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35)
신마의선-35화(35/500)
신마의선 (35)
다음 날 아침.
풍진성은 조심스레 단악선을 깨웠다.
“곡주님, 일어나셨습니까?”
한참을 기다렸는데도 방 안에서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곡주님?”
혹시나 싶어 풍진성이 방문을 열었다. 그 순간 그를 향해 날아와 꽂히는 시선들이 있었다.
가부좌를 틀고 앉은 세 사람.
그 중앙에는 단악선이 신중한 모습으로 침을 놓고 있었다.
톡.
단악선의 얼굴 위로 흐르던 땀방울이 턱 끝에 방울져 바닥에 떨어졌다. 그러고 보니 이미 단악선의 발밑에는 땀이 흥건했다.
풍진성은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방문을 닫았다.
저 집중에 얼마나 큰 심력을 소모하는지 아는 까닭이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후아…….”
시침을 마친 단악선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뒤늦게 풍진성을 발견하고 미소를 건넸다.
“오셨어요?”
“수고하셨습니다.”
풍진성이 웃으며 치료 중인 세 사람을 바라봤다.
“제가 좀 봐도 되겠습니까?”
단악선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세 사람의 몸에 박혀 있는 침의 위치를 확인하던 풍진성이 놀란 표정으로 단악선을 바라봤다.
“설마 두 분의 침술을 혼용해 사용하시는 겁니까?”
“연구는 오래전부터 해 왔는데, 최근 들어 성과를 얻기 시작했어요.”
풍진성의 눈에 감출 수 없는 감탄의 빛이 떠올랐다.
“저는 이론상으로나 가능하겠다고 생각했는데…….”
침이 놓인 위치와 깊이, 종류를 새삼 유의 깊게 살피던 풍진성이 이내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역시나 이건 이론상으로만 가능한 침술이군요.”
“네? 그럴 리가요. 분명히 제대로 된 효과를 내고 있는데요? 아직까지 특별한 부작용도 없고요.”
단악선의 말에 풍진성이 쓴웃음을 머금었다.
“곡주님을 제외하면 누가 이런 걸 시도라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이론으로만 가능하다 한 겁니다. 저조차 엄두가 나지 않는군요.”
풍진성이 범계위의 목 뒤쪽에 박혀 있는 침을 가리켰다.
“이 침이 반 푼만 더 들어가면 반신불수가 될 텐데요.”
“……!”
범계위의 눈빛이 흔들렸다.
“이건 조금만 흔들려도 귀머거리.”
자신의 혈도 어딘가를 가리키는 풍진성의 말에 이번엔 초악량이 사색이 되었다.
풍진성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한설화를 바라봤다.
“이건 정말 위험하군요! 조금만 실수해도 눈이 멀어 버릴 텐데……. 저는 손이 떨려 시침할 엄두도 내지 못하겠습니다.”
좀처럼 표정이 드러나지 않는 한설화조차 눈가가 살짝 떨렸다.
단악선이 돌아보며 단호하게 외쳤다.
“움직이지 마세요!”
묘한 위엄이 느껴지는 외침에 세 사람은 필사적으로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았다. 세 사람이 다시 안정을 되찾자 단악선이 풍진성을 보며 물었다.
“그런데 이 시간에 어쩐 일이세요?”
풍진성이 품속에서 서찰 하나를 꺼내 들었다.
“방금 무림맹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무림맹이요?”
“네.”
고개를 끄덕인 풍진성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이어 갔다.
“아무래도 길을 서둘러야 할 것 같습니다.”
“환자의 병세가 나빠졌나요?”
풍진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맹주가 직접 서한을 보낼 정도로요.”
* * *
섬서성의 경계를 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일행은 호북성 균현(均縣)을 지나게 되었다.
“아, 정말 아쉬워요. 무당산은 정말 보고 싶었는데.”
단악선이 안타까운 눈빛으로 자꾸만 마차 밖을 보았다.
균현 남쪽에 위치한 도교의 영산(靈山) 무당산.
일흔두 개의 봉우리와 스물여섯 개의 바위산, 더불어 오랜 역사와 이야기를 간직한 전각들까지 그 어느 것 하나 유명하지 않은 곳이 없었다.
하나 무엇보다 무당산을 유명하게 한 것은 따로 있었다.
북숭 소림과 더불어 정파를 떠받치는 기둥 중 하나인 남존 무당이 그곳에 터를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무당산은 그대로 지나쳐야만 했다.
무한으로 향하는 가장 빠른 경로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며칠간 쉬지 않고 달린 그들은 이윽고 무한에 도착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빨리 도착했네요.”
마차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거리를 감상하던 단악선이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껏 지나쳐 온 많은 도시들과 달리 거리 전체에 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선 사람들의 눈에 생기가 없었다.
