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339)
신마의선-339화(339/500)
신마의선 (339)
“선대 황제를 보필하던 신하들 중 전폭적인 신뢰를 받던 군부의 인사들이 본색을 드러낸 것도 그 무렵이었다.”
당시의 황제는 강한 무력만이 천하를 안정시킬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실제로 본인이 자신에게 주수(朱壽)라는 이름을 붙인 다음 위무대장군(威武大將軍)이란 작위를 내렸고, 스스로를 진국공(鎭國公)에 봉하기도 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군대를 이끌고 출진할 때는 항상 그 이름을 사용하곤 했다.
그만큼 군사력을 신봉했던 터라 자연스럽게 군부의 권력도 강해졌다.
하나 황제의 죽음이 가까워지자 군부의 인사들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새로 제위에 오른 황제가 지나치리만치 강대해진 군권을 그냥 두고 볼 리 만무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황제로 즉위하기 전에 주후총을 제거하기로 마음먹었다. 힘없는 황족을 황제로 추대해 자신들의 꼭두각시로 만들 셈이었지.”
“역모를 꾀한 것이군요.”
“사실상 역모는 아닌 셈이지. 그때는 아직 황제로 등극한 것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그들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다.
지금의 황제가 제위에 오른 직후 엄청난 피의 숙청을 단행하며 권력을 공고히 다진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기본적으로 그는 신하들을 믿지 않았다.
“지금의 오만하고 권위적인 모습이 된 것도 그래서겠지.”
“듣고 보니 좀 불쌍하기도 하네요.”
단악선의 말에 한설화가 실소했다.
“황제를 두고 그리 표현하는 사람은 너밖에 없을 것이다.”
그로부터 나흘 뒤.
정전인 황극전에 대소 신료들을 모은 황제는 오늘도 어김없이 어전 회의를 친히 주재했다.
몇 가지 안건을 마무리 짓고 잠시 숨을 돌리던 그때.
“폐하, 폐하의 명을 받아 이곳으로 향한 백성 단가 악선과 한가 설화가 방금 입궐했나이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자신을 보필하는 근시 환관의 보고에 황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도착하는 즉시 정전에 들라 하라.”
“그리하겠나이다.”
황제의 명령을 전달하기 위해 환관이 물러나는 사이, 황극전 내부에 시립해 있던 대신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마치 생사결전을 앞둔 것처럼 비장함마저 감도는 대신들의 표정.
이를 눈치챈 황제가 내심 실소했다.
하지만 굳이 내색치는 않았다.
잠시 후.
황극전 안으로 두 사람이 들어섰다.
두 사람을 일별한 황제의 눈 위로 기이한 빛이 일렁인 것도 그때였다.
한설화의 얼굴을 지그시 응시하길 잠시.
“역시 그대였군.”
황제가 격동한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자신에게 돌려줄 물건이 있다며 알현을 요청했기에, 그 물건이 무엇인지 알아내 오도록 지시를 내린 그였다.
그리고 그것이 조화건잠이라는 보고가 올라오자 황제는 매우 놀랐다.
칠 년 전, 자신과 황태후가 한 사람에게 목숨을 빚졌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혹시나 싶었는데, 역시나였다.
황실의 예법에 따라 오체투지(五體投地) 하는 단악선과 달리 한설화는 그저 고개만 까닥였을 뿐, 여전히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그 모습에 대신들이 즉시 언성을 높였다.
“어허! 이런 무엄한……!”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황제의 면전에서 이처럼 오만하게 행동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내심 기회를 잡았다 여긴 보수파 대신들은 사정없이 한설화를 다그치기 시작했다.
능소밀을 지지하던 이부 상서 진영의 대신들도 난감하긴 마찬가지.
하나 대놓고 조언할 수 없기에 타는 속을 애써 감추며 간절한 눈짓으로 예를 갖추라 종용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설화는 그 모든 것을 깔끔하게 무시했다.
여전히 그 자리에 서서 오연한 눈빛을 뿌리는 그녀의 모습에 황제가 실소하며 손을 들어 올렸다.
“그만. 저 여인은 짐의 백성이 아니다.”
짧게나마 그녀와 직접 마주했던 황태후를 통해 황제는 그녀가 장성 밖, 새외 출신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평소의 그답지 않게 황제의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오히려 그럴듯한 명분까지 쥐여 주는 황제의 말에 신하들은 당황했다.
하나 어디에나 눈치 없는 사람은 늘 있기 마련.
“하오나 폐하께서 다스리시는 강역에 머무는 이상 의당 예법에 따라…….”
“그만하라 했을 텐데.”
“……!”
황제의 서늘한 눈빛을 받은 대신이 화들짝 놀라 고개를 조아렸다.
그때였다.
“만세, 만세, 만만세!”
낭랑한 음성이 대전 안에 울려 퍼졌다.
단악선이었다.
가만히 엎드려 이마를 바닥에 붙이고 있던 단악선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 올렸다.
“이렇게 하는 거 맞죠?”
한설화가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눈을 들어 황제와 시선을 마주했다.
그러자 황제가 희미한 미소를 머금었다.
