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360)
신마의선-360화(360/500)
신마의선 (360)
동시에 신형을 날린 세 사람 중 가장 먼저 목적지에 도착한 사람은 한설화였다.
“흐억!”
사람들의 이목에서 벗어난 으슥한 뒷골목.
그곳에 몸을 숨긴 채 단악선을 주시하던 사내가 돌연 눈앞에 나타난 한설화를 마주하곤 헛바람을 들이켰다.
하지만 이내 놀란 마음을 추스르며 재빨리 예를 갖추었다.
“신마상단 소속 오승경이 선자님을 뵙습니다.”
한설화의 눈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사내의 얼굴이 어딘가 눈에 익었다.
“여기서 뭘 하는 거지?”
“단 의원님을 관찰하고 있었습니다.”
“왜?”
“그게 우리 일이니까요?”
“단 의원을 감시하는 게 일이라고?”
“예? 저희가 왜 감시를……. 아!”
자신의 설명이 부족했다는 걸 깨달은 사내가 손을 들어 어딘가를 가리켰다.
고개를 돌린 한설화는 골목 모퉁이 부근에서 서둘러 노점을 준비하는 누군가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내가 허겁지겁 좌판에 올리는 건 평소 단악선이 좋아하는 고기 꼬치였다.
준비를 마친 노점상이 이쪽을 향해 슬쩍 수신호를 보냈다.
그러곤 이내 천연덕스럽게 장사를 하는 척 호객을 시작했다.
“저자도 신마상단 소속이냐?”
한설화의 물음에 오승경이라 자신을 밝힌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저희끼리 융숭회(隆崇會)라 부르는 비정규 조직입니다. 주로 이의당 시절부터 함께했던 사람들이 핵심 구성원이죠.”
“비정규 조직?”
“단 의원님께서 늘 마을에 계시는 건 아니니까요. 게다가 같은 얼굴이 매번 다른 장사를 하면 저희 존재가 들통날 수도 있고요.”
그래서 특별한 상황이 없는 한 융숭회 소속의 상단원 중 비번인 자들이 돌아가며 상황에 대처한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이의당 시절부터 저희가 계속 해 오던 일이었습니다.”
오승경이 결연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그분이 배가 고파도 저희 책임이고, 기분이 나빠도 저희 책임이고, 심지어 여자한테 차여도 저희 책임이라는 것이 저희들의 신조입니다.”
한설화는 내심 어이가 없었다.
애초에 융숭회라는 자체가 누군가를 정중하고 극진하게 대접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언젠가 범계위가 자랑스레 떠들어 댔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녀가 신마곡에 합류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그걸 몇 년이나 계속하고 있었다고?”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던 오승경이 무언가를 발견하곤 깜짝 놀랐다.
이내 재빨리 손가락으로 입술을 모아 새소리를 흉내 냈다.
좌판을 벌여 놓고 있던 사내가 갑자기 더욱 열성적으로 호객을 시작한 것도 그때였다.
이때 마침 단악선이 좌판 앞을 지나갔고, 노점상으로 변장하고 있던 그가 기다렸다는 듯이 꼬치를 내밀었다.
“자, 자. 거기 계신 선남선녀 두 분. 이것 한번 맛보고 가십시오. 개업 기념으로 홍보 중이니 오늘은 무조건 공짜! 맛이 괜찮으면 부디 널리 알려 주십시오.”
단악선이 물끄러미 사내를 바라보다 빙긋 웃었다.
“오늘은 꼬치 노점인가요?”
“예? 그게 무슨…….”
당황해 말을 얼버무리는 사내의 모습에 단악선이 슬쩍 웃으며 꼬치를 받아 들더니 그중 하나를 영순공주에게 건넸다.
“무위에는 고기 꼬치를 파는 노점상이 정말 많아요. 어딜 가나 항상 있거든요.”
“그런가요?”
단악선의 말에 영순공주가 고개를 갸웃했다.
갖가지 먹거리를 파는 노점상이 많은 건 사실이었지만 단악선의 말처럼 어딜 가나 고기 꼬치 노점이 즐비한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단악선이 값을 치르려 하자 사내가 한사코 손을 내저으며 거절했다.
“아이쿠, 공짜라니까요. 공짜. 오늘은 그냥 가십시오.”
그야말로 필사적인 사내의 모습에 단악선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잘 먹을게요.”
뒤늦게 무언가를 떠올린 단악선이 영순공주 쪽을 바라봤다.
“그러고 보니 제가 생각이 짧았어요. 지체 높으신 분이 이렇게 길거리 한복판에서 음식을 드시는 건 체통이…….”
“네? 뭐라고 하셨죠?”
