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348)
신마의선-348화(348/500)
신마의선 (348)
해남도를 떠나온 지 보름째.
범계위와 벽화령 일행은 계획했던 일정을 앞당겨 무위에 도착했다.
괜히 시간을 끌어 봐야 별다른 소득이 없다 판단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시라도 빨리 단악선과 재회하고 싶었던 범계위가 일행을 재촉한 이유도 컸다.
그 때문에 번갈아 교대하며 마교도를 업고 경공을 펼쳐야 했던 종리추와 장철우만 죽을 맛이었다.
하지만 감히 대놓고 불만을 토로할 수도 없어 속으로 삼켜야만 했다.
어찌 되었든, 그렇게 무위에 들어선 범계위 일행을 가장 먼저 맞이한 사람은 마을 입구에서 포목점을 운영하는 곡운경이었다.
“오셨습니까.”
곡운경이 정중하게 인사를 건넸지만 범계위는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단 의원은?”
“의가 쪽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 말에 범계위는 그대로 곡운경을 지나쳐 곧장 의가가 위치한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엇? 범 선배님!”
마을 안을 바쁘게 오가던 무인 몇 명이 범계위를 발견하고 깜짝 놀라 다가왔다.
“어서 오십시오!”
막 임지에 부임한 군인처럼 바짝 군기가 든 그들의 모습에 범계위가 고개를 갸웃했다.
전엔 자신과 마주칠 때마다 쭈뼛거리며 슬금슬금 내빼던 녀석들이었다.
그런데 이처럼 먼저 다가와 인사를 건네 올 줄이야.
그런데 달라진 건 그들만이 아니었다.
“범 선배님께서 돌아오셨다!”
누군가의 외침에 무위에 머물고 있던 사파 무림인들이 앞다투어 달려와 범계위를 환영했다.
너 나 할 것 없이 반가워하는 그 모습에 범계위가 당황했다.
무위를 떠나 있던 기간은 고작 반년 남짓.
한데 전과는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하지만 굳이 그 이유를 따질 생각은 없었다.
지금은 단악선을 만나는 게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반면, 예전에 무위에 방문해 본 적이 있었던 벽화령과 파랑이검은 달라진 무위의 분위기를 피부로 실감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난들 아나.”
장철우와 종리추가 고개를 갸웃하며 범계위 뒤를 따랐다.
그러기를 잠시.
무림인들을 유심히 관찰하던 벽화령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여유가 생겼군.”
장철우와 종리추도 그제야 변화의 이유를 깨달았다.
애초에 무위의 사파인들은 정파의 추적을 피해 도망쳐 온 자들이 태반이었다.
그래서인지 어딘가 늘 위축되어 있었고, 자격지심과 자괴감으로 독이 바짝 올라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눈빛부터가 달라져 있었다.
조급하고 날이 서 있던 눈빛은 여유가 느껴졌고, 행동이나 말투에서도 자신감이 넘쳤다.
그리고 그 변화의 원인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아저씨!”
누군가가 범계위의 도착을 알렸는지 단악선이 날 듯이 달려왔다.
“단 의원!”
범계위 역시 마주 달려가 단악선을 얼싸안았다.
“으하하! 잘 지냈어?”
“덕분에요. 아저씨는요?”
“나야 잘 못 지냈지.”
“어? 왜요?”
“우리 단 의원 보고 싶어서.”
“하하하. 저도 범 아저씨의 농담이 그리웠어요.”
멀찍이 떨어져 두 사람의 재회를 지켜보던 벽화령이 슬쩍 미소를 머금었다.
이토록 환한 범계위의 표정은 실로 오랜만이었기 때문이다.
반면 종리추와 장철우는 주위를 둘러보며 눈을 끔벅였다.
“우리가 알던 무위 맞아?”
“그러게. 저 뜨거운 눈빛들 좀 보라고. 이건 뭐 종교 수준인데?”
단악선을 향한 무위 사람들의 눈빛.
그 안에 담겨 있는 존경과 애정은 그 무엇으로도 형언할 수 없을 만큼 대단한 무언가를 가득 담고 있었다.
두 사람의 대화에 누군가가 끼어든 것도 그때였다.
“그만큼 고마운 분이니까.”
목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린 파랑이검은 말없이 자신들을 따라오던 곡운경을 발견할 수 있었다.
“곡주님께서는 우리가 오랫동안 잊고 있던 한 가지를 되찾아 주셨다.”
장철우와 종리추가 멈칫했다.
그도 그럴 것이, 강호에 추비무랑이라 알려진 곡운경은 평소 매우 오만하고 거친 것으로 유명했다.
