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344)
신마의선-344화(344/500)
신마의선 (344)
단악선이 웃으며 대답했다.
“또 모르죠. 어딘가에 우리 엄마 같은 분이 계실지도요.”
“아! 그 마의라 불리셨다는?”
“네. 그런 분이라면 평생을 함께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 말에 황태후는 복잡한 눈빛을 흘렸다.
한설화 역시 마찬가지.
“평생을 혼자 살겠다는 말이로구나.”
“네?”
한설화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
“생각해 보렴. 너와 비슷한 의술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괴팍…… 아니, 그처럼 독특한 성격을 가진 여자가 세상에 또 있을까.”
“듣고 보니 그렇네요.”
한설화가 한숨과 함께 고개를 흔들었다.
“나는 네가 초 오라버니처럼 홀로 쓸쓸히 늙어 가는 걸 보고 싶지 않다.”
진심이 묻어나는 한설화의 눈빛에 단악선이 머쓱하게 웃었다.
그런 단악선의 얼굴을 한설화가 물끄러미 들여다보았다.
“왜 그러세요?”
“아니다. 아무것도.”
말과는 달리 한설화는 이 순간 무척 궁금했다.
‘단 의원이 연상에게 먹히는 용모인가?’
남궁세가의 천금도 그렇고 이번에는 영순공주까지.
아니면 연상을 홀려 내는 비전의 오의(奧義)라도 있는 것일까?
황태후가 넌지시 다시 말을 건넨 것도 그때였다.
“그럼 혹시 우리 영순과…….”
한설화가 대번 그 말을 잘랐다.
“아서게.”
잠시 의아해하던 황태후는 이어진 한설화의 전음에 표정을 달리했다.
―모두가 나처럼 상식적이고 올바르다 판단하면 오산이야. 나와 달리 그 두 바보는 단 의원 일이라면 바로 눈이 뒤집히니까. 단 의원을 부마로 들이면 그 둘까지 따라올 텐데, 그 괴물들을 감당할 자신 있나?
황태후는 진심으로 당황했다.
비록 오늘 처음 만났지만 단악선은 단번에 황태후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조실부모한 것이 약간의 흠이긴 했지만 크게 상관없었다.
오히려 시부모가 없으니 험난한 시집살이를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외모나 인품, 그리고 뛰어난 의술과 강호의 명망.
거기에 신마상단이 지닌 막대한 부(富)까지.
부마로서 이보다 완벽한 조건을 갖춘 후보는 찾아볼 수 없었다.
심지어 나란히 앉아 있던 영순공주와 단악선은 그 자체만으로도 한 폭의 그림이 따로 없었다.
그야말로 선남선녀, 이보다 뛰어난 천생배필은 없다 생각할 정도였다.
그런데 매우 심각한 결격 사유가 발생했다.
마음이 급한 나머지 가장 중요한 걸 간과한 것이다.
‘차라리 엄한 시부모가 낫지.’
초악량과 범계위가 지닌 강호에서의 평판을 모를 그녀가 아니었다.
결국 황태후는…….
꺼내려던 말을 다시 삼켜야만 했다.
* * *
자금성을 벗어난 두 사람이 무위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누군가 한설화에게 다가와 조용히 속삭이고 사라졌다.
‘단월루(旦月樓)?’
사내가 언급했던 다루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다루 안으로 들어서자 먼저 도착해 기다리고 있던 한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나 예의를 갖추었다.
얼마 전 단악선에게 호부 상서의 비리와 관련된 증좌를 건넸던, 윤흠이라는 동창의 위사였다.
“황궁에서의 활약은 인상적이었습니다.”
단악선이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도와주셔서 감사해요. 덕분에 무사히 위기를 넘길 수 있었어요.”
이때 한설화가 불쑥 입을 열었다.
“원하는 게 뭐지?”
불문곡직 본론으로 들어가는 한설화의 차가운 눈빛에 윤흠이 멋쩍게 웃었다.
“그러지 마시고 일단 차라도 한잔하시죠. 이곳의 차 맛이 아주 훌륭합니다.”
“원하는 게 없다면 그만 일어서지.”
단호한 한설화의 태도에 윤흠이 서둘러 입을 열었다.
“당할 수가 없군요. 사실 도움을 청할 일이 있어 두 분을 뵙자고 했습니다.”
한설화가 아미를 찡그렸다.
세상에 수많은 부류들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엮여서는 안 될 자들이 바로 환관 무리였다.
반면 단악선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도움을 받은 이상 상대의 요청을 다짜고짜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었다.
“제가 뭘 도와드리면 될까요?”
“혹시 저희 쪽 인원을 무위에 파견해도 될는지요?”