“아니에요. 아무것도.”
단악선이 어색하게 웃었다.
이미 영순공주는 꼬치를 우물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꼬치구이 맛을 음미하던 영순공주가 탄성을 흘린 것도 그때였다.
“맛보기 음식치곤 맛이 너무 훌륭한데요? 공짜로 먹기에는 미안할 정도예요.”
“저와 함께 다니시다 보면 자주 겪게 될 일이에요.”
이미 오래전부터 단악선은 어렴풋이 저들의 존재를 눈치채고 있었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기를 쓰고 정체를 숨기기 위해 애쓰는 그들의 노력을 차마 아는 척할 수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그 안에 담겨 있는 호의는 분명했다.
그래서 모른 척 지내 온 상황이 지금까지 이르렀다.
그렇게 단악선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한설화에게 붙들려 있던 오승경이 쩔쩔매며 입을 열었다.
“저……, 선자님?”
“……?”
“다음 골목에서 당과를 준비하려면 제가 미리 좀 서둘러야 해서요.”
한설화가 고개를 저었다.
“오늘은 그만 되었다. 이대로 철수하도록.”
“예? 하지만…….”
주저하던 오승경이 가만히 자신을 응시하는 한설화의 눈빛에 움찔하며 고개를 주억였다.
“그, 그럼 선자님만 믿고 철수하겠습니다.”
어딘가를 향해 부리나케 달려가는 그의 뒷모습을 응시하던 한설화가 반대쪽 지붕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누군가를 붙들고 으르렁대는 초악량의 모습을 확인한 그녀가 나직이 한숨을 흘렸다.
“어째서 흑점이 단 의원을 감시하는 거지? 나는 허락한 기억이 없는데?”
흑점 소속의 사내가 사색이 된 얼굴로 대답했다.
“신마곡과 신마의가는 상호 약조에 의해 감시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무위에서 일어나는 상황에 대한 일반적인 정보 활동일 뿐입니다. 무엇보다 황실의 인사가 관련된 사안인 만큼 어찌 모른 척할 수 있겠습니까?”
그가 나름의 이유를 갖춰 항변했지만 서늘하던 초악량의 눈빛은 싸늘하다 못해 시릴 만큼 차가워졌다.
“뭔가 착각을 하는군.”
“하지만 이는 서로가 활동을 허용한 범위…….”
“네가 생각하는 모든 허용 범위에서 단 의원은 제외해라.”
“……!”
움찔한 사내가 입술을 잘근거렸다.
그러기를 잠시.
“지금까지 저희 흑점은 신마상단에 최대한 협력적인 태도를 견지해 왔습니다. 존자께서 저희를 협박하신다면 저희도 더 이상은…….”
사내는 말을 이어 갈 수 없었다.
조용히 웃는 초악량의 전신에서 숨 막힐 듯한 살기가 흘러내렸기 때문이다.
“협박?”
섬뜩한 미소를 말아 올린 초악량의 표정을 마주한 사내가 그대로 석상처럼 굳어 버렸다.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눈은 웃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흑점이 강호에서 지워진 다음에도 그리 말할 수 있을지 궁금하군.”
“……!”
졸지에 정면에서 살기를 뒤집어쓴 사내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창백해졌다.
아예 대놓고 협박하는 초악량.
그 무시무시한 엄포 안에 담겨 있는 소름 끼치는 진의에 사내는 그만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한동안 무위의 평화에 젖어 잊고 지냈지만 눈앞의 상대는 다름 아닌 혈수존자였다.
청성혈사를 두 번이나 일으킨 당사자.
마음만 먹는다면 흑점을 피로 쓸어 내는 것이 가능한 인외의 괴물인 것이다.
흙빛이 된 얼굴로 덜덜 떠는 사내를 응시하던 초악량이 짧게 혀를 찼다.
“지금 이 자리에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왔다는 사실을 감사히 여겨라.”
초악량이 고개를 돌려 어딘가를 바라봤다.
“나나 되니 충고 정도로 끝났지 저놈이 여기 있었다면 너는 진즉에 비명횡사했을 테니까.”
초악량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린 사내가 경련하듯 부르르 몸을 떨었다.
상당한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는 전각 뒤편.
흉악하기 짝이 없는 눈빛을 흘리는 거한이 솥뚜껑 같은 손으로 누군가의 머리를 움켜쥐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눈살을 찌푸린 초악량이 그대로 신형을 날렸다.
일단 수틀리면 앞뒤 가리지 않는 범계위의 성격상 조용히 넘어갈 리 만무했다.
결국 그 뒷수습은 자신들 몫.
사고를 치기 전에 막아야 했다.
