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345)
신마의선-345화(345/500)
신마의선 (345)
‘빌어먹을!’
주위를 둘러보던 사내들의 눈에 짙은 낭패감이 자리 잡았다.
대체 어디서 어떻게 꼬리가 밟힌 건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문제는 도저히 빠져나갈 구멍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당장 눈앞의 범계위는 둘째 치고 어느새 주변 곳곳에는 해남검파의 무인들이 빼곡하게 에워싼 채 퇴로를 완벽하게 봉쇄하고 있었다.
“자, 이제 쥐새끼들을 족쳐 볼까?”
성큼 앞으로 나서는 범계위를 벽화령이 만류했다.
“괜찮아요, 가가. 이제부터는 저희가 맡아 처리할게요.”
벽화령이 고개를 돌려 눈짓하자 해남파의 무인들이 사내들을 에워싼 채 거리를 좁히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사내들 중 한 명이 발작적으로 소리쳤다.
“흩어져!”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상인으로 위장하고 있던 사내들이 그대로 산개해 사방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막아!”
벽화령의 지시에 해남검파의 무인들이 일제히 검을 뽑았다.
포위망과 격돌하는 순간.
사내들의 눈에서 섬뜩한 살기가 폭사되었다.
“마기!”
그들의 전신에서 뭉클거리며 쏟아지는 기운을 감지한 해남문도들의 입에서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기껏해야 인근 해적들의 정찰조 정도라 짐작했건만, 예상을 아득히 벗어난 것이다.
그때였다.
“마교의 쥐새끼들이었나?”
갑자기 등 뒤에서 들려온 음성에 마교도 한 명이 소스라치게 놀라 고개를 돌렸다.
소름 끼치는 눈빛과 시선이 마주친 것은 그 직후였다.
퍽.
범계위의 주먹질에 한 방에 혼절한 마교도가 그대로 바닥에 거꾸러졌다.
그리고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두 놈.”
털썩.
순식간에 동료 둘이 당하자 처음 지시를 내렸던 사내가 악에 받쳐 소리쳤다.
“빈손으로 가지 마라! 적어도 한 놈이라도 데려가!”
그 순간, 그의 눈앞에 범계위가 나타났다.
퍽!
명치에 들어박히는 육중한 충격에 사내는 반항조차 해 보지 못하고 널브러졌다.
불과 한 호흡.
범계위에 의해 마교도가 모조리 제압되는 데 걸린 시각이었다.
단숨에 사내들을 기절시켜 제압한 범계위가 눈살을 찌푸렸다.
“이 중에 무공이 쓸 만한 건 겨우 두 놈 정도인가?”
그래도 마교의 하수인들이라 살짝 기대하고 있었는데, 수준이 기대에 미치지 못해 실망스러웠다.
이때 벽화령이 범계위에게 다가섰다.
“가가, 우리에게 맡기시라니까요.”
“걱정 마. 그렇게 될 거니까.”
“네?”
벽화령이 의아해하는 사이.
해남검파의 무인들이 혼절한 사내들을 둘러업었다.
심문을 통해 놈들이 이곳에 잠입한 목적을 캐낼 요량이었다.
그런데 그들을 본단 쪽으로 옮기려는 찰나 범계위가 제지했다.
“그쪽이 아니야.”
“예?”
범계위가 턱짓으로 다른 방향을 가리켰다.
해남파의 무인들은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거긴 연무장이 있는 방향인데요?”
잠시 후.
차가운 바닥에 누워 있던 두 사람이 정신을 차렸다.
잠시 시선을 마주친 그들의 얼굴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여전히 목숨이 붙어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온몸이 부서질 듯 뻐근했지만 어디 한 곳 부러진 데도 없었고, 심각한 내상도 느껴지지 않았다.
심지어 포박이나 마혈을 짚어 두지도 않았다.
그러다 뒤늦게 자신들이 넓은 연무장 한가운데 덩그러니 던져져 있다는 것을 깨달은 두 사람이 벌떡 일어나 주위를 살피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빽빽하게 사방을 에워싼 해남검파의 무인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게 대체……?”
어찌 된 영문인지 몰라 당황한 두 사람을 향해 범계위가 불쑥 입을 열었다.
“이긴 놈은 살려 준다.”
“……?”
그 말을 이해하기 위해 두 사람이 애쓰는 사이, 범계위가 해남파 무인 둘을 지목했다.
“너, 그리고 너. 준비해.”
“예? 뭘 말입니까?”
“뭐긴 뭐야? 이놈들하고 붙어 봐야지.”
“갑자기요?”
