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361)
신마의선-361화(361/500)
신마의선 (361)
“그건 너무 관대한 처사 아냐?”
범계위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어차피 두 다리랑 모가지만 붙어 있어도 경고하는 말은 전할 수 있잖아? 팔 하나쯤은 더 떼어 내도 될 것 같은데?”
“……그렇게 하든가.”
동창 소속의 사내는 그야말로 사색이 되었다.
그들은 애초에 평범한 상식이 통용되는 상대들이 아닌 것이다.
범계위가 히죽 웃으며 사내에게 다가섰다.
사내는 그대로 바짝 얼어 거리를 좁혀 오는 범계위를 올려다볼 뿐이었다.
나는 새도 떨어트린다는 동창의 위세도, 그토록 자신하던 일신의 무공도 지금 이 순간에는 그 어떤 도움이 되지 않았다.
심지어 입도 벙긋할 수 없었다.
아혈이 집힌 것도 아니었건만 심장을 옥죄어 오는 섬뜩한 기파에 짓눌려 숨조차 쉴 수 없었다.
그저 난데없이 들이닥친 재앙에 속으로 비명을 지를 뿐이었다.
그런 위기에서 구해 준 사람은 뜻밖에도 초악량이었다.
“그만둬라.”
“왜?”
범계위의 퉁명스러운 대꾸에 초악량이 눈살을 찌푸렸다.
“네가 그놈 팔을 뜯어내면 흑점 놈을 놓아준 나는 뭐가 되냐?”
“초 형이 우유부단한 게 어디 뭐 하루 이틀이유?”
“뭐, 인마?”
발끈하던 초악량이 솟구치는 화를 꾹꾹 눌러 삼켰다.
“우리가 단 의원을 따라다닌다고 대놓고 광고할 것 아니면 피를 보는 건 가급적 삼가자는 의미다.”
여전히 아쉬운 듯 동창 소속의 사내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던 범계위였지만 이어진 초악량의 말에 이내 미련을 거두었다.
“방금 전만 해도 하마터면 단 의원에게 들킬 뻔하지 않았느냐?”
“쳇.”
짧게 혀를 찬 범계위가 동창 소속의 사내를 내려다보았다.
“운이 좋은 놈이네.”
사색이 된 얼굴로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는 그에게 범계위가 불쑥 손을 내밀었다.
이제 와 뒤늦게 화해라도 하자는 의미일까?
엉겁결에 범계위와 손을 맞잡은 사내가 흠칫했다.
갑자기 불길함이 엄습해 왔다.
범계위의 얼굴에 자리잡은 섬뜩한 미소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우두둑.
“……!”
그대로 손을 으스러트리는 우악스럽기 짝이 없는 악력!
그 끔찍한 고통에 비명이 절로 터져 나왔다.
하지만 그는 비명조차 마음대로 내지를 수 없었다.
벼락처럼 날아든 한 줄기 전음 때문이었다.
―이번에도 소리 내면 진짜 팔 뜯어낸다?
그 소름 끼치는 엄포에 사내는 터져 나오는 비명을 억지로 목구멍에 밀어 넣어야만 했다.
“꺼져.”
범계위의 축객령에 사내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영원히 끝나지 않는 억겁의 시간처럼 느껴졌지만 실제로는 그저 눈 몇 번 깜박하는 짧은 순간이었다.
“가, 감사합니다.”
사내가 몇 번이고 고개를 숙였다.
동창 운운하며 처음의 건방지던 모습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달아나듯 장내를 벗어나는 사내의 뒷모습을 바라보길 잠시.
우연히 한 사람과 시선이 마주친 범계위가 한껏 인상을 찌푸렸다.
“저놈 마음에 안 들어.”
초악량이 피식 웃었다.
“저자도 네가 마음에 안 들 게다.”
멀찍이 떨어져 영순공주의 뒤를 따르던 양전이 범계위와 시선이 마주친 직후 다른 일행들에게 무언가 지시를 내렸다.
그러자 각자 무기에 손을 올리며 경계가 더욱 삼엄해졌다.
그 모습에 범계위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것들 지금 해보자는 건가?”
“아서라. 쟤들 건드리면 이번에야말로 반드시 들킨다.”
초악량의 만류에 범계위가 빠드득 이를 갈았다.
그러기를 잠시.
“그나저나 그냥 넘어갈 일은 아닌 듯하군.”
초악량의 말에 범계위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소리유?”
