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358)
신마의선-358화(358/500)
신마의선 (358)
“일반적인 객잔 음식도 맛있네요.”
방금 객잔에서 식사를 마치고 나온 영순공주가 양전을 향해 말했다.
양전이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 황실의 화려한 음식에 익숙한 그녀가 국수 하나가 전부인 소박한 식사에 이토록 만족스러워하다니.
“입맛에 맞으셨다니 다행입니다.”
“화려하진 않지만 나름의 매력이 있던걸요.”
평범한 옷에 수수한 차림.
그녀는 누가 봐도 일반적인 여염집의 규수 그 자체였다.
그래서 양전은 내심 놀라고 있었다.
황실에서만 지내 왔던 그녀가 변장에 이토록 놀라운 재능이 있으리라곤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죽립을 깊게 눌러쓴 그 역시 일반적인 떠돌이 행상으로 꾸민 상태.
게다가 오직 그 혼자서 호위를 전담하고 있었다.
이곳에 파견된 어림친위 위사들 중 반박귀진(返樸歸眞)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은 그만이 유일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양전은 신마삼존 정도의 고수가 아닌 이상 눈치챌 수 없을 정도로 기파를 깊이 갈무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따금 죽립 안에서 날카롭게 번뜩이는 눈빛은 영순공주 주변의 모든 상황을 놓치지 않았다.
“옷이 불편하지는 않으십니까?”
양전의 물음에 영순공주가 배시시 웃었다.
“솔직히 말해 너무 편해요. 치렁치렁한 장신구도 없으니 몸도 가볍고요. 이대로 이 바람을 타고 어디로든 날아갈 수 있을 것만 같아요.”
그렇게 잠시 그 자리에 멈춰 선 영순공주가 불어오는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청명한 가을 날씨와 모처럼의 자유를 만끽했다.
이때 그녀를 부르는 목소리가 있었다.
“어이, 거기 아가씨. 못 보던 얼굴이네?”
거리 한쪽에 좌판을 펼치고 있던 노점상의 상인이었다.
영순공주가 태연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최근에 이사 왔어요.”
“그래? 그럼 이거 하나 받아.”
그녀의 신분을 알 리 없는 상인은 스스럼없이 자신이 팔던 물건을 불쑥 내밀었다.
보름달을 본떠 만든 둥근 과자인 월병이었다.
“그럴까요? 얼마죠?”
“공짜야.”
“예?”
“맛있으면 또 먹으러 오라고. 값은 그때 치르면 돼.”
“정말 그래도 되나요?”
엉겁결에 월병을 받아 든 영순공주를 향해 상인이 어서 맛보라는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영순공주가 월병을 입으로 가져가 한 입 베어 물었다.
사실 황궁의 간식처럼 엄청나게 맛있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입을 즐겁게 만드는 나름의 고소함과 달콤함은 길거리 음식만의 충분한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처자는 어쩌다 여기로 이사를 오게 되었나?”
노점 상인의 물음에 영순공주는 문득 장난기가 동했다.
“시집가려고요.”
“시집?”
놀란 얼굴로 반문하던 상인이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이 동네에 멋진 사내가 많긴 하지. 돈 많은 상인들부터 시작해서, 명호만 대도 알아주는 고수들도 즐비하니까. 그래서 어때? 괜찮은 배필감은 찾으셨나?”
“저는 단 의원님에게 시집갈 생각이에요.”
“으잉? 설마 신마의가의 그 단 의원님?”
“네.”
자신감 넘치는 그 대답이 당돌하다 여겼던 것일까.
상인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허허. 거참 어려운 길을 가겠구먼그래.”
“어려운 길요?”
“경쟁이 너무 치열해. 이곳 무위에 혼기가 찬 여자 중에 단 의원님을 마음으로 품어 보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될 것 같은가?”
“그 정도예요?”
놀라 반문하는 영순공주에게 상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렴. 신마의가 앞에 진을 치고 있는 사람들 중 절반이 환자고, 나머지 절반은 각지에서 보내온 매파라는 말이 있을 정도야.”
그렇게 말한 그가 안타까운 눈빛을 흘렸다.
“아까운 세월 다 가기 전에 적당히 마음 접고 포기해. 보아하니 처자가 없이 사는 사람도 아니고, 인물도 어디 가서 빠지지 않지만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는 게 아니야. 단 의원님은 어려워도 너무 어렵지.”
영순공주의 눈에 이채가 떠오른 것도 그때였다.
“제가 없이 산 사람이 아니라는 건 어찌 아셨어요?”
