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338)
신마의선-338화(338/500)
신마의선 (338)
“빙옥선자 한 여협과 신마의선 단 소협 맞으신지요?”
이십 대 후반 정도 되었을까.
반안이나 송옥이 살아 있다면 저와 같지 않을까 싶을 만큼 단번에 눈에 띄는 수려한 외모를 지닌 사내였다.
“동창이 우리에게 무슨 일이지?”
차가운 한설화의 음성에 사내가 빙긋 웃었다.
“제가 제대로 찾아왔군요. 저는 윤흠이라 하옵고, 말씀하신 대로 동창에 적을 두고 있습니다.”
선이 가는 이목구비 때문일까.
자신을 윤흠이라 밝힌 위사의 목소리가 유독 나긋나긋하게 느껴졌다.
하나 눈빛만큼은 차가운 유리처럼 그 어떤 온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외모와 묘한 대비를 이루는 그 눈빛이 어딘가 이질적이고 위험한 느낌을 자아냈다.
“듣자니 폐하께 헌상하실 물건이 있으시다고요.”
그렇게 운을 뗀 윤흠이 본론을 꺼냈다.
“제가 그 물건을 확인해 봐도 되겠습니까?”
물끄러미 윤흠을 응시하던 한설화가 품속에서 조화건잠을 꺼내 탁자에 올렸다.
한참을 말없이 봉황이 조각된 비녀를 살피던 윤흠이 탄성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틀림없군요. 그분께 들었던 설명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무심코 그가 비녀를 향해 손을 뻗는 순간.
“조화건잠에 대해 들었다면 그 내력도 알고 있겠지?”
갑자기 날아든 서늘한 음성에 윤흠이 멈칫했다.
“물론입니다.”
“그렇다면 일개 동창 위사가 함부로 손댈 물건이 아니라는 것도 알 텐데.”
윤흠이 콧잔등을 슬쩍 찡그리며 웃었다.
“어쩌겠습니까. 저 같은 미관말직이야 그저 주어진 명에 따를 뿐인걸요.”
“그 명령이 조화건잠을 찾아오라는 것이었나?”
“진품이 맞다면요.”
고개를 끄덕인 윤흠이 한설화와 시선을 마주했다.
“그럼 이건 원래 주인께 돌려드리겠습니다.”
한설화의 전신에서 뭉클거리는 살기가 쏟아지기 시작한 것도 그때였다.
“천하의 주인이라는 황제가 이토록 약속을 가볍게 여길 줄은 몰랐군.”
한설화의 살기를 지척에서 맞닥뜨린 윤흠의 얼굴이 일순 창백해졌다.
하지만 표정만큼은 여유를 잃지 않았다.
“저는 분명히 원래의 주인께 돌려드린다고 말씀드렸습니다만.”
한설화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동창은 황제의 직속 기구.
그래서 당연히 황제가 보낸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이 자리에 저를 보내신 분은 황태후 마마십니다.”
“그걸 어떻게 믿지?”
“그리 물으시면 마마께서는 이리 답하라 하시더군요.”
윤흠이 한 구절의 시를 읊었다.
“강호의 풍파 깊고 넓으니(水深波浪闊), 교룡에게 잡히지 않도록 부디 조심하기를(無使蛟龍得).”
두보가 쓴 몽이백이수(夢李白二首).
그 시의 일부였다.
한설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전 윤흠이 언급한 시구는 지금은 황태후가 된 그녀와 자신만이 아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한설화의 살기가 누그러지자 윤흠이 안도하며 조화건잠을 집어 품속에 갈무리했다.
그러곤 손수건을 꺼내 뒤늦게 쏟아지는 식은땀을 닦아 냈다.
“양해해 주십시오. 이 물건이 시끄러운 늙은이들에게 알려져 좋을 것이 없으니까요.”
묻지도 않았건만 윤흠은 자신이 이곳에 온 연유를 설명했다.
“어전 회의에서 이 주제로 대신들이 설전을 주고받았다 하더군요. 폐하께서는 이 물건의 정체를 알아 오라 하셨고, 이를 전해 들은 황태후 마마께서는 때가 되었음을 아시고 이렇게 저를 보내신 것입니다.”
“조화건잠을 계속 주시하고 있었군.”
“네. 잠시라도 그걸 가졌던 사람들도 전부 알고 있지요. 황궁에는 비밀이 없거든요. 도처에 눈과 귀가 깔려 있고, 특히 저희 고자들은 하나같이 입이 가벼우니까요.”
“아!”
단악선이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흘렸다.
그제야 상대의 이질적인 분위기가 어디에서 기인하고 있는지 깨달았던 것이다.
윤흠이 웃으며 단악선을 바라봤다.
