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359)
신마의선-359화(359/500)
신마의선 (359)
“정말 그자의 말대로 무공을 익힐 익히실 생각입니까?”
양전의 물음에 영순공주가 결연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단시간에 양 천호와 같은 고수로 거듭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그분과 대화를 나눌 정도의 지식을 쌓는 정도라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양전이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구결을 이해하는 것만이라면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겁니다.”
황실 내에서도 워낙 총명하기로 소문난 그녀였다.
“그럼 부탁드려요.”
영순공주가 반색하며 한껏 기대 어린 표정으로 눈빛을 반짝였다.
“그럼 우선은…….”
양전은 자신이 알고 있는 무공 중 한 가지 구결을 떠올렸다.
그러나 정작 이를 읊어 낼 수 없었다.
돌연 어디선가 접근해 오는 섬뜩한 기파에 얼음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온몸이 차갑게 식어 버렸기 때문이다.
눈앞을 향해 섬전처럼 짓쳐들어오는 인영을 발견한 것도 그때였다.
‘큽!’
황급히 진기를 끌어 올린 양전이 전면을 향해 냅다 일 권을 내질렀다.
턱.
한데 상대는 이를 맨손으로 받아 내더니 교묘하게 힘을 흘려 가볍게 와해해 버렸다.
“……!”
양전은 가슴이 철렁했다.
세 치 두께의 철판도 짓이겨 으깨 버리는 자신의 권력을 이토록 수월하게 받아 낼 정도의 고수라니!
황급히 등에 메고 있던 단창을 움켜쥐는 순간.
“싸우러 온 것이 아니다.”
한 사람의 음성이 귓전을 파고들었다.
비로소 눈앞의 상대를 확인한 양전은 뒤늦게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할 말이 있어서 온 것뿐이다.”
방금 전의 공수 교환이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태연히 입을 여는 사람.
바로 초악량이었다.
자신과 달리 여유롭고 느긋하기 짝이 없는 모습에 양전은 자신도 모르게 위축되는 것을 느꼈다.
그러거나 말거나.
애초에 초악량의 목적은 따로 있었다.
“단 의원의 마음을 얻으려면 똑똑해야 한다.”
갑작스럽게 건넨 초악량의 말에 영순공주가 당황했다.
범계위와 다른 말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의술에 관해 이야기를 나눌 정도는 되나?”
이어진 초악량의 물음에 영순공주가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그건 무리일 것 같아요.”
“그렇다니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 할 것 같구나.”
“혹시 절 도와주러 오신 건가요?”
“그렇지 않고서야 달리 널 만나러 올 이유가 있을까?”
“이유를 여쭈어봐도 될까요?”
물끄러미 영순공주를 응시하던 초악량이 진지한 눈빛으로 대답했다.
“단 의원의 첫 인연이 될 수 있을지 아직 장담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네가 단 의원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길 바라기 때문이다.”
진심이 느껴지는 그 말에 영순공주가 조용히 미소를 베어 물었다.
“그러기 위해 제가 무엇을 하면 될까요?”
“의술로 대화를 이어 갈 수 없다면, 적어도 인간적인 매력으로 접근해야겠지.”
“인간적인 매력이요?”
초악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단 의원은 온갖 인간 군상들을 상대해 왔다. 그러니 그들과는 다른 모습으로 다가갈 필요가 있다.”
“다른 모습이라면…….”
“말을 하기보다 들어 주려 노력해라. 강요하지 말고 천천히 기다리며 상대의 이야기에 공감하면 된다. 이야기가 아프면 자신의 일처럼 아파하고, 즐거운 이야기면 함께 웃고. 그러다 보면 상대와 함께하는 시간 자체가 즐거워질 것이다.”
초악량의 눈빛이 한순간 아련해졌다.
“한때는 내게도 그런 여인이 있었지.”
허공에서 시선을 거둔 초악량이 다시 한 번 다짐을 받듯 입을 열었다.
“명심해라. 자신을 알아주고 깊이 이해하는 지음지기(知音知己)의 자세야말로 단 의원의 마음을 열 수 있는 유일한 열쇠라는 것을.”
그 말을 끝으로 초악량이 그대로 허깨비처럼 사라졌다.
멍한 표정으로 초악량이 남긴 말을 읊조리던 영순공주가 불현듯 무언가를 깨달았다.
“아무래도 한 분 더 오실 것 같죠?”
그 말에 양전이 나직이 한숨을 흘렸다.
아니나 다를까.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한설화가 두 사람 앞에 나타났다.
“단 의원님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저는 어찌해야 할까요?”
대뜸 질문을 던지는 영순공주.
그런 그녀의 모습에 한설화가 의외란 눈빛을 던졌다.
