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343)
신마의선-343화(343/500)
신마의선 (343)
그제야 단악선은 황태후가 자신의 딸을 살펴봐 달라 부탁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피를 이은 혈육인 이상 같은 병이 언제 발현할지 알 수 없는 일.
그러니 막연한 기우만은 아닌 것이다.
게다가 실제로 가능성이 아주 없는 것만도 아니었다.
‘장남이 태어난 지 오 일 만에 죽었다고 했지?’
언젠가 능소밀에게 황실의 계보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장공주(長公主)로 추대된 장녀, 장녕(長寧) 또한 네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요절했다고 했다.
황태후가 진료를 부탁한 영순공주(永淳公主)는 넷째 딸이었다.
본래는 군주였으나 오라비가 황제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장공주로 작위가 상승한 경우였다.
황제와는 네 살 터울.
단악선과는 고작 한 살 차이였다.
황태후를 따라나선 단악선이 자녕궁(慈寧宮)에 이르렀다.
“태후마마 납시었습니다.”
황태후를 보필하던 내감의 음성에 한 사람이 허겁지겁 밖으로 걸어 나왔다.
아직 소녀티가 채 가시지 않은 여인.
사전에 그 어떤 언질도 없었던 듯, 황태후의 갑작스러운 방문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영순이 어마마마를 뵙습니다.”
공손히 예를 갖추는 딸의 단아한 모습에 황태후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단악선을 향해 눈짓했다.
“무위의 백성, 단가 악선이 영순 장공주님을 뵙습니다.”
황실의 피를 이은 여인이라 해서 다 같은 공주는 아니었다.
황제의 고모는 대장공주(大長公主)라 불리고, 황제의 남매는 장공주(長公主), 황제의 딸은 공주(公主)였다.
친왕의 딸이 군주(郡主)로 불리고 외손녀는 현주(縣主)로 불리는 것과 마찬가지.
“단악선?”
어디선가 들어 본 듯한 이름에 영순공주가 고개를 갸웃했다.
“너를 진맥하실 분이다.”
황태후의 말에 영순공주는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전 아픈 곳이 없습니다.”
“그걸 판단하는 건 의원의 몫. 강호에서 신마의선이라 불리는 유명한 의원이니 사양하지 말거라. 이 기회에 어의가 아닌 다른 의원에게 진료를 받아 보는 것도 괜찮겠지.”
“신마의선이요? 아!”
뒤늦게 무언가를 떠올린 영순공주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단악선의 이름을 듣고 공교롭다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소문으로만 접하던 신마의선 본인이었던 것이다.
그 모습을 본 황태후가 슬쩍 웃으며 한설화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그럼 우리는 밖에서 기다릴까요?”
아미를 살짝 찡그린 한설화가 마지못해 황태후를 따라 화원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기를 잠시.
“전혀 아파 보이지 않던데?”
한설화의 말에 황태후가 살짝 당황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요.”
“다른 뜻이 있는 건 아니고?”
“…….”
“설마?”
곤란한 눈빛을 흘리던 황태후가 나직이 한숨을 흘렸다.
“어쩌겠어요? 딸자식 가진 게 죄죠.”
“처음부터 진료는 핑계였군?”
“부디 이해해 주세요.”
“아무리 그래도 단 의원을 속이다니.”
“한번 지켜봐 보시지요. 제 딸이라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괜찮은 아이입니다. 자신을 진맥하는 사람이 신마의선이라는 걸 알면 무척 반가워할 테고요.”
“공주가 단 의원에 대해 알고 있나?”
“자금성의 높은 벽 안에 갇혀 있다 보니 바깥 이야기를 좋아한답니다. 둘이 나이도 비슷하니 좋은 친구가 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황태후의 얼굴에 떠오른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그보다 더 나은 인연으로 발전한다면 더할 나위 없고요.”
“…….”
* * *
진지한 표정으로 영순공주의 맥을 짚던 단악선이 입을 연 것은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였다.
“음……. 우선 영순 장공주님께서는…….”
“그냥 공주라 부르시면 돼요. 장공주니, 대장공주니 하는 건 황실에서 서열을 구분 짓기 위해서니까요.”
영순공주의 말에 단악선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어째서 제게 말을 높이시는 건가요?”
