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357)
신마의선-357화(357/500)
신마의선 (357)
개관식을 치르고 무위관이 정식으로 출범한 지 닷새째 되던 날.
신마곡 안으로 비둘기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외부와 연락하기 위해 특별히 훈련한 전서구였다.
이를 발견한 단악선이 곧장 입구로 달려가 절진을 해제했다.
시야를 방해하던 자욱했던 운무가 걷히자 그 사이로 한 사람이 들어섰다.
능소밀이었다.
매번 보면서도 신기한지 능소밀은 연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런 그를 향해 단악선이 웃으며 다가섰다.
“고생하셨어요.”
“아닙니다. 곡주님에 비하면 고생이라고 할 것도 없지요.”
반갑게 자신을 맞아 주는 단악선을 향해 능소밀도 마주 웃으며 가져온 소식을 전했다.
“열흘 후부터 무위학관이 본격적으로 교육을 시작할 것 같습니다.”
“참여자가 생각보다 저조해 일정을 미룬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그 이유가 무위영 소속의 군병들 때문이었는데, 최근 태도를 달리해 적극적으로 학관에 자녀들의 신청서를 제출하고 있습니다.”
“잘됐네요.”
단악선의 표정이 밝아졌다.
차질 없이 학관이 운영된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고무적인 일이었다.
“이제 갈등은 끝난 건가요?”
“그런 것 같습니다. 우리가 모집하던 교관 자리에도 이미 몇 명이 지원했습니다.”
“다행이에요.”
안도하며 고개를 끄덕이던 단악선이 이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그들이 생각을 바꾼 걸까요?”
“아무래도 공주님께서 힘을 쓰신 듯합니다.”
능소밀은 마을 사람들에게 수집한 정보들을 토대로 공주가 지휘사를 꾸짖었던 내용을 언급했다.
단악선이 의외란 표정을 지었다.
무위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그녀가 이토록 적극적으로 나서 자신들을 도와줄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그분은 아직도 무위에 머물고 계시나요?”
“네. 아주 잘 계십니다. 게다가 머무는 기간도 더욱 길어질 것 같고요.”
“이곳이 마음에 드셨나 보네요.”
능소밀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지금도 변복을 하고 무위 어딘가를 신나게 돌아다니고 계실 겁니다.”
“변복이요?”
“최근에는 눈뜨기 무섭게 변복을 하고 관사를 나서신다 들었습니다. 객잔도 가시고, 어제는 무위관에 마련된 도박장에도 들르셨다더군요. 뭐, 자금성을 벗어나 마음껏 활보하고 싶은 그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만…….”
“……?”
가장 최근 일을 떠올린 능소밀이 나직이 한숨을 흘렸다.
“어제는 남장하고 기루까지 가시겠다는 걸 겨우 뜯어 말렸습니다.”
“자유가 그리웠던 모양이네요.”
“뭐, 겸사겸사 백성들의 삶을 가까이서 살피고 관리들의 행태를 시찰하는 의미도 있겠지만요. 아, 참!”
능소밀이 뒤늦게 무언가를 떠올린 듯 탄성을 터트렸다.
“그리고 저더러 곡주님께 말을 좀 잘해 달라 부탁하시더군요. 아무래도 곡주님이 마음에 드신 모양입니다.”
“그런 말을 그렇게 직접 대놓고 하셔도 되는 건가요?”
난감한 표정을 짓는 단악선을 향해 능소밀이 씨익 웃었다.
“제게는 그 누구보다 곡주님이 우선입니다. 그래서 사실대로 말씀드린 겁니다.”
짧게 고민하던 단악선이 낮게 한숨을 흘렸다.
무언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가는 듯한 상황이 썩 내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는 게 나을까요?”
“제 생각에는…….”
이때 능소밀의 말을 자르며 끼어드는 사람이 있었다.
“그 공주는 단 의원에게 시집오기로 마음먹은 건가? 그럼 어떻게 되지? 단 의원도 황족이 되는 거야?”
범계위를 시작으로 어느새 다가온 초악량과 한설화도 기다렸다는 듯 한마디씩을 보탰다.
“의원으로서뿐만 아니라 무림인으로서도 상당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으니 황실 입장에서는 탐이 나겠지.”
“몇 번이나 봤다고? 혼인은 아직 너무 일러.”
그 말에 범계위가 눈살을 찌푸렸다.
“에잉. 나는 약해 빠져 보여서 영 별로던데. 여자란 자고로 강인해야지. 자신감이 넘치면 더 좋고. 우리 화령이처럼 말이야.”
초악량도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나도 별로다. 혼인을 위한 만남이라니.”
거기에 한설화도 거들었다.
“황실이 끼어든 것 자체가 마음에 안 들어.”
아직 구체적인 혼담은커녕, 스치듯 본 것이 전부인데 벌써부터 성화인 세 사람의 모습이 단악선 입장에서는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세 분 모두 너무 앞서 나가시는 거 아닌가요?”