“내가 올 줄 알고 있었더냐?”
“네. 도와주실 거라 생각했어요.”
고개를 끄덕인 한설화가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결코 아름다운 외모로 마음을 얻으려 해선 안 된다. 상대의 마음을 얻으려면 자신의 마음을 먼저 보여 줘야 하는 법. 외모를 꾸미기에 앞서 마음을 먼저 갈고닦아라.”
영순공주의 눈에 의아함이 서렸다.
앞서 조언했던 다른 이들과 달리 현실적으로 와닿지 않는, 마치 심산유곡을 거니는 도사들이나 사찰에 머무는 승려들이 할 법한 이야기였다.
“그게 끝인가요?”
고개를 끄덕인 한설화가 뭐가 더 필요하냐는 듯 오히려 의아한 눈빛을 던져 왔다.
영순공주가 쓰게 웃었다.
‘아직 연애 안 해 보셨구나.’
아무리 자신이 구중심처(九重深處)의 금지옥엽이라 하나 그 정도 눈치는 있었다.
하지만 이를 내색지 않고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조언 감사해요.”
영순공주가 고개를 들었을 때 이미 한설화는 보이지 않았다.
처음 나타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홀연히 사라진 것이다.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던 영순공주가 양전을 바라봤다.
“왠지 세 분 다 자신의 취향만 말하고 간 것 같죠?”
“그런 것 같습니다.”
“후우. 정말 어렵네요. 누군가와 교제를 하는 게 원래 이렇게 복잡하고 힘든 일인가요?”
“외람되오나 소신이 감히 아뢰옵자면…….”
“……?”
“솔직히 셋 다 방법이 아닌 것 같습니다.”
양전의 충언에 영순공주가 울상을 지었다.
“정말이지 갈 길이 멀기만 하군요.”
* * *
열흘 후.
당당히 무위학관에 들어서는 영순공주를 향해 양전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정말 하실 생각이십니까? 굳이 공주마마께서 이런 일까지 거들 필요는 없으십니다.”
“괜찮아요. 어디까지나 제가 원해서 하는 일이니까요.”
여전히 우려를 감추지 못하는 양전을 향해 영순공주가 빙긋 웃었다.
“적어도 이곳에서 지내는 동안만이라도 무위 사람처럼 살고 싶거든요.”
“무위 사람처럼이라면…….”
양순이 이해하지 못하자 영순공주가 말을 덧붙였다.
“목공소에서 일하는 배씨 아저씨 아시죠?”
양전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림에서 나름 한가락 하던 실력자인 그를 양전이 모를 리 없었다.
“원래는 무림에서 상당한 악명을 드날리던 사파의 고수셨다고 해요.”
“그렇습니까?”
이미 주지하고 있던 사실이었지만 양전은 딱히 아는 척하지 않았다.
한껏 들뜬 표정으로 이야기를 이어가는 영순공주의 흥을 깰 수 없었기 때문이다.
“포목점의 곡씨 아저씨는 강호에서 비무 귀신으로 높은 명성을 떨치셨다더군요. 저자의 약재상 강 아저씨는 호북의 명망 있는 가문 출신으로, 자신도 과거를 치르고 관직에 있었다고 해요. 한데 건강이 악화되어 이곳 의가에서 치료를 받았고요. 그 뒤 큰 깨달음이 있어 이곳에 정착하셨다더군요. 그래서 사람들을 위해 저렴하게 약재를 공급하신다 들었어요.”
그제서야 양전은 공주가 무위 학관의 글 선생에 지원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정말 꼭 하셔야겠습니까?”
“이곳에서만큼은 저도 나름의 역할을 하고 싶어요. 사실 머리가 너무 복잡하기도 하고요. 한 가지 일에 전념해 몰두하다 보면 조금은 머리가 맑아질 것 같아요.”
“그렇다면 굳이 글 선생을 고집할 필요는 없으실 것 같습니다만.”
“그래도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보다 보람된 일은 없을 것 같아요.”
이쯤 되니 양전도 더 이상 말릴 수가 없었다.
“저와 다른 호위들이 근처를 지키고 있겠습니다.”
“제 고집 때문에 고생이 너무 많으시죠?”
양전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게 우리 일입니다.”
감사의 눈빛으로 인사를 대신한 뒤 영순공주가 학관 안으로 들어섰다.
그녀를 기다리고 있던 학관의 관주가 정중히 예를 갖추었다.
“천세, 천…….”
그런 그의 말을 자르며 영순공주가 재빨리 입을 열었다.