“하가(下嫁)를 앞두고 있어서 최근 일반 백성의 예법을 따르는 중이에요. 행여라도 나중에 실수하면 안 되니까요. 이제는 몸에 배서 오히려 지금이 편해요. 그러니 괘념치 않으셔도 돼요.”
“하가가 뭐죠?”
“아!”
단악선의 반문에 영순공주가 잠시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하가는…… 공주의 혼인을 달리 이르는 말이에요.”
그녀의 나이 열일곱.
황실의 예법상 혼기가 그리 이른 편은 아니었다.
“그렇군요. 축하드립니다.”
단악선의 말에 영순공주의 표정이 시무룩해졌다.
“사실 축하받을 만한 일은 아니에요.”
“네? 어째서요?”
“하가가 취소됐거든요.”
영순공주가 설명을 이어 갔다.
“황실 규정에 따라 공주의 배우자는 반드시 일반 백성이라야 해요.”
이는 외척의 발호를 경계하기 위해서였다.
따라서 문무 대신의 자제와는 혼인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공주의 배우자인 부마의 집안은 정치적인 영향력이 없는, 한가(寒家)인 경우가 많아요. 조건이 황실보다 못한 집안과 혼인하기 때문에 하가라 표현하는 거죠.”
문제는 공주의 남편인 부마(駙馬)를 선정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이었다.
“일반 백성의 입장에서는 황실과 연을 맺는 것을 통해 부귀영화를 얻을 수 있겠죠. 그래서인지 온갖 협잡이 판을 친다더군요.”
“협잡이라니요?”
“입에 담는 것도 민망하고 부끄럽지만 이제 와 뭘 숨기겠어요?”
영순공주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부마의 후보자 선정은 다른 사람의 추천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에요. 그리고 황상과 가장 가까운 이는 환관들이고요.”
그렇게 진쇠(陳釗)라는 자가 부마로 내정되었고, 하가 날짜가 잡혔다.
“그런데 뒤늦게 문제가 터졌어요.”
부마로 결정된 진쇠의 친모.
그녀가 재혼하여 다른 사람의 첩이 되어 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진 것이다.
“당연히 황실은 발칵 뒤집혔죠. 폐하의 누이를 첩의 아들에게 시집보낸다는 건 황실에 대한 지독한 모욕이니까요.”
결국 동창이 나서 부마 선정 과정을 탈탈 털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진씨 가문에서 막대한 돈을 쏟아부어 환관과 예부 인사 몇 명에게 뇌물을 먹였더군요.”
황제는 진노해 그들을 가혹한 형벌로 다스렸고, 곧바로 하가를 취소해 버렸다.
“그래서 급하게 새로운 부마 후보를 찾기 위해 예부가 전쟁터와 다를 바 없다 들었어요.”
“그래서 맥이 그렇게 불안했군요.”
고개를 끄덕인 단악선이 영순공주를 향해 미소 지었다.
“수면 부족과 피로가 겹쳤어요. 건강 자체는 특별한 이상이 없고요. 가급적 운동과 산책을 통해 마음의 화를 다스리도록 노력해 보세요.”
“그럴게요.”
“그럼 전 이만 나가 보겠습니다.”
고개를 숙이고 일어서려는 단악선을 영순공주가 불러 세웠다.
“잠시만요.”
“왜 그러세요?”
영순공주는 물끄러미 단악선을 응시했다.
구중궁궐 심처에 머물던 그녀가 외부의 인물을 만나는 건 몹시 드문 경우였다.
가족을 제외하면 기껏해야 궁인들과 환관이 전부인 것이다.
그들과는 확연히 다르게 자신을 대하는 단악선의 태도는 자연 흥미를 끌었다.
신분의 고하를 따지지 않고 의원으로서 충실하게 조언하는 모습도 그랬거니와, 따듯한 말투와 눈빛도 마찬가지.
“신마의선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명호가 무척이나 거창하죠?”
어색하게 웃는 단악선과 달리 영순공주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이렇게 직접 만나니 소문이 오히려 사실에 못 미치는 것 같은걸요.”
단악선을 힐끔거리던 영순공주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 혹시…… 괜찮으시다면 연판장을 구할 때의 이야기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네?”
“제가 궁금한 게 있어서요.”
시간은 아직 여유가 있었기에 단악선이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든지요.”
영순공주자 반색하며 물었다.
“다른 건 다 들었는데, 공동파는 어떻게 설득하셨나요? 어머니이신 마의와 공동파 사이의 관계가 나쁘다 들었는데요.”