대도시 특유의 활기 대신 어딘가 무겁고 위축된 공기가 도시 전체를 짓누르는 느낌이었다.
단악선의 표정을 읽은 초악량이 입을 열었다.
“원래 무한은 그 어떤 도시보다 생동감이 넘치는 곳이었다. 하지만 무림맹이 뿌리내리며 상황이 달라졌지.”
무한은 양자강과 한수, 거대한 두 물줄기가 합류하는 요지다.
동서로는 상해와 중경을 연결하고, 남북으로는 북경과 광주를 연결하는 요지로서 예로부터 아홉 개의 성과 통한다고 하여 구성통구(九省通衢)라 불렸다.
무림맹이 무한에 자리를 잡은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신속하게 정보를 취합하기에도 용이했고, 조속한 인력 파견을 통해 중원 각지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효과적인 대응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저놈들이 무한에 터를 닦으며 가장 먼저 장강수로연맹을 밀어 버렸지.”
단악선이 오래전 들었던 이야기 하나를 떠올렸다.
“장강수로연맹이라면 수적들의 연합 말씀이시죠?”
초악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덕분에 거경방(巨鯨房)을 비롯한 상당수의 수채가 본거지를 잃고 후퇴했다. 하나 그 이후 세력을 정비해 양쪽의 물길을 막아 버렸지. 덕분에 엉뚱한 상인들만 죽어 나가고 있고.”
“지금 맹주가 남궁세가의 인간이었던가?”
범계위의 물음에 초악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옛날 의기 높던 창천(蒼天)남궁은 독사 소굴로 전락한 지 오래다. 맹주 역시 속 시커먼 능구렁이고.”
“우리가 그놈 면상을 보고 참을 수 있을까?”
무림맹이라면 자다가도 이를 가는 두 사람이었다.
“참아야지. 단 의원을 위해서.”
대화를 나누는 동안 마차의 속도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혹시 진성의가의 풍 가주께서 동행하고 계십니까?”
풍진성이 마차 밖으로 내려섰다.
마차 밖에 도열해 있던 일단의 무리가 풍진성을 향해 포권을 취했다. 그중 선두에 서 있던 문사 차림의 중년인이 풍진성을 향해 다가왔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기억하실지 모르겠으나 지난번 맹주님 생신 때 인사를 나누었던 황보승입니다.”
“아! 네, 기억합니다. 무림맹의 지객당주께서 어떻게 여기까지…….”
“맹주님의 특별 지시를 받고 사흘 전부터 이곳에서 가주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말대로 황보승이라 자신을 밝힌 중년인은 몹시 초췌하고 피로한 기색이 역력했다.
“시간이 촉박하니 저희가 바로 모시겠습니다.”
일행을 소개할 틈도 없이 지객당 소속의 무인들이 마차를 에워쌌다. 그러자 조금의 지체도 없이 무림맹 본단에 들어설 수 있었다. 무림맹 무인들이 수행하는 마차를 마주하기 무섭게 사람들이 분분히 길을 터 주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우리가 저들의 환영을 받으며 무림맹 땅을 밟다니.”
스스로 생각해도 어이가 없었는지 초악량이 피식 웃었다.
“맹주님께서 현정전(顯正殿)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마차 밖에서 들려온 지객당주의 음성에 단악선이 초악량과 범계위에게 말했다.
“아저씨들, 정말 잘 참으셔야 해요.”
초악량과 범계위가 애써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일행들이 마차에서 내렸다.
주위를 돌아보며 초악량은 으스러져라 이를 악물었다. 범계위 역시 얼굴에 걸어 놓은 억지웃음을 유지하느라 눈가에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이놈도, 저놈도.
사방이 온통 처죽이고 싶은 놈 천지였기 때문이다.
그만큼 무림맹에 대한 적의가 뿌리 깊은 두 사람이었다.
* * *
“염병하네.”
지객당주 황보승을 따라 현정전에 들어선 초악량이 자신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었다.
현정전 내부 한가운데.
웅장한 필체로 쓰인 파사현정(破邪顯正)이라는 글귀 때문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태사의에 앉아 있던 중년인이 자리에서 일어나 일행을 맞이했다. 그 면상을 보는 순간 초악량과 범계위는 끓어오르는 살심을 억누르기 위해 선천지기마저 끌어내야 할 정도였다.
그가 무림맹의 맹주, 남궁백이었기 때문이다.
양패구상에 가까운 정마대전, 그 지독한 혼란의 시기에 오대세가를 규합해 지금의 무림맹을 일궈 낸 장본인이 바로 그다.
남궁백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일행에게 다가왔다.
“남궁의 후배가 태태선자(太太仙子)께 문안 여쭙습니다.”
