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362)
신마의선-362화(362/500)
신마의선 (362)
영순공주는 살짝 시무룩해졌다.
모르고 있을 땐 인식하지 못했지만 이제 와 생각해 보니 지금까지 단악선의 태도는 한결같았다.
그래서 그런지 대화를 이어 가면서도 분명한 벽이 느껴졌다.
‘내가 그렇게 매력이 없는 걸까?’
그렇게 속으로 고민을 거듭하는 사이.
두 사람은 어느새 약재상이 즐비한 거리로 들어섰다.
신마의가의 명성에 힘입어 이곳 약재상 거리는 이미 무위의 명물로 거듭난 지 오래.
그만큼 가장 많은 손님들로 붐비는 곳이었다.
흥정하랴 계산하랴, 밀려드는 손님들을 쳐 내기 바쁜 와중에도 단악선을 알아본 약재상의 상인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하던 일을 멈추고 인사를 건네 왔다.
단악선 역시 마주 인사하며 걸음을 옮겼다.
그러기를 잠시.
단악선과 나란히 걷던 영순공주의 얼굴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갑자기 멈춰 선 단악선이 진지한 눈빛으로 주위를 살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단악선의 시선이 한 곳에 고정되었다.
“아!”
단악선의 입에서 나직한 탄성이 새어 나왔다.
“왜 그러세요?”
영순공주의 물음에 단악선은 뒤늦게 그녀의 존재를 깨닫고 약재상에서 시선을 거두었다.
“아니에요, 아무것도.”
고개를 저은 단악선이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걷는 내내 신경이 다른 곳에 가 있는 눈치가 역력했다.
“혹시 약재상에 볼일이 있으시다면 들렀다 가세요.”
영순공주의 말에 단악선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그건 예의가 아니죠.”
“전 상관없는데요?”
“네?”
영순공주가 배시시 웃었다.
“같이 구경하면 되죠.”
“그래도 될까요?”
반색하는 단악선의 모습에 영순공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저도 궁금했거든요. 무위의 많은 곳을 살펴봤지만 한 번도 약재상은 들어가 본 적이 없어서요.”
단악선은 곧장 걸음을 돌려 조금 전 봐 두었던 약재상으로 향했다.
다른 곳과 달리 어째선지 그곳만큼은 유독 손님이 없이 한적했다.
“어?”
약재상 안으로 들어선 단악선의 눈에 놀라움이 떠올랐다.
약재상 주인 역시 놀라기는 마찬가지.
하지만 이내 웃으며 단악선을 맞이했다.
“오랜만이구나. 최근에 무척 바쁘다 들었는데.”
“가게를 옮기신 건가요?”
단악선의 물음에 임평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 총관님께서 힘써 주신 덕분이지.”
“잘됐네요.”
본래 임평이 운영하던 약재상은 골목 끝자락, 가장 후미진 곳이었다.
하지만 단악선과 그와의 인연을 잘 아는 사무심이 나름 영향력을 발휘해 목 좋은 위치에 상점을 마련해 준 것이다.
“그나저나 그 처자는……?”
단악선과 나란히 서 있던 영순공주를 발견한 임평이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아! 소개가 늦었네요.”
단악선은 임평에게 영순공주를 소개했다.
“이번에 신마상단에서 초빙하신 분이에요. 한동안 이곳 학관에서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쳐 주실 분이죠.”
단악선은 굳이 영순공주의 진정한 신분 내력을 언급하진 않았다.
기껏 신분을 감추고 자유를 만끽하는 그녀를 방해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분은 저와 가장 오래 알고 지낸 약재 상인이세요.”
“혹시 아까 언급하셨던?”
깜짝 놀라 반문하는 영순공주를 향해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분이세요.”
“아! 그러셨구나. 말씀 많이 들었어요.”
무척이나 반가워하는 영순공주의 태도에 임평이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뭐 좋은 이야기라고…….”
말끝을 흐리던 임평이 애써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바쁘기로는 황제 못지않은 단 의원께서 여긴 무슨 일로 오셨나 그래?”
단악선이 쓰게 웃으며 영순공주를 바라봤다.
임평은 자신의 눈앞에 서 있는 여인이 누구인지 모르기에 던진 농담이었다.
하지만 듣는 이에 따라 얼마든지 기분이 나쁠 수도 있는 말이었다.
다행히 영순공주는 상관없다는 듯 빙긋 웃을 뿐이었다.
안도한 단악선이 상점 안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이 앞을 지나다 보니 좋은 냄새가 나서요.”
