 살짝 데쳐 설탕과 물엿을 골고루 발라 며칠간 바짝 말린다.
이후 양념을 추가해 화덕에 구워 내는 까다롭고 복잡한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이처럼 번거로운 과정 때문에 숙련된 숙수가 아니고서는 제대로 요리해 낼 수 없는 게 북경고압이었다.
반면 이와는 다른 서민식의 북경 오리구이도 있었다.
까다로운 과정을 생략하고 간단하게 양념을 끼얹어 숯불에 구워 내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한설화가 가져온 건 한눈에 봐도 제대로 된 북경 오리구이였다.
곁들여 온 다른 음식들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소고기와 각종 채소를 후추와 조미료를 넣고 함께 볶아 낸 흑숙우류(黑椒物流)부터 궁보계정(宮保鷄丁) 양념에 새우를 버무린 궁보하(宫保虾), 거기에 마늘과 콩깍지를 넣고 볶은 산룡화두(蒜龍和豆)까지.
“설마 너도 범가 녀석처럼 북경까지 가서 사 온 건 아니지?”
초악량의 물음에 한설화가 멈칫했다.
단악선이 웃으며 두 사람의 손을 잡아끌었다.
“아무렴 어때요. 고마워요, 잘 먹을게요.”
그렇게 둘러앉아 함께 음식을 나누던 도중.
초악량이 나직이 한숨을 흘렸다.
“이럴 때는 범계위 그 녀석이 없는 게 아쉽군.”
한설화가 초악량에게 뜻밖이라는 눈빛을 던졌다.
평소 두 사람의 관계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 가지 않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그 녀석이라면 식지 않게 가져왔을 텐데.”
이어진 초악량의 말에 한설화는 내심 어이가 없었다.
살다 살다 범계위와 비교될 줄이야.
“트집을 잡는 걸 보니 배가 덜 고팠군.”
싸늘해진 한설화의 눈빛을 마주한 초악량이 순간 아차 싶었다.
“생각해 보니 식은 게 더 바삭해서 맛있는 것 같기도? 어차피 이건 껍질을 먹기 위한 요리니까…….”
뒤늦게 초악량이 사태를 수습하려 했지만 이미 요리가 담긴 바구니는 한설화 손에 넘어간 뒤였다.
당연히 이후로는 요리에 손도 댈 수 없었다.
괜한 말을 꺼냈다 본전도 못 찾은 초악량이 아쉬움을 금치 못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그래도 고수의 체면이 있는지라 차마 다시 달라 부탁하진 못하고 벽곡단으로 허기를 달래는 초악량이었다.
* * *
고관들의 저택이 밀집해 있는 북경 거리.
그중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커다란 저택은 늦은 시각까지 불을 밝히고 있었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입니다. 어떻게든 능소밀 그자가 더 이상 날뛰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한 사람의 말에 실내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황제의 총애를 등에 업고 일약 권력의 핵심으로 급부상한 능소밀.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그런 능소밀을 견제하기 위한 반대파의 대소 신료들이었다.
그들은 더 이상 기존의 질서를 무너트리는 능소밀의 존재를 두고만 볼 수 없었다.
심지어 놈은 과거도 치르지 않고, 제대로 된 등용의 절차도 밟지 않았다.
새로운 황제가 등극한 이후 앞서간 선황의 잔재들을 걷어 내고 지금의 정치 체계를 이뤄 낸 것은 오직 그들의 공이었다.
이를 위해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던가.
그 절치부심의 노력이 이제야 빛을 발해 자리를 잡아 가고 있었는데, 어디서 난데없이 튀어나온 사기꾼 때문에 종묘사직의 기강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었다.
최근 두드러진 능소밀의 활약으로 인해 이부의 세력이 무섭게 일어나 권력의 중심이 점차 그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기존의 보수 세력의 중심이었던 병부도 슬쩍 능소밀 쪽으로 말을 갈아타려 하고 있었다.
이로 인해 한때 크게 앞서갔던 보수 진영이 지금은 신진 세력에 밀려 아슬아슬한 정세를 이어 나가고 있었다.
그들은 더 이상 이를 좌시할 수 없었다.
이때 누군가가 입을 열었다.
“우리가 노려야 할 사람은 능소밀이 아닙니다.”
“능소밀이 아니다?”
“그자는 워낙 간교하여 아무리 함정을 판들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갈 것이 분명합니다.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요. 오히려 섣불리 그를 공격하다 역공을 당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럼 달리 방법이 있소?”
“그래서 이 자리에 여러분을 모신 것입니다.”
“그렇다니 경청하리다. 그를 끌어내릴 방법이 무엇이오?”
“장수를 쓰러트리려면 말부터 쏘아야 하는 법입니다. 아니, 이 경우에는 금적금왕(擒賊擒王)이라고 하는 게 맞겠군요.”
“적을 쓰러뜨리기 위해 그 왕을 먼저 노린다라?”
“수소문해 본 바로는 그자가 진심으로 충성하는 인물이 따로 있다 하더군요.”
“그게 누구요?”
“최근 무림에 신마의선이라는 명호를 알리기 시작한 어린 의원입니다.”
“그와 관련한 이야기는 나 역시 들어 본 적이 있소.”
그 말에 회의를 주도하던 호부 상서 양소가 단언했다.
“단악선이라는 소년을 처리하면 능소밀 역시 힘을 잃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말에 곧바로 누군가가 우려를 드러냈다.
“처리하자니? 듣자니 그곳에는 무서운 고수들이 득시글댄다던데? 그게 가능하기나 하겠소?”
“반드시 무력을 동원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지요.”
“하면?”
“조만간 폐하를 알현하는 자리가 있지 않습니까. 그 자리에서 폐하로 하여금 단악선이라는 소년을 싫어하게 만드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어떻게 말이오?”
“제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단악선이라는 아이는 불의를 참지 못하며, 자신의 신념에 따라 행동한다 합니다. 세상 물정을 모르는 이상주의라는 뜻이지요.”
“으음. 폐하께서 좋아하는 성향은 아니군.”
고심을 거듭하는 보수파 대신들을 향해 호부 상서가 웃음을 말아 올렸다.
“무엇보다 그가 폐하의 눈 밖에 나면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것도 있지요.”
“그게 무언가?”
“바로 신마상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