“양물을 거세한 고자를 이렇게 직접 대하는 건 처음이신가 봅니다?”
단악선의 얼굴이 붉어졌다.
무심코 흘린 탄성이 때에 따라 상대에게는 치부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환관들의 괴팍하고 편협한 성정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환관들은 이와 관련된 언급을 꺼리는 편이었다.
그런데 의외로 눈앞의 윤흠이라는 자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조용히 웃고는 다시 한설화를 향해 입을 열었다.
“그리고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겪어 온 마마께서는 누구보다 약속을 귀히 여기시고, 그 무게를 아는 분이시니까요. 아! 그리고…….”
윤흠이 뒤늦게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단악선에게 내밀었다.
그것이 곱게 접힌 한 장의 종이라는 걸 깨달은 단악선이 의아한 눈으로 윤흠을 올려다보았다.
이에 윤흠이 펴 보라는 듯 슬쩍 눈짓했다.
“어?”
그것을 받아 안에 적혀 있던 내용을 확인한 단악선의 눈에 놀라움이 자리 잡았다.
“이걸 어째서…….”
이때 윤흠이 검지를 들어 자신의 입술에 가져다 댔다.
그 안의 내용은 함구하라는 의미였다.
단악선은 황궁에 비밀이 없다는 그의 말이 허언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놀라서 말을 잇지 못하는 단악선을 향해 윤흠이 눈을 찡긋했다.
“이건 저희가 올리는 작은 성의입니다. 부디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군요.”
단악선은 문득 이상하단 생각이 들었다.
윤흠을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고, 이제껏 동창과 같은 조정의 기관들과는 딱히 이렇다 할 교류도 없었다.
그런데 이토록 큰 호의를 베풀다니?
그 이유를 선뜻 납득하기 어려웠다.
“사례감에서 근무하고 계시는 윤에 봉 자 쓰시는 분이 제 부친 되십니다. 무위의 지주 대인이신 능 대협과 최근 깊은 교감을 나누셨다 들었습니다.”
“아!”
능소밀이라는 이름만으로 단악선은 단번에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자식을 가질 수 없는 환관들은 대를 잇기 위해 양자를 들이는 것이 흔했다.
비록 피로 이어지지 않았다 뿐이지 부모 자식 사이의 부자지정(父子之情)은 여느 일반 사람들과 다르지 않았다.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거는 것이 바로 진짜 사내입니다. 비록 양물이 없다 해도 말이지요.”
농담처럼 건넨 윤흠의 말에 단악선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감사해요. 베풀어 주신 호의는 잊지 않을게요.”
“부디 현명하게 잘 대처하시길…….”
특유의 매끄러운 미소로 화답한 윤흠이 한설화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마마께서 나서신 이상 폐하와의 알현은 성사될 것입니다. 그럼 저는 이만…….”
정중하게 예를 갖춘 양흠은 처음 객잔에 들어섰을 때처럼 관군들과 함께 바람처럼 사라졌다.
“저자도 상당한 고수로구나.”
한설화의 말에 단악선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토록 가까운 거리에서 한설화의 살기를 정면에서 받아 내고 그처럼 태연히 말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가 지닌 무공이 상당하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기를 잠시.
단악선은 내내 궁금하던 것을 물었다.
“그런데 조화건잠이 뭐죠?”
“열쇠다.”
“열쇠요?”
“그래. 겉보기에는 화려한 비녀지만 실제로는 한 장소의 문을 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물건이지.”
“그 장소가 어딘데요?”
“순천부 대흥(大興)의 장씨 일가의 석묘(石墓)다.”
고개를 갸웃하던 단악선이 이내 의미를 깨달았다.
“석숭 이후 가장 큰 부를 거머쥐고 있다는 그 장씨 일가 말인가요?”
한설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를 이어 물려받은 온갖 보물이 그곳에 보관되어 있다 하더구나.”
당금 황제의 모친인 자효헌황후(慈孝獻皇后)가 바로 그곳 장씨 일가의 후손이었다.
“그 열쇠를 어째서 아주머니께서 지니고 있었나요?”
“듣고 싶으냐?”
“곤란하시면 말씀 안 하셔도 되고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단악선의 눈빛이 호기심에 초롱초롱해져 있었다.
그 모습에 한설화가 조용히 웃었다.
“내가 머물던 곳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있느냐?”
“수빙궁(修氷宮) 말인가요?”
한설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기껏해야 움막 수준인 그곳에 가당치 않은 이름이지. 원래 그곳은 딱히 이렇다 할 이름이 없었다.”
얼어붙은 연못을 끼고 있는 혹한의 설원.
세상사의 번거로움과 귀찮은 인연을 피하기 위해 한설화는 오랜 세월 그곳에 은거해 있었다.