그뿐만 아니라 정사를 떠나 자신들보다 앞서 강호 활동을 시작한 선배 고수기도 했다.
사실 그런 그가 이렇게 먼저 말을 걸어 준 것만 해도 두 사람 입장에서는 감지덕지였다.
종리추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게 뭡니까?”
“긍지다.”
“긍지요?”
곡운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혈운사 토벌에 관한 이야기는 들어 봤겠지?”
종리추와 장철우가 동시에 탄성을 흘렸다.
물론 범계위에게 사정없이 굴려지느라 자세한 내용은 알지 못했지만 대충 전해 들은 내용만으로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오랜 세월 초원의 공포로 군림하던 혈운사를 와해시키고, 그 와중에 마교의 육마존 중 한 명인 암존과 마교와 연계하던 변황오세 중 한 곳인 흑야벌의 정예까지 일거에 쓸어 내 버린 놀라운 사건을 어찌 모를 수 있을까.
“아! 그래서…….”
비로소 그들은 무위가 변화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생존을 위해 달아나는 삶과 목적을 위해 투쟁하는 삶은 이렇게나 다른 것이다.
“그래서 이토록 다들 자신감이 넘치는 것이었군요.”
이제는 무위의 구성원으로서 자부심을 지니게 된 그들이었다.
그런 만큼 하나같이 범계위의 귀환을 반기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기뻐하는 단악선의 모습에 모두가 제 일처럼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멀리서 이를 지켜보는 불편한 시선도 있었다.
“저놈이 진짜 달려올 줄이야.”
“그것도 화령이까지 데리고.”
서로 시선을 마주한 초악량과 한설화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좋은 시절은 다 갔군.”
한편 단악선은 벽화령과 그녀를 수행하기 위해 동행한 파랑이검과도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신마곡으로 자리를 옮긴 뒤 해후를 이어 갔다.
그러기를 잠시.
“그런데 저분은 누구시죠?”
뒤늦게 종리추와 장철우 뒤쪽에 포박되어 있는 사내를 발견한 단악선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범계위가 히죽 웃었다.
“선물이야. 단 의원을 위한.”
“제…… 선물이라고요?”
고개를 끄덕인 범계위가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자세히 설명했다.
“그랬군요…….”
눈에 띄게 표정이 굳어진 단악선이 말없이 사내를 응시했다.
방금 전까지의 환한 웃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살얼음이 내려앉은 것처럼 차디찬 눈빛만이 이를 대신하고 있었다.
이윽고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저분은 제가 심문하도록 하죠.”
“응? 지금? 그렇게 서두르지 않아도…….”
범계위의 만류에 단악선이 씁쓸하게 웃었다.
“어차피 지금 기분으로는 아저씨와의 대화에 집중하기 어려울 것 같아서요.”
“…….”
“그럼 다녀올게요.”
범계위가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만큼 단악선의 표정은 평소 그가 알던 모습과 확연히 달랐기 때문이다.
특히나 감정이 느껴지지 않은 건조한 눈빛은 범계위도 놀랄 정도였다.
마교도를 데리고 사라지는 단악선의 뒷모습을 멍하니 응시하던 범계위가 갑자기 버럭 했다.
“이 인간들아! 대체 단 의원에게 무슨 짓을 한 거야!”
가만히 앉아 있다 졸지에 불똥을 뒤집어쓴 초악량과 한설화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단 의원이 저렇게 변한 거냐고!”
초악량과 한설화가 발끈했다.
하지만 뭔가 마땅히 반박할 말이 없었다.
그러기를 잠시.
초악량이 나직이 한숨을 흘렸다.
초원에서 많은 일을 겪었지만 일일이 설명한다 한들 입만 아플 뿐이다.
그런 두 사람을 향해 범계위가 눈을 부라렸다.
“앞으로 두 사람은 단 의원에게 접근 금지야!”
“뭐, 인마?”
울컥해 범계위를 노려보던 초악량이 이어진 범계위의 말에 침음성을 흘렸다.
“나 없는 동안 잘 보살폈어야지! 단 의원이 저런 눈빛을 하게 된 게 누구 때문인데! 그러니 두 사람은 자격 없어! 앞으로는 내가 단 의원을 지킬 테니 그렇게 알아!”
초악량과 한설화는 어이가 없어 말을 잇지 못했다.
살다 살다 다른 사람도 아닌 범계위에게 이런 말을 들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나름 일리 있는 말이라 달리 반박할 수도 없었다.
“에잉!”
못마땅한 눈빛으로 두 사람을 노려보던 범계위가 휙 신형을 돌렸다.
그러곤 짜증을 내며 단악선이 사라진 방향으로 사라졌다.
그날 밤.
