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347)
신마의선-347화(347/500)
신마의선 (347)
며칠 후.
대초자곤을 챙긴 범계위가 해남도를 떠나는 배 위에 몸을 실었다.
물론 벽화령도 함께였다.
신행(新行)을 겸해 함께 움직이는 첫 여행인 만큼 무척이나 들뜬 표정이었다.
범계위 또한 마찬가지.
오랜만에 단악선을 다시 본다는 기대감에 한껏 마음이 부풀어 있었다.
그런 두 사람을 위해 해남문도 모두가 환환 미소로 배웅에 나섰다.
반면 그들과 달리 웃을 수 없는 사람도 있었다.
벽화령의 심복이자, 파랑이검이라 불리는 해남파의 대표적인 검객.
바로 장철우와 종리추였다.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두 사람은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떼어 내 느리게 배 위에 올랐다.
표정 또한 줄초상 난 상갓집의 상주처럼 한없이 침울했다.
사실 이번 무위행을 놓고 해남검파 내부는 한바탕 홍역을 치러야 했다.
부문주인 벽화령의 직책상 누군가는 반드시 수행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먼저 자원해 벽화령을 따라가겠다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결국 사안은 문주인 벽대경에게까지 보고되었고, 벽대경은 장철우와 종리추를 벽화령의 호위로 지목했다.
전에도 벽화령을 수행한 경험이 있다는 이유였다.
두 사람이 정색하며 한사코 거부했다.
차라리 파문을 시키라며 뻗대 보기도 하고, 다른 동문들에게도 중원을 경험할 기회를 줘야 한다며 설득해 보기도 했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저 배신자들!”
“와! 우리랑 눈도 안 마주치려고 열심히 고개 돌리는 거 봐!”
최선을 다해 자신들을 외면하는 동문의 모습에 장철우와 종리추가 내심 치를 떨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펄럭.
바람을 잔뜩 안은 돛이 배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속도가 붙은 배는 이내 빠르게 파도를 가르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수평선 너머로 사라졌다.
그렇게 배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해남문도들은 숨죽인 채 항구를 지키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갔지?”
“응.”
“정말 간 거지?”
혹시라도 범계위 내외가 결정을 뒤집을까 싶어 가슴을 졸이던 해남문도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터트렸다.
“갔어! 드디어 갔다고!”
“아아!”
벅찬 환희는 이내 뜨거운 물결이 되어 해남문도 전체로 번져 갔다.
서로 부둥켜안은 채 이 순간의 감격을 나누는 이들 중에는 장로들과 벽화령의 오빠들도 있었다.
* * *
육지에 도착한 이후 범계위 일행은 무위를 향해 육로로 이동을 시작했다.
어깨를 나란히 한 채 다정하게 속삭이며 걷는 범계위와 벽화령.
그 뒤로 장철우와 종리추가 시큰둥한 표정으로 멀찍이 거리를 두고 따라 걸었다.
그런 두 사람 뒤쪽으로는 굵은 포승줄에 온몸이 포박당한 사내가 뒤따르고 있었다.
해남도에 잠입했던 마교도의 생존자였다.
“그런데 저놈은 왜 끌고 온 거지?”
종리추의 물음에 장철후가 질겅이던 풀뿌리를 뱉으며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난들 알겠냐?”
“부문주님 생각이지?”
“아니, 범 선배님.”
“음, 미끼인가 보군.”
“미끼? 무슨 미끼?”
“마교 놈들이 원체 독종이잖냐. 애초에 심문해 봐야 실토할 리 없다 판단하신 거지.”
“그래서?”
“그래서는 무슨 그래서야. 저놈이 무언가 중요한 정보를 알고 있다면, 누군가는 반드시 나타나겠지. 저놈을 죽여 입을 봉하든, 아니면 구출하려고 하든.”
“아무도 안 나타나면?”
“놈들에게 아무런 가치도 없다는 뜻이겠지.”
“그래서 일부러 이렇게 천천히 이동하는 건가?”
앞서 걷는 범계위와 벽화령 쪽을 힐끗 바라본 두 사람이 이내 눈살을 찌푸렸다.
슬슬 날씨가 더워지고 있는데도 찰싹 달라붙어 희희낙락하는 두 사람을 보고 있자니 내심 부아가 치밀었다.
“아무래도 그냥 신혼여행 기분 내는 것 같은데?”
“저런 건 제발 좀 안 보이는 데 가서 했으면…….”
눈꼴 시린 광경에 진저리를 친 두 사람은 그저 자신들의 사나운 팔자를 원망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아! 알았다!”
