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340)
신마의선-340화(340/500)
신마의선 (340)
“혹시 저분은 개국공신(開國功臣)이신가요?”
황당하기 짝이 없는 질문에 호부 상서는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
개국공신은 말 그대로 대명 건국에 크게 기여한 이들.
백오십 년도 넘게 지난 지금까지 생존한 이가 있을 리 만무했다.
“대체 지금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는 게냐!”
실없는 말에 분노해 수염까지 부들부들 떠는 호부 상서와 달리 황제는 그만 어이가 없어 피식 웃고 말았다.
“그럴 리가.”
자신을 제외하고도 이미 열 명의 황제가 이 옥좌를 거쳐 간 뒤였다.
개국공신 대부분은 새로 등극한 황제가 휘두른 숙청의 칼날을 피해 가지 못했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졌다.
눈앞의 소년이 이를 모르고 질문한 것이 아닐 터.
“그리 묻는 이유는?”
황제의 물음에 단악선이 의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단서철권(丹书铁券)은 개국공신에게만 하사하는 걸로 알고 있었거든요.”
고개를 갸웃하던 황제는 이어진 단악선의 말에 웃음을 거두었다.
“개국공신이 아니시라니 단서철권도 없으시겠네요? 그런데 어째서 폐하 앞에서 거짓말을 하시는 거죠?”
단서철권은 달리 면사철권(免死铁券)이라고도 불린다.
태조 홍무제는 자신을 도와 명을 건국한 측근 공신들에게 쇠로 만들어진 문서를 하사했다.
역모를 제외한 그 어떤 죄를 지어도 사형만은 면할 수 있는 특권을 보장하는, 일종의 면죄부였다.
그런 면책권도 없이 어찌 거짓 간언을 올리냐는 의미였다.
“하나 하기도 어려운 거짓말을 한 번에 몇 개씩이나 하셨어요.”
누가 봐도 노골적인 비난이었기에 호부 상서의 얼굴은 대춧빛으로 붉어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한번 포문을 연 단악선이 연이어 맹공을 이어 갔다.
“그것도 나름 능력이라면 능력이겠네요. 저처럼 간이 작은 사람은 감히 엄두도 못 낼 일이니까요.”
“감히!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송이가…….”
“머리에 피가 마르면 안 되죠. 그럼 죽으니까요.”
“뭐라?”
“일단은 저도 의원이에요. 아무리 화가 나셔도 의원 앞에서 할 말은 아닌 것 같아요. 만약 알고 말씀하셨다면 잔인한 거고, 모르고 말씀하셨대도 무식한 거니까요.”
또박또박 받아치는 단악선의 말에 호부 상서는 거품을 물기 직전이었다.
일개 백성.
그것도 이제 막 앳된 티를 벗기 시작한 소년이 이처럼 대놓고 조정의 대신을 능욕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돌아가는 상황을 주시하던 황제가 입을 연 것도 그때였다.
“하고자 하는 말이 있다면 고하라. 짐이 듣겠노라.”
호부 상서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황제를 바라본 단악선이 그가 했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하기 시작했다.
“우선 특정 목적을 가지고 사파 무림인을 모았다는 말은 맞아요. 하지만 그건 정파와 사파의 갈등을 이용해 마교가 세를 불리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지, 반란을 획책하거나 개인의 영달을 위해서가 아니었어요. 단지 그들이 안전하게 머물 곳을 제공했을 뿐이에요.”
호부 상서가 소리쳤다.
“이제야 의도적으로 사파 무림인을 규합했다 이실직고하는구나!”
“제가 그들을 규합하고자 했다면 쫓아내는 사람도 없었겠죠. 무위를 찾아왔지만 그 의도가 불순하거나 문제를 일으켜 쫓겨난 사람이 백 명이 넘어요. 만약 제가 무력을 모으기 위한 목적이었다면 반드시 끌어안았어야 했을 고수들이었죠.”
“그, 그야…….”
“게다가 북방의 달단 부족과 불분명한 연대를 구축한 적도 없어요. 다만 우리가 그들에게 도움을 주었고, 감사의 의미를 담은 증표를 받았을 뿐이죠. 힘을 합쳐 무언가를 꾸미고자 했다면 그들이 건넨 깃발을 폐하께 바치지 않고 꼭꼭 숨겨 뒀을 거예요.”
단악선은 쉬지 않고 쏘아붙였다.
“부모님의 명성을 이용해 무림의 명숙들을 포섭했다는 말도 황당할 뿐이에요. 반대로 제가 운영하는 신마의가는 명숙들에게 오히려 욕을 먹는 실정이니까요.”
단악선의 의술에 대해 소문으로 접해 알고 있던 황제가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어째서냐?”
“치료비가 비싸거든요.”
단악선이 머쓱하게 웃었다.