놈들을 연무장에 끌어다 놓을 때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더라니.
난데없이 성사된 비무에 당황한 해남파 무인을 향해 범계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껏 배웠으면 실전에서 얼마나 통하는지 확인해야지.”
그러곤 의미심장한 웃음을 말아 올렸다.
“지는 놈은 알지?”
화들짝 놀란 두 사람이 바짝 긴장한 채 연무장 중앙으로 걸어 나왔다.
방금 전, 범계위가 했던 말이 단순한 엄포가 아니라는 것을 그간의 경험을 통해 깨달았기 때문이다.
반면 이제 막 정신을 차린 사내들은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우리를 놀리는 것이냐?”
범계위와 시선이 마주친 사내가 이를 갈듯 물었다.
“왜? 그러면 안 돼? 오히려 고맙다고 해야지. 살길을 열어 주는 건데.”
“뭐라?”
“쥐새끼도 궁지에 몰리면 문다며?”
범계위가 씨익 웃으며 뒷말을 이었다.
“그러니 물어. 그러면 살려 준다.”
서로 시선을 마주한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해남도에 잠입하려던 목적이 틀어진 이상, 그들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몇 개 없었다.
운 좋게 달아나 봐야 결국 독 안에 든 쥐 신세.
사방이 바다로 막혀 있는 고립된 섬 안에서 달아날 곳이라곤 전무했다.
“후회하게 해 주마.”
어차피 죽을 운명.
“저승길에 한 놈은 데려가 주지.”
그 말을 들은 범계위가 커다란 상자 하나를 집어 들더니 거꾸로 뒤집었다.
상자 안을 가득 채우고 있던 각종 병장기들이 우르르 쏟아졌다.
사내는 그중 한 자루 박도를 거머쥐더니 그대로 연무장 중앙으로 걸어 나갔다.
그곳에서 먼저 기다리고 있던 해남파의 무인이 차가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해남파 일대제자 종리추요.”
“난 이름이 없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름을 밝히길 거부한 사내가 그대로 종리추를 향해 쇄도해 들어갔다.
쾌애액.
순식간에 눈앞으로 짓쳐들어온 섬뜩한 파공음에 종리추가 깜짝 놀랐다.
이처럼 다짜고짜 상대가 살초를 쓸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강하다!’
자신의 실력을 숨기기 위해서인지 상대는 철저하게 평범한 삼재도법만을 사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경력은 결코 가볍게 상대할 수준이 아니었다.
두 사람의 신형이 번개처럼 엉켜 붙었다.
카가가각.
허공에 새파란 불꽃이 튀기며 도와 검이 뒤얽혔다.
그러나 이후로는 단 한 번도 무기가 부딪치지 않았다.
단지 번뜩이는 칼날 사이로 서로의 허점과 치명적인 요혈을 노리는 벼락같은 움직임이 시야를 어지럽게 만들 뿐이었다.
한 수라도 삐끗하는 순간, 바로 승부가 결정돼 버리는 흉험한 근접전.
두 사람은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어느 한쪽이 왈칵 피를 토하며 나뒹굴 것 같은 상황이 아슬하게 이어졌다.
하지만 이는 오래가지 않았다.
쩌엉!
차가운 충격음과 함께 종리추의 신형이 주르륵 뒤로 밀려났다.
옆구리를 노리며 날아든 칼을 막았으나 그 충격을 미처 흘려 내지 못한 것이다.
게다가 상대는 종리추가 자세를 바로잡을 여유도 주지 않았다.
더욱 바짝 거리를 좁혀 오는 상대를 향해 종리추가 검을 회초리처럼 비껴 휘둘렀다.
한순간에 피어오른 눈부신 검광이 상대의 전면을 빼곡하게 메운 것도 동시였다.
남해삼십육검의 구명절초인 창파도도(蒼波滔滔)였다.
종리추가 내심 경악성을 터트린 것은 그 직후였다.
당연히 이쯤에서 물러서거나 다른 공격 방식을 취하리라 짐작했던 상대가 오히려 검기 안에 온몸을 욱여넣듯 더욱 거리를 좁혀 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들고 있던 칼은 어디 갔는지 텅 빈 맨손이었다.
예상치 못한 상대의 대응에 종리추는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
확실히 눈앞의 사내는 상당한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실제로 자신이 이처럼 수세에 몰리는 것도 매우 드문 일이었다.
그래도 그렇지.
고작 약간의 승기를 잡았다고 이렇게 무턱대고 달려들다니.
무모해도 너무나 무모했다.
