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351)
신마의선-351화(351/500)
신마의선 (351)
“억지로 내공을 운용하는 대신 전사경의 회전력을 응용해 부족한 위력을 보완하는 거죠. 그럼 호흡에 여유가 생길 테고, 남는 여력을 수비나 공격으로 충분히 전환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아!”
이어진 단악선의 설명에 벽화령이 탄성을 터트렸다.
한순간 눈앞의 안개가 걷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한 줄기 번뜩이는 영감이 벼락처럼 뇌리를 스친 것도 동시였다.
곧바로 검을 들고 일어난 벽화령이 가상의 적을 상대로 연달아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 동안 초식의 연계를 이어 나가던 도중.
그녀의 검이 변화를 일으켰다.
단악선이 언급했던 대로 전사경의 원리를 적용한 것이다.
그러자 기존의 상충하던 초식과 초식 사이의 흐름이 무척이나 자연스럽고 매끄럽게 이어졌다.
그렇게 몇 번 반복하자 위력 자체가 눈에 띄게 달라졌다.
그러다 어느 순간.
폭풍처럼 매섭게 몰아치던 검세가 격렬하게 요동하더니, 해일처럼 일어난 강렬한 검기가 일대를 집어삼켰다.
눈부신 잔영을 남기며 허공에 비산하는 푸른 검기의 물결.
검을 미처 거두지도 못하고 멍하니 이를 응시하던 벽화령의 눈에 감출 수 없는 희열의 감정이 일렁였다.
스쳐 지나는 깨달음을 검에 붙들어 녹여 내는 과정.
이를 통해 그녀는 자신이 한 단계 더 성장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고양감과 성취감은 그 어떤 말로도 형언하기 어려울 만큼 짜릿했다.
그러기를 잠시.
한참을 우두커니 서 있던 벽화령이 멈칫했다.
그러곤 단악선을 향해 곤혹스러운 눈빛을 건넸다.
“그런데 이걸 남해삼식육검이라 부를 수 있을까요?”
확실히 전에 비해 약점은 보완되고 위력은 훨씬 강해졌지만, 남해삼십육검의 기본이 되는 초식들은 온전한 형태를 유지하기 어려워져 버렸다.
“고정된 관념과 제약에 묶어 둘 때만 남해삼식육검이라 부를 수 있는 걸까요?”
단악선의 반문에 벽화령은 눈이 번쩍 뜨였다.
확실히 그 말대로였다.
사문의 비전이라곤 하나 그녀가 얻은 것은 아주 오래된 형태의 검법이었다.
그만큼 한계가 분명했다.
본래의 검법이 지닌 위력을 구현하기 위해 지나치게 형태의 유지에 집중한 초식들.
이를 통해 일정 수준에 도달하는 것은 가능했지만 그 이상의 높은 경지를 도모하는 건 기대할 수 없었다.
그런데 기존의 제약과 한계를 벗어난 검법은 고리타분한 비급의 구결을 벗어나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
더욱 높은 경지로 나아갈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감사드려요. 덕분에 크게 개안했어요.”
벽화령의 말에 단악선은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에요. 덕분에 저도 깨달음을 얻었는걸요.”
초악량이 입을 연 것도 그때였다.
“천 초를 펼칠 수 있는 자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으나, 한 초를 완성한 자는 두려워하라 했다.”
뜬금없는 말에 의아해하던 중인들이 초악량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어색한 웃음을 흘리고 있는 능소밀이 서 있었다.
그의 손에는 연습용 검 한 자루가 들려 있었다.
“죄송합니다. 지켜보다 보니 저도 모르게 가슴이 뜨거워져서…….”
단악선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죄송할 게 뭐 있나요. 처음부터 서로를 보고 배우기 위해 시작한 합동 수련인걸요.”
반면 벽화령은 두 눈에 이채를 띄며 능소밀에게 다가섰다.
“방금 펼쳤던 검법을 다시 보여 주실 수 있나요?”
확실히 같은 검법이라 하더라도 펼치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확실한 차이가 존재했다.
비록 초식의 연계가 완벽하지 않아 어딘가 어설픈 느낌이 강했지만 능소밀이 펼친 남해삼심육검은 나름의 특별함을 지니고 있었다.
“해 봐, 얼른.”
범계위까지 등을 떠밀자 능소밀이 다시 검을 들어 올렸다.
한 차례 깊게 숨을 들이마신 능소밀이 나름대로 재해석한 남해삼십육검을 펼쳐 내기 시작했다.
이를 지켜보던 중인들의 눈빛 위로 놀라움이 떠올랐다.
그사이 어설펐던 동작들이 제법 자리를 잡아, 이제는 상당히 능숙하게 벽화령의 움직임을 상당 부분 복원해 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초악량이 불쑥 입을 열었다.