“무위에요?”
“네, 정확히는 신마의가입니다. 의원 한 명과 그를 보필할 조수 두 명이 전부입니다.”
“이유를 여쭈어봐도 될까요?”
“두 가지입니다. 순수하게 의술을 배우고자 하는 것이 첫 번째고, 두 번째는 은밀하게 무위를 살피려고 합니다. 아, 물론 단순한 정보 확보 차원이지 분란을 조장하거나 말썽을 일으키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이미 제게 말씀하신 이상 은밀하지 않게 되었는데요.”
“하하. 무위에 고수가 워낙 많지 않습니까. 처음부터 존재를 숨길 생각은 없었습니다. 다만 혹시라도 정체가 드러났을 때, 조용히 넘어가 주십사 하는 겁니다.”
단악선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두 번째 이유가 마음에 걸리네요.”
윤흠은 두루뭉술하게 넘겼지만 이를 놓칠 단악선이 아니었다.
윤흠이 곤란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두는 것뿐입니다. 아직 저조차 윗선으로부터 구체적인 지시를 받지 못한 터라……. 부디 해량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래도 이건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절대로 신마곡과 관련된 인물들을 캐려는 건 아닙니다.”
잠시 생각을 정리하던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잘됐네요. 그렇지 않아도 어의 중 한 분을 신마의가에 보내 달라고 부탁하려던 참이었거든요.”
“혹시 황태후 마마의 지병 때문입니까?”
“역시 알고 계셨군요.”
첫 만남에서부터 윤흠은 자신이 황태후 쪽 사람이라는 것을 분명히 했다.
“일단 능 아저씨께 말씀드릴게요. 다만 저 혼자 결정할 일은 아니니 이해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윤흠은 비로소 안도할 수 있었다. 능소밀이라면 고민을 하더라도 반대하지 않을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이걸로 큰 문제는 해결했군.’
오래전부터 준비해 온 일이다.
괜히 섣불리 나섰다가 성격 급하기로 유명한 신마삼존의 귀에 들어간다면 당장 무위 전체를 발칵 뒤집어 놓을 가능성이 컸다.
‘아직은 놈들의 존재를 모르는 모양이군.’
하긴, 천하에서 가장 촘촘한 정보망을 지녔다 자부하는 동창조차도 수상한 정황을 포착한 것이 불과 얼마 전이었다.
이때 다루의 점원이 주문했던 차를 내왔다.
한 모금의 차로 가볍게 목을 축인 윤흠이 이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먼 길 조심히 살펴 가시길 바랍니다.”
공손하게 예의를 갖추던 윤흠이 슬쩍 웃음을 말아 올렸다.
“찻값은 미리 계산해 두었으니 천천히 음미하십시오.”
단악선이 의아한 눈으로 반문한 것도 그때였다.
“어? 그런데 왜 차가 네 잔이죠?”
“하하, 글쎄요.”
윤흠이 웃음과 함께 돌아서자 단악선은 그가 남긴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생각에 잠겼다.
그러나 물끄러미 찻잔을 응시하는 단악선과 달리 한설화는 대번 이유를 깨달았다.
“이제 그만 나와.”
그 순간 한 사람이 이 층으로 이어진 계단 아래서 나타났다.
초악량이었다.
“어? 초 아저씨! 여긴 어쩐 일이세요?”
날카로운 한설화의 눈빛을 태연히 받아넘기며 초악량이 대답했다.
“북경식 오리구이가 먹고 싶어 왔다. 지난번에 나만 못 먹었지 않느냐?”
“그랬군요. 그럼 우리 같이 먹으러 갈까요? 감사하게도 황태후 마마께서 용돈을 많이 챙겨 주셨거든요.”
그렇게 다루를 나선 세 사람은 북경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객잔을 찾아 나섰다.
연신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단악선.
이를 흐뭇하게 지켜보던 초악량은 문득 얼굴에 날아와 박히는 따가운 시선에 고개를 돌렸다.
“왜 그러느냐?”
한설화는 단악선이 듣지 못하도록 목소리를 낮췄다.
“여차하면 황제라도 죽일 생각이었나?”
“내가 범계위더냐?”
“그럼?”
“상황 봐서 나서려고 했다. 상황에 맞게.”
실제로 어전 회의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초악량은 몇 번이고 그 안에 뛰어들 뻔했다.
황제면 어떻고 옥황상제면 어떻단 말인가?
그에겐 무엇보다 단악선의 안위가 먼저였다.
픽 웃는 한설화의 모습에 초악량이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러는 넌 잘도 참더구나.”
초악량의 말에 한설화가 즉각 대답했다.
“나야 단 의원을 믿으니까.”
