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36)
신마의선-36화(36/500)
신마의선 (36)
“나서지 마세요. 이대로 놔두면 이 환자는 죽어요.”
단악선이 차분한 어투로 대답했다.
단악선과 눈이 마주친 의원들이 움찔했다. 차갑고도 단호한 눈빛. 그 안에서 소용돌이치는 형언하기 힘든 위엄 때문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나서는 남궁백을 풍진성이 막았다.
“저보다 뛰어나신 분입니다.”
남궁백의 눈 위로 감출 수 없는 불신이 떠올랐다. 신의의 자식이라는 말은 들어 알고 있지만…….
진전을 이었다 한들, 저 어린아이가 무슨 힘이 있단 말인가.
견줄 수 없는 의술로 이름이 높았던 성수신의 역시 이름이 알려진 건 불혹을 넘기고 나서였다. 고작 열두어 살 남짓한 아이가 그의 의술을 물려받았다고 믿기에는 지금껏 그가 살아왔던 세상이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저분이 못 하시면 저는 손도 대지 못합니다.”
이어진 풍진성의 말에 남궁백의 눈빛이 흔들렸다.
딸의 상태는 한눈에 봐도 이미 심각한 정도를 넘어서 있었다. 더 이상 몸을 떨 힘도 없는지 축 늘어져 실낱같은 숨만 겨우 이어 갈 뿐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식어 가는 생명이 느껴졌다.
“두 사람은 물러가도록.”
남궁백의 말이 떨어지자 의원들이 서둘러 별채를 빠져나갔다.
누가 봐도 안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환자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피해 간 것만으로 천운이라 생각하는 게 분명한 모습이었다.
그 순간에도 단악선은 남궁향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저, 저……!”
남궁백의 입에서 당혹성이 터져 나온 것도 그때였다.
맨살에 가까운 딸을 서슴없이 더듬기 시작한 탓이었다. 단악선은 검지와 중지를 나란히 해 남궁향의 몸 곳곳을 누르기 시작했다.
그러다 한순간 눈빛이 달라졌다.
“조금 아플 거예요.”
어느새 단악선의 손에는 어머니의 마령침이 들려 있었다.
그 말과 함께 단악선이 남궁향의 배꼽 아래, 치골 위로 한 치 위치에 침을 꽂아 넣었다.
“아아악!”
끔찍한 비명과 함께 남궁향이 펄쩍 튀어 올랐다.
“……!”
그 모습에 남궁백의 가슴도 덜컥 내려앉았다.
저 정도면 조금 아픈 정도가 아니다. 얼마나 고통스럽기에 다 죽어 가던 아이가 저렇게까지 비명을 지른단 말인가!
“맹주님!”
자신을 막아선 풍진성의 모습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지금 나서시면 돌이킬 수 없습니다!”
그때였다.
“아주머니! 환자를 뒤집어 주세요!”
한설화가 침상으로 다가가 남궁향을 뒤집었다.
“지금부터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저와 환자를 건드리지 못하게 해 주세요. 누구도 접근해선 안 돼요.”
이어진 단악선의 지시에 초악량과 범계위가 단악선과 남궁백 사이를 막아섰다. 시야에서 딸의 모습이 사라지자 남궁백이 오른쪽으로 한 걸음을 내디뎠다.
그 순간 초악량과 범계위도 나란히 따라 움직였다.
남궁백의 눈썹이 꿈틀했다.
그 순간 다시 한 번 남궁향의 비명이 방 안을 가득 메웠다.
“아악! 아파! 그만! 그마안!”
“……!”
남궁백이 자신도 모르게 걸음을 옮기는 순간이었다.
턱.
솥뚜껑만 한 손 하나가 남궁백의 어깨에 올려졌다. 어린 의원과 함께 온 거구의 사내였다.
“감히……!”
일갈을 터트리려는 순간 거한 옆에 서 있던 서생이 먼저 입을 열었다.
“믿지 못할 거였으면 처음부터 맡기질 말았어야지.”
나직했지만 통렬한 꾸짖음.
무엇보다 도저히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감이 담겨 있는 목소리였다.
“살릴 수 없다면 처음부터 손을 쓰지도 않았을 걸세. 그러니 믿고 기다리게.”
“…….”
“자신의 손으로 딸을 죽이고 싶은 게 아니라면 말이야.”
“……!”