“백성 단가 악선은 편히 앉으라.”
그는 곧 한설화를 향해 물었다.
“그대가 돌려준 물건은 잘 받았노라.”
황제는 일부러 조화건잠을 언급하지 않았다.
본래 그것이 자신의 외가 쪽 물건이기도 했거니와, 그 존재가 신하들에게 알려져 좋을 게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거에 황태후가 한설화에게 조화건잠을 건네며 약조했던 사실만큼은 잊지 않았다.
“짐에게 원하는 바가 있느냐?”
한설화가 가만히 고개를 내저었다.
그 모습에 대신들이 다시 한 번 발작하려던 찰나.
“그녀는 말을 하지 못한다.”
그 말로 대신들의 질책을 사전에 차단해 버린 황제가 재차 물었다.
“바라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뜻인가?”
“…….”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던 한설화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부터 그녀는 조화건잠을 명분으로 이 자리에 단악선과 함께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런가…….”
살짝 아쉬움을 드러낸 황제가 이번에는 단악선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북방에서는 큰 공을 세웠다.”
황제의 치하에 단악선이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오히려 제가 감사드려야 할 것 같은데요? 폐하께서 배려해 주신 덕분에 일이 잘 풀렸거든요.”
“그렇다 해도 공을 세운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 혹 바라는 것이 있느냐?”
“글쎄요. 사실 그렇게 거창한 공은 아니에요. 그러니 상을 받을 만한 일도 아니고요.”
“상을 받을 만한 일이 아니다?”
의아함을 담은 황제의 반문에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부터 제 목적을 위해 나선 것이니까요. 폐하께서 그걸 도와주셨으니 오히려 제가 감사의 선물을 올려야 하는 게 맞죠.”
단악선이 차분하게 설명을 이어 갔다.
“마교가 북방에서 세력을 모으는 걸 막고자 했지만 허락 없이는 장성을 넘을 수 없었어요. 다행히 폐하께서 이를 허락하셨기에 목적했던 바를 이룰 수 있었고요. 그러니 당연히 폐하께 감사할 수밖에요.”
모든 공을 자신에게 돌리는 단악선의 말에 황제가 슬쩍 웃음을 말아 올렸다.
보수파의 대신들 중 한 명이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연 것도 그때였다.
“폐하. 그 소년의 말은 능소밀 지주의 보고와 앞뒤가 맞지 않나이다.”
과거 능소밀은 북방의 일을 보고하며 모든 것은 황제와 그가 다스리는 강산의 평화를 위해서라며 혈운사 토벌의 정당성을 인정받았다.
어떻게든 트집을 잡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던 보수파 대신들은 이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장성을 넘기 위해 거짓 목적을 아뢰어 폐하를 기만한 저들의 죄는 결코 그냥 넘길 사안이 아니옵니다. 폐하와 황실의 권위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옵니다.”
나름 일리가 있는 말인지라 황제 역시 고개를 끄덕여 수긍했다.
“이에 대해 어찌 생각하느냐?”
황제의 물음에 단악선이 대답했다.
“능 아저씨는 거짓말을 한 게 아니에요.”
“그렇다면 네가 거짓말을 한 것이냐? 두 사람의 말이 다르니 한 사람은 거짓을 고한 것이 되지 않느냐?”
황제의 추궁에도 단악선은 당당함을 잃지 않았다.
“제 목적을 위해 능 아저씨에게 도움을 청한 건 맞아요. 하지만 능 아저씨는 그것이 폐하와 조정에 도움이 된다고 여겼을 뿐이고요. 같은 일에 서로 목적이 달랐던 거죠.”
황제가 슬쩍 웃음을 말아 올렸다.
“솔직한 것이냐? 아니면 어리석은 것이냐? 그저 날 위했노라 대답했다면 굳이 이와 같은 번거로움을 겪지 않아도 되었을 터인데?”
“능 아저씨가 폐하 앞에서 거짓을 고하면 안 된다고 몇 번이고 당부했거든요. 함부로 거짓말을 입에 담았다가는 목이 떨어질 거라 하던걸요?”
황제가 흥미로운 눈빛으로 단악선을 응시했다.
‘능소밀처럼 뛰어난 능력을 지닌 자가 충성을 바치는 이라길래 관심을 기울였거늘…….’
대신들의 공격에 대응하는 방식이 기대했던 바에 미치지 못해 실망스러운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분명 무언가가 더 있었다.
그저 겁 없고 순진할 뿐인 모습이 전부만은 아닐 터.
고작 그 정도 능력과 그릇으로는 능소밀 정도 되는 이무기를 품는 건 불가능했다.
“잘 알고 있구나. 여기서 거짓을 말하면 목이 떨어지지. 그럼 한 가지 더 묻겠다.”
황제는 단악선을 시험하기로 마음먹었다.
“신마상단의 실질적인 주인이 너라 들었다. 맞느냐?”
“신마상단이 저를 위해 만들어진 것은 맞지만, 제가 주인은 아니에요.”
“너를 위해 존재하지만 주인은 아니다? 그렇다면 신마상단의 주인은 누구더냐?”
