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34)
신마의선-34화(34/500)
신마의선 (34)
“우리 단 의원 취향도 보통이 아닌걸? 청초한 눈빛에 육감적인 몸매라니! 좋아! 보는 눈이 있어.”
정작 단악선에게 지목된 여인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설마하니 자신이 모시게 될 손님이 어린아이가 될 줄은 몰랐던 것이다. 범계위가 손짓해 부르자 기녀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총관을 바라봤다.
이에 총관이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기녀가 화사한 미소를 베어 문 채 단악선에게 다가섰다.
“헌앙한 기상과 풍모를 지닌 소협을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소첩은 양화라 하옵니다. 제 마음을 담아 한잔 올리겠나이…….”
양화라 자신을 소개한 기녀는 말을 잇지 못했다.
술을 채우는 도중 아이가 자신의 손목을 낚아챘기 때문이었다.
‘어린 녀석이 발랑 까져서는…….’
내심과 달리 양화는 부끄러운 듯 소매로 얼굴을 가리며 교태를 부렸다.
“아이, 참. 뭐가 이리 급하셔요. 밤은 아주 길답니다.”
단악선의 손을 뿌리치려던 양화는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자신을 빤히 응시하는 단악선의 눈빛에는 그 어떤 사심도 깃들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역시 제 생각이 맞았어요.”
한 차례 고개를 끄덕인 단악선이 양화를 향해 물었다.
“최근 두통이 심하지 않나요? 잠들기 전에 특히요.”
“네?”
“여기가 바늘로 콕콕 찌르는 것처럼…….”
“네, 그렇기는 했는데…….”
“아침에 일어날 때 손이 저리고요?”
양화의 눈이 찻잔처럼 커졌다.
“그걸 어떻게!”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그런 증상을 겪기는 했지만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단악선이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만 늦었으면 큰일 날 뻔했어요.”
그리곤 양화에게 말했다.
“여기 조용한 방이 있나요? 당장 치료를 시작해야 해요.”
“네? 치료요?”
놀란 양화를 단악선이 다독였다.
“걱정하지 마세요. 치료만 받으면 쉽게 나을 수 있는 병이니까. 병이 깊어지기 전에 발견해 다행이에요.”
“방이라면 많이 있지만…….”
양화가 말끝을 흐렸다.
그도 그럴 것이 기루 이 층에 마련된 방은 모두 치료 용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당황한 것은 범계위 역시 마찬가지였다.
“단 의원, 기루는 이러는 곳이 아니야. 다른 거 하는 곳이라고.”
“다른 거요? 그게 뭔데요?”
“어? 음……. 회포를 푸는 곳?”
“전 이분을 오늘 처음 만났는걸요?”
“아니, 오랜만에 만나 그간의 이야기를 나누는 그 회포 말고. 몸으로 나누는 대화 같은 거 말이야.”
“전 수화(手話)를 배운 적이 없어요.”
“아니! 그 왜 남녀가 옷 벗고 한 침대 위에서…….”
답답한 마음에 구체적인 설명을 하려던 순간 단악선이 범계위의 말을 잘랐다.
“치료부터요. 일단은 살아야 회포를 풀더라도 풀지 않겠어요?”
* * *
무림맹 서안 지부.
늦게까지 무림맹 측과 사안을 조율하던 화산파의 이 대 제자 풍현자는 갑작스런 매화검수의 방문에 의아함을 금할 수 없었다.
풍현자는 무림맹 측 인사들에게 양해를 구한 뒤 조용한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 시간에 갑자기 어쩐 일이냐?”
풍현자의 물음에 삼 대 제자 명학이 곤혹스러운 표정을 드러냈다.
“일매(一梅)로부터의 전언입니다.”
“명검이? 혹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것이냐?”
“그것이…….”
말끝을 흐리는 명학의 모습에 풍현자가 의아함을 금치 못했다. 신중한 성격만큼이나 조리 있는 언변으로 뭇 어른들의 인정을 받고 있는 그였기 때문이다.
“일단 이것을 먼저 보십시오.”
명학이 건넨 서찰을 읽던 풍현자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피식 웃음을 흘렸다.
“내가 화산을 등지려 했다고?”
어이가 없다 못해 기가 막혔다.
지금은 제자인 명검에게 직책을 물려주었지만, 그전의 매화총검은 바로 풍현자 그 자신이었다.
“누군지 몰라도 스스로 무덤을 파는구나.”
풍현자가 자리를 떨치며 일어섰다.
“그곳으로 안내해라.”
“진위 여부만 말씀해 주시면 제자가…….”
“아니다. 한 마리 개가 헛것을 보고 짖으면 백 마리 개가 따라 짖는 법. 이런 헛소문은 초반에 싹을 잘라야 하는 법이다.”
깃털도 많이 실으면 배가 가라앉는다.
