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353)
신마의선-353화(353/500)
신마의선 (353)
주조장을 벗어난 염사인은 곧장 염직물을 가공하는 작업장으로 향했다.
염직물의 특성상 작업장은 냇가를 끼고 있어야 했기에 무위 안에서도 한적한 외곽에 자리 잡고 있었다.
따라서 주조장과도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었다.
휘적휘적 걸음을 옮기는 염사인의 뒤를 밟던 강위룡이 미간을 찡그렸다.
‘저렇게까지 무덤덤하다고?’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기까지 도원향의 향기가 느껴졌다.
그런데 염사인은 개봉한 술병에서 흘러나오는 폭력적인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이따금 걸음을 멈추고 맛을 느끼듯 눈을 감은 채 주변으로 퍼지는 향을 음미하긴 했으나 단 한 번도 술병을 입으로 가져가지 않았다.
심지어 손에 들린 술병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 초인적인 인내심에 강위룡도 슬슬 질려 갈 무렵.
작업장에 도착한 염사인이 총관인 장삼을 향해 도원향이 담긴 술병을 불쑥 건넸다.
“뭡니까? 갑자기. 그리고 한창 바쁜 와중에 대체 어딜 다녀오신 겁니까?”
퉁명스러운 표정과 말투로 염사인에게 따져 묻던 장삼의 표정이 한순간 달라졌다.
단번에 후각을 사로잡는 매혹적인 향기에 일순 말문이 막힌 것이다.
꽃향기 같으면서도 꿀 내음 같기도 한, 화사하고 달콤한 특유의 향.
“이건 설마……?”
염사인이 짧게 코웃음 치더니 반색하는 장삼을 타박했다.
“흥! 개코가 따로 없군. 그래. 네놈이 그렇게나 노래를 부르던 도원향이다.”
얼떨결에 술병을 받아 든 장삼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대체 이걸 어떻게……?”
“생일 선물이다. 팔자에도 없는 아쉬운 소리 해 가며 어렵게 얻은 녀석이니, 원 없이 실컷 마셔라.”
까칠한 말투와 달리 염사인의 눈빛에는 따듯한 온기가 가득했다.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장삼의 모습만으로도 염사인은 더없이 흡족한 기분을 만끽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그건 왜 들고 계시는 겁니까?”
염사인의 다른 손에 들려 있는 술병을 발견한 장삼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 보니 자신에게 건넨 술병은 입구가 단단히 봉해진 상태.
반면 염사인이 들고 있는 술병은 마개가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뒤늦게 주위를 가득 채운 주향이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 깨달은 장삼이 웃음을 거두며 정색했다.
“설마 그것도?”
염사인이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도원향이다.”
“이미 드셨습니까?”
“입도 안 댔다.”
“그런데 왜 마개가 열려 있습니까?”
염사인이 씁쓸하게 웃었다.
“내기를 했거든.”
이어진 염사인의 설명에 장삼이 눈살을 찌푸렸다.
“몹쓸 사람이군요.”
“그래도 어디 자네만 할까.”
“예?”
염사인이 피식 실소했다.
“그래도 그 인간은 오늘 한 번만 참으라 했지만, 주야장천 나를 따라다니며 매번 참으라 강요하는 자네는 대체 얼마나 몹쓸 사람이냐는 거지.”
“그게 어디 같습니까? 그자는 어르신을 농락하기 위해서고, 저는 어디까지나 순수하게 어르신을 염려하는 마음에서…….”
“가만 보면 자네도 내가 괴로워하는 걸 보며 내심 즐거워하는 눈치던데?”
“크흠. 그건…….”
어색하게 헛기침을 터트리는 장삼의 모습에 염사인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못마땅한 눈빛을 던지고는 주변 사람들을 불렀다.
“다들 이리 모여 보게.”
그러곤 직접 술잔에 술을 채워 일꾼들에게 건네주었다.
“이게 중원제일 명주라 불리는 도원향이야. 평생 자랑으로 삼아도 부족함이 없는 술이지. 이따금 힘들고 지쳐 사는 것이 싫어지면 오늘의 기억을 추억 삼아 좀 더 애써 보게나. 그러다 보면 언젠가 오늘과 같이 좋은 때가 분명 다시 올 테니까.”
황송한 태도로 술잔을 받아 드는 일꾼들을 격려한 염사인이 미련 없이 빈 술병을 내려놓았다.
“어르신께서는 안 드십니까?”
일꾼 중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자신들이 평생 동안 급료를 모아도 구할 수 없는 술이라는 걸 잘 아는 까닭이다.