묵묵히 걸음을 옮기던 종리추가 갑자기 멈춰 서며 탄성을 터트렸다.
의아해하는 장철우를 향해 종리추가 말했다.
“왜 지난번에 우리 공격했던 달자 놈 있었잖아.”
“혈운사의 총령인가 했던 그놈?”
“그래.”
“그놈이 왜?”
“죽기 직전에 그놈이 술술 불던 거 기억 안 나?”
“아!”
그제야 장철우도 뒤늦게 무언가를 떠올렸다.
“그래서 데려가시는 거군.”
몽유병 환자같이 아는 것 전부를 털어놓던 놈을 떠올린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굳은 의지를 지니고 있다 한들 단악선의 침술 앞에서는 의미가 없는 것이다.
“별일 없겠지?”
“그러길 바라야지.”
마교도 쪽을 힐끗 바라본 두 사람이 다시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육로도 이동한 지 여드레째 되던 날.
쿵. 쿵.
바닥을 울리는 육중한 진동에 종리추와 장철우는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해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했다.
사천과 감숙의 경계인 이곳 복우산 일대는 때아닌 지진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문제는 그 지진의 진원이 자연적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어떻게 된 게 하루를 거르는 법이 없지?”
참다못한 장철우가 신경질적으로 툴툴댔다.
그런 그의 어깨를 종리추가 툭툭 두드렸다.
“야, 야. 저기 봐라.”
어딘가를 가리킨 종리추의 손을 따라 고개를 돌린 장철우가 피식 실소했다.
숲에서 어슬렁거리며 나오는 호랑이의 모습이 보였다.
집채만 한 덩치를 지닌, 한눈에 봐도 영물에 가까운 크기를 자랑하는 대호였다.
그런데 호랑이의 행동이 어딘가 이상했다.
숲속을 가만히 노려보다 이내 지겹다는 듯이 한 차례 고개를 흔들더니 반대쪽으로 사라진 것이다.
호랑이는 철저하게 자신의 영역을 고수하는 짐승이었다.
오죽하면 산주(山主)라고 부를까.
그런 호랑이조차 견디지 못하고 떠날 정도였으니, 다른 짐승들은 오죽할까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숲 곳곳에서 놀란 새들이 퍼덕대며 날아오르고, 원숭이들은 꺅꺅 비명을 질러 대며 사방팔방 흩어지고 있었다.
“쟤들은 무슨 죄고, 우리는 또 무슨 죄냐?”
종리추의 푸념에 장철우 역시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재앙이네, 재앙.”
“한때 부문주님의 행복을 기원하던 때도 있었지.”
“하지만 이렇게까지……. 아니, 이런 식의 행복을 원한 건 아니었다고.”
“하아……. 그냥 냅다 튈까?”
잠시 서로를 바라보던 두 사람이 동시에 한숨을 터트렸다.
“안 되겠지?”
“안 될 거야, 아마.”
시도를 아예 안 해 본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를 통해 얻은 결론은 범계위의 기감을 피해 달아나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뿐이었다.
그때였다.
한숨을 푹푹 내쉬며 야영 준비를 하던 종리추가 멈칫하며 한 곳을 응시했다.
장철우 역시 검집의 위치를 옮겨 언제든지 발검할 준비를 마쳤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그들을 향해 한 사람이 허겁지겁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서로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두 사람의 눈이 이채를 발했다.
그도 그럴 것이, 상대가 입고 있는 옷이 눈에 익었기 때문이다.
항구를 드나들던 신마상단 소속의 상인들이 갖춰 입던 복장이 분명했다.
두 사람을 발견한 사내가 반색하며 손을 흔들었다.
“헉헉. 한참 찾았습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을 건네 오는 사내를 향해 종리추가 물었다.
“신마상단에서 우리에게 무슨 일이오?”
“아! 무위에서 온 전갈이 있어 직접 전하러 왔습니다.”
장철우가 고개를 갸웃했다.
“우리가 이곳에 있는 건 어찌 아시고?”
“혹시라도 길이 엇갈릴지 몰라 인근의 상단에서 길목마다 사람들을 배치했습니다. 혹시 다른 사람들을 만나지는 못했습니까?”
“아니, 당신이 처음이오.”
“휴. 어쨌거나 이렇게 뵙게 되어 다행입니다.”
품에서 서신을 꺼낸 사내가 스스럼없이 다가섰다.
그 순간 종리추가 불쑥 입을 열었다.
“그만. 거기까지.”
“예?”