“신마상단이야 문제가 없지만, 흑점과 동창에서 노골적으로 단 의원을 주시하고 있다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우리가 모르는 또 다른 감시자가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고. 단 의원이 언제부턴가 지나치게 많은 주목을 받고 있어.”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눈에 띄는 것이 마냥 좋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관심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수반하는 위험 역시 더욱 커지는 것이 강호의 상리.
그때였다.
“엇?”
단악선 쪽을 주시하던 범계위가 경호성을 터트렸다.
잘 걷고 있던 단악선이 갑자기 골목 어귀를 돌아 사라져 버린 것이다.
갑작스러운 이변을 인지한 것은 어림친위 역시 마찬가지.
황급히 골목 어귀 쪽으로 달려가는 양전과 수하들의 모습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세 사람이 신형을 뽑아 올렸다.
그러곤 순식간에 어림친위를 따라잡았다.
그들을 앞지른 세 사람이 단악선이 사라진 골목 안으로 들어섰다.
“……!”
“……!”
“……!”
그들이 멈칫하며 그 자리에 굳어진 것도 동시였다.
그만큼 예상치 못한 상황에 맞닥뜨리고 말았다.
묘한 미소를 머금은 채 골목 어귀에서 떡하니 서 있는 단악선 때문이었다.
범계위가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손을 흔들었다.
“하하……. 세상에 이런 우연이. 여기서 이렇게 단 의원을 만나네?”
단악선이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우연이죠?”
“그, 그럼. 설마 우리가 단 의원 뒤를 몰래 따를 리 없잖…… 컥!”
범계위의 옆구리에 주먹을 욱여넣어 입을 봉한 초악량이 나직하게 헛기침을 터트렸다.
“공교롭게도 길이 같았던 모양이구나. 마침 우리도 볼일이 있어 이 근처를 지나던 참이었다.”
“그럼 어느 쪽으로 가시나요?”
범계위가 욱신거리는 옆구리를 움켜쥔 채 한 방향을 가리켰다.
“우리는 이쪽!”
“아! 안타깝네요. 전 저쪽으로 갈 건데.”
당황한 범계위를 뒤로한 채 단악선이 신형을 돌렸다.
“그럼 이따 신마곡에서 봬요.”
손을 흔들며 멀어지는 단악선을 말없이 바라보던 초악량이 멋쩍은 웃음을 흘렸다.
“아무래도 들킨 것 같지?”
한설화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범계위를 노려봤다.
“도둑질도 손발이 맞아야 해 먹지.”
“놔둬라. 이 녀석이 생각 없는 게 어디 하루 이틀 일이냐.”
자신에게 집중된 두 사람의 원성에 범계위가 억울한 표정으로 콧김을 뿜어냈다.
이때 공주를 호위하던 양전과 어림친위가 세 사람을 지나쳐 갔다.
험악한 범계위의 표정에 괜히 불똥이라도 튈까 싶어 조심스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한 눈치였다.
그런 그들에게 범계위가 나직이 으르렁댔다.
“단 의원 잘 지켜라.”
움찔하는 수하들과 달리 양전은 곧바로 그 말을 받아쳤다.
“공주님의 귀한 손님인 만큼 당연히 지킬 것입니다. 그러니 그만 갈 길들 가시지요.”
비록 사승에 얽매이진 않았지만 저들이 단악선을 얼마나 끔찍이 아끼는지 잘 아는 양전이었다.
게다가 최근 들어 단악선에 대한 관심이 부쩍 커진 영순공주 때문이라도 호위를 소홀히 할 생각이 없었다.
그럼에도 말이 곱게 나가지 않은 것은 지금 상황이 못내 불편했기 때문이다.
방금 전.
먼저 신형을 날렸음에도 저들에게 따라잡힌 것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새삼 저들과의 격차를 실감하니 흔들리는 자존감은 둘째 치고 세상 헛살았다는 자괴감이 물밀듯이 밀려들었다.
‘잠깐!’
그러다 불현듯 떠오른 생각 하나가 있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의 기억을 되짚던 양전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눈앞에서 단악선이 영순공주와 함께 사라지던 그때.
완벽하게 존재감마저 지워 자신은 물론이고 일행 모두가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
한데 신마삼존의 표정을 보아하니 저들도 감쪽같이 속은 것이 분명했다.
‘나뿐만 아니라 저들 모두를 속였다니!’
호위를 위해 자신들이 따르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을 테니, 기척을 감추고 사라진 것은 저들을 꾀어내기 위한 것이 분명했다.
그 말은 단악선이 일찌감치 저들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었다는 의미였다.