“왜 그걸 모르나? 우리야 맨날 사람 상대하는 게 일인걸. 피부, 행동, 표정만 봐도 딱 느낌이 오지. 뭐, 나름의 사정이 있겠지만 어쨌든 월병이 마음에 들면 다음에 꼭 사러 와.”
“단 의원님을 포기하라고 하시는 분에게요?”
“어이쿠! 이런 내 정신 좀 봐. 하마터면 미래의 단골 고객님을 놓칠 뻔했네그려. 내 앞으로는 처자를 응원할 테니 부디 힘내시게.”
상인의 너스레에 영순공주가 웃으며 노점상을 떠났다.
월병을 오물거리며 걸음을 옮기던 그녀가 갑자기 멈춰 선 것도 그때였다.
어느새 근처로 다가온 양전이 그녀 앞을 막으며 서늘한 기세를 뿜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왜 그러세요?”
“…….”
양전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그럴 여유가 없었다.
어느 순간 갑자기 느껴진 압도적인 존재감이 지금 이 순간에도 무서운 속도로 접근해 오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돌연 허공에서 뚝 떨어진 인영 하나가 있었다.
쿠웅!
지축을 뒤흔드는 육중한 충격음과 뿌연 흙먼지가 일대를 휩쓸었다.
자욱한 먼지구름을 헤치며 한 사람이 걸어 나온 것도 그때였다.
“어이쿠, 이게 누구십니까? 범 의원님 아니십니까?”
“오랜만에 오셨습니다그려.”
“다른 의원님들도 잘 지내시지요?”
범계위를 발견한 거리의 상인들이 앞다투어 인사를 건네 왔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그 모습에 오히려 양전이 당혹감을 느낄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하늘에서 뚝 떨어져 내리는 모습을 보고도 어느 누구 하나 놀라는 사람이 없었다.
그만큼 무위에서는 익숙해진 광경이었던 것이다.
하나 이를 알 리 없는 양전은 예상치 못한 범계위의 등장에 바짝 긴장했다.
화려한 경공을 펼치며 달려온 누군가가 범계위 옆에 내려선 것도 그때였다.
벽화령이었다.
영순공주를 마주한 범계위가 씨익 웃었다.
그러곤 양전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영순공주를 향해 불쑥 입을 열었다.
“따라와라.”
“감히!”
섬뜩한 눈빛을 드러내며 기파를 개방하는 양전을 영순공주가 만류했다.
“그냥 가요. 악의를 지니고 오셨다면 이렇게 당당히 저를 찾아오진 않으셨을 테니까요.”
“하오나…….”
“부탁드려요.”
영순공주의 말에 양전이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뜻을 꺾긴 했으나 양전은 영순공주 곁에 바짝 붙어 한 걸음도 떨어지지 않았다.
만에 하나 있을지 모를 불미스런 사태에 대비해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은 것이다.
잠시 후.
그들이 도착한 곳은 관청 내부에 위치한 관병들의 연무장이었다.
“단 의원에게 시집가고 싶어?”
갑작스런 범계위의 물음에 영순공주는 일순 당황했다.
하지만 이내 차분한 미소로 솔직하게 대답했다.
“아직 확실하게 결정한 건 아니에요. 하지만 제가 만난 사람들 중에 처음으로 마음이 움직인 것도 사실이에요.”
“좋아. 그 정도면 충분해.”
범계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단악선과 다르게 공주는 분명한 호감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단 의원은 어떻게 꼬실 거야?”
“네?”
“그냥 가만히 기다리고만 있으면 단 의원이 알아서 혼인하자며 다가올 것 같아? 뭔가 매력을 드러내 단 의원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할 것 아니냐고.”
“그, 그건…….”
영순공주는 일순 할 말이 궁해졌다.
그러고 보니 이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 그녀를 향해 벽화령이 미소를 건넸다.
“단 의원님은 아직까지 이성과 교제해 본 경험이 없어요. 게다가 결혼은 물론이고, 연애에 대한 욕심도 전혀 없죠.”
“아예 생각이 없다는 뜻인가요?”
“당장은요.”
낙담한 듯 어깨를 늘어트리는 영순공주의 모습에 벽화령이 달래듯 말을 이어 갔다.
“하지만 아주 기회가 없는 건 아니에요. 사실 그건 좋아하는 여인을 아직 만나지 못한 이유가 크거든요. 그러니 단 의원님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면 그만큼 매력적인 여인이 되어야 해요.”
“아!”
뒤늦게 영순공주는 무언가를 깨달았다.
“두 분께서는 절 도와주러 오신거군요?”
범계위가 피식 웃었다.
“이제야 말귀를 좀 알아듣네.”
시무룩하던 영순공주의 얼굴이 단번에 밝아졌다.
