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356)
신마의선-356화(356/500)
신마의선 (356)
단악선이 신마삼존을 데리고 사라지자 비로소 능소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행사 내내 불행한 사고가 터질까 싶어 내내 마음을 졸였기 때문이다.
그만큼 일촉즉발의, 더없이 위험한 분위기를 뿜어 대던 세 사람이었다.
여유를 되찾은 능소밀은 비로소 귀빈들과 환담을 나누기 시작했다.
주로 향후 무위관의 운영과 정책에 대한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무위관이 나아갈 방향을 명확히 제시하는 한편, 상대의 협조를 얻기 위한 구체적인 사업 제안에 이르기까지.
일단 물꼬는 자신이 트고 자세한 내용은 실무자인 사무심과 상단 책임자인 소적산이 나서 진행하는 방식이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움직이던 와중.
능소밀의 발걸음을 멈춰 세우는 사람이 있었다.
“……?”
멀리서 귀빈들과 대화를 나누는 영순공주의 모습을 발견한 능소밀이 고개를 갸웃했다.
금일 이곳을 방문한 수많은 귀빈들 가운데서도 가장 뛰어난 배경과 높은 지위를 지닌 인물은 단연 그녀였다.
그런데 그녀는 단악선이 떠나고 나서도 계속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확실히 의외가 아닐 수 없었다.
그녀가 이곳을 찾은 이유가 단악선 때문이라는 것을 신마곡 사람들 모두가 알고 있었다.
게다가 고고하게 자리만 지키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내원 곳곳을 돌아다니며 귀빈들과 대화를 이어 가곤 했는데, 그때마다 귀빈들은 황송함을 금치 못했다.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지?’
능소밀은 타고난 호기심을 주체할 수 없었다.
결국 다른 사람과 환담을 주고받는 척하며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다가갔다.
그렇게 어느 정도 거리가 가까워지자 영순공주와 상대방이 나누는 대화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어?’
능소밀은 순간 당황했다.
그녀는 서역 상인들에게 신마상단을 황실이 보증한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며 믿음을 심어 주고 있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황제의 누이인 만큼 이를 신뢰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터.
그조차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한 사람과 시선이 마주친 것도 그때였다.
“……!”
지그시 자신을 응시하는 시선.
허튼 수작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긴, 단호한 눈빛이었다.
‘양전이라 했었나?’
공주의 호위를 책임지고 있는 어림친위군 소속의 위사.
신마곡에서의 합동 수련 이후 꽤나 강해졌다 자부하던 능소밀이었지만 상대는 그 이상의 고수.
그의 이목을 완벽하게 속이는 건 무리였다.
‘뭐, 상관없지.’
이왕 들킨 바에 능소밀은 좀 더 뻔뻔하게 나서기로 마음먹었다.
능소밀이 씩 웃으며 성큼성큼 영순공주에게 다가섰다.
마침 개관 행사도 슬슬 마무리 지어야 할 시점이었기에 명분은 얼마든지 있었다.
“신 능소밀이 공주마마께 드릴 말씀이 있사옵니다.”
“아! 능 지주, 어서 오세요. 마침 이분들과도 그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어요.”
반색하며 자신을 맞는 영순공주의 모습에 능소밀이 조금 더 자신감을 얻었다.
“저런! 그래서 행사 내내 귀가 간지러웠던 것이었군요. 그래도 저와 관련된 험담이 공주마마께 즐거움을 안겨 주었다면 제게 있어서는 삼생의 영광이옵니다.”
“험담이라뇨. 오히려 하나같이 능 지주를 칭찬하시던걸요? 권위를 앞세우기보다 백성 입장에서 모든 것을 헤아리며, 참으로 보기 드문 청렴한 관리라며 칭송을 아끼지 않더군요.”
“하하. 그렇습니까? 하긴 제게 밉보이면 당장 오늘 밤 저녁 식단을 걱정해야 할 테니까요.”
“듣던 대로 능 지주께서는 말을 참 재밌게 하시는군요.”
진심으로 유쾌하게 웃는 영순공주와 달리 양전을 비롯한 호위들은 곱지 않은 시선을 던졌다.
이에 능소밀도 곧장 본론을 꺼냈다.
“외람되오나 이곳 무위에는 별도의 객사(客舍)가 없는지라, 공주마마께서 머무실 숙소를 관청에 마련해 두었나이다.”
객사는 궐패를 모셔 놓고, 관아를 방문하는 관리나 사신들이 머무는 장소.
하지만 무위는 직예주로 승급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까지 공관 시설이 미비했다.