이따금 찾아오는 사람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매번 선자불래(善者不來) 내자불선(來者不善)의 경우를 비껴가는 일이 드물었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은 얼어붙은 연못 아래에서 대가를 치렀다.
예외가 있었다면 이따금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들르던 초악량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날.
“몰아치는 눈보라 사이로 흐느끼듯 숨죽인 노랫가락이 들려왔다.”
―죽어 이별은 울음조차 삼키게 하고(死别已吞聲), 살아 이별은 언제나 서럽고 서럽네(生别常惻惻).
그 음성이 너무 애절하고 구슬퍼 밖으로 나섰다.
노랫가락을 따라 걷길 잠시.
이내 누군가를 끌어안은 채 얼어 죽어 가는 한 여인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녀 자신도 죽어 가던 와중에 어떻게든 자신의 아들을 살리기 위해 애쓰고 있었지.”
바로 어제처럼 생생한 그날의 기억.
그만큼 상대의 첫인상은 강렬했다.
생사의 기로에 서서 처절하던 와중에도 그녀는 매우 기품 있었고, 또 의연했다.
“그녀가 안고 있던 아이가 당시 열다섯 살이었으니 지금의 너와 비슷한 또래였지.”
“아! 그렇다면?”
한설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지금의 황태후고, 그녀가 안고 있던 아들이 바로 지금의 황제란다.”
단악선의 얼굴 위로 의아함이 떠올랐다.
“그분들이 왜 그렇게 외진 곳을 떠돌고 있었던 걸까요?”
“두 사람을 죽이려는 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한설화가 머물던 모옥 근처는 사람들의 입소문을 통해 불길한 장소로 알려져 있었다.
그래서 당시의 황태후는 암살자들을 뿌리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그곳으로 몸을 피한 것이다.
한설화와 조우한 그녀는 자신은 어떻게 돼도 좋으니 자신의 아들만은 살려 달라 간절히 애원했다.
아들과 함께 여행 도중 일단의 무리가 습격해 왔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수행하던 호위 무사들의 희생으로 간신히 두 사람만 겨우 몸을 빼 이곳까지 이르렀다는 대목에 이르렀을 때.
일신의 무공이 상당한 자들이 속속 모습을 드러냈다.
“하나같이 전장을 떠돌던 자들이었다. 전귀(戰鬼) 같은 눈을 하고 있었고, 몸에서는 피비린내를 풍겨 댔지.”
스무 명에 달하는 숫자를 믿었던 것일까.
그들은 곧장 모자와 한설화를 공격했다.
단악선이 쓰게 웃었다.
결과는 듣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보답으로 그녀는 내게 조화건잠을 건넸다. 당장은 보은의 증표로 건넬 것이 그것뿐이라면서.”
그리고 언젠가 그것을 지니고 찾아오면 원하는 것을 내어 주겠노라 약조했다.
한설화가 머물던 모옥에 수빙궁이라는 이름을 붙여 준 사람도 그녀였다.
황족인 자신들을 살려 준 은인인 만큼 어떻게든 궁으로 모시고 싶었지만, 한설화가 한사코 거절하니 그렇게라도 해서 아쉬움을 달랜 것이다.
“아, 그런 일화가 있었군요.”
고개를 끄덕이던 단악선은 그 순간 이상한 점을 느꼈다.
“그렇게 귀한 물건을 상단에 파신 거예요?”
한설화가 머쓱한 눈빛을 흘렸다.
“다시 만날 일이 없을 줄 알았으니까.”
단악선은 살짝 황당했지만 그보다는 궁금함이 더 앞섰다.
“그런데 습격자들은 누구였나요?”
“선대 황제가 갑작스럽게 죽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겠지?”
“네. 나름 능력이 뛰어났던 황제라 들었어요. 하지만 평이 좋지 않다는 이야기도요.”
그만큼 선대 황제는 능력과는 별개로, 온갖 기행을 일삼았던 자였다.
심지어 갑작스럽게 붕어하게 된 이유도 기막혔다.
친척인 영왕의 반란을 진압한다는 명목으로 남경을 방문했다가 돌아오는 길에 뱃놀이를 하던 도중 물에 빠진 것이다.
간신히 익사는 면했지만 그로 인해 후유증이 생겼고, 결국 건강이 악화되어 젊은 나이에 요절했다.
문제는 그를 이어 후계자가 될 아들이 없었다는 점이었다.
결국 선대 황제의 사촌들 가운데 가장 연장자였던 흥왕세자(興王世子) 주후총(朱厚熜)이 열다섯의 나이로 제위에 오르게 되었고, 그가 지금 당대의 황제였다.
“그가 황제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오직 하나. 바로 항렬이 가장 높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어진 한설화의 말에 단악선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