“신마의가에서의 치료비는 환자의 나이나 경제적 상황을 고려해 차등적으로 책정하고 있어요. 하지만 무림에서의 명망이 높거나, 어느 정도 사회적 지위가 있으신 분들에게는 그 어떤 감면 혜택도 적용이 되지 않아요. 당연히 비싼 치료비를 지불해야 하는 명숙들 입장에서는 불만이 많을 수밖에요.”
단악선의 시선이 호부 상서를 향했다.
“여기까지만 해도 이미 세 번의 거짓말을 하셨어요. 하지만 네 번째 거짓말에 비하면 그나마 나은 편이죠. 내용을 떠나 폐하의 신하라면 결코 입에 담아서는 안 될 말이었어요.”
이어진 단악선의 말에 호부 상서가 눈에 띄게 당황했다.
“신마상단에서 일반 백성과 무위영 소속의 자녀들에게 무상 교육을 제공하는 이유는 아이들을 인질로 부모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가 아니에요. 오히려 그 반대죠.”
“반대라?”
황제의 반문에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배움을 통해 아이들은 주어진 운명에 의지하는 삶이 아닌,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될 테니까요. 또한 불행한 실수를 피해 갈 수 있는 지혜를 얻게 되겠죠. 그런 자녀들의 모습을 통해 부모들은 당금 황제 폐하의 치하에서 누리는 복락을 감사하게 느낄 것이고, 자연스럽게 폐하의 성덕으로 여기게 될 거예요. 또한 그 과정에서 두각을 드러낸 인재들은 언젠가 폐하께 도움이 될 테고요.”
“흥! 그건 눈 가리고 아웅일 뿐이다. 그 천한 것들을 가르친다 한들 과연 그 안에서 얼마나 뛰어난 인재가 나온단 말이냐?”
코웃음 치는 호부 상서를 단악선이 정색하며 노려봤다.
“그렇게 믿고 있다면 당신은 절대 그 자리에 앉아 있어선 안 돼요.”
“뭐라?”
“누구보다 유학을 깊게 공부했고, 또 그걸 통해 관직에 오른 사람이 절대 해서는 안 되는 말 아닌가요?”
차가운 단악선의 음성에 호부 상서가 멈칫했다.
분위기에 휩쓸려 깊게 생각하지 않고 내뱉은 말이 어느새 날 선 비수가 되어 턱 끝에 드리워져 있었다.
유학의 핵심은 수양을 통해 누구나 군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의 말대로라면 빈민이던 안회나 뒷골목 파락호 출신의 자로를 제자로 삼아 가르친 공자의 행적을 부정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런 그의 태도를 단악선은 예리하게 지적했다.
“당신은 대체 무슨 자격으로 감히 폐하의 백성을 능멸하는 거죠? 백성을 가르치고 이끌어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할 수 없다면 무엇을 위해 정치를 하는 건가요? 단지 힘없는 백성들 위에 군림하면서 권세를 누리기 위해선가요? 아니면 본인과 처지가 다른 백성들을 깔보며 우월감을 만끽하기 위해서?”
“다, 닥쳐라!”
호부 상서가 황제를 향해 읍소했다.
“폐하, 저 소년은 신성한 어전에서 그 어떤 증좌(證左)도 없이 신을 모함하고 있사옵니다. 사안을 헤아려 부디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황제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모함이라…….”
“예, 분명한 모함이옵니다. 저 소년이 신을 비방하는 이유와 목적을 도통 모르겠나이다.”
단악선이 호부 상서의 말허리를 끊으며 치고 들어왔다.
“그래요? 전 알겠는데요.”
“뭐라?”
“상서께서 저와 능 아저씨를 못 잡아먹어 안달하는 이유 말이에요.”
“헛소리! 폐하를 향한 뜨거운 충정(忠情)을 함부로 매도하지 말라!”
“그럼 그 어떤 사심도 없으시단 뜻이겠네요?”
“물론!”
끝까지 뻔뻔하게 잡아떼는 호부 상서의 모습에 결국 단악선도 칼을 빼 들었다.
“이렇게까지 하는 건 원치 않았지만……. 어쩔 수가 없군요.”
나직이 한숨을 흘린 단악선이 호부 상서를 향해 물었다.
“혹시 금룡상단과 모종의 약조를 하신 적이 있나요?”
뜨끔한 표정으로 흠칫하는 호부 상서를 향해 단악선이 다시 물었다.
“이를테면 저와 능 아저씨에게 부당한 혐의를 씌워 실각시킨 뒤, 금룡상단이 신마상단을 흡수하고 이후 신마상단을 통해 발생할 수익의 절반을 뜻을 함께한 다른 대신들과 나누어 갖는다는 밀약(密約) 같은 거요.”
“……!”
그 말을 들은 보수파 대신들의 얼굴에 경악과 당혹감이 자리 잡았다.