그런데 의외로 영순공주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알겠어요. 그럼 저는 마을을 좀 더 둘러본 뒤에 그곳으로 갈게요.”
“금일 여정으로도 피곤하실 터인데…….”
“아뇨, 괜찮아요. 즐겁기만 한걸요. 오히려 저는 능 지주께 미안하네요.”
“예?”
“저 때문에 이래저래 신경 쓰실 게 많았을 테니까요. 고생 많으셨어요.”
영순공주의 치하에 능소밀이 빙그레 미소를 머금었다.
아랫사람의 입장을 헤아리고 배려하는 모습.
그것도 인위적으로 억지로 꾸며 낸 것이 아닌, 평소의 태도가 몸에 익어 묻어나는 자연스러운 태도였다.
능소밀은 영순공주가 꽤 마음에 들었다.
“마을을 둘러보신다면 제가 모시겠습니다.”
능소밀의 제안에 영순공주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가뜩이나 바쁘실 텐데 그럴 필요 없어요. 행사를 주관한 책임자인 만큼 마무리는 하셔야죠. 그럼 저 먼저 일어날게요.”
모두의 인사를 뒤로한 채 영순공주가 행사장을 벗어났다.
그렇게 무위관을 나서자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무위영의 군사들이 자연스럽게 영순공주와 위사들을 호위했다.
“어디로 가시겠습니까?”
양전의 물음에 그녀가 걸음을 멈추더니 한 곳을 바라봤다.
“그대가 이곳 주둔지의 책임자인가요?”
영순 공주의 시선을 받은 무관이 움찔했다.
정삼품의 품계를 지닌 위지휘사사(衛指揮使司) 척경통이 바로 그였다.
본래는 산동성 등주부 봉래현 출신이었지만 갑작스레 이곳 무위가 직예주로 승격하면서 급하게 편제된 군영 책임자로 이곳에 파견된 그였다.
그래서 평소에도 불만이 많았다.
급하게 고향을 등져야 했기에 기껏 쌓아 놓았던 인맥과 영향력이 하등 소용없게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런 불만에 더해 능소밀과의 갈등으로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던 그였다.
하지만 황실에서도 높은 서열을 지닌 영순공주의 행차에는 아무리 그라 해도 얼굴을 비치지 않을 수 없었다.
“일단 사람이 없는 곳으로 좀 걷죠. 지휘사는 저 좀 보시고요.”
척경통이 고개를 숙인 채 조심스럽게 영순공주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무위는 언제쯤 안정이 될까요?”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난데없이 날아든 질문에 척경통이 당황한 사이, 영순공주가 미미하게 아미를 찡그렸다.
“폐하의 뜻에 따라 힘을 합쳐 백성들의 안위를 도모해야 할 관리들이 서로 반목하는 것도 모자라, 알량한 자존심을 놓고 힘을 겨룬다 들었어요.”
“그, 그건…….”
“게다가 이미 한쪽에서 손을 내밀었는데, 그쪽에서 이를 뿌리쳤다지요?”
척경통의 안색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보란 듯이 대놓고 질책하는 영순공주의 눈빛.
온화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확연히 다른 위엄과 기세가 이를 대신하고 있었다.
거기에 어림친위의 압박이 더해지니 척경통은 일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실제로 최근 능소밀은 교육관을 개관하며 이곳 군병들의 자녀들에게 교육 기회를 열어 놓은 상태였다.
하지만 아무도 신청하지 않았다.
아무리 기회가 좋다 하나 상급자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는 것이 군부의 생리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순공주는 이를 정확히 지적하고 있었다.
“실상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저희도 억울한 측면이 많습니다.”
변명을 이어 가던 그가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어림친위의 눈빛이 싸늘하게 번뜩이는 것을 목도했기 때문이다.
가만히 척경통을 응시하던 영순공주가 빙긋 웃었다.
“그럼 확인해 볼까요?”
“예?”
“이곳 백성들의 반응을 통해 그대의 발언에 대한 진위를 가늠해 보도록 하죠.”
만류할 틈도 없이 영순공주는 이미 저만치 앞서 걷기 시작했다.
척경통도 허겁지겁 그녀의 뒤를 따랐다.
그렇게 마을에 들어선 영순 공주는 곳곳에서 느껴지는 곱지 않은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일반 백성뿐 아니라 무림인으로 짐작되는 자들 역시 마찬가지.
그녀에게는 정중히 극공의 예를 다했지만 군부의 인사들을 향한 눈빛에는 노골적인 배척이 담겨 있었다.