단악선이 지친 표정으로 전각을 나섰다.
상대의 정신적 방어 기제를 느슨하게 한 뒤 자백을 유도하는 취생몽사(醉生夢死)는 무척이나 까다롭고 난해한 침술이었다.
특히나 상대가 멀쩡한 상태라면 난이도가 더욱 높아졌다.
“후우.”
단악선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다소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상대로부터 정보를 얻어 낼 수 있었다.
그러다 문득 단악선은 이상한 기분을 느끼고 주위를 둘러봤다.
전각 앞에 빼곡히 모여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죄송해요. 제가 시간을 많이 끌었죠?”
단악선이 애써 웃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차라리 웃느니 못한 그런 웃음이었다.
지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어떻게든 웃으려 애쓰는 그 모습이 더욱 안쓰럽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범계위가 성큼 앞으로 나선 것도 그때였다.
그러더니 손을 뻗어 단악선을 와락 끌어안았다.
“아저씨?”
영문을 몰라 당황하던 것도 잠시.
“단 의원. 그동안 나 없어서 힘들었지?”
불쑥 건넨 범계위의 말에 단악선이 멈칫했다.
하지만 애써 범계위의 손을 뿌리치진 않았다.
억세고 단단한 손길.
그 안에서 전해지는 뜨거운 온기에 꽁꽁 얼어 응어리져 있던 마음이 그나마 천천히 풀어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범계위를 통해 위로를 얻은 단악선이 다시금 미소를 되찾았다.
“알아낸 게 많지는 않아요.”
범계위의 품을 벗어난 단악선이 새롭게 확보한 정보를 일행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일단 그들의 주요 목적은 해남파의 동향을 파악하는 것이었어요. 나아가 납치나 중독을 통해 혼란을 야기하려는 목적도 있었고요.”
“왜?”
“남해안에 왜구가 출몰하고 혼란이 가중될수록 자신들이 활동하기 좋은 여건이 갖춰지니까요.”
하지만 그런 그들의 계획은 제대로 시작도 해 보기 전에 실패하고 말았다.
“상황을 보아 불만을 가진 해남검파의 문도를 회유하고 포섭할 계획도 가지고 있었다더군요.”
그 말에 종리추와 장철우가 코웃음을 쳤다.
당시 해남검파의 핵심 전력 대부분은 범계위 내외 아래서 죽어라 구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문득 이상한 점이 있었다.
“마교가 놈을 죽여 입막음을 시도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텐데요?”
종리추의 말에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않아도 신경 쓰이는 정보가 있었어요.”
단악선이 지명 하나를 언급했다.
“광동성에 위치한 남곤산. 그쪽을 조사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남곤산?”
범계위의 반문에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보고가 그쪽에 모이는 모양이에요. 예전에 기련산 근처의 강명이라는 객잔처럼요.”
귀에 익은 단어에 고개를 갸웃하던 초악량이 이내 기억 속에서 누군가를 떠올렸다.
“어쩌면 그곳도 흑암령주(黑暗令主)라는 자와 관련이 있을지 모르겠구나.”
과거 마교는 중원에 가짜 비급들을 뿌렸다.
그리고 그 대상의 명단을 지닌 자가 흑암령주라는 정보를 얻어 낸 적이 있었다.
지금은 넷밖에 남지 않은 육마존이 마교의 실질적인 호법 역할이라면 흑암령은 정보를 관장하는 조직.
모든 음모를 주재하던 수보라는 자와 더불어 마교의 핵심 인물이라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말없이 생각에 잠겨 있던 능소밀의 눈이 반짝였다.
“곧바로 개방과 이 사실을 공유하겠습니다.”
“네, 부탁드려요.”
단악선의 허락이 떨어지자 능소밀은 곧바로 서신을 작성하기 위해 자리를 떴다.
“후우.”
그제야 단악선이 벽에 기대 이마에 가득한 땀을 훔쳐 냈다.
“몹시 피곤해 보이는구나. 오늘은 이쯤하고 그만 쉬는 것이 어떻겠느냐?”
초악량의 염려에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그래야 할 것 같아요.”
이때 범계위가 초악량을 향해 코웃음을 날렸다.
“흥! 걱정 마슈. 우리 단 의원은 내가 직접 챙길 테니까.”
그러곤 단악선을 품으로 끌어당겼다.
“아저씨. 이 자리는 이제 주인이 있지 않나요?”
“내 여자? 괜찮아. 이제 화령이랑 내가 단 의원을 같이 지켜 줄 거야. 그러니까 쓸모없는 사람들은 버려.”
“하하. 아저씨는 역시 재밌어요.”
“그렇지?”
단악선과 범계위가 함께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