적토마(赤兎馬)를 얻은 관운장의 마음이 이와 같았을까.
누구보다 단악선과 가까운 그가 돕는다니 그야말로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었다.
“좋아요. 저도 결과가 어찌 되든 아쉬움을 남기고 싶진 않으니까요. 제가 어떻게 하면 될까요?”
“일단 강해져야지.”
“예?”
“장담하건대, 강한 여자를 마다할 남자는 아무도 없어.”
“강한…… 여자요?”
순간 영순공주는 한 사람을 떠올렸다.
바로 자신의 모친인 황태후였다.
그런데 이어진 범계위의 물음에 자신의 생각이 엇나갔음을 깨달았다.
“혹시 무공 익힌 거 있어?”
“설마 방금 말씀하셨던 강한 여자라는 게 정신적인 강인함이 아닌, 육체적인 무력을 말씀하신 건가요?”
“그것 말고 또 뭐가 있어?”
한심하다는 범계위의 눈빛에 당황한 영순공주가 서둘러 대답했다.
“황실 무공 몇 가지를 익히긴 했지만 내세울 정도는 아니에요.”
“쯧! 남아도는 시간이 넘쳐 났을 텐데 그동안 대체 뭘 한 거야?”
난데없이 날아든 질책에 영순공주가 멈칫했다.
결국 참다못한 양전이 앞으로 나섰다.
“그 입 다물지 못할까? 어느 안전이라고 감히!”
막상 상대의 무엄함을 꾸짖긴 했으나 양전은 한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물끄러미 자신을 응시하는 무심한 시선.
그런 범계위의 눈빛에 자신도 모르게 기가 질려 버렸다.
지금 이 순간에도 무인의 본능이 맹렬히 경고해 대고 있었다.
천하의 적수를 찾기 드물다 자부하는 그조차 눈앞의 괴물은 오롯이 홀로 감당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이 자리에 없는 다른 어림친위.
적어도 그들과 연수해야 엇비슷하게나마 동수라도 노려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뒤늦게 양전은 후회가 밀려들었다.
다소 눈에 띄더라도 호위를 위한 최선을 방법을 모색했어야 했다.
하나 상황이 이리 된 마당에 물러설 수도 없는 노릇.
기를 쓰며 버티는 수 밖에 없었다.
물러서지 않고 자신의 시선을 받아 내는 양전의 모습에 범계위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아깝네. 딱 이놈 정도 수준만 되어도 괜찮았을 텐데.”
“뭐라?”
“너 정도 실력이면 그럭저럭 단 의원이랑 손을 섞을 만하겠다고.”
“……!”
양전의 얼굴이 야차처럼 일그러졌다.
‘날 너무 우습게 보는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기껏해야 열여섯에 불과한 소년과 수십 년 동안 무공을 연마한 자신을 어떻게 동일 선상에 놓을 수 있단 말인가.
양전은 몹시 자존심이 상했다.
하지만 이미 그때는 범계위가 시선을 거둔 뒤였다.
“여자는 자고로 강해야 하는 법이야. 애교? 집안일? 음식? 다 필요 없어. 강한 여자가 최고야. 거기다 내 여자처럼 예쁘면 더 좋은 거고. 이해했어?”
“강한 여자…….”
자신도 모르게 따라 중얼거리는 영순공주를 향해 범계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가 하는 말이니 믿어도 좋아. 황궁에 널리고 널린 게 영약이라며? 그거 전부 훔쳐 먹더라도 일단 강해지는 거야.”
영순공주는 내심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
평생 단 한 번도 들어 본 적도,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일이었다.
“명심해. 그게 최고야.”
그런 그녀에게 이 말을 남긴 채 범계위가 돌아섰다.
멍하니 서 있는 영순공주를 향해 벽화령이 몇 마디를 보탰다.
“최근 단 의원님의 관심사는 누가 뭐라해도 단연 무공이라 꼽을 수 있어요. 그러니 무공에 관한 소재로 이야기를 나눈다면, 좀 더 긴 대화가 가능할 거예요. 그렇게 공통된 관심사와 소재를 가지고 대화를 이어 가면 그만큼 서로 친밀해지는 계기를 만들 수도 있겠죠.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서로를 좀 더 알 수 있을 테고요.”
“아!”
벽화령의 말에 영순공주가 짧게 탄성을 흘렸다.
확실히 그 말대로였다.
“그럼 응원할게요.”
그 말을 끝으로 벽화령이 범계위와 함께 장내를 떠났다.
한참을 말없이 생각에 잠겨 있던 영순공주가 양전을 향해 물었다.
“혹시 저를 도와주실 수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