소문 역시 마찬가지. 무엇보다 이처럼 허무맹랑한 거짓말을 날조한 당사자의 얼굴을 확인하고 싶었다.
과연 자신을 직접 보고도 그딴 헛소리를 지껄일 수 있는지 두고 볼 심산이었던 것이다.
“가자.”
검을 챙겨 든 풍현자가 명학과 함께 명검이 머물고 있는 객잔으로 향했다. 일 층 다탁에서 차를 마시고 있던 명검이 풍현자가 들어서자 깜짝 놀라 일어섰다.
“제자 명검이 사부님을 뵙습니다!”
인사를 건네는 명검을 향해 풍현자가 물었다.
“날 모욕한 자가 누구더냐.”
주위를 쓸어 보던 풍현자가 일순 멈칫했다.
객잔 일 층에는 명검을 제외하고 한 사람뿐이었다. 정신이 번쩍 들 만큼 놀라운 미모를 지닌 이십 대 초반의 여인.
그런데 분명 어디선가 본 것만 같았다.
기억을 더듬던 풍현자가 어느 순간 석상처럼 그 자리에 굳어 버렸다.
“당신 설마……?”
고개를 갸웃하며 풍현자의 얼굴을 뜯어보던 한설화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의 그 꼬맹이가 맞구나.”
그리곤 풍현자의 눈을 응시했다.
“그런데 방금 뭐라고 했지? 당신?”
“……!”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풍현자가 한설화를 향해 정중하게 포권을 취했다.
“무림 말학, 화산의 이 대 제자 풍현이 선자를 뵙습니다.”
명검과 명학은 경악하고 말았다.
전대 매화총검이자 화산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고수가 바로 그였다. 무림 내 그의 배분과 지위를 감안하면 절대 말학이라 자처할 수가 없는 것이다.
“사부님…….”
명검의 목소리에도 풍현자는 허리를 숙인 채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그를 바라보던 한설화의 눈 위로 씁쓸한 감정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그렇구나.”
“……?”
“내 치맛자락에 얼굴을 비비던 그 귀엽던 아이는 이제 없는 것이냐?”
풍현자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서, 선배님. 제 제자 앞입니다. 부디 말씀을…….”
“세월이 정말 무섭긴 무섭구나. 그 아이가 이렇게나 어른이 되었다니.”
포옥 한숨을 내쉰 한설화가 풍현자를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네 제자와 내가 한 가지 내기를 하였다.”
“내기 말입니까?”
의아함을 감추지 못하는 풍현자에게 한설화는 명검과 나눈 대화를 자세히 언급했다.
비로소 모든 전후 사정을 깨달은 풍현자가 한숨을 터트렸다.
“내가 거짓말을 한 것이냐?”
한설화의 물음에 풍현자는 잠시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다가 천천히 대답했다.
“선자께서 하신 말씀에 그 어떤 거짓도 없습니다.”
한설화가 고개를 돌려 명검에게 물었다.
“어떠냐? 내기는 내가 이긴 것이지?”
“네?”
명검이 잠시 뜻을 이해 못 하고 머뭇거리다가 다급하게 대답했다.
“그,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호위는?”
“당장 물리겠습니다.”
한설화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층으로 이어진 계단으로 향하며 풍현자를 지나칠 때 한설화가 입을 열었다.
“고추 내놓고 멱 감던 아이가 이렇게 장성했다니.”
“서, 선배님!”
그녀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 풍현자가 털썩 의자에 주저앉았다.
“사부님, 저분이 대체 누구길래…….”
조심스러운 명검의 질문에 풍현자가 멍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빙옥선자. 이따금 강호에 모습을 드러내는 전 전대의 고인이시지.”
“전 전대요?”
“어쩌면 그전부터일 수도…….”
풍현자가 다탁 위의 찻잔을 들어 벌컥벌컥 들이켰다.
“전혀 늙지 않은 모습이라니. 반로환동이라도 한 것인가?”
홀로 중얼거리는 풍현자의 모습에 명검이 망설이다 질문을 던졌다.
“그럼 그 말이 사실입니까? 정말 사부님께서 저 여인 때문에 화산을 버리려 하신…….”
“아니다.”
“네? 그럼 어째서 아까는 사실이라고……?”
“내가 아니다.”
“네?”
의아해하던 명검이 이내 소스라치게 놀라 경악성을 터트렸다.
“그럼 설마?”
전 전대의 매화총검이라면…….
풍현자가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사부님이시다.”
“장문인께서…….”
풍현자가 삼엄한 눈빛으로 명검의 말을 잘랐다.
“오늘 들은 것은 무덤까지 가져가야 할 비밀이다. 알겠느냐?”
충격을 받은 명검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 * *
초악량은 골목을 따라 길게 늘어선 기루들을 눈에 담았다. 녀석이 어디로 향했을지는 뻔했다.
성격상 가장 화려하고 규모가 큰 기루를 찾아갔을 터.