그리곤 한설화를 보며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화산에서 보내온 서신을 통해 그녀가 풍진성과 동행 중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태연함을 가장하고 있었으나, 고개를 든 그의 얼굴엔 당혹감이 서려 있었다.
다행히 호칭이 거슬리지 않았던지 한설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초악량과 범계위가 묘한 눈빛으로 한설화를 바라봤다.
당금 강호에 무림맹주에게 이처럼 깍듯한 인사를 받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왜?”
두 사람은 애써 태연한 척 시선을 돌렸다.
“태태선자께는 잠시 후에 다시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남궁백은 곧장 풍진성의 손을 맞잡았다.
“이 부족한 사람의 부탁에 먼 길 마다치 않고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맹을 이끄는 맹주 이전에 저 또한 한 사람의 아비. 가주의 방문이 얼마나 의지가 되는지 모릅니다.”
“아닙니다. 의원이라면 의당 와야지요. 더 빨리 오지 못해 죄송할 뿐입니다.”
풍진성이 뒤쪽에 서 있는 단악선을 소개하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아, 이쪽은…….”
“알고 있습니다. 신의의 진전을 이으신 자제분이라고요?”
남궁백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무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공손한 인사였지만 노련한 초악량의 눈썰미를 피해 가진 못했다. 한순간이었지만 남궁백의 눈 위로 실망감이 떠오른 걸 놓칠 그가 아니었다.
남궁백이 풍진성의 손을 잡고 현정전 밖으로 이끌었다.
“일단 제 아이의 상태를 봐 주십시오.”
단악선은 그런 남궁백을 보며 소문과는 다른 사람이구나 생각했다. 지극히 차갑고 권위적인 인물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지금의 모습은 너무도 소탈해 보였기 때문이다.
남궁백의 안내에 따라 일행은 별채로 이동했다.
초악량과 범계위는 일부러 멀찌감치 거리를 두고 따라갔다. 남궁백과 가까이 있는 것이 끔찍하게 싫다는 티가 팍팍 나는 행동이었다.
“내가 관상을 좀 볼 줄 아는데, 저런 놈이 꼭 큰 사고를 치더라고. 기련산에서 사라진 마귀들 두목처럼.”
초악량의 말에 범계위가 고개를 갸웃했다.
“천마 말하는 거요?”
“그래. 천마 종여의. 그놈 생긴 것도 딱 저놈이랑 비슷하잖아.”
초악량이 저만치 앞서가는 남궁백을 노려봤다.
“그러니 저놈이 제 세상처럼 설치는 거지.”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던 범계위가 불쑥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이상하게 저런 얼굴들은 나하고 안 맞는 것 같소.”
“저런 얼굴?”
범계위가 관상에 관심이 있었나 싶어 의아해하는 순간.
“잘생겼잖아.”
초악량이 피식했다.
“그런 이유라면 누군들 너랑 잘 맞겠냐.”
“그래도 초 형과는 제법 잘 맞잖수.”
“내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 초악량은 갑자기 기분이 확 나빠졌다.
“나는 못생겼단 의미냐?”
범계위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초악량은 그게 더 짜증이 났다. 참다못해 한 소리 하려는 찰나 조용히 날아드는 서릿발 같은 시선이 느껴졌다.
초악량과 범계위가 입을 다물었다.
앞서 걷던 한설화가 고개를 돌려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
“…….”
그렇게 일행은 무림맹 뒤뜰에 별도로 마련된 가옥에 도착했다.
독채 안에 들어선 단악선의 눈빛이 무거워졌다.
열대여섯이나 되었을까.
침상에 누워 고통을 참는 여인의 안색은 백지장처럼 창백했다. 찡그린 미간 사이로는 유난히 푸른 기운이 두드러졌고, 눈 밑은 어둡다 못해 검붉게 죽어 가고 있었다. 이불 위로 언뜻 드러난 팔도 여윌 대로 여위어 마른 나뭇가지를 보는 것만 같았다.
게다가 온몸에는 울긋불긋한 발진도 있었고 몇 겹의 이불을 덮고 있으면서도 한기를 느끼는 듯 잔뜩 웅크린 채 덜덜 떨고 있었다.
그녀의 침대 옆으로 이미 두 명의 의원이 있었는데 전혀 손을 쓰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이오?”
남궁백의 말에 의원들이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일각 전부터 용태가 급변하였습니다.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보았지만 도저히 차도가…….”
남궁백의 두 눈에서 쏟아진 새파란 불길을 마주한 의원들의 얼굴은 그야말로 사색이 되었다.
순간 단악선이 앞으로 나서 다짜고짜 이불을 걷어 젖혔다.
“무슨 짓이냐!”
의원들이 깜짝 놀라 단악선을 제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