“말 걸지 마라. 지금 침 삼키느라 정신없으니까.”
염사인의 말에 일꾼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기를 잠시.
일꾼들이 도원향이 담긴 술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어떤 이는 단숨에 들이켰고, 어떤 이는 입술을 축이듯 한 방울씩 조심스럽게 입에 흘려 넣었다.
아깝다는 듯 혀끝으로 살짝 찍어 삼키는 이도 있었다.
저마다 마시는 방법은 달랐지만 하나같이 더없이 황홀하고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염사인이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였다.
“그 단악선이라는 그 꼬맹이도 그렇고……. 대체 이 무위라는 동네는 어떻게 되어 먹은 곳이야?”
난데없이 등 뒤에서 날아든 음성에 염사인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강위룡과 시선을 마주했다.
강위룡이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이거 완전 제대로 호구 잡혔군.”
따지고 보면 앞서 진행했던 범계위와의 내기를 포함해 연달아 세 번이나 내기에서 진 셈이다.
무림에 주광도귀라는 명호 네 글자를 알리기 시작한 이래 전례가 없는 일.
툭.
강위룡이 따로 가지고 온 한 병의 도원향을 염사인에게 던졌다.
무심코 이를 받아 든 염사인이 의아한 눈빛을 흘렸다.
“응? 이건 내기에 포함되지 않았는데?”
하지만 이미 강위룡은 눈앞에서 사라진 뒤였다.
―내기는 당신이 이겼소.
자존심 때문이었을까.
그래도 눈앞에서 인정하는 건 싫었던지 전음을 날려 승복하는 강위룡이었다.
마지막에 건넨 도원향은 나름의 체면을 지키기 위해 치른 품위비인 셈.
“허허, 이러지 않아도 되는데.”
슬그머니 술병을 소매 속에 갈무리하던 염사인의 손목을 장삼이 낚아챈 것도 그때였다.
“그런데 그게 왜 그 안으로 들어갑니까?”
“크흠! 습관적으로 나도 모르게…….”
장삼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 전 그것도 모르고 괜히 가슴을 졸였지 뭡니까? 무려 두 번이나 도원향을 참아 내신 분인데 설마 세 번 유혹에 무너지시나 싶어서요.”
“하하하. 그럴 리가.”
어색한 웃음을 흘리던 염사인이 돌연 정색했다.
“그런데 왜 이걸 자네가 챙기나?”
“어르신의 번뇌를 덜어 드리기 위해서요. 그러니 그만 놓으시죠.”
“끄응.”
술병을 놓치지 않기 위해 남은 힘을 쥐어짜던 염사인이었지만 이어진 장삼의 한마디에 손에서 힘이 쑥 빠져나갔다.
“단 의원님께 이릅니다?”
지그시 장삼을 쏘아보던 염사인이 한숨을 내쉬었다.
“자네는 정말이지…….”
“……?”
“몹쓸 사람이야.”
한편 염사인과의 내기에서 지고 급하게 자리를 뜬 강위룡은 돌이켜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었다.
염사인과 얽힌 일련의 과정을 돌이켜 되짚어 보니 자신의 성향을 파악한 그가 내기를 유도한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자꾸만 고개를 들었다.
‘늙은 생강이 맵다더니…….’
하긴 그 정도 출중한 실력을 지닌 장인이 머리가 나쁠 리 만무했다.
허투루 나이만 먹은 것이 아닌, 나름의 산전수전을 겪어 왔을 터.
천하오절의 자리에 자신과 함께 나란히 이름을 올린 초악량.
그의 죽마고우라는 사실만으로도 만만히 봐선 안 되는 상대였다.
‘그러고 보니?’
일초반식의 무공도 모르는 평범한 백면서생과의 내기에서 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덕분에 아까운 도원향 세 병을 고스란히 내어 줘야만 했으니 입맛이 쓰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과히 기분이 나쁘다거나 불쾌하진 않았다.
분명 자존심은 상했지만 한편으로는 묘한 호승심이 고개를 들었다.
‘다음 내기에서는 결코 지지 않는다.’
그렇게 내심 각오를 다지며 주조장으로 돌아온 강위룡이 눈살을 찌푸렸다.
또다시 주조장 앞을 어슬렁대는 누군가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그가 아는 사람이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상대와 시선이 마주친 것도 그때였다.
“잘 지내셨습니까?”
예의를 갖춰 안부를 물어오는 사무심을 향해 강위룡이 마뜩잖은 눈빛을 던졌다.