이어진 단악선의 물음에 임평이 깜짝 놀랐다.
“혹시 침향(沈香)이 들어왔나요?”
“역시 우리 단 의원은 여전히 사람을 놀라게 하는구먼. 그건 또 어떻게 귀신같이 알았누?”
임평이 계산대 뒤쪽에 놓여 있던 커다란 상자 하나를 꺼내 와 단악선 앞에 내려놓았다.
“얼마 전 해남도에 다녀온 행상들에게 전량 구입했지.”
임평이 상자를 열자 그윽하고 청아한 향기가 주변을 가득 채웠다.
영순공주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상자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건 형태가 제각각인 나뭇조각뿐이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단악선은 눈빛을 반짝이며 탄성을 흘리고 있었다.
그 모습에 영순공주는 절로 호기심이 생겼다.
“조금 전에 침향이라고 하셨죠? 이게 그렇게나 귀한 건가요?”
“귀하죠. 중원에서는 구하기 힘든 약재거든요.”
단악선이 설명을 이어 갔다.
“침향목은 중원에 없어요. 저 멀리 서쪽으로 한참 떨어져 있는 서천을 비롯해 덥고 습한 지역에서만 군락을 이루어 자생하는 나무죠.”
침향목에는 특징이 하나 있었다.
동물이나 곤충, 바람 등으로 생긴 표피의 상처에 맺힌 수액이 시간이 지나며 단단한 수지로 굳어지는 것이다.
나무가 성장하면 이 수지는 표피 내부로 묻히게 되는데, 오랜 시간 동안 목재 안에서 굳으며 짙은 향기를 품게 된다.
“그중에서도 이렇게 강한 방향(芳香)을 지닌 최상품은 보기 드물어요.”
“어떤 효과가 있는데요?”
영순공주의 물음에 단악선이 신이 나서 입을 열었다.
“약재로 사용할 경우 기본적으로 상처를 빨리 낫게 하고 간과 신장의 독을 제거하는 효험이 탁월해요. 그 외에도 향으로 쓰게 되면 두통이 사라지고 집중력을 향상하는 효과도 있고요.”
“아! 그래서 머리가 개운했던 것이군요.”
영순공주와 대화를 이어 가던 단악선은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손님이 없죠?”
임평이 어색하게 웃으며 침향이 담겨 있는 상자를 가리켰다.
“이 녀석이 어디 한두 푼이어야 말이지. 딱 보는 순간 욕심이 나서 그만 무리를 했지 뭐냐.”
그 때문에 자금이 부족해 정작 손님들이 자주 찾는 인기 품목인 약재들을 구입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단악선이 함박웃음을 머금었다.
“잘됐네요. 그럼 제가 전부…… 아니, 절반을 구입할게요. 분명 다른 분들에게도 필요할 테니까요.”
“절반이나?”
임평이 깜짝 놀라 손을 내저었다.
“그렇게 무리할 필요 없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팔릴 게다.”
“아저씨를 위해서가 아니라 저를 위해서예요. 이렇게 좋은 약재를 어떻게 그냥 지나칠 수 있겠어요?”
단악선은 그 자리에서 곧바로 계산을 마치고 값을 치렀다.
포장을 마친 침향을 받아 든 단악선이 아이처럼 환하게 웃었다.
그 모습에 영순공주는 다소 허탈한 기분이 들었다.
오늘 함께하며 본 미소 중 가장 밝은 미소였기 때문이다.
“…….”
물끄러미 단악선을 응시하길 잠시.
영순공주의 눈 위로 결연한 빛이 떠올랐다.
이쯤 되니 오기가 생겨서라도 쉽게 물러설 수 없었다.
마침 단악선은 임평과의 대화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서로 오랜만에 보았기에 근황을 묻고 답하느라 바빴던 것이다.
이를 확인한 영순공주는 슬쩍 약재상 밖으로 빠져나왔다.
주위를 살피던 그녀의 시선이 어느 한 곳에 고정되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자신을 주시하는 양전을 발견한 그녀가 재빨리 손짓해 그를 가까이 불렀다.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싶어, 다급한 마음에 날 듯이 달려온 양전.
그런 그를 향해 영순공주가 다짜고짜 질문을 던졌다.
“황궁 비고에 존재하는 영약 중 가장 비싸고 귀한 게 무엇인가요?”
“영약…… 말입니까?”
“네. 일반적으로 구하기 힘든 걸로요.”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양전의 대답에 영순공주의 얼굴이 밝아졌다.
“고마워요.”