마침 눈에 띄는 곳이 하나 있었다. 이화루라는 현판을 내건 사 층 건물이었다. 그런데 뭔가 분위기가 이상했다.
불은 환하게 밝히고 있는데 활짝 열린 입구 안이 텅 비어 있었기 때문이다.
의아한 얼굴로 기루 안으로 들어선 초악량은 이내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 층으로 이어진 계단에 순서를 기다리듯 길게 늘어서 있는 기녀들을 발견한 것이다.
초악량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계단을 오르려는 순간.
뾰족한 음성이 초악량의 발목을 붙들었다.
“줄 서세요!”
초악량이 눈살을 찌푸렸다.
“기루를 찾은 손님에게 이 무슨 경우 없는 태도란 말인가?”
“오늘 영업 안 해요. 그러니까 올라가려면 줄 서요.”
“뭐?”
황당함도 잠시.
초악량은 이내 호기심이 솟구쳤다. 돈에 목숨을 건 기루가 영업을 안 한다니, 그 이유가 몹시 궁금해진 것이다.
초악량이 계단 난간을 밟고 이 층으로 올라섰다.
그런데 이 층에도 길게 줄이 늘어서 있었다.
그 줄은 복도 끝에 위치한 방으로 이어져 있었다. 빼곡한 인파를 헤치며 겨우 방 안을 확인한 초악량이 헛웃음을 흘렸다.
맨 앞에서 누군가를 치료하는 단악선과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기녀들의 모습 때문이다.
단악선 옆에서 늘어지게 하품하던 범계위를 발견한 것도 그때였다.
“어? 초 형 왔수?”
시선이 마주치자 범계위가 아는 척을 해 왔다.
단악선과 일행이라는 것을 안 기녀들이 초악량이 들어설 수 있도록 길을 터 주었다.
“뭐 하냐? 여기서.”
초악량의 말에 범계위가 시무룩한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초 형 그거 아슈?”
“뭐가?”
“잘생기고 돈 많은 거 다 필요 없소. 의술이 최고야. 난 다시 태어나면 무공 따윈 때려치우고 의술부터 배울 거요.”
단악선 앞에 줄지어 있는 기녀들을 바라보는 범계위의 표정에는 억울함이 가득했다.
“하루 장사를 망치면 손해가 매우 클 텐데. 이곳 루주(樓主)가 이런 상황을 두고 보더냐?”
초악량의 말에 범계위가 턱짓으로 한 곳을 가리켰다.
고개를 돌린 초악량은 방 한구석 침상 위에 상의를 걷고 누워 있는 초로인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의 몸에는 수십 개의 침이 꽂혀 있었다.
그 옆에는 음울한 표정의 사내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는데, 그 역시 몸 곳곳에 침이 박혀 있었다.
“알 만하군.”
초악량은 단번에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 * *
세 시진 후.
동이 터 오기 시작한 이른 아침이 되어서야 단악선을 업은 범계위와 초악량은 기루를 벗어날 수 있었다.
단악선이 지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졸려요.”
그리곤 그대로 범계위의 등에 얼굴을 묻은 채 잠이 들었다. 짧은 시간에 쉬지도 않고 연이어 사람들을 치료한 터라 진이 빠진 것이다.
객잔으로 돌아오자 한설화가 한기를 풀풀 날리며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범계위가 단악선을 데리고 기루로 향했다는 이야기를 이미 풍진성에게 들어 알고 있었다.
“애한테 술을 먹인 거야?”
범계위가 펄쩍 뛰며 손을 내저었다.
“아니야! 안 먹였어! 나도 못 마셨는걸!”
“그럼 애가 왜 저래?”
“몸을 많이 써서?”
“뭐?”
한설화의 눈에서 새파란 광망이 일렁였다.
“설마 어린애한테 그 짓을 시켰단 말이야?”
쩌저적.
한설화의 발밑으로 지독한 한기가 서리나 싶더니 순식간에 퍼져 나간 얼음이 객잔을 뒤덮었다.
“이 자식은 꼭 말을 해도!”
초악량이 재빨리 앞으로 나섰다.
괜한 오해가 더 커지기 전에 상황을 수습할 필요가 있었다.
초악량은 자신이 목격했던 기루에서의 상황을 설명했다. 한설화가 어이없는 눈빛으로 범계위와 단악선을 번갈아 바라봤다.
그러기를 잠시.
주위를 둘러보던 초악량의 얼굴 위로 의아함이 떠올랐다.
호위를 위해 함께 머물던 매화검수들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 샌님들은 어떻게 처리한 거야?”
“말로 타일러서 돌려보냈어.”
“천하의 화산파가 고분고분 그 말을 듣는다고?”
“들어야지. 내가 하는 말인데.”
초악량은 여전히 미심쩍지만 더 이상 따져 묻지는 않았다. 어쨌거나 귀찮은 혹은 떼어 냈으니 과정이야 어떻든 환영할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