그 와중에도 남궁향의 비명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안절부절못하던 남궁백이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곤 천천히 뒤로 물러서자 뒤에서 깊은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풍진성의 한숨이었다.
남궁백은 뒤늦게 자신이 살기를 뿜어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건 풍진성의 창백한 얼굴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이자들은?’
자신의 살기를 정면에서 받아 내고도 멀쩡한 서생의 모습이 놀랍기만 했다.
그 옆의 거한도 마찬가지.
“하아…….”
긴 한숨 소리가 들려온 것도 그때였다.
“됐어요. 간신히 고비는 넘겼네요.”
단악선의 말에 남궁백이 성큼 걸음을 옮겼다. 초악량과 범계위은 더 이상 그를 제지하지 않았다.
“다행이에요. 일각만 늦었어도 손을 쓰지 못했을 거예요.”
남궁백은 단악선의 말을 흘려들으며 딸에게 다가갔다.
언제 비명을 질렀냐는 듯이 남궁향은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온몸에는 크고 작은 침들이 빼곡했지만, 표정은 편안했고 호흡 역시 안정적이었다.
긴장이 풀리자 남궁백은 온몸의 힘이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이 아이는 괜찮은 겁니까?”
자신도 모르게 남궁백은 단악선에게 존대를 하고 있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무수히 지켜봐 온 그다. 그런 그가 조금 전 자신의 딸이 황천에 거의 몸을 담그고 있었다는 걸 모를 리 없었다.
그런 딸을 단악선이 황천에서 끄집어냈다.
모르면 몰랐을까 이미 눈으로 본 이상 가볍게 대할 수가 없었다.
“아니요.”
단악선이 고개를 젓자 남궁백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원인을 찾아 치료하지 않으면 사흘을 넘기기 어려울 겁니다.”
“사흘?”
남궁백이 거친 숨을 토하며 물었다.
“원인을 찾으면 살릴 수 있는 겁니까?”
“글쎄요…….”
단악선이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최선을 다해 봐야죠.”
그래도 일말의 가능성이 느껴지는 대답이었다. 지금껏 딸을 맡겼던 대부분의 의원들은 모두가 질린 얼굴로 고개만 저었기 때문이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 하겠습니다.”
“진심이신가요?”
단악선의 반문에 남궁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단악선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럼 일단 나가 주세요.”
난데없는 축객령에 남궁백이 당황한 사이, 범계위가 옆에서 변죽을 올렸다.
“할 수 있는 건 뭐든지 다 한다며?”
남궁백이 울컥하려 하는데 한설화가 차가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단 의원이 아니었다면 저 아이는 이미 죽었다.”
멈칫한 남궁백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돌아서려는 남궁백을 향해 단악선이 몇 가지 사항을 언급했다.
“다른 의원들은 이 방에 들이지 말아 주세요. 자칫 치료에 혼선이 올 수도 있어요.”
“그리하겠습니다.”
어차피 다른 의원들을 향한 신뢰는 바닥을 친 지 오래였다.
그렇게 오랫동안 남궁향을 전담했지만, 그 어떤 차도도 보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맹주님께서도 하루에 한 번만 면회하실 수 있어요. 지금은 환자의 안정이 우선이니까요. 감정이 격해지는 건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어요.”
“알겠습니다.”
“저희들은 옆방에 머물도록 할게요. 이 별채 주변으로는 아무도 오지 못하게 해 주세요.”
남궁백은 단악선이 말한 모든 조건을 수용했다.
그가 별채 밖으로 사라지자 풍진성이 물었다.
“그를 굳이 내보낸 이유가 있으십니까?”
“세 분을 위해서요.”
단악선이 조용히 웃었다.
“제가 치료해야 할 환자가 저분만은 아니잖아요.”
단악선이 잠들어 있는 남궁향을 보았다.
“게다가 저분을 치료하려면 세 분의 힘이 필요하기도 하고요.”
“우리 힘?”
“네.”
단악선이 남궁향의 단전을 손가락으로 누르며 말을 이어 갔다.
“기존의 방법으로는 절대 치료할 수 없을 것 같거든요.”
* * *
남궁향은 천천히 눈을 떴다.
‘아직 죽지 않은 건가?’
어제의 끔찍한 고통을 떠올린 그녀가 진저리를 쳤다.
적지 않은 세월 동안 병마에 시달려 온 그녀였지만 그 고통은 떠올리기도 싫을 만큼 괴롭고 무서웠다.
그런데 지금은 더 없이 개운하고 상쾌했다.