재빨리 뒤돌아 약재상 안으로 사라지는 영순공주의 모습에 양전은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반면 조심스럽게 단악선 곁으로 되돌아온 영순공주는 두 사람의 대화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그럼 살펴 가려무나.”
“네, 아저씨도 건강하세요.”
“그래. 다른 분들께도 안부 전해 다오.”
그렇게 약간의 시간이 흘러 단악선과 임평이 마지막 인사를 나누자 영순공주가 슬쩍 운을 뗐다.
“그런데 침향이 이곳에 있는 건 어떻게 아셨나요?”
“제가 약재 냄새는 잘 구분하는 편이라서요.”
“이렇게나 많은 약재들 사이에서 침향 냄새를 명확히 구분해 내셨다고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약재를 다뤄 왔으니까요.”
“전 못 믿겠어요.”
“네?”
갑자기 그녀가 왜 이러나 싶어 단악선이 당황한 사이.
영순공주가 갑자기 한 가지 제안을 해 왔다.
“그럼 우리 내기 하나 하실래요?”
“내기요?”
“제게 환단이 하나 있어요. 이 환단을 어떤 약재들로 만들었는지 맞히는 내기예요.”
“하지만 그건 제게 너무 유리한 내기인걸요?”
단악선의 말에 영순공주가 빙긋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과연 그럴까요?”
“……?”
“이건 황궁의 비전으로 제조된 환단이라 단 한 번도 강호에 유출된 적이 없거든요. 재료는 물론 제조 방법도 비밀이죠.”
단악선은 문득 오래전 부모님께서 언급했던 영단 하나를 떠올릴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천의신단(天意神丹)이라고 하는 건데, 혹시 들어 보셨나요?”
영순공주의 말에 단악선이 깜짝 놀랐다.
이름만 알려져 있을 뿐, 소문으로만 떠돌아 존재 유무조차 확실하지 않던 황실의 영약.
심지어 부모님조차 지나가듯 언급했을 뿐 본 적이 없다던 귀물(貴物) 중의 귀물이었다.
눈빛을 반짝이는 단악선의 모습에 영순공주는 자신의 생각이 주효했음을 직감했다.
세상 모든 일에는 반드시 때가 있는 법.
물실호기(勿失好機)의 자세로 그녀는 곧바로 쐐기를 박아 넣었다.
“의원님께서 내기에 이기신다면 황실 비고의 약재들을 구경시켜 드릴게요. 제가 듣기에는 공청석유라는 것도 있다던데…….”
단악선이 깜짝 놀라 되물었다.
“방금 공청석유라고 하셨나요?”
그러곤 곧장 가까운 다루를 가리켰다.
“일단 자리를 옮기죠. 조용한 곳에서 이야기해요, 우리.”
영순공주가 회심의 미소를 머금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그렇게 곧장 두 사람은 다루로 이동했다.
두 사람이 사라지자 거리를 오가던 사람들이 우르르 임평의 약재상으로 몰려들었다.
거리에 즐비하게 늘어선 약재상 중 신마의선이 유일하게 들른 가게인 만큼 분명 나름의 이유가 있을 터.
그 사실이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한 것이다.
갑자기 미어터지는 손님들로 인해 임평은 그야말로 행복한 비명을 질러야 했다.
한편 다루에 들어선 단악선과 영순공주는 인적이 드문 한적한 창가 쪽에 자리를 잡았다.
영순공주가 품속에서 작은 상자 하나를 꺼내 다탁 위에 올렸다.
자단목으로 만들어진 고급스러운 상자였다.
상자를 열자 밀랍으로 싸여 있는 작은 영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위급한 상황에 처하면 복용하라며 황태후가 하사한 영단이었다.
처음으로 구중심처를 벗어나 강호로 향하는 딸이 그만큼 걱정스러웠던 것이다.
좀처럼 천의신단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단악선의 모습에 영순공주가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이처럼 뜨거운 단악선의 눈빛은 이제껏 본 적이 없었다.
물론 그 눈빛이 자신이 아닌 영약에 향해 있다는 사실이 살짝 서운하긴 했지만, 당장은 그걸로도 충분했다.
지금까지와 다르게 이처럼 격의 없이 인간적인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고무적이었기 때문이다.
‘궁하면 통한다더니…….’
밀어서 안 되면 당겨 보라는 삶의 이치를 다시 한 번 새삼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오늘 공주마마를 만난 건 제게 큰 행운이에요.”
영순공주가 환한 미소로 그 말을 받았다.
“이제야 제가 듣고 싶었던 말을 해 주시네요.”