“백성들은 관리의 거울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죠.”
“여기에는 나름의 사정이…….”
엉겁결에 변명하던 척경통이 이어진 영순공주의 말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그 말은 제가 그릇된 판단을 내렸다는 뜻인가요?”
“……아닙니다.”
실제로 군부의 인사들을 불편해하는 백성들의 모습을 직접 확인한 영순공주가 아예 강력하게 경고했다.
“제가 이번 사안에 대해 직접 나서지는 않을 거예요. 그러니 당사자인 지휘사께서 확실하게 수습하세요.”
공주인 그녀가 그리 말하는 이상 척경통이 할 수 있는 대답은 하나뿐이었다.
“그리하겠습니다.”
“명심하세요. 전 분명 기회를 드렸어요.”
“하해와 같은 은혜 각골난망(刻骨難忘)하겠나이다.”
“만약 이번에도 실망을 안긴다면 친히 폐하께 이곳의 상황을 말씀드리겠어요.”
척경통이 고개를 조아린 채 부르르 몸을 떨었다.
아무리 상황 판단이 느린 그라 해도 그녀의 의도를 짐작하지 못할 만큼 어리석지는 않았다.
“그럼 지휘사께서는 이만 휘하의 군사들을 데리고 돌아가셔도 됩니다.”
“예? 하오나…….”
“지금은 여유 부릴 때가 아닐 텐데요?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꺼야 하지 않을까요?”
완곡한 축객령에 척경통이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그러곤 수하들을 추슬러 장내를 벗어났다.
멀어지는 그들을 지켜보던 영순공주가 양전을 향해 물었다.
“제가 너무 과했나요?”
양전은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입에 발린 말을 하기에는 확실히 선을 넘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녀가 황실 위계 서열의 상위에 위치하고 있다 하나 군과 관련된 인사의 문책과 지시는 별개의 문제였다.
“혹 목적이 있으십니까?”
“목적이요?”
“공주마마께서 의도하신 바를 알아야 하문하신 물음에 답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리 여쭙습니다.”
“그냥요.”
“예?”
“그저 옳은 일을 한 것뿐이에요. 폐하의 치세 아래 이곳 무위의 백성들이 평화와 행복을 누리길 바라는 마음에서요.”
양전이 슬쩍 웃으며 고개를 조아렸다.
“그렇다면 틀리지 않으셨습니다. 폐하께서도 분명 기꺼워하실 테니 말입니다.”
영순공주가 뜻밖의 말을 꺼낸 것도 그때였다.
“물론 조금쯤은 그 사람이 저에 대해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도 있고요.”
잠시 멈칫한 양전이 이내 지극히 조심스러운 태도로 입을 열었다.
“혹 그 소년을 마음에 두고 계신 겁니까?”
“글쎄요.”
영순 공주가 모호한 미소를 머금었다.
“아직은 알아보는 중이에요. 그런데 지금까지 그가 보여 준 모습만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더군요. 제가 초라해 보일 만큼.”
“폐하를 비롯한 황실의 어른들을 제외하면 당금 천하의 그 누구도 공주마마를 초라하게 만들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영순공주가 말끝을 흐리며 생각을 정리했다.
그리고 그녀가 다시 입을 연 것은 약간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였다.
“어쩌면 무위에 머무는 기간이 좀 더 길어질 수도 있겠어요.”
“준비하겠습니다.”
“그런데 다음에는 변복(變服)을 하고 다녀야겠어요.”
“변복…… 말씀이십니까?”
“저 때문에 백성들이 불편해하는 건 원치 않으니까요.”
영순공주의 표정을 살피던 양전이 슬쩍 웃음을 말아 올렸다.
애써 감추려 노력하곤 있었지만 그의 눈썰미를 피하기에는 무리였다.
한껏 기대감에 찬 그녀를 향해 양전이 말했다.
“미복잠행(微服潛行)이라니. 드디어 소원을 성취하시는군요.”
“눈치채셨어요?”
겸연쩍게 웃는 영순공주의 모습에 양전이 고개를 끄덕였다.
과거 요 임금은 자신의 선정을 확인하기 위해 평범한 옷차림으로 궐을 빠져나가 백성들을 살피곤 했는데, 이를 미복잠행이라 했다.
철이 든 이후 항상 황실의 담벼락 안에서만 머물던 그녀였다.
그래서인지 유독 평범한 백성들과 일상을 보내는 것에 대한 환상을 지니고 있었다.
이어진 양전의 대답에 영순공주가 화사한 미소를 베어 물었다.
“그럼 그것도 함께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