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354)
신마의선-354화(354/500)
신마의선 (354)
“곡주님!”
서둘러 단상에서 뛰어내린 능소밀이 막 행사장 안으로 들어서는 단악선에게 날 듯이 달려갔다.
경건하게 예의를 갖춘 능소밀이 곧장 단악선을 상석으로 이끌었다.
그 모습에 많은 사람들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단악선을 대하는 능소밀의 공손한 태도는 행사를 주관하던 내내 보여 줬던 위엄 넘치던 모습과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다.
신마삼존을 비롯해 신마곡에서 함께 수련을 했던 벽화령과 주장명이 자연스럽게 그 뒤를 따랐다.
“저 소년이 바로?”
말로만 들었던 무위의 실질적 주인을 비로소 눈으로 확인한 서역 상단의 책임자들과 각계의 인사들 사이로 소요가 번져 갔다.
“신마의선!”
“고작 열여섯의 나이라 들었건만…….”
“허허, 풍기는 기운이 실로 대단하군.”
단연 모든 이의 관심을 한 몸에 받은 단악선은 상석을 향해 이동하는 내내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었다.
그만큼 여기저기서 인사를 건네 오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윽고 능소밀을 따라 상석에 자리한 단악선이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휴.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나 사람들이 많이 몰릴 줄은 정말 몰랐어요.”
그러다 문득 단악선은 상석의 자리 중 한 곳이 비어 있다는 걸 깨달았다.
능소밀이 곤란한 듯 멋쩍은 미소를 건넸다.
“죄송합니다, 곡주님. 귀빈 한 분이 더 오시기로 되어 있어서 개관식을 잠시 미뤄야 할 것 같습니다.”
단악선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는 괜찮아요.”
선선히 받아들이는 단악선과 달리 초악량과 범계위, 한설화의 분위기는 북풍한설이 몰아치듯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그런 세 사람의 눈치를 살피며 불안해하는 능소밀을 향해 단악선이 작게 속삭였다.
“세 분이 아침에 삼자비무를 하셨거든요. 시간이 부족해 결판을 내지 못했어요. 그래서 지금 심기가 불편하신 거고요.”
“아!”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그들다운 이유였다.
그런 능소밀을 향해 범계위가 불쑥 입을 열었다.
“빨리 끝내. 돌아가는 즉시 이번에야말로 끝장을 볼 테니까.”
“뭐, 인마?”
그 말에 초악량이 발끈했지만 마침 단악선과 시선이 마주치는 바람에 부글부글 끓는 노기를 애써 억눌렀다.
한설화 역시 마찬가지.
두 사람을 노려보는 서늘한 눈빛에 괜히 오금이 저려 오는 능소밀이었다.
그렇다고 세 사람 사이에 끼어 중재할 엄두는 감히 낼 수도 없었다.
서로를 향해 뿜어내는 세 사람의 살기가 그만큼 강렬했기 때문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쩔쩔매던 그때.
“아! 마침 저기 귀빈께서 오시는군요.”
한 사람의 등장에 능소밀이 반색했다.
“아!”
능소밀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린 단악선이 나직하게 탄성을 흘렸다.
좌우로 도열한 무위영 소속의 군병들.
그 사이로 상당수의 호위를 앞세우고 들어서는 사람은 단악선도 얼마 전에 만난 적 있었던 인물이었다.
능소밀이 기다리던 마지막 손님.
바로 당금 황제의 누이인 영순공주였다.
능소밀이 의복을 정돈한 뒤 영순공주를 향해 부복했다.
“천세(千歲)! 신 무위 지주 능소밀이 영순장공주님을 배알하나이다!”
그 외침이 끝나기 무섭게 이곳에 운집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극진한 예를 갖춰 한목소리로 외쳤다.
“천세! 천세!”
오직 황제만이 만세 만세 만만세의 삼창(三唱)을 받을 수 있었다.
황제의 배우자인 황후와 군왕들에게는 천세 천세 천천세를.
누이인 장공주는 그보다 한 단계 낮은 두 번의 천세를 갖추는 것이 황실의 예법이었다.
단악선 또한 능소밀을 따라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장내에서 유일하게 신마삼존만이 주위의 이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 자리에 서 있을 뿐.
한설화가 저리 태연한 마당에 자신들만 예를 갖춰 영순공주를 대할 수는 없었다.
다른 건 몰라도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기 때문이다.
영순공주와 시선이 마주친 한설화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영순공주를 호위하던 금의위의 위사들이 고리눈을 부릅떴다.
경우에 따라서는 역모로 엮어 죄를 다스린다 해도 할 말이 없는 무례인 것이다.
반면 영순공주는 그런 호위들을 눈짓으로 제지했다.