“제가 누군지는 다른 이들이 알지 못하도록 함구해 주세요. 그리고 절 특별 대우하실 필요도 없고요. 다른 글 선생님들과 동일하게 대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단호한 그녀의 태도에 학관의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관주인 홍연문이 흡족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리하겠습……. 아니, 그리하겠소. 마침 여자아이들을 가르칠 선생이 부족하던 차였소.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소이다.”
“저야말로 부족한 부분이 많겠지만 많은 지도 편달 부탁드려요.”
그렇게 하루 일과를 마친 뒤.
직접 수업에 참여해 아이들을 가르친 영순공주가 지친 표정으로 학관을 나섰다.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양전을 발견한 그녀가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누군가를 가르치는 게 쉽지는 않네요.”
“그래도 처음치곤 무척 잘하셨습니다.”
양전의 칭찬에 영순공주가 머쓱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때였다.
“안녕하세요.”
어디선가 들려온 목소리에 무심코 고개를 돌린 영순공주가 깜짝 놀랐다.
“지난번에 다시 뵙기로 약속을 했었는데, 혹시 제가 너무 늦게 찾아온 건가요?”
영순공주가 황급히 자세를 바로 하며 단악선을 향해 미소 지었다.
“아니에요. 저야말로 괜한 약속 때문에 바쁜 분의 시간을 빼앗은 게 아닐까 싶어 내심 후회하고 있었어요.”
눈치껏 거리를 두고 물러서는 양전을 향해 영순공주가 감사의 마음을 담아 고개를 끄덕였다.
단악선과 영순공주.
그렇게 두 사람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기로 하셨다고요.”
“네. 오늘이 수업 첫날이었어요.”
담담한 모습의 단악선과 달리 영순공주는 누가 봐도 살짝 들떠 있었다.
무위에서 지내는 동안 단악선과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 왔던 그녀였다.
그만큼 처음보다 훨씬 호감이 커져 있는 상태였다.
“피곤하진 않으세요? 저곳에 들러 잠시 쉬었다 가실래요?”
단악선이 다루를 가리키자 영순공주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지금처럼 천천히 걸으며 대화를 나누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요. 무엇보다 제게 산책을 권유한 건 단 의원님이셨잖아요.”
“그럼 제가 조용한 곳으로 안내할게요.”
단악선을 따라 무위 외곽으로 향한 영순공주는 호젓한 강변을 따라 이어지는 작은 오솔길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결정을 하셨나요? 좀처럼 쉽지 않으셨을 텐데요.”
단악선의 물음에 영순공주가 슬쩍 웃었다.
“생각만큼 어렵지는 않았어요.”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그냥요.”
“……?”
“이곳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다 보니 무위가 정말 좋아졌거든요. 구중궁궐 안에서는 결코 누리지 못했던 진짜 삶이 이곳에 있더군요. 그래서 저도 이 안에 녹아들고 싶었어요. 함께 생활하고 기쁨과 슬픔을 나누면서요. 물론 삶의 보람도 찾고 싶었고요.”
단악선이 마주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눈앞의 공주는 지금껏 단악선이 가지고 있던 황실 인사들에 대한 편견을 깨트리는 계기가 되었다.
무엇보다 변화를 위해 스스로 노력하는 자세가 마음에 들었다.
“황실 분들은 전부 권위적이고 딱딱할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공주님 같은 분도 계시는군요.”
솔직한 단악선의 말에 영순공주가 빙긋 웃었다.
“저도 마찬가지예요. 저 역시 의원들은 전부 걱정만 많은 잔소리꾼이라 생각했는걸요.”
단악선과 영순공주가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이를 계기로 두 사람은 스스럼없이 대화를 이어 가기 시작했다.
한편 이를 멀리서 지켜보는 시선이 있었다.
초악량과 범계위, 그리고 한설화였다.
은밀히 뒤를 밟기로 아주 작정하고 나선 참이었기에 일부러 벽화령을 남겨 두고 온 것이다.
“흠. 날파리가 왜 이렇게 많지?”
주위를 살피던 범계위가 눈살을 찌푸렸다.
단악선과 영순공주를 지켜보는 건 자신들만이 아니었다.
“뭐 하는 놈들일까?”
공주를 호위하던 어림친위의 존재는 그렇다 치고, 그 밖에도 온갖 난잡한 기운이 곳곳에서 느껴졌다.
특히나 두 사람이 강변 산책을 마치고 무위 안으로 돌아오자 그 기척은 더욱 노골적으로 바뀌었다.
범계위가 눈빛을 번뜩였다.
“직접 가서 물어보지, 뭐. 난 저놈.”
범계위가 저자의 뒷골목을 향해 신형을 뽑아 올렸다.
초악량과 한설화 역시 마찬가지.
세 사람은 일제히 각기 다른 방향으로 신형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