단악선의 표정이 잠시 흐려졌다.
그 모습에 영순공주가 당황해 손을 내저었다.
“곤란하시다면 말씀해 주시지 않아도 돼요.”
“무림의 이야기를 좋아하시나 봐요.”
단악선의 말에 영순공주가 배시시 웃었다.
황실의 금지옥엽인 그녀가 자금성 밖을 경험한 것은 오빠인 황제가 제위에 오르기 전인, 칠 년 전이 마지막.
그만큼 바깥세상에 호기심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거긴 자유롭잖아요.”
그렇게 운을 뗀 영순공주가 재빨리 말을 이어 갔다.
“사실 함께 오신 한 여협의 이야기도 정말 많이 들었어요. 그분과도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아쉽고요. 짧은 만남이었지만 직접 뵌 그분은 소문대로 정말 아름답고 기품이 넘치세요.”
“맞아요. 한 아주머니는 정말 훌륭하신 분이죠.”
“그럼 방금 전의 제 질문에도 대답해 주실 수 있나요? 제게 이야기를 전한 궁인들도 궁 밖의 호사가들과 이야기를 파는 매담자(賣談子)에게 들은 거라서 자세한 내막까지는 모르더군요.”
“딱히 숨길 건 없어요. 그리 대단한 비밀도 아니니까요.”
단악선은 마교 소속의 무인들에게 납치당했던 공동파의 두 사제(師弟)를 초악량과 범계위가 나서 구해 준 사실을 언급했다.
“당시에는 그분들을 납치한 자들이 마교인 걸 몰랐어요.”
“아! 마교!”
탄성을 터트린 영순공주가 걱정스러운 눈빛을 던졌다.
“그럼 지금 그들과 싸우고 계시는 건가요?”
“네. 제가 꼭 해야 할 일이니까요.”
“쉽지 않은 길이네요.”
“그래서 걱정이 많아요.”
“……?”
“이미 그들과의 싸움에서 많은 사람이 다치거나, 죽었어요. 앞으로도 그럴 거고요. 그게 두려워요. 소중한 사람들을 더 잃게 될까 봐요.”
“아…….”
진한 아픔이 묻어나는 단악선의 눈빛에 영순공주가 안타까운 탄식을 터트렸다.
“그럼 전 이만 가 볼게요.”
작별을 고하는 단악선을 영순공주가 다시 한 번 붙들었다.
“혹시 또 만날 수 있나요? 이야기를 더 듣고 싶은데…….”
“언제든 무위로 오세요. 그곳에 오시면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거예요.”
영순공주가 반색했다.
“정말 가도 되나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묻는 귀여운 모습에 단악선이 자신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못 오실 곳도 아니잖아요.”
무위를 금역으로 선포한 일은 오직 정파 무림을 대상으로 한 것.
그녀가 찾아온다면 달리 거부할 명분이 없었다.
황실에서 모든 일정을 마무리한 단악선과 한설화는 무위로 돌아가기 위해 궁을 나섰다.
놀랍게도 황태후는 그런 두 사람을 위해 어화원까지 함께 걸으며 직접 배웅했다.
호위와 수발을 들던 궁녀들을 멀찍이 물린 뒤 황태후가 단악선을 향해 넌지시 질문을 던졌다.
“혹시 마음에 둔 여인이 있나?”
“네? 여인이요?”
“따로 점찍어 둔 배필 말일세. 열여섯이면 이제 적은 나이도 아니지 않은가.”
“으음…….”
잠시 고민하던 단악선이 솔직하게 대답했다.
“저 같은 사람을 좋아해 줄 여인이 있을지 모르겠네요.”
부모님을 여읜 혈혈단신의 고아.
거기에 마교와의 일전을 마무리 지을 때까지는 부평초처럼 강호를 떠돌 운명이었다.
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그 길을 과연 함께 걸어 줄 이가 있을지 자신할 수 없었다.
“그래도 어딘가에는 인연이 있을지 모르는 일 아닌가.”
단악선에게 달리 정해 둔 혼처가 없음을 확인한 황태후의 표정이 밝아졌다.
“적승계족(赤繩繫足)이라는 말처럼, 남녀의 인연을 주관하는 월하노인(月下老人)께서 본인들 모르게 이미 붉은 끈을 묶어 뒀을지도 모르는 일이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을 수도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