“그러고 보니 네놈도 나와의 내기에서 이긴 적이 있었지.”
“예?”
“됐다. 여긴 무슨 일이냐?”
고개를 갸웃하던 사무심이 이내 웃으며 입을 열었다.
“보름 후면 무위관이 정식으로 출범을 합니다. 자리가 자리인 만큼, 그날 도원향을 선보이면 어떨까 싶습니다.”
“무위관?”
“숙박 시설과 기루를 포함해 도박장에 이르기까지……. 서역과의 교역에 중점을 두고 설계한, 일종의 위락 시설이 밀집한 특별 구역입니다.”
사무심이 자신만만한 눈빛으로 설득을 이어 갔다.
“무위관을 통해 도원향은 머지않아 서역에까지 그 명성이 퍼져 나갈 것입니다. 중원제일에서 그치지 않고 천하제일의 명주로 거듭나는 것이죠.”
애초에 단악선과 약조한 바가 있기에 강위룡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준비는 다 되었다. 당일 아침에 오면 내어 주지.”
“감사합니다.”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 사무심을 강위룡이 불러 세웠다.
“그나저나 못 본 사이에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군.”
눈빛과 기세, 거기에 제법 두드러진 확연한 존재감까지.
이전에 그가 알던 수전귀야가 아니었다.
“한동안 신마곡에 칩거해 다른 분들과 함께 수련을 좀 했습니다.”
“다른 분들? 설마……?”
“짐작하시는 그분들이 맞을 겁니다.”
“신마삼존 정도나 되는 사람들이 이제 와서 수련을 한다고?”
잠시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강위룡이 슬쩍 운을 떼듯 물었다.
“그래서? 성과가 있었더냐?”
“누구를 말씀하시는지?”
“그 바보 형제와 얼음 귀신 말이다.”
사무심이 웃으며 대답했다.
“제가 감히 어떻게 그분들의 경지를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말은 그렇게 했지만 강위룡은 사무심이 무언가를 감추고 있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그럼 전 이만.”
고개를 숙여 인사를 마친 사무심이 장내를 떠나 사라지자 강위룡이 뒤늦게 침음성을 흘렸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범가 그놈에게만은 따라잡히면 안 되는데…….”
천하오절 가운데 수좌를 다투는 초악량은 둘째 치고, 한설화 역시 인정하는 고수들.
하지만 범계위 따위에게 천하오절의 자리를 내어 준다?
물론 그런 일은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 되지만 조바심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나도 폐관 수련을 해야 하나?”
강위룡이 모처럼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 * *
보름 후.
무위관이 정식으로 개관식을 거행했다.
파파파팡!
곳곳에서 폭죽이 터지고 저자에는 사자춤을 비롯한 공연이 한창이었다.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가 한창인 무위는 발 디딜 틈 없이 몰려든 인파로 가히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특히 평소보다 몇 배는 많은 이국인들이 눈에 띄었다.
하나같이 신마상단과 거래를 성사한 서역 상인들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촉박한 일정에 쫓겨 교역을 마치기 무섭게 귀국길에 오르던 그들이었다.
하지만 무위관에서 제공하는 오락과 다양한 볼거리에 기꺼이 여정을 늦추었다.
거기에 신마상단과 새롭게 거래를 트기 위해 처음 무위를 방문한 서역 상인들이 더해지니 이곳이 중원 땅이 맞나 싶을 만큼 이국적인 모습이 펼쳐졌다.
적발(赤髮)에 벽안(碧眼)을 지닌 색목인(色目人)부터, 호광(湖廣)의 극남(極南)에 있는 파랑국(波浪國) 출신의 검은 피부를 지닌 곤륜노(崑崙奴)까지.
다양한 인종만큼이나 서로 다른 복장과 언어, 문화가 뒤섞이니 그야말로 별천지를 방불케 했다.
그런 이유로 가장 바쁜 사람은 능소밀이었다.
이곳 무위의 실질적인 행정 책임자인 만큼 직접 개관식을 챙기고 이어지는 제반 행사들을 주관해야 했기 때문이다.
오래전부터 거래를 터 왔던 서역 상단들도 축하를 위해 사람과 선물을 보내왔고, 황실을 비롯한 정계의 주요 인사들도 속속 도착하고 있어 더욱 정신이 없었다.
그러다 어느 한순간.
바늘 한 점 꽂을 수 없을 만큼 빽빽하던 무위의 인파가 썰물처럼 양쪽으로 갈라졌다.
그리고 그 사이로 한 사람이 들어섰다.
단악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