그 말에 세 사람이 뻘쭘하게 시선을 돌렸다.
이미 자신들끼리는 이와 관련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던 터라, 자연스럽게 말이 나온 것이다.
말없이 범계위 옆을 지키고 있던 벽화령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단 의원님 생각은 어떠신가요? 솔직히 제가 보기엔 배경을 제외하더라도 사람 자체가 나쁘지 않아 보이던데.”
“글쎄요.”
잠시 말끝을 흐리던 단악선이 난감한 기색으로 대답했다.
“아직 뭐라 말할 만큼 친밀하지 않아서요.”
“친밀해지는 건 쉬워. 일단 발가벗고 몸을 섞……. 읍읍!”
갑자기 누군가 자신의 입을 틀어막자 발끈하던 범계위였지만 이내 그 손의 주인이 벽화령이라는 것을 깨닫고 금세 얌전해졌다.
“세상에 다양한 사람들이 많은 만큼 만남의 형태도 다양하답니다. 처음에는 특별한 감정이 없어도 알아 갈수록 좋아지는 경우도 많고요.”
벽화령의 말에 단악선의 한숨이 더욱 깊어지자 잠시 모두가 침묵을 지켰다.
그 침묵을 깬 사람은 범계위였다.
“어? 잠깐만.”
뭔가 이상함을 느낀 범계위가 자신의 입을 막고 있던 벽화령의 손을 걷어 냈다.
“그러고 보니 단 의원은 지금까지 여자를 좋아해 본 적도 없는 거야?”
그 말에 초악량과 한설화도 비로소 이상한 점을 눈치챘다.
단악선과 함께 지내 온 세월이 무려 사 년이었다.
처음 열두 살 꼬맹이였던 단악선이 지금은 열여섯 혈기 왕성한 청년의 모습을 갖춰 가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과거의 기억을 되짚어 봐도 단악선이 사랑에 빠지거나 누군가를 흠모했던 기억이 없었다.
“없어요.”
단악선이 진실을 말하자 모두의 표정이 굳었다.
“왜들 그러세요? 이게 그렇게 심각할 일인가요?”
“심각하지. 곧 열일곱 살이 되는데, 그동안 좋아해 본 여자가 없다니.”
“단 의원. 그러면 안 돼.”
이해하지 못하는 단악선을 본 범계위가 시선을 돌려 초악량에게 물었다.
“초 형, 여자를 처음 좋아한 게 언제유?”
“나? 여섯 살?”
“능 단주. 너는?”
“전 좀 늦습니다. 여덟 살입니다. 그러는 선배님께서는 언제였습니까?”
“네 살.”
그제야 단악선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원래 그런 건가요?”
“응. 이게 당연한 거야. 내가 아는 놈들도 다 그래. 아무리 늦어도 열 살이야.”
단악선의 표정이 심각해지자 벽화령이 한설화에 슬쩍 전음을 날렸다.
―언니. 남자들은 원래 저런가요?
―……모른다.
두 여인을 제외하고, 세 명의 사내는 더욱 진지한 의견을 나눴다.
“하긴……. 그러고 보니 남궁가의 여식이 그렇게 대놓고 꼬리를 쳤는데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지.”
“예? 누구요? 남궁향 소저 말인가요?”
범계위의 말에 단악선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거 아니에요. 그분은 상사병으로 아프셨어요. 왜 그분이 저 때문에 상사병을 앓겠어요.”
여전히 영문을 몰라 하는 단악선의 모습에 초악량이 눈살을 찌푸렸다.
“심각하군.”
이번에는 한설화도 초악량의 평가에 동의했다.
초악량이 턱을 만지며 고민하는데 범계위가 갑자기 버럭 했다.
“이게 전부 초 형이랑 마녀 때문이야!”
황당함을 금치 못하는 초악량을 향해 범계위가 질타를 이어 갔다.
“그러니까 그때 나를 말리지 말았어야지!”
“……?”
“내가 기루 데리고 간다고 했을 때 그냥 뒀으면 단 의원이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거 아냐!”
“그래도 그건 아니지!”
“아니긴 뭐가 아니야! 만약 그때 단 의원이 여자에 눈을 떴다면 벌써 애가 있어도…….”
말하다 보니 자신도 어딘가 이상함을 느꼈던지 범계위가 말끝을 흐렸다.
“가가.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어딘가 스산해진 벽화령의 눈빛에 범계위가 움찔했다.
“그런데 평소에도 그렇게 기루를 자주 다니셨나 봐요?”
“그, 그건…….”
갑자기 쩔쩔매는 범계위를 보며 초악량과 한설화가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었다.
그때 말없이 듣고만 있던 단악선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혹시 제가…… 잘못된 건가요?”
“그런 건 아니지만…….”