단악선이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신마상단을 위해 헌신하고 애쓰는 모든 상단원들이죠.”
“음?”
의외에 대답에 황제가 잠시 당황하는 사이, 단악선이 말을 이어 갔다.
“폐하께서도 당연히 알고 계시겠지만, 저는 의원인지라 상재에는 밝지 못해요. 그런데 치료를 위해서는 비싼 약재들이 필요했어요. 그런 저를 안타깝게 여긴 사람들이 제가 만든 약을 대신 팔아 주기 시작했죠. 결과가 좋아 상단이 자리를 잡게 된 것이고요. 그러니 그분들에게 도움을 받는 제가 신마상단의 주인이라 자처하는 건 염치없는 짓이 아닐까요?”
솔직한 단악선의 대답에 황제가 말없이 손가락으로 옥좌를 두드렸다.
더 물어볼 것도 없었다.
이미 금의위와 동창을 통해 확보한 정보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심 단악선과의 만남을 기대하고 있던 황제로서는 다소 김빠지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나 상황이 이리된 마당에 굳이 이 자리를 길게 끌고 갈 이유가 없었다.
‘그래도 은인과 함께 왔으니 그냥 보낼 수는 없는 노릇.’
황태후와 함께 간단한 다과 자리를 마련하는 것으로 이번 만남을 마무리 지으려던 찰나.
보수 대신들을 이끌던 호부 상서가 앞으로 나섰다.
“폐하, 신이 저들을 추국(推鞠)할 수 있도록 부디 허하여 주시옵소서.”
“방금 추국이라 했느냐?”
황제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도 그럴 것이, 추국은 역모와 같이 위중한 혐의를 다루며 심문할 때만 사용하는 표현이었기 때문이다.
“현재 무위의 상황을 다시 살피소서.”
그렇게 운을 뗀 호부 상서가 목소리를 높여 단악선을 몰아세웠다.
“수많은 무림인들 중에서도 저자는 유독 사파의 불순한 무리들만 골라 무위라는 한 지역에 규합했나이다. 그 숫자가 이미 오백이 넘어가는바, 저자의 의중을 확실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 사료되옵니다. 게다가 신마상단을 통해 중원에서도 손꼽히는 부를 축적하였고, 북방의 오랑캐 일부와도 목적이 불분명한 연대를 구축하였나이다.”
일부러 황제의 신경을 자극하기 위해 호부 상서는 예민한 부분을 파고들었다.
“이 모든 것이 마교와 맞서기 위해서라고 하나, 소신은 한 가지 의문을 지울 수가 없사옵니다.”
한 차례 단악선을 힐끔한 호부 상서가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
“신마상단에 속해 있는 자들은 하나같이 저자를 하늘처럼 떠받들고 있다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부모의 명성을 이용해 무림 문파의 명숙들을 포섭하였으며, 조정과 협조해 남해 지역을 방비하던 해남검파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이로도 모자라 최근에는 무위에 주둔하고 있는 군영의 자녀를 포함한 일반 백성에게도 무상 교육을 빌미로 인심을 얻고자 하는 중입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저자의 영향력은 더욱 강해질 터. 적어도 무위를 비롯한 일부 지역에서 폐하보다 존재감이 커지는 것만큼은 분명 경계하셔야 하옵니다.”
호부 상서가 공들여 갈아 두었던 칼을 꺼내 들었다.
“능소밀도 그렇거니와, 저 소년의 경우도 필히 하나의 목적을 의심케 하기 충분하옵니다. 부디 전대 황제의 총애를 등에 업고 전횡을 일삼았던 팔호(八虎)의 사례를 잊지 마소서.”
황제의 눈썹이 꿈틀했다.
호부 상서의 말대로였다.
팔호, 혹은 팔당(八黨)이라 불리던 무리들.
전대 황제가 재위했을 당시, 유근을 위시한 여덟 명의 환관이 국정을 농단했던 것처럼 지나친 믿음은 자칫 불미스러운 사달을 가져올 수 있었다.
게다가 돌이켜 되짚어 보니 무위의 일은 더 이상 무림의 범주로 한정해 생각할 일만도 아니었다.
자신을 추종하는 백성과 무력.
거기에 이를 뒷받침하는 재력까지.
과거의 번왕들이 그랬듯, 단악선을 중심으로 한 무위의 세력은 얼마든지 황권을 위협하는 역도로 돌변할 수 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이것만큼은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호부 상서의 의견에 달리 할 말이 있느냐?”
단악선이 포옥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곤 눈을 들어 호부 상서를 응시했다.
단악선과 시선이 마주치자 호부 상서가 보일 듯 말 듯 희미한 웃음을 말아 올렸다.
한번 수렁에 빠지면 몸부림칠수록 더욱 빠르게 잠길 뿐.
능소밀 정도 되는 언변을 지니지 않은 이상 빠져나갈 방법은 전무하다 확신했다.
하지만 그는 한 가지를 간과하고 있었다.
교활한 모사꾼이었던 제갈연.
그녀를 상대로도 단악선은 단 한 번도 언쟁에서 밀린 적이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단악선이 건넨 말에 그의 안색은 단번에 와락 구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