무림에서 차지하는 세 사람의 위상을 익히 들어 이미 알고 있는 그녀였다.
특히 한설화와 모친인 황태후 사이에 얽힌 사연 때문에 아무리 그녀라도 함부로 대할 수가 없었다.
한 걸음 앞으로 나선 영순공주가 한설화를 향해 빙긋 미소 지었다.
“그간 잘 지내셨는지요? 안부 전하시라는 황태후 마마의 말씀이 있으셨습니다. 다시 뵙길 고대한다는 말씀도 함께요.”
희미하게 미소 지은 한설화는 비어 있는 상석을 가리키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영순공주가 상석에 자리하자 비로소 중인들이 고개를 들어 올렸다.
“황제 폐하께서 무위관의 무한한 발전을 기원하며 현판을 하사하셨습니다.”
영순공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녀를 호위하던 위사 한 명이 붉은 비단으로 감싼 길쭉한 물건을 조심스레 안고 나왔다.
비단을 걷자 황제가 직접 글자를 써 넣고 장인들의 손을 거쳐 더욱 용사비등(龍蛇飛騰)한 필체로 거듭난 현판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오!”
곳곳에서 크고 작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
황제가 직접 참여해 제작한 현판을 하사한다는 것.
그 안에 담긴 의미는 실로 가볍지 않았다.
중원의 수많은 상단들 가운데 황제의 공식적인 인정을 받은 곳은 신마상단이 유일했기 때문이다.
서역 출신의 상인들 역시 신마상단을 향한 믿음이 더욱 공고해지는 순간이었다.
황실을 대표해 이 자리에 참석한 영순공주의 축사를 시작으로 무위관을 상징하는 입구 전각 상단에 현판이 걸렸다.
그리고 능소밀은 정식으로 무위관의 개관을 선언했다.
환호와 함께 사방에서 폭죽이 터지고, 이내 미리 공들여 준비한 공연이 이어졌다.
단악선은 흐뭇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화려한 음악과 더불어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사람들.
그 평화로운 모습이 더없이 보기 좋았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꿈꿔 왔던 무위가 비로소 제대로 된 모습을 갖춘 것 같았다.
그토록 바라왔던 풍경인 만큼, 이를 마주하는 감회가 남달랐다.
그렇게 행복하고 떠들썩한 분위기에 취해 있던 것도 잠시.
“보기 좋군요.”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단악선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어느새 곁에 다가와 말을 건네는 영순공주를 향해 단악선이 고개를 숙였다.
“모든 것이 하해와 같은 폐하의 성덕 덕분입니다.”
짐짓 예의를 갖춰 대답하는 단악선의 모습에 영순공주의 얼굴에 언뜻 작은 실망감이 번졌다.
이전 만남과는 확연히 다른 거리감이 느껴졌다.
물론 자리가 자리인 만큼 예전처럼 격의 없는 대화는 나누기 어려웠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아쉬운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도 이를 내색지 않으려 노력하며 애써 환하게 웃었다.
“이렇게 빨리 약속을 지키게 될 줄은 몰랐어요.”
“약속이요?”
단악선의 반문에 영순공주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날 제게 말씀하셨잖아요? 언제든 무위로 오라고.”
“아!”
“설마 빈말로 건넨 말을 제가 눈치 없이 곡해한 건가요?”
“아니요. 그럴 리가요.”
당황해 손을 내젓는 단악선의 모습에 영순공주가 배시시 웃었다.
단악선은 뒤늦게 그녀가 농담을 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마주 미소 지었다.
“건강해 보이셔서 다행입니다.”
“덕분이에요. 그날 말씀하셨던 대로 최근에는 자주 산책하고 근심을 덜어 내려 노력하고 있거든요.”
한결 편해진 단악선의 미소에 영순공주도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금의위의 위사들이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
황실의 금지옥엽인 그녀가 이토록 또래다운 모습을 보여 주는 건 가까운 혈육을 제외하곤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놀란 사람들은 그들만이 아니었다.
무척이나 친밀해 보이는 두 사람의 모습을 힐끔거리던 중인들은 저마다 단악선의 인맥에 감탄했다.
적어도 이곳 무위에서만큼은 절대적인 상징과도 같은 존재가 바로 단악선이었다.
그런데 더 나아가 이처럼 황실에 밀접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니.
반면 영순공주는 자신들에게 쏟아지는 눈빛과 관심을 다른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보면 볼수록 괜찮은 사람이야.’
자신을 향한 시선엔 경원과 호기심이 반쯤 섞여 있었다.
그런데 막상 단악선을 향한 사람들의 눈빛에서는 감출 수 없는 존경과 애정만이 가득했다.
