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355)
신마의선-355화(355/500)
신마의선 (355)
황태후는 그들이 황실의 권위와 법도를 기준으로 가늠할 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조언도 덧붙였다.
그래서 영순공주는 단악선과 가까운 이들을 대하며 예의를 갖추는 걸 잊지 않았다.
그런데 이때.
영순공주를 호위하던 위사들 중 한 명이 슬쩍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단악선을 막아섰다.
오십 대 초반 남짓한 나이에 유독 날카롭고 서늘한 눈빛을 지닌 사내였다.
“어?”
단악선의 눈에 이채가 떠오른 것도 그때였다.
“혹시 우리가 어디선가 만난 적이 있나요?”
분명 처음 보는 것이 분명한데 이상하게도 그의 눈매며 분위기가 어딘가 낯이 익었다.
이에 사내는 침묵으로 응수했다.
그 모습에 초악량이 피식 웃었다.
“신창양가(神槍楊家)인가?”
아무리 감추려 해도 특정 무공을 익힌 이상 드러나는 특징이 존재했다.
하물며 강호에서 닳고 닳은 노련한 고수인 초악량의 눈을 피할 수는 없었다.
초악량이 자신의 내력을 정확히 꿰뚫어 보자 사내가 일순 멈칫했다.
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이내 평정심을 회복했다.
“신창양가라면……?”
고개를 갸웃하던 단악선이 기억 속에서 한 사람을 떠올리곤 탄성을 터트렸다.
“남궁 맹주님을 호위하시던 창천대주, 그분도 신창양가 출신이라 하지 않으셨나요?”
악가, 그리고 이가와 더불어 천하삼창(天下三槍)이라 불리며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창술의 명가.
그중에서도 신창양가는 오대세가에도 밀리지 않는 영향력을 지닌 가문이었다.
시대를 달리하더라도 어림친위군의 요직에는 항상 양씨 성을 쓰는 무관이 이름을 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남궁세가와 껄끄러운 이유도 이 때문이다.
간혹 예외가 있긴 했지만 무림의 오대세가는 철저한 관무 불가침을 추구해 왔다.
반면 양가는 군부와 역사를 함께한 가문이었다.
무림맹의 창천대주였던 양불위.
신창양가의 적통을 이은 그가 가문을 등진 이유이기도 했다.
단악선은 과거에 그가 남궁백과의 의리 때문에 소가주의 지위를 내려놓았다 들은 적이 있었다.
“혹시 그분을 아시나요?”
단악선의 물음에 사내가 곤혹스러운 눈빛을 흘렸다.
하지만 상황이 이쯤 되니 입을 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는 내 이복형제였다.”
“아! 그래서 느낌이 비슷했군요.”
고개를 끄덕인 단악선이 나직이 한숨을 흘렸다.
“남궁 가주님의 일은 정말 안타깝게 되었어요.”
그 말에 사내, 양전이 짧게 코웃음 쳤다.
“나는 그와 다르다.”
서자라는 이유로 일찍 군문에 투신한 자신과 달리 양불위는 적자 승계의 원칙에 따라 일찌감치 가문의 후계자로서 기대를 한 몸에 받았었다.
그런데 시답잖은 이유로 가문을 버리고 후계자의 자리를 걷어찼다.
그런 변절자와 비교되고 싶지 않았다.
단악선은 뒤늦게 그가 양불위를 싫어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복형제라는 표현을 아주 먼 과거의 일처럼 언급한 태도 역시 이 때문이리라.
“확실히 그와는 다르군.”
초악량이 차가운 미소를 말아 올렸다.
“명가를 자처하는 고리타분한 놈들 중에서도 가끔 저런 놈이 튀어나오는 경우가 있지.”
피를 나눈 사이임에도 그는 양불위와 확연히 다른 존재감을 지니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는 온갖 수라장을 헤쳐 온 전귀(戰鬼)의 눈을 지니고 있었다.
싸움에 있어 극한의 효율만을 추구하며, 실전을 통해 얻은 경험과 감각을 뼛속 깊이 새겨 넣은 자들.
그만큼 극한의 상황에서 지닌 무위 이상의 능력을 보여 주는 부류였다.
“좀 거리를 두고 이동하지.”
초악량의 말에 양전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않아도 그들도 내심 곤란하던 참이었다.
단악선과 영순공주가 대화를 이어 가며 거리가 가까워진 탓이다.
단악선을 호위하는 신마삼존과 영순공주를 호위하는 자신들의 동선과 범위가 겹치니 가뜩이나 날이 선 긴장감이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처럼 팽팽하게 당겨지곤 했다.