신마상단의 상인이 의아한 얼굴로 반문하는 순간, 장철우는 이미 그를 향해 쇄도하고 있었다.
장철우의 손에는 어느새 새파란 청강검이 들려 있었다.
카앙!
한 줄기 차가운 금속성이 허공에 울려 퍼졌다.
소매 속에서 꺼내 든 한 자루 비수로 장철우의 검을 쳐 낸 상인이 황급히 뒤로 물러섰다.
그토록 사람 좋던 미소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흉신 악귀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런 상대를 향해 종리추가 이죽거렸다.
“그딴 어설픈 연기가 우리에게 통하리라 생각했느냐?”
신마상단의 상인으로 위장하고 있던 사내가 빠드득 이를 갈아붙였다.
“어떻게 알았지?”
서로를 바라본 종리추와 장철우가 쓰게 웃었다.
범계위 밑에서 구른 시간이 얼마던가.
두 사람 모두 과거에 비해 무공이 일취월장한 상태였다.
예전이라면 모를까, 감각이 극대화된 지금은 상대가 은연중에 흘리는 마공 특유의 기운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었다.
피피피핑.
허공을 찢는 날카로운 소성이 장내를 가득 메운 것도 그때였다.
난데없는 파공음에 종리추와 장철우의 얼굴이 당혹감에 물들었다.
처음엔 자신들을 노리나 싶었는데, 아니었다.
수리검 형태의 암기는 무위로 데려가던 마교의 주구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빌어먹을!”
두 사람이 황급히 신형을 날렸다.
카카카캉!
검을 휘둘러 날아드는 수리검은 걷어 냈지만, 진짜 난관은 그때부터였다.
상인으로 위장하고 있던 습격자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카가가각.
두 자루 검과 비수가 거칠게 뒤얽혔다.
종리추와 장철우는 마음이 다급해졌다.
상대방의 무공 자체는 그리 대단하지 않았다.
제대로 맞붙어 싸운다면 이십 합 안에 승부를 자신할 수 있는 수준.
한데 상황이 녹록지가 않았다.
어떻게든 인질을 보호해야 하는 자신들과 달리, 습격자들은 아예 대놓고 인질을 죽이기 위해 암기를 날려 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집요하게 달라붙는 상대를 떨쳐 내는 것도 생각만큼 쉽지가 않았다.
그렇다 보니 얼마 지나지 않아 손발이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우지끈.
근처의 아름드리나무가 송두리째 터져 나가며 한 사람이 튀어나온 것도 그때였다.
범계위였다.
“범 선……!”
반색하던 종리추가 한순간 석상이 된 듯 그 자리에서 굳어 버렸다.
장철우 역시 마찬가지.
심지어 두 사람과 인질을 공격하던 습격자들도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완벽한 나신으로 숲속에서 튀어나온 범계위의 모습에 모두가 경악해 말을 잇지 못하는 사이.
퍼억!
인질을 공격하던 사내들의 머리가 수박처럼 터져 나갔다.
“……!”
뒤늦게 정신을 차린 장철우와 종리추가 신마상단의 상인으로 위장했던 사내를 향해 달려들었다.
범계위의 등장에 모든 것을 체념한 듯 상대는 반항하지 않았다.
비수를 든 손을 늘어트린 채 그저 쓰디쓴 웃음을 말아 올릴 뿐.
“멈춰라!”
무언가를 깨달은 종리추가 상대의 턱을 움켜쥐었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상대가 입안에 숨겨두었던 독단을 깨문 뒤였다.
주륵.
입가에서 흘러내린 피가 턱을 적셨지만 습격자는 희게 웃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뜻 모를 말을 남긴 채 습격자가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러곤 이내 하얗게 눈을 까뒤집은 채 절명했다.
두 사람이 숨을 거둔 습격자를 내려다보며 미간을 찡그리던 그때.
“그거 하나 못 막아?”
갑자기 등 뒤에서 들려온 음성에 두 사람이 움찔했다.
“니들은 잠시 후에 보자.”
“…….”
“…….”
소름 돋는 그 말을 남긴 채 범계위가 다시 숲속으로 신형을 날렸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슬쩍 고개를 돌려 범계위가 사라진 것을 확인한 종리추가 자신도 모르게 불쑥 입을 열었다.
“방금 내가 뭘 본 거야?”
장철우도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저 정도면…… 흉기(凶器) 아니냐?”
“진짜 머리카락 빼곤 다 가졌네.”
잠시 서로를 바라보던 두 사람이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무위까지는 이제 지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