‘이 나이에 사람들의 신망을 이토록 한 몸에 받는 사람이 또 있을까?’
당장 이 자리에 황제 본인이 나선다 해도 이 정도의 대우는 기대하기 어려울 터.
단악선이 이곳 무위에서 어떤 위치를 지니고 있는지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일말의 불안감이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자칫 위험해질 수도 있겠어.’
그 어떤 상황에서도 천하에 절대적인 권위와 영향력을 지녀야 하는 황제.
그의 입장에서는 지금 이곳 무위의 상황이 달갑지 않을 수도 있었다.
적어도 이곳 무위의 백성들은 황제보다 단악선을 더욱 추앙하고 있다는 것 하나만큼은 분명했기 때문이다.
더욱 놀라운 건 이 모든 것이 권력과 공포를 앞세워 군림하지 않고, 오직 존경만으로 만들어 낸 결과라는 점이었다.
마치 삼황오제(三皇五帝) 시절의 태평성대(太平聖代)를 떠올리게 하는 모습이었다.
이때 우연히 서로의 시선이 마주치자 영순공주가 살짝 미소 지었다.
‘어쩌면 내가 그의 방패가 되어 줄 수 있을지도.’
그녀는 이 순간 자신이 단악선을 보호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을 떠올렸다.
아무리 권력에 집착할지라도 자신의 혈육에게만큼은 유독 약한 면모를 보이는 황제였다.
실제로도 많은 부분을 배려하고 양보해 주기도 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한 가지 조건이 전제되어야 했다.
바로 자신과의 혼인이었다.
이를 떠올린 영순공주가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붉혔다.
아직 대략적인 혼담조차 오고 가지 않은 상황에서 자신 혼자 들떠 있는 것 같아 살짝 민망해진 것이다.
당연히 이를 알 리 없는 단악선은 홍조가 내려앉은 영순공주의 얼굴을 보며 걱정스러운 눈빛을 건넸다.
“혹시 어디가 불편하신가요?”
당장이라도 맥을 짚자며 달려들 것 같은 단악선의 기세에 영순공주가 움찔했다.
“아! 아니에요. 전 괜찮으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
그렇게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던 도중.
한 사람이 조심스럽게 두 사람을 향해 다가왔다.
능소밀이었다.
“이쯤에서 장소를 옮기시는 게 어떠할지요? 두 분께서 편하게 대화를 이어 가실 수 있도록 따로 자리를 마련해 두었습니다.”
만에 하나 혹시 모를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그 나름의 조치였다.
그러나 단악선은 고개를 갸웃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요?”
모두와 함께 즐거움을 나누는 지금의 이 분위기가 단악선은 무척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능소밀이 울상을 지었다.
“곡주님, 제발 저 좀 살려 주십시오.”
신마삼존 쪽을 눈짓하는 능소밀의 모습에 단악선은 그제야 이유를 깨달았다.
여전히 냉랭한 세 사람 사이에서 몰아치는 살기.
이로 인해 영순공주를 호위하던 금의위의 위사들 역시 바짝 긴장한 채 경계를 늦추지 못하고 있었다.
평생을 살기에 반응하도록 훈련된 그들이었다.
특히나 미세한 살기의 흐름마저 감지할 수 있도록 예민하게 감각을 벼려 왔던 그들에게 있어 지금처럼 가까운 거리에서 쏟아지는 전율스러운 살기와 마주하는 상황은 그야말로 재앙에 가까웠다.
게다가 외부적인 이유도 있었다.
“효율적인 경호를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습니다. 행여나 공주님께 생채기라도 생긴다면 제 목이 떨어지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능소밀의 간곡한 애원에 단악선이 쓰게 웃었다.
“알았어요.”
단악선과 영순공주는 이내 별도로 마련한 한적한 내당의 후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덕분에 신마삼존과 벽화령이 자연스럽게 단악선을 호위하는 모양새가 되었고, 영순공주는 금의위의 핵심 고수 넷이 네 방향을 전담해 호위하는 형태를 갖췄다.
따로 마련된 장소로 이동하던 도중 영순공주가 신마삼존과 벽화령을 향해 인사를 건넸다.
“보는 눈이 많아 이제야 인사드려요.”
네 사람이 의외란 눈빛으로 영순공주를 바라봤다.
아무리 자신들이 무림에 속해 있다 하나 황실의 금지옥엽인 그녀가 먼저 나서 인사를 해 올 줄은 몰랐던 것이다.
하지만 영순공주는 그들을 대함에 있어 당연하다는 태도로 예의를 갖추고 있었다.
이는 황태후가 자신을 따로 불러 직접 언질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를 얻으려면 그와 함께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먼저 얻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