“닥치는 대로 이것저것 많이 익히려고만 할 때 나타나는 고질적인 병폐가 고스란히 묻어나는군.”
능소밀이 멈칫하며 초악량을 바라봤다.
이에 초악량이 짧게 코웃음 치며 말을 이어 갔다.
“그런 식으로는 정순한 검리(劍理)를 온전히 검에 담아낼 수가 없다. 검기(劍技)의 세절(細節)도 알지 못하고, 방향성 자체가 모호해지기 때문이다. 하나씩 단계를 밟고 나아가 점차 깊이를 추구해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 말을 받았다.
“백 번 보는 것은 한 번 익히는 것만 못하고, 백 가지 익히는 것이 하나의 전일함만 못하다 말씀하셨던 그 말과도 일맥상통하는 의미로군요.”
“그 말대로다.”
초악량이 설명을 덧붙였다.
“고수와 하수 사이에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면 바로 숙련이다. 제아무리 많은 초법(招法)을 익힌다 한들, 운명이 엇갈리는 결정적인 순간에 생사를 가름하는 건 수만 번 반복해 몸에 새겨 넣은 단 한 초식이기 때문이다. 소위 말하는 신공절학, 그 안에 담겨 있는 묘리는 많이 아는 데 있지 않고 정련에 있다. 그래서 이를 달리 정심(情深)하다 표현하는 것이지.”
“으음……. 확실히 검법은 능 아저씨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요.”
“그렇습니까?”
다소 실망한 티가 역력한 능소밀의 모습에 단악선이 웃으며 말을 이어 갔다.
“제가 봤을 때는 내공심법의 차이 때문인 것 같아요.”
“내공심법의 차이요?”
“네. 능 아저씨는 집요함과 끈기를 바탕으로 한 근접전이 특기니까요. 폭발적인 검기를 수반하는 남해삼십육검의 특성상 날카로움과 응집력을 추구하는 내공심법이 받쳐 줘야 하는데, 면면부절 끊임없이 이어지는 지속성에 중점을 둔 위화신공은 오히려 위력을 반감시키니까요.”
“아!”
“차라리 상대로 하여금 거리를 내어 주지 않으면 어때요? 이를테면 단검이나 비수처럼 짧은 병기를 응용해 지근거리에서의 싸움을 이어 나가는 거죠. 그런 상황에서는 오히려 위화신공이 강점이 될 것 같은데요?”
“……!”
무언가를 깨달은 능소밀이 고개를 돌려 사무심을 향해 외쳤다.
“형님, 부탁드립니다! 잠시만 어울려 주십시오!”
“기꺼이.”
사무심이 웃으며 능소밀이 건넨 연습용 검을 받아 들었다.
능소밀 역시 한 자 남짓한 길이의 연습용 단검 두 자루를 양손에 나누어 쥐고 사무심과 마주 섰다.
그러다 어느 순간 서로를 향해 신형을 날렸다.
어지럽게 어우러져 주고받는 짧은 공방.
찰나에 백여 초를 겨룬 두 사람이 다시금 멀찍이 거리를 두고 물러섰다.
초악량이 슬쩍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이건 좀 낫군.”
“그렇습니까?”
그 한마디에 능소밀의 얼굴이 단번에 환해졌다.
평소 평가가 박한 초악량의 성격을 감안하면 이 정도만 해도 엄청난 칭찬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잠깐만요.”
단악선이 앞으로 나서 능소밀을 제지했다.
“방금 전 움직임이 살짝 어색했어요. 혹시 오른쪽 어깨가 불편하신가요?”
“예? 아, 그러고 보니 살짝 근육이 땅기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능소밀에게 다가선 단악선이 그의 어깨 부근을 매만지며 빙긋 웃었다.
“갑자기 변화한 낯선 초식을 사용해서 평소 사용하지 않던 근육에 부담이 가중되었네요. 누적된 피해는 그리 크지 않지만 좀 더 주의하실 필요가 있겠어요.”
단악선이 침을 꺼내 능소밀의 어깨와 목뒤 근처에 침을 놓았다.
“역시!”
능소밀이 탄성을 흘리며 새삼스러운 눈빛으로 단악선을 응시했다.
저릿하던 통증이 사라지며 순식간에 어깨 전체로 시원한 느낌이 퍼져 나갔기 때문이다.
“위화신공 자체가 보신경(保身勁)으로 활용할 때 가장 높은 효과를 발휘하는 건 알고 계시죠?”
“물론입니다.”
“기맥에 위화신공을 흘려 내부의 충격을 지속적으로 완화한다면 그 자체로 운기요상(運氣療傷)의 효과를 얻을 수 있어요.”
더 나아가 그 경지가 높아진다면 자연스럽게 발현되는 호신강기가 외부의 충격으로부터도 전신을 보호하게 될 터.
아직까지는 단악선도 요원한 경지였지만 최근 들어 성취가 깊어지면서 점차 자신감을 얻어 가고 있었다.