한설화의 단호한 대답에 초악량은 뭔가 따지려다 그만뒀다. 대신 제일 궁금했던 점을 물었다.
“황태후와는 무슨 대화를 그리 길게 한 거야?”
초악량의 물음에 한설화가 나직이 한숨을 흘렸다.
“아무래도 황태후가 단 의원을 부마로 점찍은 모양이야.”
“부마? 설마 부마도위(駙馬都尉) 할 때 그 부마?”
“당장이라도 매파를 보내 납채(納采)를 받아 낼 기세더군.”
그러고 보면 참 여러 의미로 대단한 여인이었다.
정작 자신의 생명이 풍전등화 같은 상황에서도 딸의 혼처를 위해 그렇게까지 직접 발 벗고 나설 줄이야.
‘어쩌면 그게 어미의 심정인지도.’
딸자식 가진 게 죄인이라는 그녀의 말이 새삼 처량하게 느껴졌다.
초악량이 걱정을 담아 물었다.
“당연히 거절했겠지?”
“물론.”
“어떻게?”
한설화가 일순 멈칫했다.
초악량과 범계위.
두 사람의 악명을 팔아 막았다고는 차마 말할 수 없었던 것이다.
초악량은 잠시 의아한 눈빛을 던졌다.
하지만 뭐 어떠랴.
잘 풀렸다니 다행이었다.
이윽고 단악선은 북경식 오리구이를 전문으로 다루는 객잔을 찾아냈다.
주문했던 음식이 나오자 단악선은 문득 범계위가 보고 싶었다.
오리구이는 그와의 추억이 담긴 음식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이거 먹고 해남도에 들를까요? 범 아저씨가 잘 지내시는지 궁금해요. 두 분도 보고 싶으시죠?”
한설화와 초악량이 칼같이 대답했다.
“아니!”
“절대!”
정색하는 두 사람의 모습에 단악선이 되려 당황했다.
그 모습에 초악량이 낮게 헛기침을 하더니 그럴듯한 이유를 가져다 댔다.
“신혼 생활을 방해해서야 되겠느냐?”
그 말을 곧장 한설화가 받았다.
“늦은 나이에 혼인을 치른 만큼 둘만의 시간이 더 필요할 게다.”
“아! 하긴…….”
포옥 한숨을 내쉰 단악선이 측은한 표정으로 오리구이를 집어 입으로 가져갔다.
이때 서로 시선이 마주친 초악량과 한설화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본래 적의 적은 아군인 법이다.
* * *
그 시각 해남도.
오늘도 항구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선착장에 하역하는 물품들을 확인하던 해남검파 소속의 단주가 반색하며 한 사람을 맞이했다.
“어서 오시게. 근래 들어 정말 자주 보는군?”
“그만큼 사업이 번창한다는 의미지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신마상단의 행수가 보자기로 쌓인 작은 상자를 그에게 건넸다.
“지난번 말씀드렸던 청심단입니다.”
“오! 피로 회복에 이만한 게 없다지? 고맙네. 내 값은 잠시 후에 치르지.”
그때였다.
상대에게 상자를 건네던 신마상단의 행수가 상자를 톡톡 두드렸다.
눈치 빠르게 그 의미를 파악한 단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 아닐세. 지금 값을 치르지. 잠시만 기다리게.”
근처의 가까운 초소로 장소를 옮긴 단주가 상자를 열어 내부를 확인했다.
곱게 포장된 단약들 위로 한 장의 종이가 놓여 있었다.
―수상한 자 다수 발견. 조양 상단 소속의 상선. 회색 경장을 입은 사십 대 장한. 걸음걸이가 독특함.
이를 시작으로 몇몇 사람들의 자세한 용모파기까지 적혀 있었다.
“이제 슬슬 모습을 드러내는 건가?”
초소의 창문을 통해 밖을 살피던 그의 눈에 한 사람이 들어온 것도 그때였다.
그의 시선이 소리 없이 문제의 인물을 좇기 시작했다.
한편.
문제의 인물들은 해남도 곳곳을 누비기 시작했다.
봇짐을 걸머진 채 물건값을 흥정하는 모습은 누가 봐도 장사꾼으로 보였다.
하지만 이는 오래가지 않았다.
갑자기 주위가 어두워졌기 때문이다.
주위를 살피던 그들이 화들짝 놀랐다.
언제 나타났는지 자신들의 앞을 가로막은 거대한 그림자.
그 그림자의 주인이 불쑥 물었다.
“너희들이 그 쥐새끼들이냐?”
범계위가 씨익 웃음을 말아 올렸다.
꿈에서라도 볼까 무서운 섬뜩한 미소.
이를 마주한 사내들이 부르르 진저리를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