하지만 범계위와 가까워질수록 초악량은 생각을 달리해야 할지도 모른다 생각했다.
범계위와 그에게 붙들린 사내의 대화 내용 때문이었다.
“감히 동창을 적대할 생각이십니까?”
“뭐? 적대?”
“적법한 절차를 거쳐 허락을 얻은 정보 수집 활동을 방해하고 계시잖습니까.”
“단 의원을 감시하는 걸 누가 허락했는데?”
“이미 능 지주대인과 협의된 사안입니다. 그에 앞서 단 의원님께서도 동창이 무위에서 활동하는 것을 허락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동창 소속 사내의 항의에 범계위가 눈살을 찌푸렸다.
“단 의원이 허락했다고?”
당황한 범계위를 대신해 초악량이 나선 것도 그때였다.
“내가 알기로 윤흠이라는 자와 단 의원이 나눈 대화 어디에도 그런 내용은 없는 걸로 아네만?”
이어진 초악량의 말에 동창에서 파견한 사내의 얼굴이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분명 그대들의 파견지는 신마의가로 한정되었을 터. 게다가 분란을 조장하거나 말썽을 일으키지 않겠다는 조건도 따라붙었지. 신마곡과 관련된 인물들에 대한 정보 수집도 절대 없을 거라 단언했고.”
“하지만 이를 광의(廣義)적인 의미로 해석하면……. 크윽!”
황급히 입을 열던 사내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머리를 감싸고 있던 손에서 전해진 무지막지한 압력에 그대로 두개골이 으스러질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약속을 어기고 감히 단 의원을 감시한 주제에 뭐라고?”
살기로 일렁이는 범계위의 눈.
단순한 협박이 아닌, 가공할 살의가 담긴 눈빛이었다.
“고, 공주마마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단 의원님을 감시하려 했던 것이 아닙니다!”
“흥! 그럼 앞서 지껄였던 말은 다 뭐야?”
“그, 그건…….”
“어디 이가 들어가나 안 들어가나 슬쩍 한번 찔러본 거야?”
참으로 가당치도 않았다.
천하의 능소밀도 자신을 상대로는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할 일인데, 고작 이 정도 말발로 감히 간을 보려 했다니.
사색이 된 사내를 향해 범계위가 불쑥 질문을 던진 것도 그때였다.
“단 의원이 입고 있는 옷이 무슨 색이지?”
“나, 남색…….”
서둘러 대답하던 사내가 이어진 범계위의 말에 화들짝 놀라 입을 다물었다.
“뭐야. 단 의원 감시하고 있던 거 맞네.”
범계위가 히죽 웃었다.
“이젠 죽어도 할 말 없지?”
“……!”
그야말로 청천벽력 같은 선고에 당혹스러워하던 것도 잠시.
이내 사내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으아악!”
그러거나 말거나.
범계위는 더욱 손에 힘을 주었다.
그렇게 막 상대의 머리를 으스러트리려던 찰나.
“쉿!”
초악량이 손가락을 입으로 가져갔다.
그제야 이상함을 느낀 범계위가 사내의 머리를 놓고 입을 다물었다.
날카롭게 벼린 그의 감각에 이쪽을 주시하는 시선이 느껴진 것도 그때였다.
단악선이었다.
깜짝 놀란 범계위가 황급히 자세를 낮췄다.
범계위가 동창 소속 위사를 향해 눈을 부라렸다.
“너 때문에 들킬 뻔했잖아.”
“지금 본인께서도 감시를 하고 계시지 않습…….”
“닥쳐. 그래 봐야 네가 죽는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까.”
“절 죽이면 동창에서…….”
이번에도 범계위가 상대의 말을 잘라먹었다.
“그러니까 죽여야지. 한 놈쯤 본보기를 보여야 놈들도 조심하지 않겠어?”
그 말에 동창 소속의 사내가 어딘가를 향해 간절한 애원의 눈빛을 던졌다.
그리 멀지 않은 곳.
대체 언제부터 그곳에 서 있었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단악선의 시야에 잡히지 않는 사각지대에 말없이 서 있는 한설화를 향해서였다.
한설화가 범계위를 꾸짖었다.
“멍청이.”
“뭐?”
발끈하던 범계위가 한설화의 말에 멈칫했다.
“목숨이 붙어 있어야 경고를 전하지.”
“그래서? 이놈을 봐주라고?”
일말의 희망에 기대를 걸고 있던 동창 소속의 사내는 이어진 한설화의 말에 안쓰러울 만큼 낯빛이 창백해졌다.
“죽이지 말라고 했지 봐주라곤 안 했어.”
“그럼?”
“적당히 팔 하나 정도 떼어 내고 보내면 되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