“그, 그게 무슨…….”
당황해 말을 잇지 못하는 호부 상서를 단악선이 채근했다.
“이번만큼은 솔직히 대답해 주세요.”
입술을 잘근거리던 호부 상서가 황제를 향해 애원했다.
“폐하! 이 또한 모함이옵니다. 신은 결코 사욕을 위해 누군가를 음해한 적이 없사옵니다.”
단악선이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대체 당신 목숨은 몇 개나 되길래 끝까지 거짓말로 폐하를 기만하는 건가요?”
탕.
어좌의 팔걸이 부분을 내려친 황제가 단악선을 향해 엄중한 눈빛을 쏟아 냈다.
“그 주장을 뒷받침할 증좌가 있느냐?”
“네.”
단악선이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그것은 곱게 접혀 있는 한 장의 종이였다.
단악선이 이를 펼치며 황제를 올려다보았다.
“저기 계시는 호부 상서와 금룡상단 사이에 맺은 밀약. 그 구체적인 내용이 적시된 합의서예요.”
그 말에 호부 상서가 펄쩍 뛰었다.
“뭐, 뭣? 그, 그럴 리가!”
그는 그야말로 기함할 지경이었다.
문서로 확실히 남겨 두지 않으면 언제 말을 바꾸어도 이상하지 않은 것이 상인이라는 족속.
그래서 금룡상단과 나눈 약조를 문서로 작성해 각각 한 부씩 보관하고 있었다.
한데 그만이 아는 은밀한 장소에 숨겨져 있어야 할 서류가 어떻게 저 꼬맹이 손에 들려 있단 말인가.
당장 짐작 가는 곳은 한 곳뿐이었다.
호부 상서가 황급히 단악선에게 다가가 들고 있던 문서를 낚아챘다.
아니나 다를까.
금룡상단 쪽에서 유출된 서류가 분명했다.
혹시 모를 위조를 방지하기 위해 두 장의 서류를 겹쳐 찍어 놓은 수인.
그 위치로 서류의 출처를 유추해 낸 것이다.
‘금룡상단이 배신한 것인가? 아니면 처음부터 나를 축출하기 위해 설계된 함정?’
이 순간 호부 상서는 머릿속이 혼란스러워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러다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동창!’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특무 기관.
제아무리 금룡상단이라 해도 그들의 협박이나 회유를 버틸 재간이 없었을 터.
“그 문서를 짐에게 가져오라.”
문서를 쥔 호부 상서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야말로 옴짝달싹할 수 없는 확실한 증좌(證左)였다.
하지만 황제가 시퍼렇게 눈을 뜨고 있는데 이를 찢어 삼킬 수도 없는 노릇.
호부 상서와 뜻을 함께한 보수파의 대신들도 불안한 눈빛을 흘리며 좌불안석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결국 호부 상서가 비틀거리며 황제에게 다가가 문서를 바쳐 올렸다.
문서를 받아 그 안의 내용을 확인한 황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의 필체가 분명하군.”
“폐, 폐하…….”
“짐에게 너 같은 신하는 없다.”
황제의 추상같은 음성에 호부 상서가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대의 능력을 높이 사 무척 아꼈거늘, 삿된 간언으로 감히 짐을 능멸해? 그러는 네놈이 유근과 다를 게 무엇이냐?”
대놓고 분노를 드러내는 황제의 서슬 퍼런 눈빛에 호부 상서는 감히 고개를 들어 올릴 수도 없었다.
“이 사안에 대해서는 내 친히 조사할 것인즉, 죄인은 이대로 퇴청하여 짐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 근신하도록.”
“……성은이 망극하나이다.”
졸지에 죄인으로 전락한 호부 상서가 힘없이 고개를 숙였다.
그나마 당장 목이 떨어지지 않는 게 감지덕지였다.
제위에 올랐던 집권 초기.
잔인하리만치 끔찍한 피의 숙청을 단행했던 황제의 전력을 생각하면 이조차도 황송할 일인 것이다.
그렇게 한바탕 소란이 마무리된 뒤.
“순진한 줄로만 알았더니 말솜씨가 상당하군?”
황제는 새삼 단악선을 달리 보게 되었다.
오직 명분과 신념만으로 위기를 타개하는 정론직언(正論直言)의 화법.
일부러 약점을 드러내 상대의 실수를 유도한 뒤 이를 빌미로 상황을 뒤집는, 치밀한 설계를 바탕으로 한 능소밀의 언변과는 확연하게 비교되었다.
‘물이유취(物以類聚)라더니…….’
결국엔 비슷한 부류끼리 모이고 서로를 닮는 것이 사람 사이의 이치였다.
“저는 그저 진실만 말했을 뿐이에요.”
단악선의 대답에 황제가 쓴웃음을 머금었다.
“때론 진실이 거짓보다 고약할 때가 많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