초악량이 어색하게 웃으며 단악선을 바라봤다.
“안타깝긴 하구나.”
장내에 잠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침울해진 분위기에 단악선도 덩달아 표정이 시무룩해졌다.
그런데 그때.
범계위가 큰 결심을 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 보니 그 공주라면 괜찮을 것 같아.”
“언제는 약해 빠져 보여 별로라며?”
초악량의 말에 범계위가 험악하게 눈을 부라렸다.
“귀신 중에 제일 서러운 귀신이 뭐요?”
“뭐?”
“바로 총각 귀신이유. 설마 우리 단 의원을 이대로 불쌍한 총각 귀신으로 만들 생각이슈?”
“……!”
그 말이 결정적이었다.
“커험.”
나직하게 헛기침을 터트린 초악량이 단악선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그 공주라면 만나 봐도 괜찮을 것 같구나.”
“예? 갑자기요?”
“적어도 그 사람은 네 약점이 되진 않을 테니까.”
의아해하는 단악선을 향해 초악량이 설명을 마저 했다.
“만약 네가 지금 누군가를 만난다면 그 상대는 필시 마교의 표적이 될 터. 네 마음 어딘가에는 그런 우려가 있어 은연중에 연애를 기피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단악선이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말려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필사적으로 이유를 찾는 그들의 언변은 빠져나가기 힘들었다.
‘사실이기도 하고.’
마교와 싸우고 있는 자신과 친하다는 이유만으로도 여러 사람이 위험에 빠진다. 그래서 새로운 인연을 만드는 데 주저함이 있었다.
단악선이 반박하지 못하자 초악량이 말을 이었다.
“공주는 그런 점에서 자유롭다. 제아무리 마교가 막 나간다 해도 황제의 혈육을 건드리지는 못할 테니까.”
그러나 정작 단악선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그래도 상대의 조건에 따라 좋아하는 마음이 생기는 건 아니잖아요.”
“네 말대로다. 다만 좀 편한 마음으로 만나 보라는 것이다. 미리 벽을 쌓지 말고.”
“그래. 단 의원. 일단 만나 보고 아니면 뻥 차 버려!”
“혼인을 하라는 것도 아니고, 연애를 하라는 것도 아니다. 다만 마음을 열어 두고 만나 보라는 것이다. 우리가 걱정하는 건 네가 현재 상황에 매몰되어 스스로의 마음조차 닫아 버리는 것이다.”
상황이 이쯤 되자 단악선도 달리 방법이 없었다.
모두가 다 자신을 위해 하는 이야기임을 아는 까닭이다.
“알겠어요.”
어딘가 지친 표정으로 돌아서는 단악선을 아무도 붙잡지 않았다.
그러기를 잠시.
단악선이 전각 안으로 사라지자 남아 있던 사람들이 눈빛을 교환했다.
“이번에도 유야무야 넘어가면 마교가 무너질 때까지 기회가 없을 것 같은데?”
“마교가 언제 무너질 줄 알고?”
“그러니까 이 기회에 이성에 대한 호기심이라도 느껴 보게 해야지.”
셋이 오랜만에 의기투합했다.
하지만 아주 큰 문제가 있었다.
“단 의원이 공주를 좋아할까?”
“고기도 먹어 본 놈이 잘 먹는 법이유. 우리가 어디 단 의원을 몰라? 이대로 두면 아마 인사를 나눈 뒤 서로 가볍게 근황이나 묻고 끝이겠지.”
곳곳에서 안타까운 한숨이 새어 나왔다.
“실로 가슴이 아프군요. 이 자리의 모두를 신경 쓰느라 정작 곡주님 자신은 누려야 할 행복과 담을 쌓고 계시다니…….”
능소밀의 탄식에 모두가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때 범계위가 불쑥 입을 열었다.
“뭘 고민해? 단 의원이 공주를 좋아하게 하면 되는 거 아냐?”
“뭐? 어떻게 말이냐?”
놀라 되묻는 초악량을 향해 범계위가 씨익 웃었다.
“단 의원이 반하도록 공주를 매력적인 여자로 만들어 놓는 거지. 그럼 되는 거 아니유?”
“그게 어디 말처럼 쉽냐?”
“어려울 게 뭐 있어?”
그 말과 함께 범계위가 돌아섰다.
그런 범계위를 초악량이 붙들었다.
“어디 가려고?”
“잠시 다녀올 곳이 생겼수.”
“너 설마?”
범계위의 목적지를 눈치챈 초악량이 눈살을 찌푸렸다.
“우리가 지금 수련 중이라는 걸 잊었냐?”
“아, 지금 수련 따위가 중요하우? 얼마 안 있으면 해가 바뀔 텐데? 열일곱 살이 코앞이유.”
초악량이 멈칫했다.
힘을 주어 초악량의 손을 떨쳐 낸 범계위가 그대로 신마곡의 입구 쪽으로 신형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