반면 자신은 저들이 자신들의 뒤를 밟고 있다는 것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조금 전 우연히 시선이 마주치지 않았다면 지금까지도 모르고 있었을 터.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단악선을 바라보는 양전의 두 눈에 경악의 감정이 담겼다.
‘대체 저 소년은!’
양전은 새삼 단악선을 달리 볼 수밖에 없었다.
힐끗 뒤쪽을 살핀 단악선이 영순공주를 향해 미소를 건넸다.
“잠시 소란스러웠죠?”
“아니에요. 전 재미있었는걸요. 그보다…….”
“……?”
“그만 손을 놓아도 괜찮을까요?”
“아! 죄송해요.”
단악선이 재빨리 사과했다.
황급히 신형을 날리느라 그녀에게는 미처 알릴 틈이 없었던 것이다.
심지어 경황이 없다 보니 그 손을 계속 잡고 있었다는 사실도 잊고 있었다.
단악선이 손을 놓자 얼굴을 붉히고 있던 영순공주의 눈빛 위로 언뜻 실망의 기색이 떠올랐다.
막상 손이 떨어지자 아쉬움이 밀려들었던 것이다.
그러다 이런 스스로의 감정에 크게 당황했다.
노을이 내려앉은 듯 목덜미까지 붉어진 영순공주는 두근대는 심장을 진정시키기 위해 몹시도 애를 써야만 했다.
빨개진 얼굴을 보이지 않기 위해 고개를 돌린 영순공주가 급히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무위는 하루가 멀다 하고 달라지네요. 모두 하나같이 입을 모아 단 의원님 덕분이라 칭송하더군요.”
처음 이곳에 왔을 때도 사람들로 북적이곤 있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무위관과 학관이 본격적으로 제 역할을 시작하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인파가 몰려들고 있었다.
단악선이 멋쩍게 웃었다.
“다행스러운 일이죠.”
“다행이요?”
영순공주가 의아한 얼굴로 반문했다.
자신이 알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보통 이럴 때 자랑스러워하거나 겸양의 말을 늘어놓는 게 일반적이었기 때문이다.
하나 단악선은 여러모로 그녀의 고정 관념을 흔들고 있었다.
“무위가 살기 좋은 마을이 되지 않았다면 저는 아마도 큰 죄책감을 느꼈을 거예요.”
“어째서죠?”
“제 결정으로 인해 무위가 위험해진 적이 있었거든요.”
영순공주가 눈빛을 반짝였다.
“정말요? 무슨 일이 있었나요?”
그리 달갑지 않은 기억이었지만 단악선은 예전의 일들을 하나씩 자세히 설명했다.
성수신단을 노리고 잠입했던 장락방도들이 자신과 친분이 깊던 약재상인 임씨 아저씨를 인질로 삼고 고문했던 일부터, 제갈연과의 악연.
그리고 금지를 찾아온 사파 무림인들로 인해 빚어졌던 갈등과 비교적 최근의 일이었던 녹림과의 일화까지.
그 어떤 미사여구 없이 사실만을 언급하는 단악선의 설명 자체는 무척이나 담백하고 수수했다.
그러나 그 안에 담겨 있는 단악선의 진심만큼은 영순공주의 가슴을 충분히 울리고도 남았다.
그래서인지 시간이 지날수록 영순공주는 그 이야기에 몰입했다.
어떤 대목에서는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고, 때로는 화를 내며 자신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영순공주의 모습에 단악선이 조용히 웃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그래서 다행이라고 하셨군요.”
이야기에 흠뻑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던 영순공주가 뒤늦게 탄성을 흘렸다.
단악선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요.”
“네?”
“한 번도 이렇게 누군가에 속내를 털어놓은 적이 없었거든요. 이렇게 홀가분한 걸 왜 지금까지 계속 가슴에 담아 놓고만 있었을까요.”
그렇게 말한 단악선이 조용히 영순공주를 응시했다.
“공주마마께서는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만드는 재능이 있으시군요.”
“편하……게요?”
문득 영순공주는 그 말에서 말로 설명하기 힘든 묘한 벽을 느꼈다.
마침 저자 한편에 자리 잡은 장신구 상점을 지나던 영순공주는 우연히 거울 속의 자신과 단악선을 보게 되었다.
양 볼이 붉게 상기되어 있는 자신과 달리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차분한 단악선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이 유독 아프게 가슴을 파고들었다.
‘아! 이 사람은 나와 다르구나.’
비로소 영순공주는 깨달았다.
이렇게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음에도 단악선은 자신과 같은 곳을 보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