“그렇게 하시지요, 공주마마.”
영순공주는 그 말에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황제가 직접 호위를 맡긴 그의 권유를 무시할 수도 없었다.
그 와중에도 눈빛으로 경고하는 위사들의 모습에 초악량과 범계위가 가소롭다는 웃음을 흘렸다.
그렇게 후원으로 향하던 중.
단악선과 멀찍이 떨어져 걷던 영순공주가 낮게 한숨을 흘렸다.
“대체 왜 그러신 건가요?”
“공주마마의 안위를 위해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저들은 강호에서도 손꼽힐 만큼 지독히 위험한 자들입니다.”
“저분들에 대한 이야기는 저도 들었어요. 하지만 그렇게까지 우려할 필요가 있을까요? 양 천호께서도 어림친위 내에서는 수위를 다투신다 들었는데요.”
황실과 관련 있는 기관들 가운데 무력으로 손꼽히는 곳은 단연 어림친위군이었다.
동창과 금의위 역시 자체적으로 상당한 무력을 지니고 있었지만 황실 경호를 전담하는 어림친위군에는 비할 바가 못 되었다.
직제상 금의위에 속해 있으나 사실상 그 어떤 편제에도 속하지 않는 특임군.
그 수는 이백에 불과하나 개개인이 천호급 위관에 해당하는 직책과 권한을 지녔다.
그중에서도 양전은 특히 황제 곁을 지킬 만큼 뛰어난 무장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런 그가 영순공주의 물음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지만…….”
잠시 말끝을 흐리던 양전이 영순공주의 후방을 맡아 지키는 수하를 가리켰다.
“무슨 일이 생긴다면 저기 있는 이곽이 공주마마를 모실 것입니다.”
처음에는 무슨 뜻인지 몰라 의아해하길 잠시.
이내 그 말의 의미를 깨달은 영순공주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스스로를 희생하더라도 반드시 자신만은 구하겠다는 의미였다.
“그 정도였나요?”
양전이 동창의 수장인 장인태감(掌印太監)과 더불어 황실 내 최고 고수라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황실이 심혈을 기울여 양성한 손꼽히는 실력자인 그가 승부를 낙관하지 못할 정도의 고수들이었다니.
비로소 양전과 다른 호위들이 평소보다 표정이 굳어 있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영순공주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니 어쩔 수 없죠.”
자신을 위해 목숨까지 기꺼이 내던질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었다.
자신의 고집을 앞세워 그들을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이윽고 영순공주와 일행은 후원에 마련된 연회장에 도착했다.
이미 그곳에 먼저 와 있던 각양각색의 인물들이 정중하게 예를 갖춰 일행을 맞이했다.
무위관을 설립한 주목적이 서역과의 교역에 중점을 둔 만큼 이국의 상인들과 중원 각지의 내로라하는 상단의 책임자들이 대다수였다.
앞다투어 인사를 건네 오는 사람들로 인해 영순공주는 정작 단악선과 대화할 틈이 없었다.
쉬지 않고 밀려드는 사람들을 상대해야 하는 건 단악선도 마찬가지.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멀찍이 떨어지게 되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신마삼존 쪽의 분위기를 확인한 단악선이 능소밀에게 작게 속닥였다.
“사람들과 인사는 충분히 나눈 것 같으니 우리는 이제 신마곡으로 돌아갈게요.”
“벌써 말입니까?”
당황하던 능소밀이 단악선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더니 쓰게 웃었다.
초악량과 범계위, 그리고 한설화.
그사이 또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 서로를 노려보는 세 사람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그야말로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
“알겠습니다. 곡주님만 믿겠습니다.”
능소밀이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개관식을 맞아 모셔 놓은 귀빈들에게 날벼락을 선사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단악선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이야기를 나누는 영순공주에게 다가섰다.
양전을 비롯한 호위들이 경계심을 끌어 올리며 단악선을 주시했다.
하지만 홀로 걸어오는 단악선의 모습에 경계하던 눈빛이 누그러졌다.
“저는 이만 먼저 가 보겠습니다.”
단악선이 건넨 인사에 영순공주는 깜짝 놀랐다.
설마 이토록 빨리 단악선이 돌아갈 줄은 예상 못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내 아쉬움 가득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아! 따로 대화를 나눌 기회도 없었는데요.”
안타까운 기색이 역력한 그녀의 모습에 단악선이 주위를 둘러보며 웃었다.
“어차피 오늘은 힘들지 않을까요?”
자신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아직도 길게 늘어서 있는 행렬을 확인한 영순공주가 나직이 한숨을 흘렸다.