“그런데 탁기를 몰아내는 과정에서 말입니다.”
능소밀이 위화신공을 익히며 벽에 부딪쳤던 부분을 조심스럽게 언급했다.
“기경팔맥을 휘돌아 기해혈로 모인 진기가 이따금 불안정해지는 경우에는 대체 어떤 식으로 해결을…….”
“아, 그건 기해혈에 모인 진기를 억지로 누르지 않고 짧게 끊어 내보내는 방식으로…….”
이후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초식을 넘어 내공심법에 관한 문답과 토론을 나누었다.
심마삼존을 비롯한 벽화령과 사무심, 거기에 주장명도 귀를 기울일 만큼 심도 있는 대화가 한참 동안 계속되었다.
그 대화가 마무리된 것은 무려 한 시진의 시간이 훌쩍 지난 뒤였다.
“그럼 이제 한 분씩 진맥을 할게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단악선이 세심하게 일행의 몸을 살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벽화령이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흘렸다.
“이런 수련이 세상 어디에 또 있을까요?”
사소한 부상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는 단악선이었기에 항상 최적의 상태로 온전히 수련에 집중할 수 있었다.
수시로 지급되는 영단은 말할 것도 없었고, 천하제일을 다투는 고수들의 지도와 가르침은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경지로 모두를 이끌어 가고 있었다.
사무심과 능소밀 역시 십분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수련이 이렇게 즐거울 거라고는 생각도 못 해 봤습니다.”
“기연이 달리 있겠나.”
“맞습니다. 바로 지금 이 순간순간 자체가 기연이지요.”
이때 범계위가 불쑥 입을 열었다.
“이게 전부 단 의원 덕분이야.”
의아해하던 능소밀이 이어진 범계위의 말에 안색이 해쓱해졌다.
“단 의원이 이 자리에 없었다면 그야말로 지옥이 따로 없었을걸?”
능소밀은 그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
반면 단악선은 멋쩍은 미소를 머금었다.
“그게 어디 저 하나 때문인가요. 우리 모두가 같은 마음으로 힘을 모았기에 가능한 일인 거죠.”
이번 수련은 여러모로 기대 이상의 성과를 가져왔다.
가끔 초악량과 범계위, 한설화가 비무를 하는 통에 구경꾼이 부상을 입는 것만 제외하면 그야말로 완벽에 가까웠다.
그리고…….
그렇게 삼 개월이 빠르게 지나갔다.
* * *
먼동이 터 오르기 시작한 이른 새벽.
일찍부터 밖으로 나설 채비를 마친 사무심과 능소밀이 일행을 향해 인사를 고했다.
“그럼 보름 후에 다시 뵙겠습니다.”
다른 이들에 비해 맡은 바 책임이 막중한 두 사람은 무위의 상황을 점검하기 위해 조금 일찍 각자의 자리로 복귀해야 했다.
“저도 함께 가야 하는데 죄송해요.”
미안함이 담긴 단악선의 말에 사무심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정식으로 문을 여는 건 아직 보름 정도 여유가 있습니다. 곡주님께서는 당일에 잠시 얼굴만 비치셔도 충분합니다.”
사무심이 기획하고 능소밀이 황제의 허락을 얻어 본격적으로 추진했던 사업.
각종 오락과 유흥, 나아가 교역까지 한곳에서 이루어지는 전방위적인 사업은 무위관(無位館)이라 명명한 특정 지역 내에서 이미 제법 자리를 잡아 가고 있었다.
아직 정식으로 선언하지 않았다 뿐이지, 불야성을 방불케 하는 전례 없는 규모에 중원의 모든 상단들이 속속 무위로 집결하고 있었다.
심지어 이를 허락한 황제조차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상황.
그런 만큼 사무심과 능소밀도 직접 현장에서 최종 점검을 마칠 필요가 있었다.
“그럼 두 분, 수고해 주세요.”
능소밀이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맡겨만 주십시오.”
그렇게 인사를 나눈 뒤 단악선이 신마곡 입구에 설치해 놓은 절진을 향해 다가섰다.
입구에 쌓여 있던 돌무더기.
그 위에 놓여 있던 돌멩이 하나를 단악선이 집어 들었다.
그러자 계곡 입구를 에워싼 채 소용돌이치던 짙은 운무가 거짓말처럼 걷히기 시작했다.
“어?”
“어엇!”
두 사람의 당혹성에 단악선이 고개를 돌렸다.
난감한 표정을 짓고 서 있는 초악량의 모습에 단악선이 의아한 눈빛을 건넸다.
“왜 그러세요?”
단악선의 물음에 초악량이 나직이 헛기침을 터트렸다.
“커험. 그게 원래 그렇게 언제든지 열고 닫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이냐?”
“네. 제가 말씀 안 드렸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