그 순간 믿기 힘든 일이 벌어졌다.
육편으로 갈가리 찢겼어야 할 사내의 손이 반대로 검기의 그물을 찢어발기고 있었다.
그토록 삼엄하던 검기의 그물이 너무나 맥없이 뻥 뚫려 버리자 종리추는 내심 당황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뒤늦게 상대의 손을 감싼 채 일렁이는 핏빛 아지랑이를 발견한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혈옥수!’
마교의 절학으로 손꼽히는 무공을 눈앞에서 맞닥뜨린 그가 경악성을 삼켰다.
그리고 이는 장내에 운집해 있던 해남파의 무인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조심하십시오!”
곳곳에서 다급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종리추의 눈빛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그 와중에도 상대의 손은 자신의 요혈을 향해 계속 접근해 오고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거리낄 이유가 없었다.
상대가 마교의 주구라면 더 이상 손속에 자비를 둘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때부터 그 역시 주저하지 않고 살초로 대응하기 시작했다.
종리추의 손에 들려 있던 검이 허공에서 한차례 꿈틀대나 싶더니.
번쩍.
순식간에 궤적을 달리한 검이 그대로 상대의 가슴팍을 갈라 갔다.
그 시기적절한 반격에 사내는 금방이라도 피를 뿌리며 나가떨어질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 순간 이변이 벌어졌다.
쩌엉!
명치를 향해 파고들던 검을 상대가 손등으로 걷어 내 버린 것이다.
그러곤 벼락처럼 연달아 삼권(三拳)을 내질렀다.
언뜻 보기엔 평범해 보이는 한 수.
그러나 정작 종리추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버렸다.
“……!”
황급히 방비를 하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쾅!
상대의 첫 번째 주먹질에 검의 궤적이 비껴갔기 때문이다.
검을 잡은 이래 처음 겪는 낭패였다.
게다가 그게 끝이 아니었다.
카앙!
두 번째 주먹질에 하마터면 손에서 검을 놓칠 뻔했다.
퍼억!
세 번째 주먹질에는 어깨를 얻어맞으며 균형이 무너졌고, 그 마지막 일격에 무방비한 상태로 그대로 가슴이 열렸다.
게다가 그 비어 있는 공간 속으로 상대는 망설임 없이 손을 밀어 넣고 있었다.
핏빛 아지랑이가 일렁이는 손이 가슴에 닿기 직전.
종리추는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이상할 정도로 침착해졌다.
‘익숙하다.’
머리가 아니라 몸이 자동으로 반응했다.
범계위에게 당하던 위협에 비하면, 지금의 위기는 공포라고 부르기도 민망했다.
그걸 인지한 순간.
종리추의 눈에서 기광이 번뜩였다.
돌연 한 줄기 희끗한 섬광이 번뜩였다 사라진 것도 동시였다.
그 섬광은 두 사람 사이에 어지럽게 얽혀 있던 호흡의 경계를 단숨에 끊어 버렸고, 나아가 상대의 숨통도 갈라 버렸다.
쿠웅.
달려들던 기세 그대로 사내의 신형이 거칠게 바닥에 처박혔다.
“헉헉…….”
종리추가 뒤늦게 가쁜 숨을 몰아쉬며 바닥에 고꾸라진 채 울컥울컥 피를 뿜어내는 상대를 응시했다.
예전이었다면 이길 수 없었던 상대.
하지만 이번 생사결의 승자는 자신이었다.
‘성장했구나.’
자신뿐만 아니라 이를 지켜본 모든 문도들이 이를 깨달았을 것이다.
괴롭힘인지 수련인지 알 수 없는 그 시간이 훈련이었음을 확인하자 괜히 눈물이 나려 했다.
그렇게 승리의 감정에 심취하려던 그때.
“이런 한심한!”
갑자기 날아든 범계위의 일갈이 정적을 깨트렸다.
뭐가 그리 못마땅한지 범계위는 한껏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고작 그딴 약골 하나 가볍게 제압하지 못해서 죽여 버리다니!”
“예?”
이어진 범계위의 말에 종리추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오늘부터 다시 특별 훈련이야! 전부 다 집합!”
“…….”
종리추는 몹시 억울했다.
하지만 정작 그런 그보다 더 억울한 사람은 따로 있었다.
“……?”
문득 사방에서 날아와 박히는 시선을 느낀 종리추가 주변을 둘러봤다.
그러곤 자신도 모르게 흠칫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걱정과 응원을 담아 건넸던 동문들의 눈빛.
한데 지금은 하나같이 자신을 잡아먹을 것처럼 노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