“어쩔 수 없이 다음을 기약해야겠군요.”
“그럼 다시 뵙길 고대하겠습니다.”
고개를 숙이는 단악선을 향해 영순공주가 한 걸음 다가섰다.
“진심인가요?”
“예?”
“그렇다면 이번에는 확실하게 약속을 잡는 게 어떨까요? 저도 한동안은 무위에 머물 생각이거든요.”
영순공주의 적극적인 태도에 단악선이 일순 멈칫했다.
하나 이 순간 가장 민망하고 부끄러운 사람은 정작 말을 꺼낸 당사자인 그녀였다.
그래도 차일피일 미루다 만남이 유야무야되느니 차라리 이렇게 용기를 내는 편이 나았다.
노을이 내려앉은 듯 목덜미까지 달아오른 영순공주의 모습에 단악선은 살짝 당황했다.
“정확한 날짜를 약속할 수 없어 죄송합니다. 대신 무위에 계시는 동안에 반드시 제가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정말이죠? 약속하신 거예요?”
거듭 확인하는 그녀를 향해 단악선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잊지 않고 꼭 찾아뵙겠습니다. 그때까지 부디 옥체 강녕하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돌아선 단악선은 그대로 일행과 함께 신마곡으로 향했다.
그러던 도중 범계위가 불쑥 입을 열었다.
“아까 그 공주가 혹시 단 의원에게 시집오려는 건가?”
“그건 시집이 아니라 하가라 한다.”
초악량의 대답에 범계위가 눈가를 씰룩였다.
“왜 또 시비실까?”
으르렁거리는 두 사람을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던 한설화가 오랜만에 입을 열었다.
“황태후는 내심 단 의원과 공주가 이어지길 바라는 눈치더군.”
“그래?”
놀란 표정을 짓던 범계위가 단악선을 향해 물었다.
“단 의원은 어떻게 생각해?”
단악선이 멋쩍은 웃음을 흘렸다.
아직 혼담은커녕 당사자의 의사도 확인하지 못한 상태였다.
당장 섣불리 혼인을 입에 담을 상황도 아닌 것이다.
무엇보다 단악선은 현 상황을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분에 대해 뭐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알지도 못해요.”
“그래도 당장 부정하지 않는 걸 보니 생각은 있나 보네?”
“아뇨.”
“왜?”
이어진 범계위의 반문에 단악선이 쓰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지금 제가 누굴 만날 상황은 아니잖아요. 당장 당면해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기도 벅차요. 그래서 마교를 무너트리기 전까지는 여유가 없을 것 같아요.”
범계위가 뭔가 더 물어보려는데 한설화가 끼어들었다.
“단 의원의 이상형은 마의 같은 여자라더군.”
그 말에 범계위가 정색했다.
“아니, 단 의원. 아무리 그래도 장가는 가야 할 거 아냐. 차라리 화령이 같은 여자를 찾아봐.”
그 말에 벽화령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저 같은 여자는 없을 거예요, 가가.”
의외로 범계위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마의나 화령이 같은 여자가 세상 또 있을 리 없겠지. 있어서도 안 되고.”
“가가? 그게 지금 무슨 뜻이죠?”
오랜만에 벽화령의 따가운 시선을 느낀 범계위가 뒤늦게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평소 굼뜨던 그의 머리가 더없이 빠르게 회전한 것도 그때였다.
“아니, 그렇잖아. 화령이가 둘이면 나는 어떡하라고. 부인을 두 명이나 둘 수는 없잖아?”
“가가…….”
그 대답이 꽤나 흡족했는지 벽화령이 배시시 웃으며 범계위의 팔을 껴안았다.
뒤늦게 안도의 한숨을 흘리는 범계위의 모습에 초악량이 어이없는 눈빛을 흘렸다.
그러기를 잠시.
초악량이 단악선을 향해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네?”
“살다 보면 이상형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는 의미다. 아무리 네 모친이라도 마의 같은 여자는…….”
비로소 초악량이 하고자 하는 말의 의미를 깨달은 단악선이 고소를 머금었다.
“엄마도 따듯한 분이셨어요.”
그 말에 갑자기 주위에 어색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지금까지의 경험상 생사마의에 관한 소문 중 과장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아니, 오히려 소문이 소박할 정도였다.
그리고 아무리 단악선이라도 이것만큼은 부정할 수 없었다.
자신에게 집중된 시선을 애써 외면하며 단악선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적어도 저한테만큼은요…….”
평소와 다르게 자신감이 없는, 상당히 풀 죽은 음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