이런 기분을 느껴 본 게 대체 얼마 만인지 몰랐다.
“이렇게 딱 일 년, 아니 한 달만 살아 봤으면…….”
“그보다는 훨씬 오래 살아야죠.”
갑자기 들려온 낭랑한 음성에 남궁향이 깜짝 놀랐다.
자신 말고도 방에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고개를 돌리니 침상 바로 옆에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아이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뒤늦게 혼잣말을 들킨 것이 부끄러워 남궁향은 붉어진 얼굴로 아이 뒤쪽에 서 있는 사람들을 보았다.
그나마 익숙한 인물을 발견한 남궁향이 얼른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풍 의원님.”
“늦지 않게 올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덕분에 제가 또 살았네요.”
풍진성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소저를 구해 준 사람은 제가 아닙니다.”
그리곤 단악선을 가리키자 남궁향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기껏해야 의원들의 심부름을 하는 소동 정도로 생각했던 것이다.
“이 아이……. 아니, 이분이 저의……?”
단악선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단악선이에요. 우리 함께 힘내 봐요.”
남궁향은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진성의가의 가주가 어린 단악선을 존대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태도 역시 진심이 분명했다.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을 터. 무엇보다 단악선의 목소리가 귀에 익었다.
어제의 그 끔찍했던 고통 속에서 자신을 다독이며 위로하고, 힘을 낼 수 있도록 응원하던 음성이었다.
남궁향이 누운 상태로 단악선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잘 부탁드려요, 단 의원님.”
“저야말로 잘 부탁드려요.”
단악선의 말에 남궁향이 힘없이 웃었다.
삶을 갉아먹는 병마에 시달려 온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참고 버티는 것만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제가 할 게 있을까요?”
“그럼요.”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살고자 하는 환자의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거든요.”
그것만큼은 의술로 어찌해 볼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던 남궁향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건 몰라도 병마와의 싸움을 먼저 포기한 적은 없는 그녀였다.
“잠시 후 다시 고통이 찾아올 거예요.”
“그런…….”
“그 전에 몇 가지 물어볼게요.”
남궁향은 애써 씩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말씀하세요.”
“처음 증상이 발현한 게 언제였죠?”
“삼 년 전 겨울이요.”
“혹시 당시에 영약을 먹거나 벌모세수를 받은 적이 있나요?”
잠시 기억을 더듬던 남궁향이 고개를 저었다.
“특이한 식물이나 독성을 지닌 동물을 접한 적은요?”
“제 기억으론 없어요.”
“으음…….”
단악선의 고민이 길어지자 남궁향이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무엇 때문에 그러시죠?”
단악선이 한숨을 내쉬었다.
“증상 자체는 절맥이 분명한데, 절맥이 발현할 만한 징후 자체가 느껴지지 않아요. 그렇다면 어떤 외부 요인으로 인해 발병한 것이라 봐야 하는데, 그 원인을 추정하는 게 쉽지 않네요. 이렇게 특별한 경우라면 분명 이유가 있을 텐데…….”
“특별한 경우…….”
무언가를 생각하던 남궁향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아! 그러고 보니 기물(奇物)을 접한 적은 있어요.”
“기물이요?”
“네. 아버님께서 선물해 주셨던 물건인데, 청화은옥(淸化誾玉)을 통째로 깎아 만든 침상이에요.”
그 말에 단악선의 눈이 반짝였다.
청화은옥 자체가 무척이나 귀한 광물이다. 사람의 체온에 반응해 은은한 온기를 뿜어내는데, 피를 맑게 해 주고 심신을 이완시켜 피로 회복과 내공 증진에 탁월한 효험을 지니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한번 봐도 될까요?”
단악선의 말에 남궁향이 고개를 저었다.
“지금 제가 쓰고 있는 침상은 청화은옥이 아니에요. 일 년 정도 쓰고 나서 평범한 침상으로 바꿨거든요.”
“왜 바꾸셨죠?”
“아침에 눈을 뜨면 온몸에 땀이 흥건했거든요. 내공 증진에는 도움이 되는 것 같았지만, 그 느낌이 별로여서…….”
단악선이 벌떡 일어났다.
“그 침상을 확인해 봐야겠어요.”
“아마 아버님께서 따로 보관하고 계실 거예요.”
고개를 끄덕인 단악선이 풍진성에게 남궁향을 부탁했다. 그리고 그길로 곧장 남궁백을 찾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